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평
암울했다. 박수소리는 작았고 불이 켜지자 객석의 분위기는 싸늘했다. 웃음을 머금은 관객들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로비로 나오면서 2층에서 내려오는 외국의 델리게이트들과 마주쳤다. 모두들 말이 없었고, 표정은 한결 같이 어두웠다. 10월 7일 낮 PAMS(Performing Arts Market in Seoul)의 개막식을 마친 세종문화화관 M시어터의 현장 분위기이다.
2013 서울아트마켓. 참가자 리스트에 보면 280여명의 외국인들을 포함, 1,200여명의 델리게이트들이 등록한 것으로 되어 있다. 2013 서울아트마켓 추진위원회가 주최하는 이 행사는 지난 9년 동안 한국의 공연예술을 해외 무대로 진출시키고 외국과의 인적 네트워킹을 형성하는데 기여해 오고 있다. 올해의 경우 10월 11일까지 계속된 이 행사의 개막식은 운용하기에 따라 문화융성을 내건 새 정부의 문화예술정책을 알리고, 세계를 향해 예술담론을 생성시키고, 그리하여 대한민국이 세계 공연예술계의 중심부로 진입할 수 있는 교두보를 만들 수 있는 기회였다.
그러나 이날 개막식은 이 같은 기대는 고사하고, 행사의 실질적인 주최자인 예술경영지원센터의 이사장과 대표, 문화체육관광부 차관의 인사말도 모자랐던지 공공 극장과 예술단체의 장들이 잇따라 등장해 판에 박힌 인사말을 남발하더니 급기야 서울시극단의 실망스러운 무대로 대한민국의 국가 이미지를 실추시켰다. 서울시 극단의 개막 공연은 배우들의 연기나 공연의 양식, 작품을 풀어나가는 아이디어 등 어느 것 하나 내세울 것이 없었다.
PAMS를 통해 한국의 공연예술 작품을 자국으로 초청하고 인적 네트워크를 쌓으려 했던 외국의 델리게이트들에게 이날 개막식은 한국의 공연예술에 대한 기대감을 여지없이 무너뜨렸다. 주최측과 자청해서 자신들의 공연물을 올리기를 주장했던 서울시극단은, 불러들여 하는 국제교류에서 정말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놓치고 있었다.
주최측은 짦은 시간, 세러머니를 곁들인 행사, 쇼케이스 실연을 위한 악기 세팅 등이 되어진 무대에서의 공연, 그리고 무엇보다 국제 예술행사란 특수한 상황과 성격을 고려한 개막식 프로그램을 세팅했어야 했다. 굳이 자신들의 작품을 국제행사의 개막식에 공연하길 주장한 공연단체 역시 작품 선정에 보다 신중을 기했어야 했다.
PAMS 기간 내내 개막공연에 대해 수군거리던 외국의 델리게이트들은 그들의 자국으로 돌아가서도 이를 가십거리로 삼을 것이다. 그리고 세계 도처에서 열리는 축제형 마켓의 개막식에 참가할 때마다 PAMS에서의 유쾌하지 못한 기억을 떠올릴 것이다. 무엇보다 억울한 것은 대한민국의 공연예술 수준이 이날 개막식에 올려진 작품보다 절대 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고, 그것을 눈앞에서 보여주지 못한 것이다.
공연예술 축제의 개막행사 망치는 주요 인사들
수년 전 부산국제무용제에 초청된, 유럽 19개 춤 전용극장 대표들로 구성된 EDN(European Dance Network)의 베트람 뮬러 회장은 해운대의 아름다운 바다를 배경으로 치러지는 국제 무용제의 개막 행사가 부산시장을 시작으로 국회의원, 지방의회의원, 조직위원장 순으로 무려 8명의 인사말이 30분 이상 계속되자 급기야 “이 아름다운 바다 휴양지 축제가 성공하려면 우선 저들이 입은 검은 양복과 넥타이부터 벗어던지게 하라”라고 소리쳤다.
몇해 전 발틱 3개국에서 치러진 춤 공연을 취재하던 중 라트비아의 교민들이 던진 뼈아픈 한마디도 잊을 수 없다. “차라리 대한민국의 공연단들을 보내지 말아 주세요. 몇주 전 일본의 무용단이 수도인 리가의 오페라 하우스에서 공연했습니다. 그런데 보다시피 우리나라 국립 예술단체는 3류 극장에서 공연했어요. 공연 수준은 비교도 안될 만큼 우리가 훨씬 뛰어났지만, 그 공연을 못 본 대다수의 라트비아 국민들은 최고로 유명한 극장에서 공연한 일본과 한국을 비교, 일본을 훨씬 문화 우위국으로 생각할 것입니다.”
준비 없이, 갑작스레 정해지는 행사의 홍보사절단 파견과 같이 졸속으로 결정하는 국립 예술단체의 해외 파견이 대한민국의 국가 이미지를 오히려 격하시키고 있음을 그들은 준엄하게 꾸짖고 있었다.
몇해 전 독일의 한 일간지 1면에 독일 대통령과 일본 총리가 바그너의 오페라를 함께 보고 바이로이트축제가 열리는 극장 앞에서 나란히 포즈를 취한 사진이 커다랗게 실린 것을 본 적이 있다. 두 정상이 만나 외교적인 문제를 장시간 논의했다는 장문의 기사보다 이 한 장의 사진은 독일 국민은 물론이고 유럽의 여러 나라를 향한 일본 문화외교의 승리였다.
문화예술을 통한 국가 이미지의 고양과 이를 통한 국가 경쟁력의 강화는 이제는 선진 여러 나라의 중요한 정책이 되었다. 대한민국 공연예술 분야의 국제교류는 질적인 성장 못지않게 운용에서의 내실을 기하는 탄탄한 정신무장이 필요해 보인다.
정부가 바뀔 때마다 시시각각 변하는 한국의 문화예술 정책은 “문화융성”이란 요란한 구호 이전에 문화예술계 안으로부터의 진솔한 변화, 권위주의를 탈피한 예술인들 스스로의 거듭나기가 선행되어야 비로소 성공할 수 있다.
본 협회 공동대표, 국제공연예술프로젝트 대표, 춤비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