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평

새로운 한류를 위한 조건들
송준호_주간한국 기자

K-pop의 유럽 장악이 놀라운 기세를 보여주고 있다. 지난달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월드 투어의 현장에는 한국의 아이돌 그룹들을 직접 보기 위해 프랑스, 네덜란드, 독일, 러시아 등 유럽 각국에서 모여든 팬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이번 콘서트는 프랑스의 유력 일간지들도 일제히 보도할 정도로 공연 안팎에서 폭발적인 반응을 보였다. 티켓 매진은 물론, 프랑스 팬들이 공연 연장 시위까지 할 정도로 열광했던 이번 공연은 유럽에서의 한류가 이미 상당 부분 진행되어 있음을 보여줬다.
 이제까지 한류는 주로 아시아 권역에서만 효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도 드라마나 아이돌의 팬덤 등 주로 대중문화에 한정된 것이었다. 이른바 ‘한류 1기’라고 할 만한 이때의 콘텐츠들에서는 우리 것을 외국에 전파한다는 생각이 강하게 묻어났다. 근대화를 거치면서 미국과 일본의 영향 아래 있던 우리 문화가 자생적인 힘을 갖춰 아시아에 진출했다는 자부심이 그대로 ‘한류’라는 민족주의적 기표로 나타났던 것이다.
 한류의 소멸과 함께 ‘포스트 한류’의 징후가 다시 나타난 것은 바로 이런 ‘한국적’인 태도를 버리면서부터다. 현재 해외에서 많은 인기를 얻고 있는 이른바 K-pop은 기존의 한류와는 태생부터 다르다. 처음부터 해외시장 공략을 위해 만들어진 아이돌들은 한국적 정서를 고수하기보다는 세계시장에서 통할 수 있는 초국적 콘셉트의 산물들이기 때문이다.
 대중문화보다 먼저 서구 무대에 상륙했던 공연계의 한류 역시 이 같은 글로벌한 성격을 내재한 콘텐츠들이었다. 공연계 한류의 원조격이라고 할 수 있는 <난타>, <점프> 등의 넌버벌 퍼포먼스는 기존 한류의 ‘한국정신’을 내세우기보다는 세계 보편의 몸짓 언어와 유머 코드로 2000년대 중반부터 브로드웨이와 웨스트엔드를 누비며 성공을 거둘 수 있었다.
 파급력 면에서는 약하지만 순수예술 분야도 몇 년 전부터 세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하고 있다. 발레와 클래식 음악의 많은 젊은 예술가들은 세계적인 콩쿠르에서 잇따라 수상 소식을 전해온다. 이런 현상이 매년, 매달 반복되면서 세계도 한국의 예술을 지속적으로 눈여겨보는 상황이 됐다. 이와 함께 국립발레단이나 유니버설발레단, 국립무용단, 서울시향 등의 단체들이 진행하는 해외공연이나 해외단체로부터의 합동공연 요청, 국내 아티스트들의 해외 단체 진출 등은 순수예술에서도 조심스럽게 한류의 청사진을 점치게 한다.
 하지만 대중문화 한류가 그랬던 것처럼 순수예술의 한류는 단기간에 이루기는 어렵다. 대중문화 한류는 정체성의 갑작스러운 전환을 통해 K-pop이라는 포스트 한류를 성공시켰지만, 순수예술에서는 그런 국제적 교감을 얻기 위해서는 서로의 문화와 사회에 대한 상호이해가 전제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는 여전히 많은 시간과 구체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그래도 고무적인 사실은 순수예술 분야에서도 우리 것의 해외 전파 수준을 지나 상호교류의 단계로 진입하려는 시도들이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몇몇 발레단과 국악원들은 해외공연과 국제 연수를 통해 우리의 우수한 예술을 전하는 한편 그들의 문화를 배우면서 국제적 감각을 키우는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정동극장이나 워커힐씨어터 등의 공간에서는 전통춤공연을 상설 진행하며 외국인 관광객들과 연계된 문화관광상품으로서의 기능도 톡톡히 하고 있다. 또 이달 말에는 멕시코의 한류 팬클럽이 멕시코시티에서 ‘한류 댄스경연대회’를 개최키로 해, 문화체육관광부에서 대규모 공연단을 현지로 파견할 계획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런 제도적, 전략적 시도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역시 예술작품 자체의 완성도를 높이는 것이다. 높은 수준의 예술적 가치가 국적과 언어를 초월하는 보편의 감동을 이끌어낼 수 있을 때, 춤을 비롯한 순수예술의 한류는 시나브로 실현되지 않을까.

2011. 07.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