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과 5월에 걸쳐 춤계 현장에세 캐치한 이슈는 국립무용단의 <회오리>와 국립현대무용단의 <이미아직> 공연이었다. 무용가들과 춤 비평가들, 춤 공연 기획자, 그리고 춤 매니아들 사이에서 이들 작품과 두 단체는 적지 않은 국고를 지원받는 MODAFE와 대한민국발레축제, 그리고 공공극장으로는 유일하게 춤 축제를 개최하고 있는 강동아트센터의 강동댄스페스티벌에 대한 이런저런 얘기를 넘어서는 뜨거운 화제거리였다. 두 단체의 공연은 MODAFE가 끝난 후 프로그래밍을 포함한 공연의 질이 예년에 비해 퇴보했다는 우려의 소리, 대한민국발레축제의 프로그래밍이 예년에 비해 진일보 했음에도 지역의 단체와 무용인들이 제외되고 서울 발레인들만의 잔치가 되어버렸다는 아쉬움, 강동댄스페스티벌이 세월호 참사로 인해 대폭 프로그램이 축소된 배경의 이면에는 지방자치단체 선거에서의 득표 전략과 맞물려 있다는 의혹의 눈길을 잠재울 만큼 강했다. 논의의 초첨은 우선 <회오리>와 <이미아직> 두 작품이 갖는 예술적인 완성도였다. <회오리>는 국립무용단이 창단 이래 처음으로 외국의 안무가를 초청해 장편을 만들었다는 점에서, <이미아직>은 지난해 새 예술감독으로 부임한 안애순 감독이 처음 만든 새 장편 작품이란 점에서, 이들이 과연 몇점짜리 인가?, 곧 작품의 질에 쏠렸다.
두 작품 모두 엄청난 홍보 물량을 투입했다는 점도 춤계의 관심을 끄는데 일조했다. 마치 경쟁이라도 하듯 신문과 방송에서 이들 공연을 다루었고, 지면에 인색한 일간지에는 공연 리뷰가 실리기도 했다. 이들 두 작품은 컨템포러리 댄스로서의 성향이 농후한 작품이다. <회오리>는 그동안 국립무용단이 보여주던 무용극 스타일이 아닌 유럽의 컨템포러리 댄스 작품들이 보여주는 댄서들의 움직임 조합에 초점을 맞추었으며, <이미아직>은 ‘전통에 바탕한 동시대 춤’을 표방했다. 두 작품만 놓고 보면 국립무용단과 국립현대무용단이 갖고 있던 고유성, 단체에 대해 갖고 있던 고정관념을 서로 뒤바꾸게 했고, 결국 두 단체를 더욱 비교의 대상으로 부각시켰다. 두 작품에 대한 현장의 목소리를 종합해 보면, <회오리>의 경우 부정적인 시각이 만만치 않으면서도 긍정과 부정이 다소 엇갈리는 반면, <이미아직>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반응이 대세였다. 국립무용단은 지난해 안성수를 객원 안무가로 초청해 장편 <단>을 만들었고, 6월초에 다시 리바이벌 공연을 무대에 올린다. 안성수는 국립현대무용단 창단 때부터 예술감독으로 물망에 올랐었다. 그러나 그는 국립현대무용단이 아닌, 국립무용단에서 안무했다. 국립무용단의 영문 표기는 National Dance Company of Korea이다. 국립현대무용단은 Korea National Contemporary Dance Company로 사용한다. ‘Dance’와 ‘Contemporary Dance’가 다르다. 국립무용단의 ‘Dance’에는 Traditional Dance와 Contemporary Dance 모두를 아우른다는 개념이 포함되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이 같은 단체의 영문 표기- Dance 혹은 Contemporary Dance는 사실상 그리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어쩌면 ‘National'이다. 국립무용단이나 국립현대무용단이나 궁극적으로는 National, 즉 대한민국을 대표해 당당히 세계 춤시장에서 경쟁할 수 있는 단체로, 그에 걸맞는 완성도 높은 작품(상품)을 보유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공공성의 실현이란 차원에서 이 같은 수준 높은 예술 작품을 많은 국민들과 공유하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나는 국립현대무용단의 창단 때부터 국립무용단과 언젠가 그 작업 방향이 충돌할 것이라고 예견했고 이에 대해 지적했었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기우이다. 엄연히 전공이 다른 무용수들인데---”라며 섣불리 동의하지 않았다. 그러나 나의 이같은 예견은 의외로 빨리 수면 위로 도출되었다. 이제는 국립무용단과 국립현대무용단의 정체성에 관해 굳이 이를 구분할 필요는 없다. 그들이 만들어 내는 작품은 결국은 컨템포러리 댄스의 범주로 보면 된다. 프랑스가 안무가 19명에게 국립무용단이란 이름을 사용하도록 한 것과는 조금은 다른 개념이지만, 결국 한국의 춤계는 이름이 다르다는 점에서는 둘이지만, 컨템포러리 댄스를 지향하는 국립 춤단체란 점에서는 하나인 두 개의 국립무용단을 가진 셈이 되었다. 국립발레단(발레)과 국립국악원무용단(전통무용), 그리고 두 개의 국립무용단(컨템포러리 댄스)이 프로페셔널한 단체로 국가의 지원을 받고, 국립무용단은 50여명 무용수가 상주 단원 체제로, 국립현대무용단은 상주 단원 없이 프로젝트 무용단으로 운영되는 모양새를 갖게 된 셈이다. 국립현대무용단의 안애순 예술감독이 핀란드 안무가 테로 사리넨의 안무 작품 <회오리>를 국립극장 대극장에서 주의깊게 지켜보는 현장에, 국립무용단의 윤성주 예술감독이 안애순이 안무한 <이미아직>의 공연을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에서 주의깊게 지켜보는 현장에 공교롭게도 함께 있었던 나는 이들 두 예술감독이 각각의 공연을 보면서 어떤 생각을 했을까 무척 궁금했다. 안호상 국립극장 극장장이 <회오리> 공연을 가리켜 “프랑스 샤이오 극장 등 세계 유수의 공연 관계자들이 테로 사리넨과 국립무용단의 작업을 지켜보고 있다”고 말하는 시점에 국립현대무용단은 샤이오 극장에서의 공연 계획을 발표했다. ‘National’이란 타이틀이 붙어 있는 만큼 이들 두 단체의 해외 무대 진출은 좀더 신중할 필요가 있다. 민간 춤 단체들이 우후죽순 해외 공연을 가는 것과 ‘국립’ 단체의 해외 진출은 그 의미가 다르다. 베이징 국립발레단이 코벤트가든에서 일주일 넘게 공연하면서 전회 매진을 기록하고 언론의 호평을 받으면서 세계 주요 공연예술 시장인 런던 무대에 진출한 것, 일본의 가부키가 뉴욕무대에 진출할 때 ‘뉴욕 타임스’에 전면 광고를 수차례 게재하면서 ‘국립’ 단체 공연을, 문화예술을 통한 국가의 이미지 고양과 연계시킨 사례를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 ‘국립’ 예술단체의 해외 무대 진출은 검증된 작품이 만들어졌을 때, 재공연 등을 통해 레퍼토리로서의 상품성을 확보했을 때, 국제무대에서 확실한 경쟁력을 확보했다는 판단이 들 때 모양새를 갖추어 나가야 한다. 혹여 자신의 임기 중에 어떤 새로운 ‘성과’를 위해, 준비되지 않은, 무리한 해외무대 진출을 시도한다면 이는 결국 국제무대에서 한국 춤계의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부메랑으로 되돌아올 것이다.
오늘날 공연예술 시장에서 ‘National’ 단체가 의미하는 것은 전통성보다는 현대성이 농후하다. 향후 국립무용단과 국립현대무용단 두 단체의 작업은 그것이 한국의 전통적인 것을 베이스로 한 컨템포러리 댄스가 되든 아니면 현대적인 색채의 컨템포러리 댄스가 되든 이제 서로 다름을 주장할 명분이 없어졌다. 두 단체의 위상은 결국은 어떤 단체가 ‘국립’의 위상에 걸맞은 작품을 만들어 내는가에 달려 있다. 그런 점에서 <회오리>와 <이미아직>은 그 예술성 면에서 기대에 못미쳤고 초라했다. 국립무용단이 내세우는 ‘창단 52년 만에 처음 갖는 해외 안무가 초청작업’이란 글귀는 결코 자랑할 만한 것이 아니다. 아주 오래전부터 그런 작업은 이미 시행되었어야 했다. 국립현대무용단 역시 팜플렛에 요란한 글을 넘쳐나게 담아냈지만 정작 무대 위에서 관객들과 만난 작품의 질은 “프로페셔널한 단체가 맞는가?”라는 의문이 들 정도로 빈약했다. 세계 춤시장에서 유통되는 컨템포러리댄스의 작품 수준에 비추어 보면 평균점을 밑돈다. 관객들을 감동시키지 못하는 작품이 계속 되풀이 되면 단체의 존재 가치도 미약해진다. 돈과 시설, 그리고 전문인력을 보유하고 있는 만큼 그 이점을 살려 제작과정에서의 꼼꼼한 프로듀싱과 창작 작업에 올인 할 수 있는, 안무가를 포함한 제작진들의 정신적인 재무장이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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