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평
국내 첫 번째 발레축제의 막이 올랐다. 지난 12일 정병국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의 축사와 김혜식 조직위원장의 개막 선언으로 시작된 제1회 대한민국발레축제는 다양한 문화예술인들과 정관계 인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축제의 시작을 알렸다. 개막작이었던 국립발레단의 <백조의 호수>도 성황리에 진행됐다. 대중에게는 이미 익숙한 작품이었지만 국립발레단은 이날 공연에서 한층 화려해진 의상과 무대로 공연장을 찾은 사람들을 환호하게 만들었다.
이번 축제에서는 국립발레단과 유니버설발레단으로 양분됐던 관객의 발레 경험이 서울발레시어터와 광주시립무용단이 가세하면서 보다 다양해질 전망이다. 개막 전까지는 국립과 유니버설발레단 작품에 대한 관객 편중 현상도 우려됐지만, 예상과 달리 관객들이 각 발레단의 공연에 고른 관심을 보이고 있어 관계자들을 고무시키고 있다. 이와 함께 젊은 안무가들의 창작공연을 많은 비중으로 배치한 것도 발레의 다양한 스펙트럼을 경험할 수 있는 장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번 축제의 목적은 단순하다. ‘발레의 대중화를 통한 관객 저변 확대’다. 최근 오랜만에 나타난 발레에의 관심을 이번 축제로 이어가겠다는 심산이다. <블랙 스완>의 감동이 희미해지고 <발레리No>의 재미가 반감될 때쯤 등장한 발레축제는 새롭게 관심을 끌 만한 ‘발레 이벤트’로서 적절하다. 준비기간과 예산상의 문제로 각 발레단 레퍼토리를 1회씩 공연하는 기획은 아쉽지만, 일정 기간 동안 한 장소에서 집중적으로 여러 가지 발레를 맛볼 수 있다는 것은 분명 흥미로운 경험이다. ‘발레’축제로서는 이미 절반의 성과를 거둔 셈이다.
하지만 발레‘축제’라는 측면에서 보면 이 행사는 아직 갈 길이 멀다. 축제란 기본적으로 낯선 것들과 만나면서 생겨나는 ‘이야기’다. 사람들은 축제를 통해 일상에선 접할 수 없는 것을 체험하고, 그로부터 새로운 에너지를 만들어낸다. 떠들썩하게 웃고 즐기는 장 속에서 소통하며 나오는 크고 작은 이야기들이 결국 축제를 이어가게 만든다. 한 마디로 축제의 본질은 주체와 객체가 따로 없는 거대한 놀이판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막 시작한 대한민국발레축제에도 그대로 적용되어야 할 요건이다.
숱하게 많은 축제들이 도처에서 열리고 있다. 문화예술축제들도 장르의 저변 확대를 목표로 반복되고 있다. 큰 규모의 춤 관련 축제도 수도권에만 다섯 개나 된다. 이중 축제의 원래 기능에 충실한 행사는 얼마나 있을까. 물론 장르 팬들은 해마다 행사를 기다리겠지만, 춤 마니아의 층은 워낙 얇고, 또 축제의 기능이 ‘마니아 유지’에만 국한될 것은 아니다. 축제는 항상 어떤 사람들도 즐길 수 있는 것들로 채워지고, 또 그렇게 존재해야 한다. 이런 환경이 만들어질 때 사람들은 자발적이고 주체적으로 축제에 참여해 스스로 축제를 이끌게 된다.
그런 점에서 이제 첫 발을 뗀 발레축제에게 필요한 것은 ‘접촉’이다. 무대에서 무용수들끼리만 접촉하는 것이 아니라, 관객들과의 접촉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한 마디로 부대행사의 중요성이다. 물론 지금도 무용수, 안무가와의 만남이나 사진전, 관련 영화 상영 등의 부대행사가 있지만 축제의 흥을 살리기에는 턱없이 부족해 보인다. 사람들이 발레에서 알고 싶은 것은 ‘해설’ 말고도 많다. 사람들에게 발레를 ‘전파’하려는 기획에만 치중한다면, 처음의 관심은 쉬이 식을 수밖에 없다.
이제는 발레로 놀고 웃고 떠들 수 있는 장을 고민해봐야 한다. 가령 발레 스타들은 무대 위뿐만 아니라 공연장 밖, 온라인 등 전방위에서 대중과 만날 수 있다. 더 많은 참여를 유도하는 이벤트들도 개발할 필요가 있다. 4대 발레단의 공연과 그에 대한 관객의 열띤 반응은 이후 행사에 대한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사람들은 상기된 표정으로 공연장을 나섰다. 이들은 집에 돌아가는 길에 트위터에 접속해 감상을 남기고, 블로그에 후기를 올릴 것이다. 소문은 순식간에 퍼진다. 소셜미디어의 시대에 이런 ‘손소문’의 힘은 어마어마하다. 주최 측은 이처럼 사람들이 발레에 대해 스스로 담론을 만들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이는 좋은 작품의 선정과 공연 못지않게 중요한 것일 수 있다.
사람들은 언제나 ‘진짜 축제’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붉은 악마’ 신드롬이나 촛불시위가 그처럼 거대한 에너지를 만들어낸 것은 지금이 제대로 된 축제가 없는 시대임을 반증해준다. 새로 시작하는 발레축제에게 이런 지금은 위기이자 기회이다. 축제의 성공 여부는 정부의 지원이나 후원자의 자금에 달린 것이 아니다. 기자나 평론가의 공연평도 아니다. 중요한 건 사람들의 마음을 동하게 만드는 기획과 실행의 힘이다.
발레의 매력이 발산되려고 하는 지금, 그래서 구태적 관습에서 벗어나 축제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선을 가질 필요가 있다. 앞으로 대한민국발레축제가 그런 참신한 시각을 통해 많은 사람들과 발레의 성찬을 즐길 수 있는 진정한 축제로 거듭나길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