시평

에세이_ 북인도 춤기행(4)
고대왕조의 성(城)과 신(神)들의 춤
이병옥_용인대 명예교수. 춤이론

 북인도기행 5일째 일행은 바라니시와 카주라호 일정을 마치고 다음 여행지를 행해 버스와 열차를 바꿔 타면서 인도 고대왕조의 숨결이 담겨진 고성(古城) 오챠(Orchha)와 잔시(Jhansi)와 아그라(Agra)를 향해 나섰다.
 마침 새해 첫날 휴가로 지역민들이 성을 찾아 쏟아져나는 관계로 도로가 막혀 결국 도중에 도보로 오챠의 제항기르성을 찾았다. 고성답게 까맣게 변색된 석조건물들이지만 섬세하고 다듬어진 고품격의 문양과 조각들이 웅장했던 역사를 말해주는 듯하였다.
 인도 무굴제국의 가장 위대한 황제로 꼽히는 3대 악바르(Akbar)황제가 원정을 나간 사이 아들 제항기르가 반란으로 황제라고 선포했으나 악바르가 원정에서 돌아와 제압당하자 속국 오챠(Orchha)로 피신하였다. 그후 악바르가 죽자 제항기르는 4대 황제로 등극하여 오차에 제항기르성을 지어 번창했으나 또다시 자신의 아들 5대 샤쟈한(Shah Jahan)에 패한 후 폐허가 되었다는 고성이다.
 이어서 잔시에서 아그라까지는 특급열차를 타고 밤늦게 아그라 호텔에 도착하여 새해만찬 겸 생신 맞은 일행을 위한 축배를 들었다.


 




 

불멸의 사랑이 남긴 세계문화유산 타지 마할(Taz Mahal)

 다음날 오전에 방문한 아그라(Agra)의 타지 마할(Taz Mahal)은 인도 무굴 제국 최고의 건축물일 뿐만 아니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면서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물의 하나이다. 제5대 황제인 샤 자한(Shah Jahan)의 둘째 부인 뭄타즈 마할(Mumtaz Mahal)의 이름에서 유래하였다.
 황제부부가 결혼 생활을 함께 한 것이 17년인데 무려 14명의 자식을 낳은 것도 그녀와의 돈독한 사랑이었으나 열다섯 번째 아이를 낳으려다가 세상을 떠나자 샤 자한은 지옥과도 같은 슬픔에 빠지게 되었다. 그녀에 대한 그리움에 그는 2년 동안 상복을 벗지 않았고 그녀를 위해 22년간에 걸쳐 아름다운 무덤을 만들었으니 그것이 바로 타지마할이다.
 흔히 ‘백색의 진주’나 ‘꿈의 궁전’으로 불리는 타지마할은 낮에는 흰색으로 보이지만 아침에는 자줏빛, 황혼녘에는 황금빛, 그리고 보랏빛과 푸른빛 등 그 색채가 수없이 변화한다고 한다. 영국작가 키플링의 타지마할에 대한 소감에 공감했다. “순수한 모든 것, 성스러운 모든 것, 그리고 불행한 모든 것의 결정이다. 이 건물의 신비는 바로 여기에 있다.”

 

 




 

파테푸르 시크르(Fatehpur Sikri)의 춤판 연못연회장

 오후에 찾은 파테푸르시크리는 1569~1574년 무굴제국의 제3대 황제 악바르(Akbar)가 세운 도시로 겨우 십 수 년 무굴제국의 수도였다. 인도 전역을 통일했던 악바르황제는 오랫동안 후사가 없자, 파테푸르시크리에 은거하고 있던 이슬람 성자인 샤이크 살림 치스티를 만나 아들을 점지해 달라고 부탁하여 3명의 자식을 얻을 것이라고 예언 받았다. 그 이듬해에 왕비 조드바이가 훗날 제4대 무굴황제가 된 아들 자한기르를 출산했다. 아들이 태어나자 기뻤던 악바르는 성자에 대한 보답으로 수도를 그가 살고 있던 파테푸르시크리로 옮기기로 결정하고 이곳에 궁전과 사원, 학교, 목욕탕, 마구간, 연못, 성벽 등을 짓고 무굴제국의 새로운 수도로 삼았으나 물부족을 예측하지 못해 결국 아그라로 재천도하였다. 눈에 띠는 것은 연못연회장으로 당시 국력만큼이나 화려한 연회를 베풀어 춤과 음악을 연행했던 곳임을 짐작할 수 있었으나, 성문을 나서자 부녀간에 연주에 춤을 추며 구걸하는 모습에서 인도춤의 어제와 오늘의 무상함을 느끼게 하였다.

 

 


 

암베르 포트(Amber Fort)와 코끼리머리인 가네샤신

 아그라에서 자이푸르에 도착한 일행은 다음날 핑크도시로 유명한 자이푸르의 산 중턱에 있는 성이 암베르 포트(Amber Fort)를 찾았다. 1037부터 1726까지 ‘카츠츠와하’ 왕조의 수도였던 곳이다. 산정상 부근에는 ‘자이가르 포트(Jaigarh Fort)’는 암베르성이 지어지기 전까지 ‘마하라자’의 왕성이었다고 한다. 관광객들을 위한 코끼리 트래킹행렬이 산성까지 이어져 장관을 이루었으나 바쁜 일정으로 빠른 지프를 타고 방문하였다.

 

 




 

코끼리 머리를 가진 가네샤(샨스크리트어: Gaṇeśa)신의 유래

 가네샤(Gaṇeśa)는 인도신화에 나오는 인간의 몸에 코끼리의 머리를 지닌 모습을 한 신으로 《라마야나》에 등장한다.
 가네샤는 역경극복, 사업번창, 학문성취를 이루게 해준다고 믿는 신으로, 인도에서는 락슈미, 크리슈나와 함께 가장 폭넓게 숭배 받는 신의 하나이다.
 코끼리 머리를 한 이유는 가네샤 어머니 파르바티가 목욕하는 걸 지키다가 아버지 시바까지 들어오지 못 하게 하자 열 받은 시바가 저지하는 이의 목을 베었는데, 그게 아들이어서 다급히 지나가던 코끼리의 목을 베어 얹혀줬다고 하는 등 비슷한 설화가 전한다.
 가네샤는 배불뚝이에 4개의 팔을 가진, 한쪽 상아가 부러져있는 코끼리 머리의 남자로 묘사된다. 쥐를 걸터앉고 있거나 발치에 쥐를 두고 있는 등, 회화나 조각에서 쥐와 함께 그려진다. 그 4개의 팔에 들고 있는 지물은 조개껍데기, 원반, 곤봉, 수련꽃이지만, 다른 지물로 바뀌는 경우도 있다.
 가네샤신은 장애물의 제거자로 불린다. 그래서 인도인들은 제사의 시작이나 여행 출발 때 가네샤에게 기도를 한다. 또한 가네샤는 지혜의 신으로 추앙 받으며, 가정이나 마을의 수호신으로 받들어지고 있어 시바사원에는 꼭 등장한다.
 가네샤는 훗날 불교에도 유입되어 성천(聖天), 관희천(觀喜天)으로 숭배 받았으며, 코끼리는 석가모니의 탄생 전설에서부터 연관된 영물로서 지혜와 용맹, 부 그리고 덕의 상징으로 숭배되어 우리나라 불교 연등회에서도 코끼리가 등장하는 이유이다.

 

 



자이푸르의 코끼리축제

 매년 라자스탄의 자이푸르 붉은 도시에서 5월에 열리는 축제이다. 코끼리 주인들은 이 축제에서 상을 받기 위해서 1일주일 할애해서 코끼리를 장식한다. 수상자에게는 말이나 낙타가 상품으로 주기도 한다.
 인도코끼리는 고대부터 왕과 신에 연결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부다와 자이나교와도 인연이 깊다. 코끼리의 위엄과 수심이 깊은 눈은 사람들의 마음을 매혹시켰으며, 왕다운 당당함으로 코끼리는 왕의 가장 중요한 소유물로 여겨지게 되었다.
 자이푸르 코끼리 축제는 전국적으로 규모도 크고 유명하다. 코끼리와 낙타, 말 그리고 전통적인 왕족의 마차들, 가마들과 민속무용 댄서, 음악인들의 행진이 초우간 스타디움까지 이어진다. 다양한 행사로 코끼리 장식하기, 코끼리 달리기, 코끼리와 관광객들의 줄다리기 등이 있으며, 하일라이트는 코끼리 폴로 경기이다.

 

 


 

발레 《라 바야데르》와 영화 《가네샤의 춤》의 코끼리춤

 가네샤와 관련한 인도코끼리를 소재로 한 예술작품에는 발레와 영화가 있다. 발레《라 바야데르(La Bayadere)》는 인도가 배경으로 전형적인 드라마틱 발레로 의상이 아주 화려하며 무대가 웅장하다. 힌두사원을 배경으로 무희 니키아와 젊은 전사 솔로르의 사랑이야기지만, 라자왕이 공주 감자티와 결혼시키려 하여 삼각관계가 극적인 드라마로 펼쳐진다. <백조의 호수>나 <잠자는 숲속의 미녀>등 발레 걸작의 안무가로 잘 알려진 마리우스 프티파가 동양적 분위기에 매료되어 안무한 <라 바야데르>는 프티파 특유의 고전 발레 스타일인 스케일이 큰 볼거리가 많은 스펙터클 발레가 최고조에 이른 작품이다. 마린스키 안무에서 초거대 코끼리가 나오는데 유니버설 발레단의 공연에서도 볼 수 있는 화려하고 웅장한 장면이다.
 영화 《가네샤의 춤》은 비카스 란잔 미쉬라 감독의 2011년 국내에 개봉했던 영화이다. 내용은 한 부족의 무용가는 생계를 위해 자동차 공장에서 고된 일을 하면서 조상들의 전통춤인 가네사의 춤을 보존하기 위해 노력한다. 서로 상충되는 가장으로서의 역할과 춤 속의 코끼리 신으로서의 역할을 오가면서 무용가는 생존과 예술 사이에서 최종 선택을 해야만 한다는 내용이지만 가네샤 코끼리춤이 인상적이다.


 

 


 

파괴의 신 시바(Shiva)가 춤추는 나타라자(Naṭarāja)

 시바는 힌두교 신의 세 번째 신으로 파괴의 신이며 재창조자로 동전의 양면처럼 파괴와 창조의 모습을 동시에 보여 준다. 시바는 만물을 창조하고 파괴하는 위력을 지녔으므로 모든 신들이 힘을 합쳐도 그를 당해낼 수 없을 만큼 강력한 신이다. 나타라자는 시바신이 춤을 추고 있는 모습을 말한다. 10개의 팔을 가진 시바신은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기 위해 세상을 파괴할 절정의 시기에 춤을 춘다고 한다.나타라자(Naṭarāja)는 산스크리트로 '춤의 왕'을 뜻한다. 나타라자상이 중요한 뜻을 갖는 이유는 불꽃으로 된 원형이 상징하는 우주(Cosmos)에서 일어나는 모든 움직임의 근원은 바로 시바 신임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춤의 목적은 인간을 미망(迷妄)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이고, 춤을 추고 있는 곳인 우주의 중심 치담바람(chidambaram)은 인간의 마음속에 실제로 존재한다고 한다. 춤추는 모습은 시바의 5가지 행위(pañcakṛtya)를 상징한다. 손바닥 처든 시무외인(施無畏印) 손모습은 보호를, 왼손 손바닥 위의 불은 파괴를, 땅을 밟고 있는 발은 화신(化身)을, 위로 들어 올린 발은 해탈을 나타낸다. 뒷편의 두 번째 오른손을 잡고 있는 북(Drum)은 춤출 때 박자를 맞추고 창조의 리듬을 의미한다.
 따라서 시바의 춤은 우주의 변화를 표현하며, 창조, 유지, 파괴의 통일과 환생, 해탈을 상징한다. 시바의 오른발은 속세의 구속을 강요하고 정신적 깨달음을 방해하는 마귀를 밟고 있으며, 들어 올린 왼발은 초월성을 나타낸다. 왼손에 들려있는 불은 현 우주의 완전한 해체를 의미하고, 아래로 향한 왼손은 무지로부터 구원을 나타내며, 정면을 향해 펴진 오른쪽 손바닥은 두려움으로 부터의 자유를 상징하고, 작은 초승달은 시간의 여정에 대한 상징이다.

 

 


 

요가의 '춤의 왕 자세'인 나타라자아사나

 요가를 하면 한번쯤은 꼭 접하게 되는 ‘춤의 왕 자세’와 ‘전사자세’이다. 춤의 왕 자세는 한 다리를 구부려서 들고 균형 잡는 모습이 나무자세와 비슷하여 ‘변형 나무자세’라고 불리기도 하지만 원래 이름은 ‘나타라자 아사나’이다. 산스크리트어로 ‘나타’는 무용수를, ‘라자’는 왕을 뜻하고, 뒤에 붙는 ‘아사나’는 체위나 자세라는 의미이다. 한편 시바는 요가의 신이기도 하며 춤과 음악에 조예가 깊은 신이다.
 신화의 내용은 인도의 왕 닥사는 딸 삭티가 자신이 싫어하는 시바와 결혼하자 심한 모욕을 주어 자결하게 만들어버렸다. 시바는 자신의 사랑스러운 아내를 죽음으로 몰고 간 닥사에게 진노하여, 자신의 머리카락을 뜯어 땅에 던져 ‘비라바드라’라고 하는 영웅을 만들었다. 시바는 비라바드라에게 자신의 군대를 이끌고 가서 닥사와 그의 제식을 파괴하라는 명령을 내려 제단을 부수고 닥사의 목을 베었다. 시바는 비라바드라가 싸우는 동안 거칠고 광포한 춤을 추었는데, 시바의 백가지도 넘는 종류의 춤에서 이 춤이 가장 유명하다.
 신화의 무시무시한 내용과는 반대로 유려하고 아름다운 이 자세는 요가의 원천이자 근원인 춤의 신 시바에게 바쳐지는 춤이다.
 시바가 한 쪽 다리를 든 채로 춤을 추는 모양에서 따온 나타라자 아사나는 뛰어난 균형감각과 유연성, 집중력을 요구한다. 실제로 신화에서도 시바신의 들고 있는 한 쪽 다리와 바닥에 놓여 있는 반대쪽 다리는 세계의 균형을 의미하며, 시바가 두 발을 땅에 놓는 순간 파괴와 멸망이 시작된다고 한다.

 

 


 

카탁(Kathak)

 카탁은 북인도와 서인도에서 가장 대중적이면서 고전적인 춤의 하나로, 무굴제국 시기에 최고의 스타일과 활기차고 감각적인 형태를 갖추게 된다. 카탁(Kathak)이란 말의 어원은 ‘Story Telling(이야기 말하기)’이라는 예술행위를 뜻하는 카타(Katha)에서 유래되었다. 힌두신화에 나오는 이야기를 전달하거나 설명해주는 전문적인 이야기꾼들을 카타카스(Kathakas)라고 하며, 해설, 노래, 춤을 통해 에피소드를 전달했다. 이것이 점차 대를 이어 전해져서 카탁(Kathak)이라고 불리는 춤으로 완성되었다. 카탁 춤의 특징은 빠른 발놀림(Tatkar), 회전(Spin)과 더불어 강한 리듬에 맞춰 일직선으로 움직이는 것이다.
 전통 타악기인 따블라와 무용수의 발목에 달린 방울을 발구르기로 방울소리 리듬과 박자에 맞춰 춤을 추며 연기자가 직접 대사를 읊기도 한다. 고도의 테크닉과 센스를 지니고 완성도가 높은 공연을 하기에 연륜과 경험이 요구된다.

 

 


 

마니푸리(Manipuri)

 마니푸리는 인도북동주의 마니푸리에서 자생한 인도 전통춤이다. 마니푸리의 특징은 색채가 화려한 장식품과 의상, 경쾌하고 민첩한 발동작, 섬세하고 정교한 얼굴연기, 명쾌한 음악, 그리고 시적인 운율을 읊어내면서 그들의 신앙심과 마니푸리의 화려한 문화를 춤을 통해 보여준다. 마니푸리 춤은 전적으로 종교와 영적인 경험을 지향하지만, 그들의 사회적 문화적 의식의 본질을 반영하는 것으로 그들의 삶과도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북인도 마지막 여정 델리

 북인도기행의 마지막은 기행 첫날 델리공항에 발을 딛은 델리로 다시 돌아왔다. 도착 첫날 숙박했던 한국인 여행사가 경영하는 숙소로 돌아와 오랜만에 집밥을 먹을 수 있었다. 마지막 일정으로 자이푸르의 박물관겸 왕궁이었던 시티팰리스와 천문대 잔타르만타르, 연꽃사원으로 알려진 바하이사원, 이슬람왕조 술탄 구뜹이 힌두왕국을 정복하여 힌두사원을 파괴하여 그 재료로 세운 세계문화유산 구뜹미나르 등을 돌아보았다. 비록 인도는 10억 인구가 가난하고 생활수준은 낮을지라도 중국과 다른 또 하나의 아시아의 중심축을 이룬 찬란한 역사와 정신문명을 전승해온 국가이며, 아시아 문화예술과 종교의 근본임을 확인하는 여행이었다.

 

 


 

여행후기

 인도는 워낙 광대하고 다양한 민족과 언어와 문화예술을 간직해온 국가이기에 한 두번의 여행으로 인도를 알 수 있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래도 북인도전통춤을 중요한 포인트를 살펴보고 확인하였다. 다음에는 남인도여행을 통하여 또 다른 인도 전통춤을 살피고 확인하기로 한다. 특히 남인도 대표적인 무용에는 타밀나두주(州) 중심의 바라타나티얌과 케랄라주중심의 카타칼리 등과 민족무용을 확인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2014. 05.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