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평

춤 비평가가 안무가에게 보내는 편지
창작춤 〈처용, 핏물 어린〉을 안무한 윤수미 님에게
이만주_춤비평가

 임진년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좋은 춤 작품 많이 만드시기를 바랍니다. 

 2012년 새해 초, 지난해에 본 춤 공연의 프로그램들을 정리하다가, 2011년 9월 23일 대학로 동덕공연예술센터 코튼홀에서 관람한 『처용, 핏물어린』의 프로그램을 발견했습니다. 드레스 리허설 때 가서 사진도 찍었고 본 공연을 보며 좋은 인상을 받았던 작품이라 기억이 새로웠습니다. 
 근래 처용설화나 처용가면을 빌린 창작춤들이 발표되어 반가워하던 중, 윤수미 님이 처용설화를 소재로 삼고 실제로 궁중정재(宮中呈才)인 오방처용무(五方處容舞)를 삽입하여 60분의 대작을 만들어 기뻤습니다. 필자가 과문한 탓인지 모르겠으나 우리 창작춤에서 정재를 바탕으로 한 대작 레퍼토리의 첫 출발이라 생각되네요. 그런 과감한 용기에 다시 한번 큰 박수를 보내며 올해에는 더욱 발전된 작품을 만드시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평론이라기보다 필자의 생각과 제언을 적어 서간으로 보냅니다. 
 전통예술은 본래대로의 전승도 중요하지만 시대에 발맞추어 늘 새로워져야 합니다. 전통예술의 수용에 있어서 모사·전승과 그를 바탕으로 한 창작 내지 발전은 두 개의 축입니다. 1971년 1월 중요무형문화재 제39호로 지정되고, 2009년 9월 유네스코 세계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오늘날의 오방처용무도 전통무용이라 하지만 1100여년이란 세월을 내려오며 생성된 후, 무수한 습합(習合), 수정에 따른 발전의 산물이라 생각합니다. 
 한국의 문화사에서 ‘처용(處容)’이란 단어처럼 많은 함의를 담고 있는 말이 있을까요. 처용설화, 처용가, 처용무의 연구가 활발한 만큼 처용 연구의 역사도 길고 그 실적인 컨텐츠도 실로 막대합니다. 지금까지 처용을 주제로 출간된 단행본만 50여 편에 이르고 학계에 따르면 『삼국유사』에 관한 연구 논문 3,000여 편 가운데 처용에 관한 논문이 400여 편이라는 겁니다. 국어국문, 민속, 국악, 무용학에서는 물론 정신분석학이나 기호학에서조차 처용을 다루니 한국인에게 있어 처용이 얼마나 인기 있는 주제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처용의 실체에 대해서는 무당이나 주술사로 보는 견해, 당시 해상무역을 통해 경제적 부를 축적하였던 지방호족의 아들로 보는 견해, 신라시대에는 멀리 아랍, 페르시아 지역과도 교역이 이루어졌으므로 처용을 이방인인 이슬람 상인으로 보는 견해 등이 있습니다. 신라에 많은 아랍의 무슬림들이 오갔을 뿐만 아니라 정착까지 했다는 기록과 신라에 관한 귀중한 사료들이 중세 아랍 문헌에서 발견됨으로서 오늘날 제일 마지막 견해인 이방인설도 힘을 얻고 있습니다. 
 또한 역신과의 사통행위에 대해서도 해석이 분분하지요. 당시 사회의 타락한 이면을 보여주는 것이라는 설, 아내와 역신의 동침은, 역병에 걸린 아내를 은유한 것이라는 설 등, 여러 해석이 있지요. 다른 한편 역신은 극복하기 어려운 거대한 운명과 불가항력이고 처용 이야기는 결국 그것들을 춤과 노래로 초극하려는 염원과 절규라는 것입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성담론(性談論)으로 끌고 가기도 하지요. 처용은 우리 민족의 판타지이자 온갖 다양한 해석을 기다리고 있는 날것의 텍스트입니다. 
 처용의 해석은 각자의 자유입니다. 윤수미 님의 『처용, 핏물어린』은 외래에서 온 이방인설을 따르며 관용과 화합, 상생의 메시지로 해석하셨더군요. 좋습니다! 그러면서 오늘의 한국 사회가 맞고 있는 세계화와 다문화사회로의 변화라는 문제를 다루셨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방인들의 문제, 특히 동남아에서 시집온 신부들과의 화합의 염원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려고 하신 것 같네요. 
 여성 무용수들을 출연시켜 일렬작대(一列作隊)를 이룬 다섯 처용 앞에서 춤을 추게 한 후, 여성 무용수들 역시 상극(相剋)을 의미하는 사우작대(四隅作隊 / 산작화무·散作花舞라고도 함)의 우선회무(右旋回舞)를 춘 다음, 상생(相生)을 형상하는 오방작대(五方作隊)의 좌선회무(左旋回舞)를 추게 해 상극을 넘어 상생의 정신으로 나아감을 보여주려 하셨네요. 본래 고려시대에는 처용무를 여기(女妓)들이 추웠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다른 공연 때도 그러하셨듯이 다섯 여자 무용수의 의상에도 정성을 기울이셨네요. 회색을 바탕으로 한 그들의 옷과 족두리, 한삼에 오방색을 쓴 것이 대비효과를 일으켜 우아하게 보였습니다. 다섯 처용이나 다섯 여자 무용수가 사우작대를 형성하거나 오방작대를 이룰 때 각자의 발밑에 준 사각조명이 옥외가 아닌 무대에서 이루어지는 처용무의 다른 맛을 느끼게 했습니다. 
 프로그램에서 지난 해 여름 노르웨이에서 일어난 총격사건으로 90명이 넘는 어린 학생과 젊은이들이 목숨을 잃은 사건을 상기시키셨습니다. 물론 후에 정신이상자로 밝혀졌지만 이 대명천지에 나와, 우리와 다르다고 살육하는 인간의 광기는 도처에 여전합니다. 한국의 안무가가 세계의 비극에 가슴 아파하는 것이 대견합니다. 진정한 예술가는 마땅히 그래야 하지요. 후반에서 원을 형성하면서 춘 군무는 태극을 의미하면서 온 세상이 상생의 정신으로 대동세계를 이룰 것을 염원한 것이 아니었는지요. 공연예술을 보는 사람은 만든 사람의 의도를 달리 받아들일 수도 있습니다. 그것이 예술의 묘미 아니겠습니까. 
 처용무는 처용의 가면과 의상이 그 자체로 회화적인 장면을 연출합니다. 역신과 재액을 쫓기 위해 무섭게 만들어졌다는 처용 가면이 우리에게는 친근하고 유머러스하게, 또한 관용과 해탈의 이미지로 다가옵니다. 춤도 편안하게 느껴집니다. 
 미국에서 모던 댄스가 포스트 모던 댄스로 넘어오던 때, 특징 중의 하나가 모던 댄스의 지나친 서사와 연극성을 배제한 것이지요. 그러나 영원한 법칙은 없습니다. 윤수미 님은 이번 작품에서 처용의 내면의 서사를 다루었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60분의 대작이 되기 위해서는 드라마성의 서사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관객에게 공감을 주고 상상력을 일으키는 잘 짜여진 서사말입니다. 
 오늘날 전세계적으로 각광을 받으며 대성공을 거둔 ‘태양의 서커스’는 지금까지 다른 서커스단이 으레 하던 여러 종류의 나열식 곡예, 기존의 관념인 동물들의 등장을 싹 치워버리고 서사와 드라마를 도입함으로서 성공한 것이라고 하지요. 쉬우면서 환상적이면서 어린이, 어른 모두에게 감동을 주는 서사를 갖춘 ‘퀴담’이 그 한 예입니다. 연극을 전공한 연출가 프랑코 드라고네(Franco Dragone)가 그런 역할을 해낸다고 합니다. 물론 연극과 달리 춤의 서사를 구성한다는 것은 비언술적인 몸 움직임이라는 기호 체계로 공연 맥락을 전달해야 하니 쉬운 일이 아닙니다. 
 창작춤을 안무하는 무용가들에게는 ‘우리 창작춤의 세계화’라는 큰 과제가 어깨에 지어져 있습니다. 처용설화는 다양한 메시지로 해석이 가능하고 처용무는 동양의 대표적인 사상인 금, 목, 수, 화, 토의 오행(五行)과 동, 서, 남, 북, 중앙의 오방(五方), 인, 의, 예, 지, 신의 오덕(五德)을 담고 있습니다. 또한 자연만물이 생장하였다가 소멸하여 본디로 돌아가는 순환회귀의 원리, 천, 지, 인, 삼재의 어우러짐을 나타냅니다. 무엇보다 춤 자체가 풍작과 태평성대를 비는 기원무(祈願舞)입니다. 한 동작, 한 동작이 철학적인 뜻을 담고 있고 정교한 순서를 갖습니다. 벽사진경(辟邪進慶)한다는 그로테스크한 가면과 조형적인 화려한 복장을 갖춘 처용무는 창작춤의 풍부한 밑감입니다. 
 필자에게 많은 것을 생각케 했던 춤 공연 관람 경험을 소개하고 싶습니다. 2011년 서울국제공연제 폐막작인 이태리 출신, 비르질리오 시에니(Virgilio Sieni) 안무의 『라 내추라: 사물의 본질(La Natura Delle Cose)』 (10월 30, 31일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은 작은 충격이었습니다. 루크레치오(Lucrezio)의 철학시 ‘만물의 본질에 대하여’를 기초로 만들었다는 춤은 작품의 수준도 폐막작에 걸맞게 빼어났고 라틴어까지 동원해 만든 프로그램이 장난이 아니었습니다. 춤 비평가로서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과연 프로그램에 나와 있는 우주를 망라하는 그 심오한 철학들을 몸과 움직임만으로 표현하는 춤 작품에 다 담고 구현한 걸까” 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그들의 주장은 과장된 포장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수준의 작품과 프로그램이라는 결과물을 만든 것은 그들의 미의식 수준이 그런 정도에 도달해 있고 엄청난 탐구와 노력이 있었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러기에 그런 긍지와 자신감을 갖는다고 생각했습니다. 
 윤수미 님의 『처용, 핏물어린』은 이제 첫 발자국을 내디뎠습니다. 거듭 말하거니와 처용은 한국인의 판타지입니다. 『처용, 핏물어린』은 국민 레퍼토리가 될 수 있으며 세계를 향해 던질 수 있는 작품입니다. 끊임없는 절차탁마로 수정과 보완을 거듭하여 긴 생명을 갖는 걸작을 만드시기를 기대해 봅니다. 

 가인(佳人)에게 처용을 주제로 편지를 쓰고 나니 시가 읊고 싶어지네요. 향가 처용가 대신 자작시 하나 읊습니다. 


 

처용

산천은 달라도 밤하늘 뜬 달이 같아 
서라벌 깊은 밤 
고향 생각에 노래하고 춤추었지 

내 쌍판이 험하면 얼마나 험하기에 
나를 본떠 왕릉의 무인석으로 쓰고 
문신(門神)으로 쓰고 
훗날 나례(儺禮)며 궁중 연희 때 내세우고 
그것도 모자라 짚으로 제웅을 만들어 액막이로 쓰는가 

그래도 오방 색깔 비단 옷에 멋진 탈을 만들어 춤으로 추니 
고맙소 

어언 즈믄 년의 세월이 지나 
서방질희(戱)의 주인공으로 쓰고 
안남에서 시집와 억울하게 죽은 새악시와 이 세상 원귀들의 
해원을 통한 화합의 창작춤을 만들고 

어허 퍽퍽 잘도 둔갑한다 
너무도 어지러워 
나도 나를 모르겠다 

역신과 재액이 못 들어오면 
복과 경사가 들어오기 마련 
나로 말미암아 흉과 화를 쫓고 길과 복을 불러들인다면 
그 아니 좋은 일이냐 

어허! 모든 이여 관용하고 화합하여 
화평 속에 행복하게 사소서 
벽사진경(辟邪進慶), 풍년기원, 태평성대 
에라 만수(萬壽), 에라 대신(大神)이여!

 

2012. 01.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