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깊숙한 한 곳에 간절한 열망으로 간직하고만 있던 무용에의 외사랑, 춤에 대한 그 사랑을 이제는 밖으로 끌어내고 싶었다. 비록 40대 중반을 넘어선 늦은 나이지만, 젊은 시절 무용수로서 활발하게 활동했던 그 시기를 떠올리며 다시 마음을 다잡아 보았었다. 1890년대 이후 서양 귀족들에 의해 즐겨졌던, 다분히 역학적이고 형식적인 테크닉 위주의 무용에 대한 답답함을 갖고 있었던 나는 얼마 전부터 즉흥이란 장르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신체 움직임의 본질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이때 발견한 독일의 Tanz Plattform은 이런 나에게 새로운 공부를 할 수 있는 좋은 기회로 생각되었고, 주저 없이 난 함부르크행 항공편을 예약하였다. 적지 않은 기간 프랑스에서 살았던 나에게 솔직히 함부르크는 그리 흥미로운 대상이 아니었다. 북부 독일의 항구도시, 그리고 브람스가 태어난 곳이란 정도가 알고 있는 전부였다. 도착은 순조롭지 않았다. 극동의 여러 도시들과 많은 서유럽의 도시들을 연결해 주는 핀란드의 핀에어 항공기가 연착되는 바람에 예정시각보다 3시간 지연되어 공항엔 저녁 10시가 되어야 도작했다. 유럽의 모든 도시들이 그렇듯이 해만 지면 썰렁한 거리. 특히 늦겨울 더욱 인적이 없는 공항에서 간신히 일주일간 공공교통을 이용할 수 있는 카드를 구입하고 물어물어 지하철에 올라 자정에야 호텔에 들어 올 수 있었다. 하지만 그 다음 날부터 주야로 4일 동안 계속해 접하게 된 탄츠 플랫폼의 공연들은 먼저 다양한 컨셉트가 나를 놀라게 했다. 국내 공연들이 아직까지는 작품 제작의 컨텐츠가 부족하고 획일적인 구성들이 많다는 것과 비교해 보면 출품된 안무가들의 작품은 그 구성의 다양성에서 관객들의 호기심을 끌어내기에 모자람이 없었다. 제작에 참여한 스태프들과 안무자의 많은 고민과 연구와 연습의 결과들을 바로 무대에서 볼 수 있다는 것도 흥미를 끌었지만, 무용수들이 놀이 하듯이 즐기면서 춤을 추는 것을 보는 것은 4월에 공연을 앞둔 나에게 묘한 흥분을 유도했다. 나는 4일 동안 메인 프로그램에 초청된 공연만도 12개나 보았다. <Black Swan>이란 작품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안무가는 인간의 내면에 감춰진, 보이고 싶지 않은 악귀성을 표현하고 싶었던 것 같았다. 안무가는 작품을 노래와 대사로만 표현하고 거기에 약간의 움직임을 더하는 것으로 풀어나갔다. 이 작품의 포인트는 영화 <데스노테>에 나오는 무서운 악귀 형상의 악마처럼, 정말 머리부터 발톱까지 분장을 한 무용수의 모습이었다. 공연을 보는 내내 너무 무서워 이 무용수가 내 옆으로 내려 올까봐 조마조마 하기까지 했다. 이런 경험은 무시무시한 공포 영화에서나 맛볼 수 있는 것이었다. 많은 동작을 하지 않아도 사실적인 묘사만으로도 충분히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는 작품이었다. <Dan Serye>는 베를린에서 활동하는 안무가의 작품이었다. 클라리넷, 비올라, 피아노 소리에 맞춰서 즉흥적으로 신체 각 부분을 의식하면서 춤을 추는데 입장할 때 관람객들에게 소리나는 방울을 나누어주고 걸으면서 흔들게 한 발상도 재미있었다. 무용수, 연주자, 관객이 서로 소리를 통해 공간 인식을 함께 하면서 같이 움직이는 설정은 즉흥으로 이루어지는 약간의 지루한 전개과정을 상쇄시켜주었다.
<Ohne Titel>은 베를린에서 활동하는 프랑스 안무가의 작품이었다. 안무자가 직접 출연도 하면서 세 개의 작은 작품으로 나누어 장소를 이동하면서, 3명의 남성무용수가 누드로 1시간씩 공연한 퍼포먼스를 곁들인 춤이었다. 말로만 듣던 누드춤을 처음 보았는데 ‘충격적이다’라는 느낌보다는 표현의 자유에 대해 새로운 인식을 할 수 있었고 특히 벗은 몸이 아니라 인간 신체 구조가 움직였을 때 근육과 뼈의 형태 등이 어떻게 변하는가를 새롭게 발견할 수 있는 경험이었다. 우리나라에서 이런 형식의 춤을 춘다면 아마도 공연금지령이 내려지고 매스컴에도 크게 관심을 보이겠지만 앞으로 우리에게도 이런 다양한 시도가 언젠가는 필요할 것이란 생각을 했다. 이 모든 공연들은 보통 오후 3시경부터 시작하여 아주 늦을 때는 11시를 넘겨 자정이 다 되어야 끝나기도 했다. 승용차가 없었던 우리 일행은 외딴 공연장으로부터 인적 없는 길로 나와 마지막 지하철이나 택시를 기다려 호텔로 돌아오기도 하였는데 여성들만 있었기 때문에 여간 무서웠던 경험이 아니었다.
공연을 보면서도 간간히 짬을 내어 둘러본 함부르크의 풍광이나 인상은 안무가 존 노이마이어가 이끄는 함부르크 발레단의 명성과 함께 아주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함부르크 중앙역과 구시가지에서는 보았던 오래된 건물들과 마주 쳤던 함부르크 시민들을 통해 역사와 전통을 유지하는 그들의 생활방식을 느낄 수 있었고 특히 Barmbek 지역에서 방문한 인쇄방물관에는 선친들을 이어서 대대손손 인쇄일을 하시는 인쇄공 장인 할아버지를 만나 대화를 나누면서 사진도 함께 찍었는데 전통을 중시하는 유럽 특유의 직업의식을 느낄 수 있었다.
페스티벌 기간 중 독일에서 활동하는 유학생 출신의 무용수를 만나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국내나 해외에서나 무용수들이 돈을 목적으로 춤을 추기보다는 춤 자체가 좋아 춤을 춘다는 것은 같지만 무용수들에 대한 대우는 크게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녀는 “유럽의 경우 무용에 대한 체계화된 시스템과 무용 문화를 공유하는 국민들의 높은 의식 수준을 바탕으로 아주 많은 돈은 아니더라도, 보수 없이 춤을 추는 무용수들은 거의 없다”고 말했다. 잠깐 5분을 출연해도 출연계약서가 한 뭉치나 되고 각종 보험에도 들게 해서, 춤을 추는 동안에는 무용수들이 안정적으로 활동할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보장을 해준다는 것이다. 자신의 행위가 존중받는다는 생각은 예술인들의 활동의 원동력이고 가장 큰 에너지이기에 이를 바탕으로 무용수들이 춤에 몰입할 수 있고 춤 활동을 지속할 수 있게 된다. 그들의 시스템이 부러웠다. 국내 무용수들과는 너무 상황이 달랐다. 예전보다는 많이 좋아졌지만 아직도 환경적으로 많이 부족한 우리나라이기에 젊고 열정적인 무용수들이 선진적인 환경에서 춤출 수 있도록 국가, 사회, 기업들이 더 많은 지원과 투자를 하는 그날이 하루빨리 오길 바란다. 단순한 서양식 사고방식의 춤 형식의 답습이 아니라 우리의 춤을 찾고 연구하고 창조해서 다양한 컨텐츠의 작품들을 만들고 세계로 수출하여 세계인들이 와서 볼 수 있는 한국 춤을 만들고 싶다.
공연이 끝나는 맨 마지막 날. 이번 Tanz Plattform에 참여한 모든 관계자들과 공연에 참여했던 무용수, 기자, 공연 제작자, 심지어 일부 관객들까지 한자리에 모여 이 기간 동안 공연되었던 모든 작품들 및 페스티발의 운영에 대해 피드백을 하는 시간이 있었다. 그 디테일과 향후 개선 방안을 도출하는 모습들은 감동스러웠다. 이 또한 우리에겐 없는 문화이며 우리 무용이 발전하기 위해 꼭 도입되어야 할 모습이라고 생각되었다. 4일 동안에 수십 개의 공연과 세미나, 워크숍이 계속해서 열릴 수 있는 시설을 갖춘 복합 공연장 캄프나겔(Kampnagel)은 놀라웠다. 공장으로 쓰이던 공간을 개조한 이곳은 그 자체가 거대하고 강한 문화 인프라였다. 이런 공간 속에서 쉴 새 없이 춤을 추고 작품을 만드는 독일의 안무가들과 무용수들이 부러웠다. 예술가들은, 예술행위 그 자체로만으로도 국가에 크게 기여하는 주인공들이라 생각한다. 예술은 문화를 이끄는 리더이고 힘이다. ‘아름다움이 국력이다’라는 말은 이제 경시할 말이 아니다. 예술의 중심인 무용 역시 예외가 아니다. 이번 함브르크 여행은 혼자 좋아서 추는 춤이 아닌, 공감이 되는 춤을 추어야 한다는 글로벌 춤 의식에 대한 나의 각오를 다지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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