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평
뜰을 거닐면서(15)
지난 번에는 앎에 목말라 있었던 죠반니 삐꼬가 왜 피렌체를 택했는지, 그리고 피렌체가 가슴을 활짝 열고 그를 품어주었던 플라톤 아카데미가 활기를 띌 수 있었던 것은 코지모의 아낌없는 후원 때문이었다는 것을 이야기했다. 코지모가 이 아카데미(L'Accademia Neoplatonica)를 얼마나 아끼고 존중했던가는 그의 가족이 가장 좋아했던 까레기 별장(Villa Careggi)의 태반을 이 아카데미가 사용하도록 내놓았다는 사실로 알 수 있다.
인문학 타령이 무슨 유행처럼 법석인 세상이지만, 그 정체도 모호한 채 유령처럼 떠돌아다니고 있는 인문학의 출생지야말로 피렌체 플라톤 아카데미임이 분명하다. 인문학(Humanities)이란 그리스 및 로마의 고전연구(Studia humanitas)에서 유래된 말이라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지만, 그 연구가 가장 활발했던 곳이 바로 피렌체의 플라톤 아카데미²였기 때문이다. 이 아카데미는 르네상스의 묘상(苗床)이기도 했다.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프리마베라」등 르네상스의 개화(開花)를 상징하는 미술 작품도 이 아카데미에서 불어나온 제피루스의 훈풍을 타고 꽃핀 열매였다. 「프리마베라」(Primavera∙봄)에서 바람의 신 제피루스의 입김으로 클로리스가 입에서 하나 하나 잉태한 꽃, 그리고 마침내 꽃의 여신 플로라를 가득 뒤덮은 그 꽃들이야말로 르네상스의 씨앗이었다.
삐꼬 또한 플라톤 아카데미에서 「헵타플루스」(Heptaplus), 「존재와 하나」(De Ente et una)등의 저술을 통해 르네상스의 씨앗을 하나 하나 싹틔워갔고, 그의 저술은 어느 것이나 신크레티즘 - 우주의 대통합이라는 큰 틀 위에 세워진 기둥이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괄목할만한 기둥은 르네상스 선언문(Manifesto of Renaissance)으로 일컬어지는 「인간 존엄성에 관한 담론」(Oratio de hominis dignitate)이었다. 르네상스 시대의 지성인이라면 누구나 인간의 존엄성을 존중했지만, 삐꼬처럼 혼신을 다 해서 그것을 옹호하고 드높이려 했던 사람은 없었다.
인간의 자리, 인간의 격
이 담론의 첫 머리에서 삐꼬는 헤르메스 트리스메지스투스(Hermes Trismegistus)의 입을 빌려 인간을 ‘참으로 눈부신 기적’ 으로 찬미한다. 그러나 그는 인간이 제 자리(인간의 격)를 찾으려고 애쓰지 않을 때 금수(禽獸)나 미물로 추락할 수도 있음을 은연중에 경고하고 있다. 그것은 ‘존재의 큰 사슬’에 대한 그의 시각에서 들어난다.
‘존재의 큰 사슬’이란 라틴어의 scala naturae(자연계의 위계∙位階)를 영어로 Great Chain of Being으로 옮기면서 고착된 말인데 별로 적절한 표현은 아닌 듯 싶다. 사다리, 위계(位階), 서열(hierarchy, order), 자리 등의 뜻을 지닌 scala라는 말을 우리 말로 옮긴다면 ‘격(格)’이라는 말이 가장 적절한 표현이 아닐까 싶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제부터 ‘존재의 사슬’이라는 말 대신 ‘존재의 격’이라는 말을 쓰기로 한다.
그리스 시대부터 자연계의 만물에게는 각기 제 자리가 정해져 있고 그 서열과 위계(位階)는 신-천사-인간-동물-식물-광물의 순으로 고착되어 있다고 믿어 왔다. 사람에게는 사람의 자리, 인격이라는 것이 있듯이, 천사격, 동물격, 식물격 등이 있지만 동물중에서도 돼지에게는 돼지 자리 돈격(豚格)이 있고, 개에게는 구격(狗格), 원숭이에게는 원격(猿格), 구더기에게는 충격(虫格)등의 자리가 있을 수 있다. 그리고 인간 중에서도 간신배격, 날라리격, 경박격, 사기꾼격, 노예격, 왕격등이 있을 수 있다.
그런데 르네상스의 지성(知性), 그 중에서도 유독 삐꼬는 인간에게는 애시당초 그 자리가 없다고 주장한다. 신이 만물을 만들면서 제각기 자리를 부여했는데 만물을 모두 만들고 나서 자리가 꽉 찬 다음에 인간을 만들었기 때문에 인간에게는 자리가 없다는 것이다. 정해진 자리가 없으므로 인간은 스스로 제 자리를 자신의 의지로 선택하지 않으면 안된다. 자리가 정해져 있으면 싫든 좋든 그 자리에 머물 수밖에 없겠지만...... 자, 그런데 어떤 자리, 어느 격을 택할 것인가? 간신배격인가, 노예격인가, 날라리 아니면 돈격인가 원격, 또는 구더기격인가?
삐꼬가 ‘인간의 존염성’에 우리의 주의를 환기시키는 것은 바로 이 딜렘마를 해결하기 위해서렸다. 수많은 사람들이 날라리격으로, 구더기격으로, 원격으로, 돈격으로, 노예격으로 굴러떨어지고 있다. 인간의 존엄성을 소중하게 여긴다면 어떻게 그 잡스러운 격으로 스스로를 떨어뜨려 구더기처럼, 마이클 잭슨처럼 인간의 탈을 쓰고 원숭이가 되어버릴 수 있는 것일까? 천사들이 접근하려고 하지 않는 곳에 구더기가 들끓고 있다.³
“우리의 상승에는 ‘더 이상은 안된다.’ 라는 한계는 없다. 천사의 자리인들 왜 우리 것이 될 수 없는가? 인간은 하늘을 향해 얼굴을 추켜 들고 있지 않은가”⁴ 라고 삐꼬는 묻는다. 근은 인간이 아래로 굴러 떨어지는 대신, 날아오르지 않으면 안된다고 북을 울린다.
Hubris는 낮추고 Dignitas는 높이고
분수를 모르고 너무 높아지려는 오만(hubris)을 경고하는 이야기로 가득차있는 것이 그리스 신화이다. 그리스 신화의 그 교훈에도 불구하고 오만의 볼륨을 턱없이 부풀려가다가 처참하게 추락해간 자들을 우리는 무수히 보아왔다. 그래서 꼬지모는 유비나 등소평과 마찬가지로 ‘칼날의 빛을 칼집에 감추고, 어둠속에서 힘을 기르되, 언제나 겸허하고 낮은 자세를 견지하면서 (때가 되어) 필요할 때는 맡은 바 역할을 마다하지 않는다.’ ( 韜光養晦 謙虛低調 有所作爲)를 좌우명으로 삼고 그 DNA를 후손들에게 물려주려 했다.
삐꼬의 후원자 로렌쪼도 할아버지의 그 좌우명을 가슴에 새기고 있었으면서도 어딘가 성에 차지 않는 부분이 있었다. 그러다가 삐꼬의 ⌜인간 존엄성의 담론⌟을 보자 무릎을 쳤다. ‘바로 이것이다. 휴브리스는 낮추되 존엄성은 높인다. 이것이야말로 절묘한 해법이 아닌가?’ 그리스의 휴브리스는 언제나 오만과 탐욕이 뒤섞여 있었다. 거기서 탐욕을 제거해서 존엄성(dignitas)라는 ‘현자의 돌’을 얻는 일, 휴브리스라는 비금속(base metal)을 ‘elixir로 벼러내는 것, 그것이 삐꼬의 연금술이었고 그것이 바로 로렌쪼가 찾고 있었던 넥타(nectar)였다. 그 연금술의 개화야말로 르네상스의 개가였다.
로렌쪼는 온 힘을 다 해 삐꼬를 돕기로 했고 삐꼬는 로렌쪼의 도움으로 몇 번이나 죽을 고비를 넘겼다. 겨우 설흔 한 살릐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기는 했지만, 로렌쪼가 아니었으면 그는 훨씬 더 일찍 목숨을 잃었을 것이다. 그는 피렌체에 정착한지 오래지 않아 로마로 여행하던 중 아레쪼(Arezzo)에서 마르그리따라는 아리따운 유뷰녀와 사랑에 빠지고 말았다. 그런데 그녀와 함께 사랑의 도피행각을 벌이려던 순간 남편에게 잡혀 척살될 위기에 휘몰렸다. 남편(Giuliamo Maristo de Medici)은 기세등등한 메디치 가문의 실세였지만 로렌쪼의 설득으로 삐꼬를 놓아줄 수밖에 없었다. 삐꼬에 대한 로렌쪼의 무한한 사랑은 싸보나롤라와의 밀착관계를 용인했다는 점에서도 읽을 수 있다. 피렌체에서 수많은 추종자들을 확보하고 있었던 수도승 싸보나롤라(Girolamo Savonarola∙1452-1498)는 권력자들의 사치와 허영 그리고 타락상에 대해 신랄한 공격을 퍼붓고, 특히 메디치 가문의 횡포에 대해서 독기 서린 각을 세웠다. 그의 거듭된 선동적인 설교중에서 상류층에 대한 수많은 저주와 함께 불태운 수많은 사치품, 이른바 ‘ 허영의 소각’(Bonfire of Vanities∙Falo delle vanita)사건(1492년)은 메디치 가문에게도 큰 충격이었다. 메디치 가문의 막강한 적대자였던 싸보나롤라와 삐꼬가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음에도 로렌쪼는 삐꼬를 탓하려 하지 않았다. 삐꼬가 정련(精鍊)해낸 현자의 돌─인간 존엄성이라는 횃불이 그에게 너무나 소중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은 항상 새롭게 다시 시작하지 않으면 안된다.’ (Tout est a' recommeneer pour toujours) 싸르트르는 그렇게 말한다. 그것이야말로 르네상스의 정신이다. 제 자리를 찾으려고 항상 치솟아 오르고, 새롭게 태어나기 위해 거듭 다시 시작하는 그 불멸의 샘, 제피루스의 숨결처럼 헤르메스를 날게하는 생명의 원천 그 영원한 샘을 파낸 사람이 삐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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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메디치가는 1417년 이 빌라를 사들인 이후 어떤 거처보다 애용했다. 1460년 미케루치의 설계로 메디치 궁(Palazzo Medici)이 완성된 후에도 이 빌라에 대한 메디치 가문의 사랑은 가시지 않아, 코지모(1464년)와 로렌쪼(1492년)가 숨을 걷을 장소로 택한 것도 이곳이었다. 그리고 플라톤 아카데미의 주관자였고, 로렌쪼와 삐꼬의 스승이었던 피치노 또한 이곳에서 세상을 떠났다.
2) Ficino는 Pico가 아카데미를 찾아왔을 때의 인상을 다음과 같이 술회했다. “보티첼리의 그림에서 풍기고 있는 것과도 같은, 지상의 것이 아닌 천상의 그 어떤 것이 그에게 서려 있었다.”
3) Alexander Pope의 “An Essay on Criticism"의 한 구절
“Fools rush in where angels fear to tread"
4) “신은 인간으로 하여금 얼굴을 추켜들어, 하늘 높이 별을 바라보도록 독려했다.”
(Os homini sublime dedit-coelumque tueri/Jussit ─— et erectos ad sidera ─— tollere vultus.)
Ovidius의 신화집 「전신」(Metamorphosies 85∙86행)의 이 구절른 삐꼬의 사상과 맞닿아 있다,
5) 로렌쪼가 세상을 떠난 다음 싸보나롤라는 화형에 처해졌고, 삐꼬는 독살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