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평
뜰을 거닐면서(13)
“참으로 정절(貞節)한 아가씨는 모두 잠들어 아무도 보아주는 이가 없는 깊은 밤, 달에게만 그 모습을 살짝 들추어 보여준다 해도 그지없이 화사하다.”
(The chairiest maid is prodigal enough
If she unmask her beauty to the moon)
햄릿이 오필리아에게 한 말이다. 감춤의 아름다움, 들어내지 않는 것의 고귀함을 셰익스피어는 어쩌면 이렇듯 은근하고 맛있게 표현할 수 있었을까.
어두운 밤, 뜰을 거닐면서 뇌까리고있는 내 독백은 들어줄 달조차 없는데 그 사연을 계속 허공에 흘러내야 하는 것일까...... 가끔 그런 회의에 잠기고는 한다. 그럴 때 마다 은경이가 원고를 재촉하고는 해서 어쩔 수없이 끌려가고 있는 꼴이다. 아무렇게나 휘갈겨 쓴 내 원고를 매달 워드로 쳐서 정리하고 있는 창작과 조교 은경에게 큰 빚을 지고 있는 듯 해서 항상 가슴이 무거운데, 은경은 귀찮다는 티조차 내지 않는다. 그러더니 어느 날 원고를 받으면서 은경이 조심스럽게 묻는다. “이 원고 제가 가져도 될까요?” “이 하찮은 것을 갖겠다면 내가 되려 고맙지.” 그렇게 말하면서 생각했다. 내 볼품없는 글을 보여줄 달이 내게도 하나 생긴 것일까?
메디치 가문에 대해서는 할 이야기가 너무나 많다고 호들갑을 떨기는 했지만 누가 흥미를 느끼랴 싶어 서두만 잠깐 끄집어낸 채로 그만 둘까 생각했다. 그런데 원고를 재촉하면서 은경이 물었다. “이번에도 메디치 이야기 계속 하실꺼죠?”
은경아, 네가 원한다면 메디치 가문 이야기를 조금만 더 이야기해 보자.
피렌체 신드롬(Florence Syndrome) 또는 스땅달 신드롬(Stendhal Syndrome)이라는 말이 있다. 피렌체의 산타 마리아 누오바(Santa Maria Numova) 병원의 정신과에 근무하고 있었던 심리학자이자 정신과 의사 마게리니(Graziella Magherini)에게는 20여년 동안 비슷한 증상을 호소하는 환자 100여명이 찾아왔다. 대부분 피렌체를 방문한 관광객들이었던 그들은 피렌체 곳곳에 그득한 미술품에 압도되거나 충격을 받아 넋을 잃은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피렌체 도처에 넘치는 미술품에 눈이 부시어 아찔 아찔 현기증을 느끼면서 다리는 후들거리고 제대로 몸을 가누기가 어려운 고통을 겪었다. 마게리니 박사는 비슷한 증상을 최초로 증언했던 사람이 스땅달이었음을 생각해냈다. 스땅달은 1817년 피렌체를 방문했을 때 그가 겪었던 그 현기증을 ⌜나폴리와 피렌체⌟라는 책속에 기술했고, 젊었을 적에 그 책을 읽었던 마게리니박사는 그것을 스땅달 특유의 개인적인 체험이라고만 생각하면서 묻어 두고 있었는데, 스땅달 이외에도 같은 증상으로 그를 찾아오는 환자가 늘어나고 있다는데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그래서 그는 그런 증상을 ‘스땅달 신드롬’(La sindrome di Stendhal)으로 부르기로 했고, 그 스땅달 신드롬의 증상을 보인 환자가 집중적으로 목격되는 곳은 주로 피렌체였으므로 스땅달 신드롬은 ‘피렌체 신드롬’으로 불리기도 했다.
그런데 스땅달에게 충격을 주어 패닉 상태에 빠뜨리게 했던 피렌체의 미술품은 도대체 어떤 것이었을까?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레니(Guido Reni)의 작품으로 알려진 베아트리체 첸치(Beatrice Cenci)의 초상화가 그 진앙지였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 패닉 상태에 빠지게 한 것은 산타 크로체 교회의 프레스코화 였다고 스땅달 스스로 기록하고 있는데도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베아트리체 첸치에 집착하는데는 까닭이 없는 것도 아닌다. 스땅달이 ⌜첸치 가족⌟ (Les Cenci)라는 소설을 쓰면서 베아트리체에게 비상한 관심을 기울였다는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보다도 베아트리체의 너무나도 비극적인 생애가 사람들에게 커다란 충격을 안겨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베아트리체 첸치(Beatrice Cenci 1577-1599)는 귀족 집안의 청순하고 아리따운 소녀였다. 그것이 죄였는지 포악한 그의 아버지 프란체스코는 그녀가 열 네 살때부터 어린 딸을 성적으로 폭행하기 시작했고, 베아트리체뿐만 아니라 온 가족에게 몹쓸 짓이 계속되자, 의붓 어머니와 오빠 등도 가세하여, 베아트리체는 스물 두 살 때 마침내 아버지를 살해하게 된다. 그러자 자기 방어적인 불가피한 살인이었다는 이웃의 절절한 호소에도 불구하고 교황청에서는 베아트리체를 비롯해서 의붓어머니 루크레찌아 패트로니(Lucrezia Petroni), 의붓오빠 쟈코모(Giacomo Cenci)등 온 가족을 처참하게 참살하고 일가족의 재산을 압수하여 교황가족의 사유물로 착복해버렸다. 이 비극적인 사실은 그 후로도 수 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아프게 하여, 귀도 레니, 셸리, 호스머(Harriet Goodhue Hosmer)등 예술가들이 베아트리체의 비극을 작품에 담아 그 슬픈 삶을 애도했다. 어쨌든 베아트리체와 ‘스땅달 신드롬’은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데도 그 관련설 때문에 ‘스땅달 신드롬’은 더욱 크게 부각되는 결과를 낳게 된 셈이다.
서 베끼오 궁, 삐띠 궁, 우피치 미술관등 러시아의 에르미따쥬 미술관에 비견될만한 엄청난 미술품을 소장할 수 있었던 것은 어떻게 해서 가능했을까?
금융업으로 급격하게 부를 축적했던 메디치 가문의 아버지 코지모는 자식들에게 간곡하게 당부했다. 돈은 언제라도 형체없이 증발해 버릴 수 있지만 예술작품에 돈을 묻어두면 그 돈은 불멸의 생명을 얻게 될 것이라고, 그리하여 예술의 고귀함을 참답게 음미하고, 예술에 대한 깊은 사랑에서 싹튼 아낌없는 후원은 메디치 가문 대대로 이어지는 메디치 가문의 DNA가 되었다. 피렌체라는 작은 도시가 전세계 예술품의 보고(寶庫)가 되고 피렌체 신드롬의 진앙지가 될 수 있었던 것은 그 때문이다.
그런데 이 보고의 그 수많은 예술품중, 우리는 무엇부터 감상해야 할까? 그 우열을 가리기는 참으로 어렵다. 그러나 그 중 빠뜨릴 수 없는 것 가운데 하나는 지암볼로냐(Giambologna)의 헤르메스(Hermes, 로마신화에서는 Mercury)상일 것이다. 지암볼로냐는 플랑드르 사람(본명은 Jean Boulogne : 1529-1608)이었으나 스물세 살 때 피렌체에 갔다가 그곳에 영영 억류되어 버린 예술가였다. 그가 피렌체를 떠나는 것을 당시 피렌체의 지배자였던 로렌쪼(Lorenzo di Medici, 흔히 대 로렌쪼 Lorenzo il magnifico라 불린다.)가 원치 않았고 지암볼로냐도 못 이긴체 그 억류에 순응해서 79세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그곳에 머물면서 수많은 불멸의 작품을 남겼다. 그 중에서도 무엇 보다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은 헤르메스 상(像)이다.
한발은 대지(大地)에 백리박고 한발은 대지를 떠나 솟아 오르려고 하는, 그리하여 그 기운이 하늘을 향해 추켜든 손끝으로 치솟아 올라가는 그 기상이야말로 무용의 맥박, 풍골(風骨)의 고향이다. 블라시스(Carlo Blasis)가 아띠뛰드(attitiude)라는 기막힌 동작을 창출해 낸 것도 지암볼로냐의 이 조각상에서 영감을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조금 전 ‘한 발은 대지에 뿌리박고’라고 이야기 했지만, 지암볼로냐의 헤르메스 조각상을 좀 더 꼼꼼히 살펴보면, 대지에 뿌리박은 듯이 보이는 그 발밑에서는 바람의 신 제피루스(Zephyrus)가 끊임없이 바람을 불어넣고 있다. 헤르메스가 가볍게 하늘을 날 수 있는 것은 그가 신고 있는 날개 돋친 샌들(Winged Sandal) 탈라리아(Talaria) 때문이라지만, 그 탈라리아야말고 제피루스의 숨결이라고 지암볼로냐는 해석 한 것이다. 제피루스가 지기(地氣)를 뿜어내 숨을 불어넣고 있는 그 기막힌 은유에서 춤은 빛나는 날개를 얻었다. 그리고 훗날, 니진스키는 이 아띠띄드에 또 한번 생명을 불어넣어 ⌜장미의 정령⌟ (Le Spectre de la Rose)에서 불멸의 발롱(ballon)을 창조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