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평

대기업 문화예술 지원의 허실
“문화는 CJ가 제일 잘하는 일이니까요”(?)
이종호_춤비평가. <춤웹진> 편집위원

 “서울시 청사에 뭐 재미있는 거 없어요?” ”시민 말씀대로 시민청에 오시면 다양한 볼거리와 즐길거리가 있습니다.“
 “심야버스 노선이 많이 늘었다는데...” “시민 말씀대로 심야전용 <올빼미 버스>, 9개 노선별로 확인해 보세요.”
 <시민체감 주요정책>이라는 서울시 홍보문안 20건에는 한결같이 ‘시민 말씀대로’가 삽입돼 있다. 그런데 앞 문장들과는 어법상 맞지 않는다. 가령 첫 문장의 경우, ‘시민 말씀대로’를 아예 빼거나 혹은 ‘시민들이 즐기실 수 있도록’ 정도로 바꾸는 것이 말의 논리에 적합하다. 아마도 ‘시민들의 희망 혹은 제안에 따라‘ ’시민들을 배려하기 위해‘라는 뜻으로 쓴 모양인데, 서울시가 얼마나 시민들을 공경하는지 몰라도 이 억지스런 삽입은 종종 읽거나 듣는 이를 오글거리게 한다.


 

문화예술 욕보이는 과장광고, 이제는 그만 

 

그렇지만 이 정도의 애교성 비논리는 약과다. 가령 “문화는 CJ가 제일 잘하는 일이니까요” 같은 광고를 보고 있노라면 닭살을 넘어 격분을 느낀다, 고 하면 좀 심한 반응일까. 그룹 총수가 비리를 저질러 실형을 선고받고 주력 계열사가 의사들에게 30억원대의 리베이트를 주다가 걸려서 망신을 당하는 가운데서도(아니, 그런 부정적 이미지를 희석시키려고 더욱?) 끈질기게 등장하고 있는 이 광고를 시청할 때마다 대기업의 문화예술에 대한 인식수준이 이 정도인가 싶어 화를 참기 어려워진다.
 “우리는 세상에 없던 걸 만들고 싶었고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을 알리고 싶었습니다”로 시작하는 광고는 그간 이 기업이 만들었던 드라마와 영화, 한식 브랜드 등을 내세운다. “마마로 축제를, 드라마로 세대간...”까지는 그럭저럭 봐줄 수 있다. 한데 마지막 문구 “우리는 문화로 미래를 창조하고 싶었습니다”를 거쳐 “문화는 CJ가 제일 잘하는 일이니까요”에 이르면 도저히 용납할 수 없게 된다. 한 마디로, 문화를 내세워 돈벌이에 급급한 기업이 마치 미래문화 창조의 기수라도 된 듯 거창한 포즈를 취할 때, “시민 말씀대로”의 어색한 애교를 넘어 자의적 기만이 될 때, 무심히 넘어가기는 어려워진다. 허위광고인지 과장광고인지 법률적으로 판정하긴 어렵지만 최소한 정직하거나 정확한 광고는 아니다.
 물론 드라마, 영화, 한식 등이 문화의 한 부분인 건 맞다. 그리고 그런 일에 CJ라는 기업이 다른 기업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극적인 건 사실이다. 그러니 이재현 회장에 대한 법원 판결문에도 “문화 발전에 이바지한 공로...”라는 표현이 들어가 있는 것 아니겠는가. 그렇지만 한 가지 생각해봐야 할 일은 이른바 ‘돈 되는 문화’에만 집요하게 매달리고 ‘돈 안되는 문화’는 철저히 외면하는 사람들이 마치 자신들이 문화예술의 대변자라도 되는 양 나대는 것은 볼썽사납다는 말이다. 이 기업은 한때 순수예술 행사를 후원하기도 했고 특히 젊은 예술가들을 위해 아지트라는 공간을 마련해 공연 기회를 마련해 주는 등 뭔가 하는 듯했다. 하지만 얼마 안돼 “무용은 돈이 안된다”는 확실한(?) 이유로 접어버렸다. 하긴 대한민국 최고의 기업인 삼성도 예술분야 인재양성 프로그램인 맴피스트(MAMPIST)를 운영하다가 몇 해 만에 접어버렸었다. 이유인즉슨 “인재양성 사업은 즉각 효과가 나지 않아서“였다. 사람에 대한 투자효과가 금세 나지 않는다는 걸 삼성같은 세계적 기업이 모르고 시작했단 말인가? 문화계 일각에서 “재산축적 수단으로 그림만 사 모으던 삼성이 모처럼 괜찮은 문화 프로젝트를 출범시켰 다”는 평까지 받았던 맴피스트는 일부 언론의 “지속돼야 한다”는 지적에 한 차례 더 연명했으나 결국은 없어지고 말았다. 그런가 하면 한때 호암아트홀의 소유권자로 돼 있었던 삼성생명은 받을 돈 다 받고 홀을 빌려주면서도 반드시 공연 프로그램에 ‘삼성생명 후원’이라는 문구를 넣도록 요구했다. 참으로 후안무치했다. 한때 젊은 예술가들을 후원하면서 그들로부터 신선한 사업 아이디어를 이끌어내곤 했던 중소기업 쌈지와 비교해도 격이 떨어진다.




상업문화 벗어나 돈 안되는 순수문화에도 관심 가져야
 

 

 

CJ는 최근 <댄싱9>이라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히트를 쳤다. 그런데 여기서도 마치 춤이라는 소외된 분야를 전국민적 예술로 승화시킨 주역이 자신들인 양 포장하고 있다. CJ의 한 홍보성 영상물은 춤이라는 천대 받던 분야와 그늘에 가려져 있던 무용가들을 <댄싱9>을 통해 양지로 끌어낸 듯 거짓말하고 있다.
 천만에, 춤은 이미 상당 부분 마당으로 나와 있었고 그들은 이미 스타가 되어 있었다. CJ는 대중춤 내지 상업춤의 영리적 가능성을 남들보다 먼저 간파하고 움직인 것뿐이다. 자본과 TV채널이라는 유통수단을 동원해 상업춤을 확산시켰고 이를 통해 자사에 유리한 영업을 한 것뿐이다. 좋게 말해 기업과 일부 무용가들에게 공동의 이익을 가져다 준 것이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예술로서의 무용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각이 격상됐다는, 그래서 천덕꾸러기에 불과했던 무용예술의 등급이 하나 높아진 것이 CJ 덕분이라는 식의 진실호도적이고 약삭빠른 광고는 이제 그만두기 바란다.
 진실로 문화를 통해 미래를 창조하고 싶다면, 한국을 전세계에 알리고 싶다면 문화와 예술에 대한 기본인식부터 새로이 하기 바란다. 아울러 문화를 통해 기업 이미지를 쇄신하고 싶다면 상업문화에 머물지 말고 ‘돈 안되는 문화’ ‘순수문화’에도 관심을 가져보기 바란다. 예술의전당 확장공사비 대주고 얻은 이름 ‘CJ토월극장’에서도 지금과는 좀 다른 가치를 지향하는 공연들도 올려보기 바란다. 지금까지의 방식을 앞으로도 계속할 작정이라면 CJ의 광고 문구는 “문화는 CJ가 제일 잘하는 일이니까요”에서 “문화를 내세워 돈 버는 일이라면 CJ를 따라올 자가 없으니까요” 정도로 고치는 게 맞겠다.

 얼마 전에는 경기도 포천 소재 아프리카 예술박물관에서 아프리카 예술가들이 착취 당하고 있다는 기사가 눈길을 끌었다. 야당 의원들이 진상조사에 나섰고, 하필 이 박물관이 집권당 사무총장이 운영하는 곳인 덕분에(?) 즉각적인 시정 약속과 함께 신속히 마무리되기는 했지만(집권당 사무총장은 자신의 정치적 이미지에 끼칠 영향 때문에 얼마나 당황했겠는가) 참으로 서글픈 얘기였다. 제 나라에서 일류로 대접받는 예술가들이 돈 좀 벌어보겠다고 한국 땅에까지 왔다가 곰팡이 서린 침실에서 새우잠을 자며 온갖 부당대우에 시달리고 있었다니. 문화체육관광부의 문화동반자 사업을 통해 한국에서 6개월간 머문 적이 있는 부르키나 파소의 일급 안무가/무용수 부바의 편지가 다시 생각났다.
 “미스터 리, 얼마 전 한국의 아프리카 박물관이란 곳의 책임자가 와서 무용수들을 뽑아갔는데, 그때 난 사정이 있어 오디션에 응하지 못했어. 거기서 일할 수 있도록 추천해주면 고맙겠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추천해주지 못한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드러내지 않고 문화예술을 후원하는 고마운 기업들도 제법 많다. 장학이나 의료지원 등 종래의 사회복지형에서 이른바 창조형 후원으로 변하는 경향도 뚜렷이 감지된다. 그만큼 우리 기업들도 배고프던 시절의 졸부의식과 천민자본주의에서 서서히 벗어나고 있다는 징표다. 다만 이처럼 사회가 전반적으로 업그레이드되는 과정에서 일부 대기업이 여전히 몰문화적 행태를 보여주고 있는 것은 유감스럽다.
 기업이 무조건 문화예술을 후원해야 한다는 것도 아니고, 문화를 내세워 돈을 벌어서는 안된다는 얘기도 아니다. 다만 과장하지 말자는 것뿐이다. CJ가 이번에는 <댄싱9> 시즌2 외에도 새로이 미술 서바이벌 프로그램을 준비한다니 지켜볼 일이다.

2014. 03.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