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평
윤석열 당선인은 5월 10일 취임식을 갖고, 제20대 대통령으로서의 임기를 시작한다. 다음 달이면 새 정부의 출범이 시작되는 셈이다.
문제인 정부는 출범 1년 후인 2019년 5월, 2030년까지 추진할 중장기 문화정책 방향과 의제를 담은 ‘문화비전2030’을 발표하는 의욕을 보였었다. ‘사람이 있는 문화’를 내 세운 이 정책은 '예술인 고용 보험', '예술인 권리 보장법' 등에서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었으나 예술계 현장에서는 여전히 비효율적인 정책 운용이 끊이지 않았다.
그런 점에서 새 정부의 문화예술 정책, 좁게는 무용예술 진흥정책은 거창하고 새로운 것보다 예술계 현장에서 개선을 필요로 하는 것들이 무엇인지를 먼저 파악하고, 그것들을 손질하는 실용적인 운용이 우선되어야 할 것이다.
이즈음 들어 한국의 춤 환경은 여러 부문에서 그 변화의 속도가 만만치 않다. 댄스 필름, 장애인 무용, 무용치료, 커뮤니티 댄스, 공연장소의 확대 등 일반 대중들과의 소통이 늘어나는 과정에서, 무용예술의 사회적 가치가 확산되는 흐름과 함께 창작, 교육과 연계된 무용예술의 영역이 사회 곳곳으로 확장되고 있고 이 같은 현상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새 정부가 무용예술 진흥을 위해 실질적으로 수행해야할 새 정책과 운용 개선 내용은 다음의 몇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초중고등학교 수업 시간에 시행하는 예술교과 안에 무용을 포함시켜야 한다.
인간의 몸을 매개로 하는 무용은 어린이들의 창의력 신장 뿐 아니라 민주시민으로 성장시키는 중요한 예술교육의 수단이 된다. 그래서 이미 선진 여러 나라에서는 공교육 안에서 행해지는 예술 교과안에 음악 미술과 함께 무용을 포함시켜 운용하고 있다. 새 정부는 25년 전부터 무용계가 지속적으로 주장해 오고 있는 예술교과에 무용을 포함시키는 정책을 이제는 적극 수용해야 한다.
둘째는, 지원제도의 운용을 개선하는 것이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와 서울문화재단 등 공공 지원기관의 지원정책과 관련해 그동안 끊임없이 제기된 춤 지원정책을 둘러싼 문제점의 핵심은, 지원사업의 운용 시기와 심의위원 선임이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는 무용 연극계에서 가장 대관 경쟁이 치열한 4개 예술극장의 2020년도 대관 심의 결과를 2019년 12월 31일에 발표했다. 신청자들에게 사업 개시 연도 하루 전날에 대관이 되었는지 안 되었는지를 알게 한 셈이다. 공공 극장의 대관을 이렇게 늦장 운용하는 곳은 세계 그 어느 곳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예술의전당, 국립극장 등 공공극장의 대관 결정은 적어도 1년 전에, 국제 행사의 경우는 1년 반 전에는 결정되도록 운용되어야 한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지원사업 접수 역시 전년도 10월에 시작해 그 결과가 당해 연도 3월과 4월에 발표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심지어 2021년의 경우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국제교류 부문의 심사결과는 6월초에 발표되었었다. 외국의 공공 지원정책 운용 과정과 비교했을 때 무려 1년이나 차이가 있다.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당해 연도의 지원 사업 결과를 그해에 발표하는 나라는 없다. 대한민국의 예술 축제들 대부분이 하반기에 몰려 열리고 있는 것은 문예위의 지원결과 발표 시기와 결코 무관하지 않다. 이런 상태는 수 십 년 째 지속되고 있다. 지원은 있지만 효율성은 떨어지는 전형적인 보여 주기 식 비생산적인 행정의 단면이다.
1년에 한차례 있는 예술지원 심의는 모든 심사위원들이 같은 무대에서 똑같은 공연을 보고 우열을 판가름하는 경연대회의 심사와는 여러 면에서 다르다. 따라서 심의위원 선정 역시 그 충족요건이 달라야 한다. 국제교류 부문의 심사라면 또 다른 자격 요건이 필요할 것이다. 공공 예술지원은 전문성을 갖춘 심의위원들이 공정한 심사로 지원정책의 효율성이 높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올해 23회째를 맞은 서울국제즉흥춤축제 공연 모습. |
셋째, 공공 예술단체장들의 선임은 임기 개시 1년 전이나 적어도 6개월 전에는 이루어져야 한다.
선정 방식 역시 문화부에 의한 일방통행이 아니라 해당 단체의 이사회를 통해 선임 하거나 추천위원회 가동을 통해 후보자들을 천거하는 과정을 거칠 필요가 있다. 현재 국립발레단과 국립현대무용단은 문화관광체육부 장관이, 국립국악원무용단과 국립무용단은 공모를 통해 단체의 책임자가 복수의 후보자를 추천하면 역시 문화관광체육부 장관이 최종 낙점을 한다.
직업무용단에서 예술감독은 단체의 정체성에 걸 맞는 작품 개발에서부터 단원들의 기량 향상, 작품 선정과 제작 스태프 구성, 무용수 캐스팅을 통한 공연의 예술적 완성도를 책임지는 중요한 직책이다. 따라서 외국의 경우는 적어도 계약만료 최소 1년 전이나 그보다 더 일찍 재계약 여부를 결정하거나 후임감독을 선임해 다음 시즌을 준비하도록 한다.
국제교류를 해야 하는 직업무용단의 경우 후임감독 선임이 늦어지면 사실상 새로운 공연 레퍼토리 편성과 해외진출 공연은 불가능하다. 발레의 경우 2년이나 3년 전부터 작품과 지휘자, 의상과 무대장치, 안무가 등의 섭외가 이루어지고 현대무용의 경우도 객원안무가 초빙과 레지던시 작업, 페스티벌과 해외극장 진출 타진을 위해서는 2년 전부터 섭외를 시작해야 한다. 지금처럼 전임자의 임기가 끝난 후 공석 상태가 이어지거나 전임자의 임기만료 하루 전에 예술감독이 선임되는 악순환이 되풀이 되는 것은 시급히 개선되어야 한다.
넷째, 한국문화예술위원회는 ‘공연예술’의 카테고리 안에 음악, 전통예술, 연극, 무용을 함께 심의하는 운용 체계를 바꾸어야 한다.
1973년 한국문화예술진흥원이 설립되고 2005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로 그 명칭이 바뀐 지 50여 년이 흐르고 있는 지금까지도 무용은 문학과 시각예술 장르처럼 온전히 장르가 분리되지 않은 채 음악, 연극, 전통예술과 함께 공연예술 부문 속에서 심의되고 있다.
다시 말해 국제교류, 공연예술중장기창작지원, 청년예술가지원, 창작실험활동지원, 대한민국공연예술제지원, 공연장대관료지원, 공연예술특성화극장운영지원, 공연예술비평연구활성화지원 등 공연예술 부문에 공통으로 묶어 놓은 이들 사업을 ‘창작산실’ 처럼 온전히 무용예술 부문으로 독립시켜 운영할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한국의 무용계는 지난 50여 년 전과는 그 여건이 무척 달라졌다. 무용사회의 변화된 환경과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채 수십 년째 예전처럼 적용되고 있는 그 틀은 이제 바뀌어져야 한다. 연극과 음악 전통예술과 함께 적용해야 할 게 아니라 변화된 여건을 고려한 독립 예술장르로서 차별화된 지원사업의 개발과 운영이 필요하다.
독일의 뒤셀도르프 탄츠하우스를 중심으로 열리고 있는 무용마켓인 탄츠메세 광경. |
다섯째, 무용전용극장을 포함한 국립무용센터(국립댄스하우스)의 건립이 필요하다.
코로나 발발 전 대한민국의 무용계는 1년에 3천 건이 넘는 공연, 200개가 넘는 해외 춤 단체의 내한공연, 200회가 넘는 해외 공연, 춤 공연장의 확장 등 지속적인 성장과 함께 수도권을 중심으로 많은 독립 안무가와 전문 춤 단체, 프리랜서 무용수들이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이제는 변화된 대한민국의 춤 환경을 고려한, 서울 중심이 아닌 전국적인 관점에서의 무용예술 발전을 포괄하는 정책들을 종합적으로 다루고 운용할 수 있는 전문 기관이 필요하다. 무용전용 극장을 포함한 다문화적 협력과 작품의 보급처이면서 동시에 지역사회의 예술을 연계하는 시스템인 국립무용센터의 건립은 오랜 무용계의 숙원사업이었다. 대한민국국립무용센터가 건립된다면 다음과 같은 일들을 수행할 수 있다.
무용예술의 커뮤니케이션 창구/양질의 무용 예술작품을 위한 배양, 유통을 위한 창구/무용예술 국제교류의 창구/지역 무용계 활성화의 창구/무용예술 대중화의 창구/무용예술 교육 프로그램 배양 및 유통을 위한 창구/무용관련 자료 및 정보 제공의 창구/무용 콘텐츠 개발의 창구/무용예술 정책 개발 및 수행의 창구/커뮤니티댄스 프로그램 배양 및 유통을 위한 창구/국내외 무용 네트워킹의 장/타 장르 예술과의 협업 작업을 위한 중심센터.
외국에서 무용예술은 극장예술의 한 장르로서 뿐만 아니라 몸을 매개로 한 예술장르의 특성을 활용한 다양한 프로그램들이 정책적인 차원에서 운용되고 있다. 정부나 민간 기구, 그리고 무용가들이 직접 나서서 추진하는 이 같은 프로젝트들은 무용가들을 위한 예술 창작 활동 뿐 아니라 무용교육 부문, 그리고 문화예술을 이용한 국가 또는 도시 이미지 고양이란 장기적인 정책에 이르기까지 그 범위가 무척 넓고 다양하다. 중앙정부에 의한 이 같은 새로운 인프라 지원은 무엇보다 대한민국 예술가의 성장과 발전에 촉매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여섯째, 전국에 산재한 260여 개의 문화예술회관을 활용한 무용예술 향유 기회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
대한민국 정부는 여전히 서울과 수도권에 지나치게 편중된 문화예술 정책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무용예술 역시 예외가 아니다. 공공 기관으로부터 수 억 원씩의 지원을 받는 국제무용축제와 무용 콩쿠르 역시 모두 서울에서 개최되고 있으며, 이들 축제를 통해 소개되는 해외공연 감상은 서울에 거주하는 관객들이 독식한다. 그뿐만이 아니다. 커뮤니티댄스 프로그램 혜택 역시 각 지역은 저 만치 멀리 떨어져 있다.
전국에 산재한 260여개의 공공 문화예술기관 중 20%가 넘는 공연장은 일 년에 무용공연을 단 한 번도 개최하지 않고 있다. 해당 지역의 주민들은 일년에 무용공연을 한 편도 보지 못하는 셈이다. 지역 주민들의 공연 편식 문화는 공연예술을 통한 복지 차원에서도 개선할 필요가 있다.
일곱째, 무용예술을 통한 남북예술 교류 프로그램을 가동할 필요가 있다.
동서독이 통일되기 전까지 두 나라는 무려 6백 여 개에 이르는 문화예술 교류 프로그램을 시행했다. 이들 두 나라는 1972년 양국 정부가 기본 조약을 체결하기 이전부터 빈번한 문화예술 교류를 지속해 왔다. 남북 문화예술 교류는 여러 사람들이 움직여야 하는, 떠들썩한 대형 공연보다 겉으로 잘 드러나지는 않지만 차분한 인적 교류가 먼저일 수도 있다. 그런 점에서 남북 예술교류에서 무용 역시 유용하게 활용될 수 있다.
수년 전, 북쪽에서 귀순한 무용수 신영희가 남쪽 예술단이 제작한 뮤지컬 〈시집가는 날〉에 주인공으로 출연해 색다른 연기와 춤을 보여주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북쪽이 개발한 한글의 자음과 모음을 이용한 무용표기법은 세계적으로 그 과학성을 인정받고 있다.
2000년 평양학생소년예술단 서울 공연과 남북정상회담 시 남쪽 대표들에게 선보인 북쪽의 무용 공연 등이 영상물 등을 통해 소개되자 춤계의 관심은 자연스럽게 북쪽 무용수들의 훈련 방법과 무용음악 등에 쏠렸었다.
국악기 개량을 위한 전문가 교환, 남북의 대표적인 희곡의 교환, 창작음악 교환 연주, 대표적인 춤 레퍼토리와 안무가, 무용음악 작곡가와 연주자, 무용지도자 교류 등은 많은 인원이 이동하고 많은 돈이 들어가는 것들이 아니다. 이 같은 작은 만남은 서로의 이질화된 문화의 간극을 좁혀줄 수 있다.
그들이 앞서 있는 것, 서로가 필요로 하는 것들을 주고받을 수 있는 인적 교류는 오랜 동안 폐쇄적이었던 북쪽의 빗장을 열 수 있는 효율적인 정책이다. 무엇보다 이를 통해 진정한 인간적인 만남이 이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남북 문화예술 교류는 무엇보다 현장에서 작업하는 예술가들이 필요로 하는 것들을, 정부가 뒤에서 도와주는 그런 모양새가 되어야 한다.
우리는 과거 정부가 바뀔 때마다 자행된 문화예술계의 코드인사, 예술가들의 정권유착을 기억하고 있다. 이를 경계하기 위한 예술가들과 관련 공무원들의 도덕적인 재무장과 함께 문화예술 발전을 위해 운영되고 있는 공공 지원정책이, 잘못된 사업 운영과 경직된 행정으로 오히려 적폐를 양산하고, 한국 공연예술계의 발전을 저해시키고 있는 것은 아닌지 심각하게 돌아볼 필요가 있다.
돈만 준다고 해서 예술지원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지원정책의 성공은 그 내용 못지않게 타이밍이 중요하다. 새 정부에서는 한국 공연예술계의 고질적인 병폐와 잘못된 행태, 관행들이 대폭적으로 수술되기를 기대한다.
춤비평가. 1984년부터 공연예술전문지 〈객석〉 기자, 편집장으로 20여 년 활동했다. 춤비평집 『변동과 전환』 『당신의 발에 입맞추고 싶습니다』 등의 저서가 있으며, 1995년 무용예술을 중심으로 한 국제교류를 위해 설립한 국제공연예술프로젝트(ipap) 대표, 한국춤정책연구소장, 서울과 제주국제즉흥춤축제 예술감독 등을 맡아 춤 현장과 소통하고 있다. 숙명여대 무용과 겸임교수로 후학들을 지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