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평
근래 공연되는 전통춤의 레파토리를 보면 눈에 띄게 마당춤 종목들이 늘어나고 있다. 마당춤이란 전통춤 중에서 마당에서 추었던 농악춤이나 탈춤 등을 말하며, 자주 추어지는 레파토리들을 꼽자면, 농악춤 중에서 <부포춤>, <설장고춤>, <북춤>, <진도북춤>, <소고춤>, <채상소고춤>, <고깔소고춤>이 있고, 경상도 민속춤으로 고성오광대놀이의 <덧배기춤>, 밀양백중놀이의 <범부춤>, 그리고 <동래학춤>을 들 수 있다.
이 중에서 농악춤의 무대화가 두드러진데, 그 이유는 이미 농악의 개인놀이인 구정놀이에 일인 독무(獨舞) 내지 독주(獨奏)로 각 춤들이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농악춤의 개인놀이는 음악에 있어서 해당 농악의 가락을 바탕으로 하며, 춤에 있어서도 해당 농악의 특정한 춤사위를 중심으로 짜여져 있다. 그래서 각 지역의 농악춤들은 서로 다른 차별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 농악춤 중에 춤의 요소가 강한 종목은 북춤과 소고춤이다. 악기를 계속 연주해야 하는 부포춤이나 설장고춤에 비해 상대적으로 악기 연주의 부담이 적고, 팔이 자유로우므로, 전통춤꾼들이 북춤과 소고춤을 자신의 레파토리로 확보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최종실류 <소고춤>과 박병천류 <진도북춤>을 들 수 있고, 김운태의 <채상소고춤>과 박덕상의 <소고춤>도 있다.
최종실류 <소고춤>은 사물놀이의 초기 멤버였던 최종실(중앙대 교수)이 경상도 삼천포농악의 법구놀음을 바탕으로 구성하였다. 소고의 놀음은 남기고, 상모놀이를 빼는 대신, 춤적 요소를 가미하였다. 이러한 특성 때문에 주로 무용 전공자들이 전수받았고, 전통춤판의 무대에서 여성춤꾼들이 주로 추고 있다. 그리고 박병천류 <진도북춤>은 고 박병천(1933~2007)에 의해 1980년대 초반에 작품화되었고, 꾸준히 보급되었다. <진도북춤>은 1987년에 전남시도무형문화재로 지정되면서, 고 장성천(張成天, 1923~1994), 고 박관용(朴寬用, 1921~2008), 고 양태옥(梁太玉, 1918~2003)의 예능보유자가 있었지만, 서울에서 활동했던 박병천의 진도북춤이 더 많이 전수되었다. 박병천은 진도씻김굿의 예능보유자로서 진도에서 이 춤을 늘 보았었고, 전문예인의 감각으로 진도북춤을 추었던 것이다. 북채를 양 손에 들고 굿거리 장단에 몸을 얹었을 때는 진한 멋이 풍겨나오다가, 꽹가리 장단과 어울려 천둥치듯 양북을 몰아칠 때는 기교와 신명이 넘쳐난다.
이렇게 무대화된 박병천류 <진도북춤>과 최종실류 <소고춤>은 대개 여성전문춤꾼들에 의해 추어졌고 꾸준히 퍼져나갔다. 승무, 살풀이, 굿거리춤 등의 교방춤 계열의 춤을 추는 여성전통춤꾼들이 자신의 레파토리로 확대했으며, 또 흥을 돋우는 농악춤에 관객들도 호응하면서 전통춤 공연에서 빠지지 않는 춤이 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이와 같이 무대화된 최종실류 <소고춤>이나 박병천류 <진도북춤>이 교방춤 계열의 춤을 추는 여성춤꾼들에 의해 추어지면서 농악춤 본래의 특징이 축소되고 변하고 있다는 점이다. 우선 춤의 형식이 변하였는데, 여기에는 여러 가지 요소가 있다. 다리동작에 있어서 대개의 농악춤은 다리를 앞으로 높이 들지 않는다. 다리를 들면 장고나 북에 걸리기도 하지만, 보다 근본적으로 농악춤은 다리 사위가 앞으로 들리지 않기 때문이다. 즉 첫 박에 악기의 ‘덩’(덩은 왼손과 오른손을 같이 치는 타법이다.)을 쳐야 하므로 몸의 힘이 뻗어나가기 보다는 안으로 응집되는 것이다. 덩에서 오금을 굽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는 교방춤 계열의 춤에서 대개 첫 박에 호흡을 들어올리며 움직임이 외연으로 확대되는 특징과 근본적으로 다른 점이다.
그리고 대개의 농악춤은 첫 박의 덩을 친 후 걸어나갈 때, 허벅지를 많이 들지 않으며, 발뒤꿈치는 다리 뒤편에서 놀아지고, 무릎은 앞으로 각이 지게 굽어진다. 또한 발사위에 있어서 발끝이 위를 향하지 않고, 다리, 발등에 이어 자연스럽게 미끄러진다. 이는 다리를 앞으로 들고 버선코를 위로 향하게 하는 교방춤 계열의 다리사위, 발사위와는 다른 특징이다. 농악춤의 이러한 기법과 동작특징들이 교방춤 계열의 춤을 추는 여성춤꾼들에게 충분히 소화되고 있지 않다. 자신이 추었던 춤의 방식대로 호흡하고 동작을 하니, 농악춤으로서 <소고춤>이나 <진도북춤>의 춤맛이 달라지는 것이다.
또한 의상으로 치마를 주로 입는데, 치마를 입은 모습에서는 농악춤의 아랫놀음을 보기 어렵다. 농악춤은 부포나 상모를 돌리는 웃놀음과 하체의 다리와 무릎, 발로 구사하는 아랫놀음이 있는데, 아랫놀음은 농악춤의 핵심이다. 하지만 치마에 가려져 대개의 아랫놀음이 보이지도 않고 중시되지도 않으니, 아랫놀음의 다리동작이 변질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리고 춤사위 외에 화려한 의상과 과도한 악세사리들도 마당춤으로서 농악춤의 특성을 희석화시킨다. 또 마당춤인 농악춤을 버선발로 추는데, 이는 농악춤의 격식에 맞지 않는 점이다.
결국 근래 여성춤꾼들이 추는 최종실류 <소고춤>과 박병천류 <진도북춤>은 농악춤의 특징이 줄어들고, 교방춤의 특징이 더 드러나면서 전체적으로 교방춤으로 변하고 있다. 교방춤 계열의 춤을 추는 춤꾼들이 농악춤인 소고춤이나 북춤을 출 때 교방춤의 기법으로 동작을 하기 때문이다. 물론 교방춤의 춤 기법이 첨가될 수도 있지만, 농악춤의 기법과 동작 특징이 흔들리지는 않아야 한다. 그리고 그 기법의 차이를 춤꾼이 인식하고 있느냐와 그렇지 않느냐는 매우 큰 차이로 드러나리라 본다.
전통춤의 여러 계열의 춤에서 하체동작들을 관찰해보면, 교방춤 계열, 농악춤 계열, 탈춤 계열의 하체동작이 서로 다르다. 농악춤의 하체동작에 대해서는 위에서 이미 설명하였고, 탈춤의 경우 해서지방 탈춤의 대표적 춤사위들은 첫 박에서 한삼을 뿌리며 솟구친다. 다리동작은 허벅지를 들어 가슴 쪽으로 땡기는 느낌으로 무릎을 드는데, 무릎은 90°각도로 굽어지고 발목도 굽어진다. 외사위, 겹사위, 다리들기 등의 춤사위 첫 박에서 에너지가 분출되고 뻗어나는 느낌이니, 내적으로 기운을 응축하는 농악춤의 첫 박과는 다른 느낌이다. 중부지방 탈춤인 산대놀이의 깨끼춤에서는 하체동작이 다양한 표정을 갖는데, 기본적으로 발의 앞부리(발가락 부분)를 살리고, 발뒷꿈치는 다리 기둥을 중심으로 위아래로 놀려진다. 또한 남부지방 오광대와 야류에서 추어지는 마당춤의 하체동작들은 다리를 앞으로 쳐드는데, 무릎을 뾰족한 각이 되도록 구부리지 않는다. 교방춤 계열의 춤들처럼 첫 박에 호흡을 들어 활개를 피는 느낌이다.
전통춤의 레파토리를 늘리기 위해 여러 춤들을 익히고 무대에 올리는 것은 긍정적 현상이지만, 다른 계열의 전통춤을 소재적으로만 받아들여 계열별 전통춤의 특징을 살리지 못한다면, 이는 우려할 사안이다. 계열별 전통춤의 다양성이 사라지고 획일화될 것이며, 각 춤의 고유한 특징과 생명력을 잃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전통시대의 기생, 광대, 재인들은 다른 계열의 춤을 배우지 않았으며, 다른 지역의 춤도 추지 않았었다. 그러나 현재의 춤꾼들은 교방춤, 마당춤, 궁중춤 등 여러 계열의 춤을 번갈아 배우고 춤추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춤꾼은 여러 레파토리를 보유하고 다양한 춤사위와 순서를 갖고 있다고 해서 춤판에 설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각 춤의 특성에 맞게 각 춤의 몸을 쓰는 방법과, 춤의 성격에 맞는 춤판에서의 쓰임, 춤의 격식에 대해 관찰하고 인식해야 한다. 교방춤인 승무와 살풀이는 버선을 신고 추고, 궁중무인 춘앵전의 신발은 무동일 경우 호화(胡靴)를, 여령일 경우 초록혜(草綠鞋)를 신고 춘다. 마당춤인 농악춤과 탈춤은 미투리를 신고 춘다. 이와같이 각 전통춤들은 춤추는 기법이 각각 다르고, 그에 맞는 격식을 갖고 있다.
본 협회 회원, 우리춤연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