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평

눈부시도록 아름다운 5월에 -춤의 르네상스, 그 비극의 탄생
뜰을 거닐면서(4)
이순열_본 협회 공동대표


 슈만의 연가곡 <시인의 사랑>¹(Dichterliebe)은 그렇게 시작된다.

 눈부시도록 아름다운 계절 5월 우리집 뜰에 맨 먼저 찾아오는 새는 ‘파파게-노’라고 노래하면서 온 몸을 샛노랗게 치장한 예쁜 모습으로 춤추면서 날아오는 파파게노이다. 그들의 노래는 언제나 즐겁고 언제나 황홀하고, 그들의 모습은 언제나 아름답다. 5월이 더욱 눈부시도록 아름다운 것은 5월이면 어김없이 파파게노가 우리를 찾아오기 때문이다. 모차르트의 오페라(징그슈필) <마술피리>에 등장하는 새잡이 파파게노는 이 녀석들이 그 모델이었음에 틀림없다.

 5월이 되면 조촐한 우리 집 뜰도 파파게노를 맞기 위해 치장이 한창이다. 쌀쌀한 겨울 기운이 채 가시기도 전에 얼레지, 깽깽이, 생강나무꽃, 설리화, 진달래, 벚꽃, 수선화, 크로커스 등이 봄의 전령처럼 일찍 찾아와 봄이 가까이 왔음을 알리고 지나가면, 그제서야 매발톱, 스스란, 둥글레 꽃, 초롱꽃, 백당, 모가나무꽃, 으아리, 베고니아, 아리삼, 병아리꽃, 금낭화, 쥐오줌 등이 이 구석 저 구석에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그 모습도 각각인 것이, 어떤 녀석은 티나지 않게 고즈넉이 숨어 피기도 하고, 어떤 녀석은 화사하게 날개를 펼쳐 춤추듯이 피어나기도 한다. 게다가 회화나무 ,칠엽수, 계수나무, 산딸, 이팝, 느티나무, 산사, 물푸레 등 갖가지 모양으로 채색된 나뭇잎들이 바쏘 콘티누오처럼 음율의 무늬를 새겨, 꽃들의 더욱 춤은 싱싱하다. 이 눈부시도록 아름다운 5월이면 으레 생각나는 것은 보티첼리의 <봄>(Primavera)이다. 

 

 




Botticelli 의 Primavera(1482년) Firenge의 Uffizi 미술관 소장

 


 그것은 암울했던 중세의 계절을 꽃 되는 르네상스의 계절로 뒤바꾼 봄의 소생, 봄의 찬가이다. 그리고 보티첼리의 이 그림과 함께 르네상스도 환생한다 새로운 계절의 바람을 살랑거리게 하는 제피로스(Zephyrus)의 창조적인 입김으로 설레임의 파문을 일게 하는 이 그림은 구름의 장막을 쫒아 흩어지게 하는 끝자락의 머큐리에 이르기까지 봄의 탄생과 그 은유를 담고 있다. 그리고 그 소생의 드라마 속에는 응당 굽이치는 격랑과 격정이 숨겨져 있다는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제피루스는 산들바람이지만 때로는 그 숨결이 거칠어지기도 한다. 더군다나 필이 딱 꽂히는 사랑의 대상 클로리스(Chloris)를 만날 때는 더욱 그렇다. 그의 입이 욕정의 숨결로 얼마나 부풀어 있는가를 보라. 요정 클로리스는 제피로스의 사랑을 수정(受精)하여 그 입에 꽃을 잉태한다. 그리하여 마침내 봄이 움트기 시작하는 것 이다. 그런데 클로리스가 잉태한 그 꽃은 어디로 가는가. 보라. 그 꽃은 클로리스의 입에서 탄생할 때마다 그 곁에 있는 플로라에게로 옮겨가고, 플로라(꽃의 여신)는 순식간에 꽃으로 뒤덮인다. 플로라는 클로리스의 분신 혹은 공동체인 셈이다. 클로리스와 플로라가 공동체라는 것은 Ovid의 Metamorphoses에 이미 이렇게 언급되어 있다.


  ‘내 이름은 Flora 이지만, 나는 한 때 Chloris 였다’


 꽃의 여신 플로라는 꽃의 여신 Primavera 이기도 하다.
 프라미베라 곁에는 비너스가 봄의 격랑을 진정시키듯이 지켜 서 있다.
 다시한번 살펴보자. 보티첼리의 ‘봄’은 왼쪽부터 미풍을 살랑거리는 제피로스의 희롱으로 화폭이 꿈의 범선(帆船)처럼 닻을 올리고 맥박 치기 시작한다. 미풍의 애무로 넋을 잃고 마침내 꽃을 잉태하는 님프 클로리스, 그 꽃을 생명의 젖줄로 삼아 활짝 피어난 프리마베라, 그리고 마돈나처럼 우아한 비너스가 바람을 가득 안고 부풀어 오른 범선의 숨을 고르게 하려는 듯이 절제의 포즈를 취하고 있다.
 그러나 거칠게 흘러온 물살을 잠재운 댐이 그 수로를 열면 또 다시 격류로 변하듯, 봄의 소용돌이는 비너스를 거처 3미신( 아름다움의 세 여신. The Three Graces) 에게로 율동적인 리듬을 타고 쏟아져 흘러내린다. 그리고 그 흐름의 설레임과 소용돌이는 ‘3미신’에 이르러 클라이막스를 이루게 된다. 비너스의 아들 큐피트는 그들을 향해 사랑의 화살, 봄의 설레임을 쏘아대려 한다. 그러면 3미신은 그 봄의 열락을 춤으로 잉태할 것이다.
 아름다움의 세 여신(The Three Graces)은 언제나 춤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제우스와 에우리노메 사이에서 태어난 세 자매인 3미신은 아글라이아(Aglaia,광휘), 에우프로지네(Euphrosyne,열락), 탈리아(Thalia,목가)로 불리면서 모든 향연과 축제를 관장하는, 창조와 환희의 표상이었다. 그리고 춤이 있는 곳에 언제나 그들이 있었고 그들이 있는 곳에는 언제나 춤이 있었다.
 그들의 춤을 찬미하기 위해, 수없이 많은 화가들이 그들의 춤추는 모습을 화폭과 조각 속에 담았고, 라파엘로, 루벤스, 카노바, 토르발센 등의 작품이 특히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춤의 결정체는 말할 것도 없이 보티첼리의 프리마베라에서 찾을 수 있을 것 이다. 르네상스 시대 유럽 춤의 수원지는 피렌체였다고 흔히 말하지만 이 프리마베라에서 맞닿아있는 손끝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모든 춤이 어떻게 그곳에 응결되어 있는지 제대로 느낀다면 누구나 넋을 잃을 것이다. 이 그림이야말로 피렌체에 명멸하는 어느 별 못지않게 스탕달 신드롬을 유발시키기에 족한 광휘이다. 

 

 

 




*라파엘 (Raffaello Sanzio)의 The Three Graces

 


 




*카노바(Antonio Canova)의 조각, The Three Graces(Hermituge Museum 소장)

 


 



*The Three Graces : Indianapolis Musum of Art소장

 

 눈부시도록 아름다운 5월이다.
 역사에도 계절이 있는 것이라면, 르네상스가 바로 그 5월, 다채로우면서도 은은한 색조의 꽃을 피우는 싱그러운 소생의 계절이다.

 한국에서는 르네상스의 어처구니없는 수난시대가 있었다. 몽매한 어느 아낙네가 80년대 초에 난데없이 우리나라에 춤의 르네상스가 만개했다고 미친 듯이 외쳐대자 한동안 여기저기서 맞장구를 쳐대는 웃지못할 일이 벌어졌다. 때로는 과장이 재롱스러울 수도 있지만, 그것은 과장이라기보다는 머리를 꼬리에 매다는 격이었다. 르네상스란 어떤 것이 약간 흥청거리고 활기를 띈다 해서 호들갑을 떨면서 그 이름을 팔아댈 수 있는 싸구려 상품이 아니다. 새로움에 대한 보다 더 절실한 갈구, non plus ultra의 우물 안 개구리 춤이 아니라 미지의 땅(terra incognita)의 plus ultra로 치솟아 뻗어가려는, 알프스의 위로 알프스가 치솟는 (Alps on Alas arise!) 드높은 열락을 노래하고 춤추려는 열기의 폭발이 대지를 뒤흔들 때만 르네상스는 운위 될 수 있을 것이다. 그 이야기를 언젠가 다시 해보자.
 삐띠 궁(Palazzo Pitti) 의 보볼리 (Boboli) 비원에 포근히 안긴 별들이 그 이야기를 들려주려고 어느 깊은 밤 우리 집 뜰을 찾을 때 르네상스가 그리고 요즘 마구 범람하는 인문학이 어떻게 해서 다른 곳이 아닌 피렌체에서 싹텄는가를, 그리고 Medici 가문이 어떻게 해서 클로리스에게 꽃을 잉태시키는 제피로스로 변신하여 역사의 봄을 활짝 피게 했는지 다시 이야기 할 것 이다.

  

註1. 슈만의 연가곡(連哥曲)은 66편으로 이루어진 하이네의 시집 <서정적간주곡> (Lyrisches Intermezzo)에서 16편을 뽑아 작곡되었다.

2012. 05.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