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인은 책을 읽기보다 사색하는 시간이 더 많은 줄로 아옵니다.”
(I thought more then I read.)
이 얼마나 기특한 말인가. 머리라는 것이 책이나 쑤셔 넣는 창고는 아니다. 그래서 ‘배우고 그것을 때로 익히니…….’ 로 시작하는 논어의 첫 구절이 음미할 만하다. 돈키호테처럼 밤낮을 가리지 않고 책에만 매달리는 것이 아니라, ‘때로 익힌다’(時習)는데 묘미가 있다. 게다가 이어지는 ‘벗이 있어 멀리서 찾아오니…….’ 에서는 학습의 긴장에서 풍류의 이완으로 전환하는 멋이 넘친다.
책에만 빠져있으면 돈키호테처럼 안도색기(鞍圖索驥)의 수렁에 빠지기 십상이다. 천리마는 드물지 않지만, 그것을 가려낼 줄 아는 백락은 드물다. (千里馬 常有而 伯樂不常有) — 그런 말이 생겨날 만큼 백락은 말에 대한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 그가 상마경(相馬經)이라는 책을 썼는데 그의 아들은 그 책을 달달 외우고 나서 말에 대한 모든 것을 알았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아들은 개구리를 보고 이제야 명마를 얻었다고 기뻐 날뛰면서 아버지께 아뢰었다. “발굽만 조금 미심쩍기는 하오나, 불쑥한 이마하며 툭 튀어나온 눈이 상마경에 적힌 명마의 모습 그대로입니다.” 그러자 기가 막힌 백락은 “네가 찾아낸 명마는 겨우 껑충거리기는 하겠지만, 수레를 끌 수도 천리를 달릴 수도 없겠구나” 고 말하면서 한숨을 내 쉬었다 한다.
맹목적으로 책에 매달려 남의 생각을 쑤셔 넣으려고 한다면, 스스로의 생각을 옥죄어 자동인형이 되어가는 첩경으로 내몰리게 될 것이다. 나는 장애 때문에 책을 제대로 읽지 못했지만, 장애가 없다한들, 여몽의 흉내를 내어 수불석권에만 매달릴 일은 아니다. 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도 생기고, 잃는 것이 있으면, 얻는 것도 생기기 마련이다. 나는 수많은 세월 산속을 헤매면서 책에서 얻을 수 있는 것보다 어쩌면 더 많은 것을 얻을 것은 아니었을까 자위하고는 한다.
그러므로 젊은이들이여, 책을 읽지 말아라. 그리고 좀 더 방황하고 좀 더 사색하라. 그러나 그래도 책을 읽고 싶다면 채근담(菜根譚)의 다음 한 구절을 마음에 새겨둘 일이다.
“책을 제대로 읽으려면 그 진수에 감전되어 소스라쳐 하늘 높이 춤추지 않고 견딜 수 없을 만큼 깊게 읽어라.”
(善讀書者, 要讀到手舞足蹈處)
이 말은 알렉산더 포우프의 다음 구절과도 통하는 말이다.
A little learning is a dangerous thing.
Drink deep or taste not the pierian spring:
There shallow draughts intoxicate the brain,
And drinking largely sobers us again.
- Essay on Criticis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