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평

강수진 신임 국립발레단 예술감독에게 바란다
세계 시장과 소통하는 메이저 발레단
장광열_춤비평가

 강수진이 2월 4일 취임식을 갖는 것으로 국립발레단 예술감독으로서의 공식 업무를 시작한다. 지난해 12월 4일 문화체육관광부에 의한 국립발레단 예술감독 내정 발표 이후 두 달 만이다. 강수진은 지난해 12월 17일 내한, 국립발레단원과 행정 스태프들과의 상견례 및 리허설 참관, 기자회견, 문화부 관계자들 미팅 등의 일정을 보내면서 직무 수행을 준비해 왔다.
 강수진이 공식 기자회견에서 밝힌 국립발레단의 향후 운영에 대한 생각은 “천천히” “더불어” “현장에서”로 요약된다.

 

 



 

강수진이 밝힌 국립발레단 운영 - "천천히" "더불어" "현장에서"

 "시간이 필요하다. 앞으로 길게는 5년 정도 생각하고 있다. 안이 튼튼한 내실있는 발레단을 만들고 싶다. 머리 속에는 공연하고 싶은 작품들로 꽉 차있지만, 서두르지 않고 한 스텝, 한 스텝 천천히 밟아 나갈 생각이다."
 "무용수 개개인이 빛을 낼 수 있도록 뒤에서 밀어주고 사기를 북돋워주고 싶다. 무용수뿐 아니라 행정 스태프와 무대 뒤 모두가 하나가 돼 눈부신 국립발레단을 이루어 갈 것이다."
 "무용수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들을 백번 이야기하는 것보다 직접 동작으로 보여주는 것이 훨씬 빨리 전달되더라."
 인터뷰에서 밝힌 이 말들은 향후 발레단 운영과 관련한 새 예술감독의 구상을 엿볼 수 있게 한다.
 강수진은 사의를 표명한 문병남 부예술감독 자리에 지도위원이었던 신무섭을 임명한 것과 함께 지도위원 모두를 그대로 유임시키고, 지난 12년 동안 국립발레단 예술감독을 맡았던 최태지 감독을 명예 예술감독으로 임명하는데 동의했다.
 또 호텔이나 극장이 아닌 발레단의 스튜디오를 자신의 예술감독 취임식장으로 택했다. 취임식 전에 가진 이 같은 일련의 조치들 역시 “천천히” "더불어“ ”현장에서“를 실천하는 하나의 노력으로 보인다.
 창단 60주년을 맞은 국립발레단은 이제 대한민국을 대표해 세계 무대에서 당당히 경쟁할 수 있는, 명실상부한 메이저발레단으로 도약해야할 시점에 와있다. 이를 위해서는 국제 무용계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잘 알려진 인물, 세계 발레의 최신 흐름을 발 빠르게 발레단 운영에 반영할 수 있는 국제적인 감각을 지닌, 유능한 예술감독이 필요하다.
 이런 점에서 보면 강수진의 국립발레단 예술감독 영입은 모험이나 다름없다. 강수진은 직업발레단 예술감독으로 그 직무를 수행한 경력이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미 성공한, 그 능력이 검증된 세계 유수의 현직 예술감독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강수진의 국립발레단 예술감독 영입은 한번 해볼 만한 모험이다. 그 이유는 그가 20년 넘게 메이저 발레단의 주역 무용수로 브노아 드 라 당스(Benois De La Danse) 최우수 여성용수상 수상, 궁정 무용수(Kammertanzerin) 작위, 유명 발레 갈라 공연에 여전히 초청되는 등 현역 무용수로 독일 뿐 아니라 세계 발레 시장에서 존재 가치를 인정받고 있는 월드 스타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슈투트가르트발레단의 차기 예술감독으로 거론될 만큼 예술성과 카리스마, 조용한 리더십을 갖추고 있다는 점, 군무 무용수에서부터 솔리스트를 거쳐 주역 무용수로 차근차근 성장한 이력과 여러 명의 예술감독과 함께 일하고 다양한 스타일의 작품 제작에 참여한 풍부한 현장 경험을 갖고 있다는 점 때문이다.
 춤계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공연예술계에서 강수진에게 보내는 신뢰는 바로 이런 그의 면면과 무관하지 않다.


철처한 프로페셔널리즘으로 무장시켜라

 

 우선 3년의 임기 동안 새로운 업무를 수행할 국립발레단의 예술감독에게 다음의 몇 가지를 주문하고 싶다.
 첫째는, 철저한 프로페셔널리즘 체제의 발레단 운영이다.
 인맥 학맥 정실 등에 의한 것이 아닌, 실력 위주의 공정한 경쟁을 통한 전문 발레단 체제의 확립이 곧 그것이다. 2002년 거스 히딩크 감독의 영입은 한국 축구를 한 단계 도약시켰다. 그에 의한 한국 축구의 고질적 병폐였던 인맥, 파벌 위주 선수기용의 문제점을 타파한, 경쟁을 통한 실력 위주의 선수 선발이 결국은 월드컵 4강 진출의 위업을 거두었던 사실을 우리는 기억하고 있다.
 둘째는, 공연의 예술적 완성도 배가 및 단원들의 질적인 성장이다.
 공연 작품의 완성도는 메이저 발레단으로의 도약과 세계 발레 시장에서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가장 기본이 되는 것들이다. 공연 횟수의 증가나 객석 점유율 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바로 공연작품의 질이다.
 셋째는, 레퍼토리의 확충과 국내외 아티스들과의 협업이다.
 클래식 발레 위주로 공연하던 과거와는 달리 이즈음 세계 일급 메이저 발레단들은 컨템포러리 발레 작품을 다수 보유하고 있다. 한국의 고유한 색채가 담긴 창작발레 역시 컨템포러리 발레 작품의 확보와 같은 선상에서 볼 수 있다. 뛰어난 컨템포러리 발레 작품을 레퍼토리로 확보하고 세계 유명 안무가, 국내 아티스트들의 국립발레단과의 작업 기회 확대가 활발해지길 기대한다.

 은퇴를 앞두고 있는 30년 경력의 월드스타급 베테랑 무용수의 영입은 외적으로는 국립발레단의 위상을 크게 높이고, 내적으로는 단원들의 기량 향상과 공연의 질을 향상시키는 동력으로 작용할 것이다. 이는 또한 세계 춤의 중심에서 한국의 발레 예술을 논하게 되는 발판이 될 수 있다.
 문화부의 이번 국립발레단 신임 예술감독 선임은 그 시점에서 이미 많이 늦었다. 임기 만료 1년 전에 새 예술감독을 발표, 공백없는 발레단 운영을 준비토록 하는 세계 메이저 발레단들의 인사 관행과 비교해 보면 100점 만점에 50점에도 못 미친다. 그럼에도 정부의 이번 인사에 어느 정도 지지를 보내는 것은 뭔가 새로운 변화가 필요한 시점을 정확히 간파했기 때문이다.
 강수진 감독은 결국 2014년 첫해에는 전임 감독이 정해 놓은 공연과 사업들을 대부분 수행할 수밖에 없겠지만, 2015년 시즌을 위해 공연과 경영에서 어떤 과정을 수행해 나갈 것인지, 올 1년은 여전히 국립발레단의 이모저모에 많은 눈이 쏠리게 될 것이다.

2014. 02.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