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평

부산오페라ㆍ세종문화회관ㆍ서울예술축제
예술의 비경제성에 대한 해묵은 시비
이종호_춤비평가. <춤웹진> 편집위원

 요즘 부산에서는 오페라 하우스 건립 문제를 놓고 말들이 많은 모양이다. 북항 재개발 지역에 건립 추진 중인 오페라 하우스에 대한 반대론자들의 요지는 몇 가지로 압축되는 것같다.
 첫째, 건립 필요성에 대한 여론수렴 과정이 매우 부실했을 뿐만 아니라 건립에 필요한 법규 절차에도 하자가 있다는 것. 둘째, 제2 국립극장인 국립부산극장 건립이 확정된 마당에 구태여 유사한 대형시설을 지을 필요가 있느냐는 것. 셋째, 대규모 적자가 뻔히 예상되는 이 소수 문화 엘리트의 전유물 대신 일반 시민들이 즐겨 찾을 수 있는 체육시설이나 문화체육 복합시설을 짓는 게 어떠냐는 것.

 

 

 



 왜 오페라 하우스를 세우려는지, 그리고 왜 이를 반대하는지, 지역민이 아닌 나로서는 정확히 알기 어렵다. 부산이 대한민국 제2의 도시라는 명색에 비해 문화예술 분야에서 많이 낙후돼 있다는 인상을 갖고 있는, 그래서 이 개방적이고 낭만적으로 보이는 도시가 문화예술에서도 서울에 맞먹는 수준을 보여주면 좋겠다는, 막연한 응원자에 불과한 외지인의 입장만 가지고 부산 오페라 하우스의 건립을 반길 수는 없다. 지역마다 나름의 환경과 조건들이 있을 테니까.
 그런데 한 가지, 오페라 하우스 건립의 타당성 여부와 무관하게 흥미로운 부분이 눈에 띈다. 한 시민단체가 부산광역시 시의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당장은 아니라 해도 장기적으로는 오페라 하우스 건립이 필요하다고 인정한 응답자의 비율이 제법 높았다는 사실이다. 표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시의원들이 유권자 분포에서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서민ㆍ중산층 및 이들의 대변자임을 표방하는 시민단체가 별로 반기지 않는 것이 분명해 보이는 오페라 하우스를 적어도 ‘장기적으로는’ 필요하다고 밝혔다는 사실은 신선하다.
 설문조사의 신빙성이 어느 수준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다름 아닌 정치인들이 이런 반응을 보였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솔직히 부산이 아니라 서울이라 해도 예전 같으면 상상하기 쉽지 않았을 일이다. 그만큼 문화예술에 대한 우리 사회의 시각이 부드러워지고 긍정적으로 변했다는 뜻이겠다. 전반적으로 민도가 높아졌다고 말해도 좋을 터이고.

 부산 이야기를 하다 보니 1970년대 세종문화회관 건립을 둘러싸고 경제학자와 예술가가 벌였던 논쟁이 생각난다. 화재로 사라진 시민회관 자리에 동양 최대의 문화공간인 세종문화회관을 짓겠다는 것은 박정희의 포부였다. 4천석(지금은 3천석으로 줄어들었지만) 규모의, 당시로서는 물론 지금 보아도 매머드급이었다.
 한 경제학자가 신문에 기고를 했다. 경제에 도움 되지 않는 문화공간 건립에 거액의 예산을 쓰는 것은 한 마디로 낭비라는 게 요지였다. 며칠 후 시인 김영태가 반론을 썼다. 그건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단견이라고. 예술은 가시적 경제효과로만 따질 수 없는,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해주는 존재라는 당연한 얘기였다.
 실패한 사업가의 장남으로 힘겹게 살아가던, 그렇지만 가난해서 예술을 누리지 못한다는 생각은 미처 해보지 못했던(음악회에 갈 돈이 없으면 길거리 전파사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들으면 되었으니까) 젊은이의 뇌리에 경제학자의 삭막한 진단을 예의 바르면서도 예리하게 비판해 준 시인은 한동안 ‘고마운 대변인’으로 남아 있었다.
 먹고 사는 문제가 완벽히 해결된 다음에라야 문화예술에 신경 쓴다는 발상은 처음부터 잘못됐다. 그렇게 따지면 문화예술 뿐 아니라 스포츠도, 꽃밭 가꾸기도 모두 사치에 불과할 터. 예술의전당을 허물고 오피스텔을 세우는 것이 훨씬 경제적이지 않겠나? 아니, 어느 한 분야를 완벽하게 만든다는 것부터가 실현 불가능한 일 아닌가? 모든 인간활동 분야가 형평성 있게 발전해야 한다는 것은 상식이다. 지상논쟁을 벌였던 두 사람은 이를 계기로 오히려 친한 사이가 됐고, 급기야 경제학자도 진지하고 열렬한 예술애호가가 됐다고 시인은 생전에 들려준 바 있다.
 언제부턴가 세종문화회관은 부실한 운영, 안목 없는 프로그래밍, 나태한 업무자세 등을 비판받으면서 위상이 아주 많이 기울었지만 그래도 한동안은 국립극장과 함께 문화예술의 중심 역할을 했었다. 많은 사람들이 세종문화회관이 있는 것을 행복해했고 자랑스러워했다. 공사비가 얼마나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투자효과가 충분했으니 결코 타박할 일은 아니다.


 

 

 우수 예술축제에 대한 지원, 서울시만 매칭 펀드 거부

 곧 심사가 완료될 것으로 알려진 우수예술축제에 대한 정부 지원에서 모든 지방자치단체들이 문화체육관광부가 제안한 매칭 펀드에 동의했는데, 유독 서울특별시만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혹은 못했다?)는 사실은 세종문화회관이나 부산 오페라 하우스 건립 타당성 논란처럼 ‘먹고 사는 일’과 ‘문화예술 향수’ 사이의 해묵은 갈등을 연상시킨다.
 문체부는 당초 민간 우수 예술축제를 본격 육성한다는 취지에서 각 지자체에서 해당 지역의 예술축제를 1차 심사해 넘겨주면 2차 심사를 통해 지원 여부와 지원 액수를 최종 결정하고 이에 따라 중앙정부(문체부)와 지자체가 같은 액수의 지원금을 제공, 지금까지보다 훨씬 규모있고 내실있는 축제들을 육성하기로 했었다.
 서울시도 처음에는 이에 동의했으나 나중에 박원순 시장이 공약한 복지예산의 부담을 들어 동의를 취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모든 지자체가 매칭 펀드를 제공하는 반면 축제의 규모와 건수가 가장 크고 가장 많은 서울 지역에서는 정작 그 혜택을 받지 못하게 된 것이다.
 서울특별시의 책임자들은 말할지도 모른다. 당장의 복지가 중요하지 문화예술이 뭐 그리 급하냐고. 옳은 말이다. 하지만 생각해보시기 바란다. 예전에 누가 복지를 챙겼는지. 경제성장이 최우선이었지, 소외계층의 복지에 누가 신경 썼는지를. 하지만 지금은 너도나도 복지, 복지 아닌가. 그러니 만에 하나라도 인간 활동의 필수 요소 가운데 하나이자 현재의 사회복지를 넘어 미래형 복지, 정신적 복지로 각광받을 가능성이 매우 큰 문화예술을 혹여 장식품 정도로 치부하는 발상에서 나온 결정이라면 심심히 재고하시기 바란다. 이명박, 오세훈 시장 때 추진되다가 박원순 시장이 취임하면서 백지화된 노들섬 오페라 하우스와는 경우가 좀 다르다.

 1950년 여름. 불안하고 소란스런 피난열차. 아수라장 같은 열차풍경을 말없이 지켜보던 한 중년 남성이 휴대용 축음기를 꺼내 바하의 <G선상의 아리아>를 올려놓았다. 일순 차내가 조용해지고 피난민들의 표정이 차분해지기 시작했다. 음악이 끝나자 한 청년이 다가왔다. “저, 다시 한 번 들려주실 수 있을까요?” 중학생 때 국어 교과서에서 읽었던 원로 평론가 박용구의 수필. 예술은 그냥 장식품이 아니다. 부산 오페라 하우스 건립도, 서울시의 예술축제 지원정책에 대한 논의도 부디 ‘비경제성의 경제성’을 인정할 줄 아는 심성과 안목에서 출발했으면 한다.

2014. 02.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