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평
지난 4월 14일 대학로 예술가의 집에서는 뜻깊은 행사가 열렸다. 소액 모금에 대한 중요성을 알리고 예술 분야 기부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 형성을 위한 ‘크라우드 펀딩(Crowd Funding)’의 출범식이 열린 것이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이하 아르코)가 국내 최초로 시도하는 크라우드 펀딩은 익명의 다수 후원자들로부터 자금을 조달하는 모금 형식이다. 모금을 원하는 예술단체나 개인 예술가가 온라인 사이트(fund.arko.or.kr)에 창작 프로젝트 계획과 모금 목표액을 게재하면 아르코가 일정 기간 기부금 모금을 대행해 예술가에게 전달하는 새로운 기부 시스템인 셈이다.
소셜 펀딩에 의한 예술기부 환경의 변화
이번에 소개된 크라우드 펀딩은 ‘소셜 펀딩’이라는 이름으로 잘 알려졌다. 해외에서는 크라우드 펀딩과 함께 ‘커뮤니티 펀딩(Community funding)’, ‘펀드레이징(Fundraising)’, ‘마이크로 펀딩(Micro funding)’ 등이 대표적인 소셜 펀딩 사이트다. 특히 ‘킥스타터’와 ‘인디고고’는 다양한 문화예술 종사자들에게 특화된 곳으로 유명하다.
소셜 펀딩은 기본적으로 모금자와 기부자 모두를 만족시키는 시스템이지만, 문화예술계에서는 기부자에게 주도권을 되찾아준다는 데서 의미를 갖는다. 기존의 기부 방식은 창작물의 결과와 관계없이 기부 자체에서 의미를 찾아야 하는 것이었다면, 소셜 펀딩을 통한 모금 방식은 자신들이 원하는 예술가 또는 해당 프로젝트에 대해 구체적으로 지지를 보내고 그 결과를 확인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목표액에 미달해 프로젝트에 실패할 시 기부금을 기부자에게 돌려주는 ‘All or Nothing’ 시스템도 부담없는 기부를 독려하는 요소다.
기업 기부에만 치우친 현재의 예술기부 양상을 바꿔놓을 수도 있다. 아르코가 지난 한 해 동안 기부금 현황을 집계한 결과 총 134억 3천5백만 원이 기부액 중 기업 기부가 125억 원으로 전체의 93.2%를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편중 현상은 소수 예술가나 거대단체들에게는 경제적으로 윤택한 환경을 부여할 수 있지만, 전체 예술생태계에서 볼 때는 건강하지 못한 구조라고 할 수 있다.
이번에 아르코가 크라우드 펀딩을 추진하게 된 것도 이런 배경과 맞닿아 있다. 예술나눔부의 한 관계자는 “문화예술 분야 ․기부문화의 확산을 위해 일반인의 소액 모금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리고, 예술가와 소규모 예술단체의 모금 창구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는 데서 고민한 결과”라고 이번 사업의 배경을 설명한다.
젊은 예술가와 작은 예술단체들의 새로운 해법
특히 단체에 소속되지 않은 젊은 예술가나 늘 재정의 어려움을 겪는 작은 예술단체에게 크라우드 펀딩은 앞으로의 활동과 관련해 중요한 단초가 될 수 있다. 얼마 전 그 예술적 재능을 인정받았음에도 경제적 어려움으로 인한 건강 악화로 목숨을 잃은 젊은 작가의 사례는 현재 예술생태계의 혹독한 단면을 보여준 바 있다. 이처럼 재능 있고 독특한 예술세계를 가졌지만 그것을 대중에게 보여줄 경제적 여건이 안 되는 젊은 예술가들이 아직도 많다. 크라우드 펀딩은 이처럼 예술적 고민뿐만 아니라 생존의 문제와도 싸워야 하는 젊은 예술가들에게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다.
물론 크라우드 펀딩 자체가 예술가들의 생계와 경력의 문제를 풀 수 있는 해법이 되는 것은 아니다. 소셜 펀딩 사이트 디스이즈마이스토리의 임현나 대표는 “소셜 펀딩은 기본적으로 좋은 아이디어가 있어야 하고 그 결과물을 통해 기부해준 대중에게 꿈을 실현시킬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 말은 예술가들이 이제 대중의 꿈을 실현해줄 수 있는 예술적 역량과 고유한 아이디어를 함께 갖춰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첫 번째 크라우드 펀딩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는 이원국발레단의 이원국 단장은 “선택받은 소수만이 몇 개 안 되는 무용단에 몸담는 현실에서 이런 펀딩은 젊은 무용가들에게 새로운 기회가 될 것”이라고 긍정하면서도 “오히려 대중을 만족시킬 수 있는 예술적 역량과 현실감각이 있는지를 검증받는 기회이기 때문에 더 치열한 노력을 해야 한다”고 경고한다.
배고픈 예술과 불만스러운 대중 사이에 크라우드 펀딩이 등장했다. 과연 이번 기회를 통해 예술계와 대중이 선순환 구조를 만들 수 있을까. 그 관건은 예술가들의 자발적 노력과 좋은 프로젝트에 관심을 갖고 후원하는 사회적 분위기의 정착에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