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평
북인도 춤문화기행 지난 호에 삶과 죽음이 너무 편안한 바라나시(Varanasi)에서 갠지스강가의 화장의식, 꿈브멜라(Kumbhamela) 축제, 아르띠 뿌자(Arti Puja, 흰두의식)의 향불춤, 불교성지 사르나트(Sarnath, 鹿野園)의 탑돌이춤에 대해 소개하였다.
바라나시 기행을 마친 일행은 다음 여행지로 이동하기 위해 야간열차에 몸을 싣고 3단 침대칸에서 불편한 하룻밤을 지새워 자그마한 시골마을 카주라호에 도착했다.
인도는 많은 종교의 근원지 인만큼 많은 순례지가 있다. 카주라호도 역시 순례지 중 하나이다. 델리에서 약400km 떨어진 곳에 있다. 간디가 이곳을 방문한 후 미투나상(Mithuna: 남녀교합상)을 보고는 사원들을 모조리 부셔버리고 싶다고 했을 정도로 낯 뜨거운 에로틱한 조각들이 즐비하다.
물론 성애를 통하여 태어나고 성교를 통해서 자신을 복제해 가는 우리의 삶과 예술에는 곳곳에 성애의식이 깊이 스며들어 있지만, 그 중에서 인도의 카주라호(Khajuraho)에 있는 사원만큼 성애를 적나라하게 표현한 곳도 없는 것 같다. 이곳의 힌두교 사원들 중 특히 락슈마나(Lakshmana) 사원과 칸다리야 마하데브(Kandariya Mahadev) 사원은 남녀의 성행위를 표현한 미투나(Mithuna, 남녀교합상) 조각들로 뒤덮여 있다. 성적 합일을 이루는 과정에서 남자는 요가를 하듯 물구나무를 서고 여인은 다른 여인의 부축을 받는 등 수많은 체위의 형상, 심지어는 말과 성행위를 하는 남자 등을 묘사한 조각들을 보면 당혹감을 금할 수 없는 것이다.
이러한 사원들은 찬델라(Chandela) 왕조의 수도였던 카주라호를 중심으로 전성기인 10세기경 85개나 설립되었으나, 무굴제국의 침략으로 파괴되어 현재 남은 것은 붉은 사암(沙岩)으로 된 사원 22개 뿐이며, 작은 시골마을처럼 변해있었다.
사원의 미투나상(Mithuna)들은 그랑 빠 드 되 같은 사람춤의 극치
카주라호의 사원군은 지리적 특성에 의해 서쪽 사원군, 동쪽 사원군, 그리고 남쪽 사원군 등 세 그룹으로 분류된다. 서쪽 사원군은 가장 규모가 크고 카주라호 사원의 특징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곳이기 때문에 우리에게 잘 알려진 곳이다.
이곳의 사원들은 완벽한 대칭을 이루며 40m 하늘 높이 치솟아 있는 깐다리야 마하데브(Kandariya Mahadev) 사원, 비슈누의 3번째 화신인 멧돼지를 모셔놓은 락슈미와 바하라 사원, 락슈마나 사원(Lakshmana Temple), 시바신을 상징하는 남성 성기 모양의 조각인 링가를 모셔놓은 메딴게스와라 사원(Matangeswara Temple), 마하데바 사원(Mahadev), 시바를 모시고 있는 비슈나와트 사원(Vishwanath Temple) 등이 있다.
사원의 조각들은 리얼하게 묘사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매우 정교하여 여성의 속옷과 장신구들, 그리고 농염한 조각이 돋보인다. 건물의 정면을 풍부하게 장식하고 부분적으로 키가 1m에 이르는 부조상들이 사원벽면에 빼곡하게 부조되어 있다. 따라서 사원의 벽면과 기단부에 가득 새겨 놓은 수천 개의 에로틱한 조각으로 유명한 카주라호는 힌두교 최고의 성지이며, 인도문화의 중심지이고, 그리고 인도 민족정신의 본향으로 일컬어진다.
사원 밖에서 보면 작은 탑들이 송이송이 매달려 커다란 중심 봉우리 주변에 작은 봉우리들이 솟아있는 산을 연상시키는 곡선의 탑으로 이루어져 있다. 외벽 주변에는 두 줄, 혹은 세 줄로 서로 육감적으로 끌어안고 있는 신, 여신, 왕, 영웅, 고급 창부 등이 늘어서 있고 때로는 다양한 수간(獸姦) 장면이 나타나 있는 경우도 있다. 내부 역시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으며 트인 주랑 현관이 메인 홀로 이어지고 그 뒤에 있는 대기실은 서 있는 조각상이 들어찬 내부의 성소이다. 사실 조각과 건축이 완벽하게 융화되어 있어 각 건물이 성적 욕망이 매우 강한 대가에 의해 계획되었던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춤을 전공하는 이들은 미투나상들이 아름답고 육감적인 춤사위로 보이며, 미투나상 모두가 대군무로 착각하게 만든다. 발레로 보면 섹시하게 진한 사랑의 극치를 보여주는 그랑 빠 드 되의 연속으로 보인다. 이처럼 아름다운 몸매와 몸짓, 감정이입이 확실한 무용수들이 아니면 표현할 수 없는 몸짓이기 때문이다.
왜 신성한 사원에 음란한 섹스장면을 조작했을까? - 탄트리즘(tantrism)의 수행의식
인도의 에로틱 예술은 마음이 아니라 의식에 해당된다. 그러므로 인도의 에로티즘은 생각을 흐트러뜨리는 마음을 쫓는 방법으로, 마음의 저편에 있는 천국을 받아들이려는 의도에서 이용했다. 결국 성의 끝은 신이 내려준 의식에 도달하게 된다. 미투나상은 인간의 강한 육체적 정신적 이끌림의 표현이며, 남녀의 육체적 사랑은 확실한 신성의식으로 가는 길로 삼았던 것이다.
사원 조각상에는 압사라스(apsaras) 혹은 '성스러운 처녀(celestial maidens)'의 돌 조각이 플레이 보이지 모델처럼 포즈를 잡고 있고, 관능적인 조각상인 미투나(mithuna)는 카마 수트라(Kama Sutra)에 나오는 모든 체위와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이 조각들의 호색적인 면이 관광객들의 시선을 사로잡기 때문에 카주라호 사원은 전 세계에 유명해졌다.
그렇다면 왜 신성한 사원에 이런 음란스러워 보이는 미투나 조각들을 만들었을까? 그것은 찬델라 왕조의 부흥기와 비슷한 8세기에서 12세기까지 성행한 탄트리즘(tantrism)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보고 있다. 탄트리즘의 근본적인 개념인 ‘탄트라(tantra)’는 정신적인 지식을 의미해야 하는 산스크리트어의 탄트리(tantri)에서 왔고, 즉 탄트라는 ‘스스로 지식을 넓히고 몸의 실천적인 수행을 통해 익히는 것’을 말한다.
탄트리즘의 가르침에서 절대자로서의 시바신은 순수한 존재, 시간을 초월한 로고스로서 남성으로 표현되고, 샤크티는 창조의 에너지로 시간 속에서 변하며 자기실현을 하게 되는 에로스로서 여성으로 표현된 것이다. 그래서 힌두교에서는 늘 남신에 대응하게 되는 여신이 있고 항상 짝을 지어 나타난다.
여기서 유래한 탄트리즘 의식에는 네 가지가 있었다. 첫째는 신전에서 여신을 숭배한 경우라면서 곡물과 가축 등을 바치고 심지어는 사람까지 희생물로 바쳤다. 둘째는 ‘차크라 푸자’다. 한밤중에 같은 수의 남녀가 둥글게 둘러앉아 술을 마시고 고기와 생선, 곡물을 먹은 후 성교의례를 거행하였다. 여기서는 그토록 엄격했던 카스트(계급제도)도, 근친관계도 무시되었다. 셋째는 만트라(진언)를 외면서 손으로 형태를 달리하여 무드라(手印)를 만들어 여신의 생명을 자신의 몸 안으로 불러들여 샤크티를 깨우는 의식이었다. 넷째는 주술에 관한 의식이다.
그리고 이 탄트리즘은 불교로 스며들면서 밀교(密敎)로 불리게 된 것이다. 카주라호에 새겨있는 수많은 미투나는 탄트리즘 중에서 둘째에 해당하게 되는 수행방법이다. 샤크티, 즉 성적인 에너지를 이용하여 남녀가 결합하고 시간과 공간이 사라진 그 절정의 상태에서 자아의식과 우주의식이 하나 되고, 절대와 상대가 하나 되는 해탈의 경지에 이르는 행위를 표현하고 있다.
결국 미투나는 쾌락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남녀의 합일을 통해 해탈의 경지를 경험하려는 신성한 힌두의식이다. 우리 일행을 안내했던 가이드의 말에 의하면 사원의 미투나상의 난이도 높은 섹스 동작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요가수행을 10년 이상 수련한 자만이 비로소 미투나상의 까마 수트라(Kama Sutra) 80여종의 남녀교합술의 몸짓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무용으로 말하자면 성애춤의 극치를 춤으로 표현할 수 있기 위해서는 무용수들이 요가 같은 무용기초훈련을 십 수 년 간 수행하여야 비로소 표현하고자 하는 사상과 감정을 춤으로 표현할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치라는 생각이 들었다.
카마수트라(Kama sutra)는 음탕을 넘어선 해탈의 사랑춤으로 승화
카마수트라(Kama sutra, 성애 경전)는 고대인도 4세기 경에 바찌야나(Vātsyāyana)가 저술한 카마(인도의 사랑의 신)신에 대한 경전이다. 산스크리트어로 된 운문으로 쓰였으며, 고대 인도의 도시 생활, 각종 기예(技藝), 남녀 생활상, 성애의 기교와 미약(媚藥) 등에 관해서 기술하고 있다.
카마수트라의 농밀하고 음탕한 향기는 아직까지도 그 위력을 자랑하며 성(性)이라는 세계의 밑바탕을 이루고 있다. 기원전 4세기경에 고대인도 힌두교의 성사상과 윤리를 접목하여 편찬된 카마 수트라는 여러가지 성행위에 대한 기교뿐만이 아니라 인간의 본능적인 욕망을 이용하여 쾌락을 즐길 수 있는 방법을 담고 있는 거대한 성의 집합체와도 같았다.
카마수트라가 가지고 있는 어딘가 모를 퇴폐적인 분위기 때문에 마치 쾌락을 위한 싸구려 서적처럼 생각될 수도 있겠지만 사실 카마수트라는 노골적인 성행위 묘사에 그치는 단순 설명서가 아니다. 당시 인도사람들은 완벽한 성지식의 습득을 통한 황홀경은 육체의 한계를 뛰어넘어 종교적인 해탈에 이를 정도의 힘을 지녔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고, 여자들은 카마수트라를 통해 애무의 기술을 배우고 한 차원 높은 사랑을 이루어보고자 했었다.
그러면 인도에만 카마수트라가 있었겠는가? 힌두의식이라는 점만 뺀다면 인류사회 어느 민족에서도 나타나는 현상이며, 원초적으로 종족보존과 자손창성의 본능적 욕구와 희락을 위해서는 존재했던 행위다. 인류 최초 원시춤의 양대산맥이라 할 수 있는 수렵춤과 성애춤도 인간의 식욕과 성욕의 두 가지 본능적인 생존수단을 위해 춤을 추었다. 동물들 역시 짝짓기를 위한 구애춤은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되고 있다.
중국의《소녀경》을 비롯한 《옥방비결(玉房秘訣)》《현녀경(玄女經)》등 많은 도교 서적에 나타난 방중술(房中術)도 일종의 카마수트라이다. 방중술은 도교의 수행법 중의 하나로 음양(陰陽: 男女)의 교접을 말하는 것이며, 적당히 절제하고 균형을 유지해야만 장생불로(長生不老)한다는 것이 근본사상이다. 고대 신라의 토우(土偶)도 사후 내세에서 행복한 성생활을 영위하라는 후손들의 염원을 담아 다양한 체위법의 토우를 만들어 고분에 부장하였다.
아래 카마수트라 그림은 인도에서 구입한 카마수트라 책자도록에 수록된 수 십가지 중의 한 가지 성애수행 그림이며, 우리나라 경주 황남동 고분에서 출토된 수 십가지 성애를 소재로 흙으로 빚은 신라토우들이다.
한편 영화 ‘카마수트라’는 미라네어 감독이 만들어 1996년 상영한 것으로, 인도 궁중을 배경으로 자매처럼 자란 공주와 시녀의 슬픈 사랑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이것이 전 세계에 알려져 관능적인 카마수트라의 에로스를 모티브로 한 레스토랑(남아공)과 벽화그림이나 대중무용단(우크라이나)이 생겨나고 있으며, 인도보다는 해외에서 상업적으로 이용되고 있다.
카주라호 댄스축제(Knajuraho Dance Festival)
매년 봄에 열리는 카주라호 댄스축제는 사원의 영광을 축하하기 위해 카주라호에서 열린다. 여행 중에는 축제이전이라 춤 축제를 볼 수 없었지만 카주라호 사원들의 미투나상을 보고, 또 칸다리아 댄스공연을 본 필자는 카주라호에서 댄스축제가 개최되는 당위성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댄스축제는 매년 2월말에 개최되는데, 2014년 올해는 2월 20일에서 26일까지 사원과 극장에서 매일 오후 7시까지 열리는 것으로 홈페이지에 올려있었다.
축제의 하이라이트는 카탁(Kathak), 바라타나티얌(Bharatanatyam), 오딧시(Odissi), 쿠취푸디(Kuchipudi), 마니푸리(Manipuri), 카타칼리(Kathakali) 등의 다양한 인도 전통춤이 설명과 함께 펼쳐지는 공연이다. 때때로 축제기간 내에 많은 유명한 예술가와 장인이 참석하여 워크샵, 세미나, 전시회 등을 통해 방문객과 관광객들에게 선보이기도 한다.
카주라호 댄스 페스티벌은 관광객들을 끌어들이고 전국 최고의 고전 무용수들이 이 페스티벌에 모여든다. 또한 조명을 받은 사원은 이 행사의 멋진 배경막이 되어준다. 이처럼 카주라호 댄스축제는 인도예술의 진수를 보여주는 세계문화축제로서 자리를 잡고 있다.
* 다음 호에는 칸다리아 댄스 공연과 인도전통춤 유형이 이어집니다.
-참고자료-
http://ko.mythology.wikia.com/wiki/%EB%AF%B8%ED%88%AC%EB%82%98?oldid=57208’
http://www.startour.pe.kr/local/india/India-Khajuraho.htm
http://khajurahodancefestival.com/index.php?page=index
http://seentheblea.tistory.com/4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