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평
해바라기의 대평원, 우크라이나에서 해바라기가 아득하게 지평선을 이루는 대평원을 세계인들이 깊은 인상으로 간직하게 된 것은 50년 전의 영화 〈해바라기〉 덕택이었을 것이다. 영화는 이탈리아의 청춘 남녀가 이탈리아에서 신혼살림을 이룬 지 얼마 안 되어 이차대전 징집을 당해 우크라이나 전선에서 참전 중 실종된 남편(배우 마르첼로 마스트로얀니)을 전쟁이 끝난 후 우크라이나에서 찾아 헤매는 아내(배우 소피아 로렌)의 절절한 사연을 담았다(이차대전에서 이탈리아는 독일과 함께 소련을 공격하였다). 한가로운 해바라기대평원은 전쟁이 빚은 비극과 대비되어 더 강렬하게 다가온다. 지천을 물들인 해바라기 무리들은 그 비극을 아는지 모르는지 하늘거리고 해바라기대평원은 평온 속에서 고요하다. 그렇게 세계인들에게 해바라기대평원은 우크라이나의 평화를... 잔잔하게 보여주었다.
우크라이나의 해바라기대평원 ⓒRTE |
세계 평화 체제의 붕괴 조짐, 푸틴의 우크라이나전쟁
푸틴이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였다. 이 전쟁이 언제 어떻게 마무리될지 아는 사람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다. 전쟁을 일으킨 푸틴 자신도 장담할 수 없게 전황이 전개되는 중이다. 2014년 크름반도 병합에서 러시아가 본심을 일부 드러내긴 했어도, 이번에 푸틴이 감히 우크라이나를 침공할 것으로 확신한 사람은 특히 러시아 바깥에서는 거의 없었던 것 같다. 그러나 우크라이나전쟁은 현실이 되었다. 이 시점에서 “힘내세요, 우크라이나!”를 외칠 수밖에 없는 처지가 안타까울 뿐이지만, 외침도 힘이 된다.
푸틴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벌어지자마자 이차대전 이후 근 80년간 지속된 세계 평화가 이제 더 이상은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 벌써부터 제기되고 있다. 지금으로부터 30년 전 동서 냉전이 끝나가던 1990년 무렵 세계가 자유민주주의를 축으로 해서 큰 갈등을 겪지 않을 것이라고 낙관했던 전망을 우크라이나전쟁은 결정적으로 무너뜨리고 있다. 글로벌 평화체제가 흔들리면서 군비 축소보다는 군비 증강이 심화될 터이고 핵전쟁의 가능성마저 공공연히 운운하는 실정이다. 한 나라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하여서는 힘을 가져야 한다는 원리가 거듭 강조되고 있다.
푸틴이 전쟁을 주도하고 침공을 명했을지언정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주체는 러시아이다. 이런 사정에서 푸틴을 지지한 수많은 러시아 사람들에게 이번 침공은 곤혹스러운 사태가 아닐 수 없고 우크라이나 전장터에서 러시아 병사들이 겪는 양심의 갈등도 작지 않다는 소식이다. 뿐만 아니다. 보도에 따르면 러시아 발레리나가 반전 의사를 밝히며 망명하고, 볼쇼이극장장 등 러시아 예술계 지도자들이 전쟁 중단을 탄원하여 푸틴의 심기를 자극했다는 소식도 들린다. 그 수가 얼마일지 모르긴 해도 일부 러시아인들만 동조하는 침략 전쟁이 우크라이나전쟁이다. 인류 대의는커녕 명분마저 없고 결코 용서받을 수 없는 억지 전쟁이다.
푸틴이 자기 계획대로 며칠 만에 점령이 가능할 줄로 믿었던 우크라이나에서 국민들은 푸틴과 러시아 정보기관은 물론 전세계인의 예측을 벗어나는 저항을 강력히 전개하는 중이다. 막대한 희생과 피해를 무릅쓰고 이번 전쟁에서 우크라이나 국민들은 애국심으로 이미 승리하였다. 특히 우크라이나 현직 대통령은 툭하면 야반도주하는 후안무치의 그런 지도자가 아니어서 이전에 잘 알려지지 않은 우크라이나라는 그 나라의 국격을 세계인들은 이제부터 괄목상대하지 않을 수 없겠다.
우크라이나 여군의 해바라기 장식 ⓒThe Telegraph |
야만적 전쟁으로 무색해진 러시아 예술
반면에, 푸틴의 계획대로 설령 며칠 만에 우크라이나 점령이 이뤄졌다 가정하더라도 푸틴은 우크라이나전쟁으로 자신의 본심을 만천하에 실토하였음은 물론이며, 러시아의 국가 이미지에도 심한 타격을 가하는 중이다. 발레를 비롯하여 고전음악, 연극, 미술 등 문화예술 각 방면으로 러시아가 세운 금자탑이 무색하게 푸틴의 우크라이나전쟁은 야만적이다. 차이코프스키, 도스토예프스키, 톨스토이, 푸시킨, 체홉, 스타니슬랍스키, 샤갈, 칸딘스키, 에이젠슈테인의 작품들에서 (우크라이나)전쟁을 일으킬 심성이 연상될 리가 없다. 그렇긴 하지만, 근자에 들어 그런 연상을 엉뚱하게 부추기는 푸틴의 이번 침공은 그 후과가 결코 작지 않을 것이다.
1847년 서른 살의 프랑스 발레 청년 마리우스 프티파가 청운의 꿈을 품고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와서 마침내 1890년부터 5년 사이에 〈잠자는 숲 속의 미녀〉 〈호두까기 인형〉 〈백조의 호수〉를 창작하며 고전발레를 완성시켜 당시 서유럽에서 빈사의 지경을 헤매던 발레를 사실상 기사회생시킨 공로가 매우 크다. 그뿐인가. 1910년대에는 세르게이 댜길레프의 발레뤼스가 현대발레로 향한 문을 활짝 열어놓았고, 1950년대 중반 냉전 시기 3년간 볼쇼이발레단의 서방 순회 공연은 유럽과 미국 발레에 엄청난 소용돌이를 몰고 왔다. 게다가 1960년대 이후 소련 체제를 벗어나 망명한 누레예프, 바리쉬니코프, 마카로바 등 망명 발레 무용수들이 유럽과 미국에서 비평계는 물론 대중들에게도 어필하는 전막 발레를 대대적으로 되살려 서방(서유럽과 미국 등)의 발레에 깊이를 더하였다. 더 가까이는 20세기 후반부터 근래까지 러시아 발레(그리고 러시아 예술) 자존심의 상징이라 할 마야 플리세츠카야, 유리 그리가로비치, 블라디미르 바실리에프, 보리스 에이프만, 니나 아나니아쉬빌리... 그들이 선사한 격조 있는 아름다움 앞에서 세상 사람들은 삶과 생명이 높고 높다는 것을 다시금 느꼈을 것이다.
푸틴이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며 내세운 명분은 이렇다. “우크라이나가 동부 지역의 친러시아 사람들에게 고통과 집단학살을 가해왔으며 그런 우크라이나 정부는 네오나치이고 우크라이나를 탈나치화해야 한다.” 러시아를 나치처럼 통치하는 그가 우크라이나를 탈나치화시키겠다는 다짐은 지금 메아리 없는 허언으로 시들해지고 있다. 비밀정보 계통에서 오래 전력을 쌓은 그가 이런 명분이 구차스러운 명분일 뿐이라는 것을 내심 모르지 않았을 것이고 전쟁에서 패할 경우 자신과 러시아가 입을 타격이 어떠하리라는 점 또한 감안하지 않았을 리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기어코 우크라이나전쟁을 감행한 동기가 우크라이나의 탈나치화라는 것은 설득력이 매우 떨어지며, 실제 동기는 딴 데 있을 것이다.
여러 전문가들과 자료들은 푸틴이 우크라이나전쟁을 일으킨 근본 동기로서 유라시아니즘(유라시아주의, Eurasianism)을 든다. 아시아 대륙의 끝 반도에서 살아가면서 대륙에서 꿈과 기상을 펼치는 모습에 호감을 갖는 사람들에게 유라시아니즘은 매력적인 낭만으로 다가올지 모르겠다. 그러나 유라시아니즘은 러시아의 필요에 의해 러시아인들에 의해 지어진 영어인 듯하고 유라시아처럼 중립적인 낱말이 아니어서 사용에서 유의할 점이 없지 않다. 유라시아는 유럽과 아시아 대륙 전체를 가리키는 말이고 유라시안은 유럽과 아시아가 섞인 혼성의 상태를 가리키는 말로서 모두 일반 단어로 널리 쓰인다. 이와는 달리, 유라시아니즘은 영어 사전에서 찾아보기가 힘들고 일부 사전에서는 서구의 자유주의적 가치 및 헤게모니와는 분리되어 러시아 문명이 다시 출현할 것을 모색하는 러시아의 정치 이데올로기 정도로 풀이되고 있다.
유라시아주의는 1920년대에 러시아인들의 정치운동으로 출현하였다. 소비에트러시아(소련)와 일당독재 체제가 붕괴하고 나서 다당제의 러시아가 등장한 1990년대의 정치 환경 속에서 유라시아주의는 러시아 정치 이데올로기로 다듬어지고 마침내 정치분석전략가인 알렉산드르 두긴은 〈지정학(地政學)의 기초: 러시아의 지정학적 미래〉라는 저서를 1997년 출간하였다. 그로부터 25년이 흐른 지금 두긴의 구상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모르겠다. 다만, 유라시아니즘의 매뉴얼 같은 이 책을 분석한 자료에서 두긴이 구상한 내용을 산발적이나마 몇 대목 옮겨본다. “영국과 유럽을 분리시켜야 한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와 합쳐질 운명이고, 절대로 독립국가로 내버려두어선 안 된다... 서구에 대항하는 러시아·이슬람 동맹을 성사시켜야 한다... 중국은 러시아에 위협적인 존재이고, 가능하면 최대한 분열·해체시켜야 한다... 미국 국내 정치를 불안정에 빠뜨려야 한다...”
유라시아주의로 포장된 푸틴의 전쟁 제국주의
이 정도 내용만으로도 유라시아주의가 지향하는 전세계 지정학이 억지스럽다는 것이 직감될 것이다. 혹자는 유라시아주의를 러시아 제국주의의 정치적 종교라 한다. 유라시아주의는 한 마디로 러시아 언어 사용권(러시아 언어권)을 축으로 전세계의 지배 질서를 다지는 기획을 자기들 식으로 정리한 정치 이데올로기이다. 전지구상에서 러시아 또는 소련이 과거 일정 기간 누렸던 자존감이 1991년 공식적으로 선언된 소련 붕괴 이후 상실된 것이 사실이다. 그러한 좌절감이 위대한 ‘러시아 제국’의 회복을 열망하는 감정으로 전이된 듯하고 그런 감정을 추슬러 마음을 다지면서 정리해낸 답이 지금의 유라시아주의로 보인다.
물론 유라시아주의를 주창하는 사람들은 서구의 기독교 문화가 기독교의 원래 정신에서 이탈하고 타락했다는 진단을 대전제로 한다. 두긴의 설명에 따르면, 러시아가 기독교의 새로운 말씀을 전도해야 한다는 메시아적 사명을 지게 되었으며, 과학적 합리주의와 공리주의에 저항하면서 기독교 문명을 수호하는 천사가 되어야 했었는데, 1917년 러시아혁명에서 소련 공산당이 집권한 때문에 기독교 문명의 정신적 도약이 무산되었다는 것이다. 문명의 구원이 필요하고 그 구원의 주체가 러시아의 정교라는 것은 신앙적 소신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 같은 소신이 세계가 서구와 비서구로 나눠지고 비서구의 중심이 러시아이며 세계가 그런 방향으로 재편되어야 한다는 지정학적 판단으로 연장되는 것은 납득하기가 쉽지 않다. 더욱이 유라시아주의를 실현하기 위해 이번처럼 전쟁을 불사한다면 도무지 납득할 수 없는 유라시아주의가 된다.
지인의 경험에 따르면, 1990년대 모스크바 시내 곳곳에는 공연 티켓을 파는 키오스크(초소형 매점)가 즐비하였다고 한다. 월요일 빼고 1주 내내 공연하는 공연장들은 사람들로 붐비었고 같은 작가, 안무가, 작곡자의 작품이 여러 극장에서 동시에 올려지는 경우도 흔하였다. 같은 작품을 같은 날 여러 곳에서, 또는 시일과 시즌을 달리 해서 다른 무대에서 볼 수 있으므로 사람들은 비교해서 감상하며 깊이를 더하는 안목을 함양할 수 있었다. 입장료는 저가부터 고가까지 다양했고, 할머니 관객들도 꽤 보였다고 한다. 소련이 붕괴되었어도 예술은 그렇게 일상에서 숨쉬고 있었다. 비슷한 시기에 모스크바의 어느 한 켠에선 유라시아주의의 구상이 두긴들에 의해 그렇게 세를 키우고 있었다. 이 대조적인 풍경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두긴은 유라시아당을 창당했고, 그에 대해 극우민족주의자, 국민보수주의자, 파시스트 철학자, 그리고 러시아가 지배하는 유라시아제국 지향의 전체주의자라는 평가가 흔하다. 그는 푸틴의 주요 정치 고문으로서 푸틴 정권의 이데올로기적 바탕에 대해 조언하고 러시아 국립지정학연구소 소장으로 있으면서 푸틴 식의 대외 정책에 큰 영향을 끼친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말하자면 두긴은 푸틴의 정치적 복심으로서 푸틴의 세계 질서 기획의 입안자 같아 보인다.
우크라이나전쟁이 일어난 직후 최근 어느 기고문에서 두긴은 우크라이나전쟁에 대해 “우크라이나와의 전쟁이 아니라 그것은 지구 행성에서의 (서구 주도의) 글로벌리즘과 대결하는 것이고, 서구와 절연(絶緣)하는 것이 곧 구원이다”고 공언한 바 있다. 일찌감치 우크라이나를 러시아와 합쳐야 한다는 두긴의 구상은 이번에 푸틴에 의해 본격적으로 개시된 것으로 해석된다. 이로 미루어 볼 때, 우크라이나전쟁의 원인으로 거론되곤 하는 푸틴 개인의 건강 이상과 폭군적 성격이 얼마나 설득력이 있을지 미지수이다. 또한 우크라이나전쟁은 푸틴이 일으켰다기보다는 러시아(의 극우민족주의자들)가 일으킨 측면이 더 강해 보인다. 우크라이나전쟁 이외에 그들이 또 무슨 전쟁을 획책할지 모를 일이다.
우크라이나전쟁의 추이에 있어 푸틴 개인의 비중이 어느 정도인지 말할 입장은 아니다. 다만, 푸틴의 결단에 의해서라도 전쟁은 당장 멈춰야 한다. 세계인의 열망대로 우크라이나의 자결권을 절대 존중하는 전제 아래 종전(終戰)과 전후 처리가 이뤄져야 할 것이다. 이번 전쟁 통에 우크라이나의 지명들의 우리말 발음이 우크라이나 정부의 요청을 수용하여 러시아식에서 우크라이나식으로(키예프에서 크이우로, 크림반도에서 크름반도로, 리보프에서 르비우로) 더러 바뀌었다. 여기서 러시아 바로 옆에서 시달리며 줄줄이 맺혔을 우크라이나 국민의 응어리가 감지되지 않는가. 동시에, 많은 사람들이 잘못 인식해왔듯이 우크라이나와 러시아가 하나의 언어권, 하나의 단일한 문화권이 아니고 두 나라 사이에 차이가 분명히 상존한다는 것을 새삼 짐작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참에 발트 3국을 비롯하여 러시아 주변 국가들의 지명과 고유명사를 우리가 러시아식이 아니라 자기들 나라 식으로 제대로 표기하고 있는지 챙겨보았으면 한다. 우리말 우리글을 박탈당했던 역사적 경험이 우리에게는 있다.
군사력을 앞세워 다른 나라를 제압하고 정치 경제를 지배하며 자신의 영토를 확장하는 제국주의가 그동안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를 단일한 문화권으로 오인하도록 유도하였다. 어디서든 제국주의는 막아야 한다. 살아가는 일에서 평화가 최우선일 것이고, 개인이든 국가이든 자율과 자결부터 존중해야 평화는 시작될 것이다. 제국주의와 전쟁을 막는 평화를 위해 문화예술은 여리되 강한 힘이 있고 범세계적으로 문화예술인들이 더 연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고조될수록 희망은 커질 것이다. 러시아 발레인들의 마음 또한 같을 것이다. 그리고, 강하게 덧붙이자면, 키예프국립발레단이 아니라 크이우국립발레단(1867년 창단)의 공연을 이 자리에서 손꼽아 기다리겠다.
김채현
춤인문학습원장.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명예교수. <춤웹진> 편집장. 철학과 미학을 전공했고 춤·예술 분야 비평 수백 편과 저서 『춤과 삶의 문화』 『춤, 새로 말한다 새로 만든다』 『뿌리깊은 나무 샘이깊은 물』(1)을 비롯 다수의 논문, 공저, 『춤』 등의 역서 20여권을 발간했다. 지난 30년간 한국의 예술춤과 국내외 축제 현장을 작가주의 시각으로 직접 촬영한 비디오 기록물 수천 편을 소장하고 있으며 한국저작권위원회, 국립극장 자료관, 국립도서관 등에 영상 복제본, 팸플릿 등 일부 자료를 기증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