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평

성공하는 무대 앞에 ‘관객’이 있다
송준호_주간한국 기자

객석에 앉아 있기만 하던 관객의 위상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슈퍼스타K> 이후 이어지는 각종 경연 프로그램들이 ‘관객은 왕’이라는 말을 체감시키고 있다. 청중평가단의 선택을 뒤엎었던 <나는 가수다>는 시청자의 비난과 함께 PD가 교체되는 홍역을 치르기도 했다.
 변화의 조짐은 공연계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관람’ 외에는 별다른 역할이 없던 관객들은 최근 ‘관객평가단’ 제도를 필두로 배우의 오디션 심사와 작품상 선정까지 다양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바야흐로 관객들이 공연을 좌우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관객들에게 옆자리를 내준 공연계

 
관객들을 공연에 참여시키는 방안은 사실 오래 전부터 있었다. 대표적인 것이 모니터링 제도다. 최근엔 SNS를 활용한 실시간 모니터링 시스템도 등장했다. 영화계의 ‘트위터 시사회’ 형식을 차용한 연극 <늘근도둑 이야기>와 <아큐-어느 독재자의 고백>은 관객들의 반응을 현장에서 확인하면서 공연하는 이색적 이벤트를 진행해 눈길을 끌었다. 

 요즘 관객들의 위상 변화는 일회성 이벤트에서만 나타나지 않는다. 공연계에도 등장한 관객평가단은 원래 전문가 그룹이 맡고 있던 영역까지 파고들어 작품 평가에서 배우 선발에 이르기까지 공연의 전 과정에 개입한다.
 15일 막을 내린 제32회 서울연극제는 30인의 관객평가단과 행사 전반을 함께했다. 지난해 이 제도가 처음 시행된 것은 서울연극제가 처음의 취지와는 다르게 관객이 배제된 ‘그들만의 축제’였다는 반성에서 비롯된 것이다.
 4년째 이 제도를 시행하고 있는 광주 평화연극제는 좀 더 상징적인 의미를 부여했다. 시민 관객과 전문가 그룹을 동일선상에 두고 ‘시민평가단’ 안에 모두 포함시켜 진정한 최고작을 평가하도록 했기 때문이다. 최영화 광주연극협회장은 “관객들이 자신들의 손으로 직접 뽑은 최고작이기에 공정성 의혹도 없고 행사에 더욱 애착이 갈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뮤지컬 <김종욱 찾기>는 아예 배우 선발부터 관객에게 맡기며 더 많은 관심을 촉구하고 있다. 오디션 프로젝트 <슈퍼스타Kim>에서 ‘배우 심사단’으로 나선 관객들은 4주간의 워크숍을 거쳐 배우 캐스팅의 노하우를 익히고 자신들만의 ‘김종욱’을 직접 선발한다.
 이 같은 변화는 공연제작사들이 예전보다 관객의 관심과 평가를 공연 성공의 중요한 변수로 생각하게 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실제로 이런 시도는 큰 반향을 일으켜 관객들이 해당 작품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며 공연장으로 오게 하는 효과를 불러오고 있다.


춤계의 외면, 언제까지 계속될까

 하지만 이런 공연계의 변화에 대해 춤계의 반응은 아직까지 조용하다. 얼마 전 잠깐 동안 발레에 집중됐던 대중의 관심은 이내 잠잠해졌다. 관객을 위한 특별한 이벤트들이 이어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특정 공연의 ‘해설이 있는 발레’ 콘셉트나 일부 동호인들에게만 허용되는 연습실 공개를 제외하면 발레와 관객과의 소통 창구는 현재로선 없는 셈이다.
 현대춤 역시 일반 관객과의 접점이 드문 상태다. 일단 다른 장르처럼 큰 규모로 화제를 만들기도 쉽지 않을 뿐더러, 대중적 작품들도 양적으로 많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창작자들의 인식에 일정 부분 기인한다. 한 젊은 무용가는 “대중 관객이 이해하기 쉬운 작품은 이 세계에선 예술성을 인정해주지 않는 경향이 있어 난해한 주제를 택하게 된다”고 말한다. 이런 인식이 오랫동안 반복된 결과 관객들은 여전히 ‘현대춤은 어렵다’는 시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공연장에서는 관계자들만 표를 사고파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
 현재 춤 예술의 위기는 막바지에 다다른 상태다. 문화체육관광부가 발표한 문화향수실태조사(2010)에 따르면 춤은 모든 장르 중 최하위의 관객 선호도를 보이고 있다. 앞으로 1년 내에 관람 의향이 있는 예술행사로 영화(80.2%), 연극(37.2%), 미술전시(15.1%), 전통예술(13.6%), 클래식/오페라(11.9%), 문학(6.8%), 춤(3.8%)의 순으로 선호도가 나타났다. 100명 중 4명도 관심을 갖지 않는 상황이라면, 이는 명백한 위기라고 할 만하다. 그러나 춤계 내에서 관객과의 접점을 찾으려는 움직임은 아직 보이지 않고 있다.
 관객은 오랫동안 ‘차려진 밥상’만 먹는 수동적인 존재였지만, 이제는 객석을 넘어 무대에까지 힘을 과시하는 존재가 됐다. <나는 가수다>의 인기비결은 사실 ‘나는 관객이다’의 시대적 요구에 충실히 부응한 결과다. 연극이나 뮤지컬, 다양한 퍼포먼스들도 이런 시대의 흐름에 발맞추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
 반면 춤계만은 여전히 ‘나는 예술가다’의 태도에서 벗어나지 않고 있다. 이제는 공연자들이 본인뿐만 아니라 관객들도 만족하는 춤을 고민해야 할 때다. 관객과 함께하는 춤이 나오지 않는 이상, 춤의 새로운 도약은 먼 이야기가 될지도 모른다.

2011. 05.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