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평
다양한 장르의 춤, 국적을 달리하는 춤 뿌리, 전통과 창조의 춤의 모습, 갖가지 춤 색깔과 지역적 안착, 춤 세대의 변화와 차이, 춤의 수용과 고수, 교류와 소통, 크고 작음, 단체와 개인, 풍요와 빈곤, 이 모든 것을 꽃과 나무를 수용한 숲으로 가정하고 에세이를 씀으로써 인디 춤판을 열면서 춤 작가로 성장하는 데 각오를 다지는 작은 도움이 되고자 한다.
봄날, 작은 텃밭을 낀 북한산 기슭, 지천에 꽃이며, 나물이다. 자목련이 진, 그 뒤 편으로 왕벚꽃이 자태를 뽐낸다. 신탁을 얻은 민들레 홀씨 흩어지는 대서사를 연출하는 봄은 모든 이에게 낭만적인 것만은 아닐 것이다. 봄비의 축복과 더불어 혼사를 앞둔 어떤 처녀에게는 행운일 수도 있고, 방향감각을 상실한 총각에게는 치명적 아픔을 주는 계절이 될 수 있다.
봄 두릅이 실종되고, 막걸리를 먹고 자란 사과나무, 복숭아나무, 매실나무의 잎들이 화합의 교향악을 연주할 듯하다. 사과나무의 유혹 뒤로, 쓰지만 약이 되는 오가피나무가 자리 잡고 있다. 시농제가 끝나고 봄 햇살을 듬뿍 받은 미나리들이 뭇 올챙이를 호령하며 천진난만한 오후를 즐기고 있다. 라일락 향에 취한 망아지들이 할미꽃의 해탈을 헤아릴 리 없다.
쑥, 질경이, 돌미나리로 살아남은 동시대의 이 땅의 춤꾼들은 영원히 메시아를 기다려야 하는가? 봄을 추지 못하고 뽑혀지는 잡초가 될 운명인가, 여름이 오기 전에 찬란한 봄을 구가하는 상추가 되어야 하는가? 계절을 극복하고 긴 호흡으로 살아남을 것인가? 나만의 계절을 즐길 것인가? 첫사랑의 추억을 간직하며 붉은 소나무로 나를 풀어 헤칠(吾解) 것인가?
네 잎 토끼풀을 찾으며, 지중해의 올리브를 떠올리자! 그래도 우리에게 무지개 뜨는 언덕과 파랑새는 항존한다. 주홍글씨의 'A' 낙인처럼 지금의 춤 작업이 자기를 희생한 거룩한 업보임을 깨닫게 하며 나를 숙성시켜 가는 통관의 한 과정임을 인지하자. 우리는 그 긴 겨울을 뚫고 봄과 여름을 얻어가는 작은 풀꽃들과 나무들이 주는 교훈을 잊지 말자.
원래, 인디의 숲은 깊고 험하다. 조팝나무 깃발을 달고 나 홀로 큰 바다로 나아가는 안개 낀 아침의 아스라한 출발은 외 방울소리 울리며 눈 내리는 강가에서 먼 길을 떠나는 나그네의 두려움과 같은 것이다. 두려움을 뚫고 진정한 무사(舞士)가 되어야 한다. 무사의 계율은 무사(舞師)의 기본 가르침과 자신에 대한 엄격한 규율이 선행되어야 한다.
자신의 숙성은 춤 기본기의 충실과 진물이 잡힐 정도의 독서가 필수적이다. 자신의 진로에 대한 구성 대본이 없으면, 춤 전장의 전사가 될 수 없다. 나를 가꾸어 나아가는 견고한 철학이 없으면 루비콘 강을 건널 수 없다. 숙성에는 색(色), 향(香), 미(美)가 따른다. 내공으로 무장하고 내향(內香)을 발산하는 필살기 없이는 나를 보호하는 무기는 없다.
나를 비추는 거울, 나를 담는 그릇, 나를 숙성시키는 가지런한 도구들, 나의 영혼을 울리는 소리(響)들을 챙기고, 무덕산(舞德山) 산행을 해야 한다. 산상에서 우주에서 꿈틀거리며 기운을 받고 별처럼 쏟아지는 가르침을 한 짐 지고 오자! 머리로 몸짓으로 겸허히 답을 풀어낼 지음, 춤꾼들은 단식을 막 끝낸 사람들처럼 탈진해 있을 것이다.
숙성이 끝난 다음 단계는 춤 맛 고르기 순서에 들어간다. 춤 맛은 요리의 과정을 생각하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재료를 선별하고, 조미료를 쳐서, 색깔을 입히고, 소리까지 얹은 과정을 생각하면 된다. 음식의 맛 이외에도 신선하고 구수한 춤 냄새가 있어야 함을 명심해야 한다. 비주얼 못지않게 냄새가 관객을 사로잡아야 한다.
가문비나무가 얼룩말의 무늬로 탐욕을 입어 갈 때도 무사들은 초연해야 한다. 언제나 초록은 초록으로 남아 있기 때문이고 붉은 산의 정기는 붉은 산으로 있기 때문이다. 나를 완성시키는 것은 올곧은 정신과 오로지 춤이기 때문이다. 이유 없는 반항과 일탈, ‘이지 라이더’의 추억은 나의 완성을 위한 수행의 한 방편임을 깨달아야한다.
내 곁에 풀들, 내 곁에 나무들, 내 곁에 새들과 동물들이 있어야 나는 숲이 될 수 있다. 나는 그 춤 숲에 존재해야할 가치 타당성을 지녀야 한다. 오늘도 인디의 숲에는 숱한 이즘과 저항과 불의에 대한 투쟁, 가난과 외로움, 허망의 현실을 이겨 낸 많은 장르의 인디예술가들의 땀과 노력, 인고의 세월이 화석으로 남아 있다.
인디 춤 전사들의 의로운 작업은 영원히 기억될 것이며, 작은 세월의 희생은 희생이 아니며 무사(舞史)에 찬란한 전공으로 기록될 것이다. 우리 춤의 미래는 인디 전사들의 노력 여하에 달려있다. 그들에게 칼과 총이 쥐어 지는 순간, 우리 춤은 어느 장르에도 비견할 수 없는 힘을 갖게 될 것이다. 용기와 희망으로 춤터에 과감하게 나서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