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평
우리는 코로나 19 위기로 기존의 공연 소통방식이었던 극장 무대와 객석이 아닌 랜선을 통해 매개되는 언택트 시대를 경험하고 있다. 코로나 팬데믹은 기술과 융합하여 나타나는 새로운 패턴의 랜선 공연예술이 ‘무대’ ‘댄서’ ‘관객’이라는 공연의 필수 요소가 없는 시대를 열고 있다. 예컨대 ‘스크린’ ‘영상편집’ ‘컴퓨터 미디어 활용’ 등 기술을 바탕으로 기존의 융합과 공감을 넘어 새로운 방식의 통합과 교류를 통한 현대 예술을 탄생시킬 가능성이 준비할 틈도 없이 다가와 버린 것이다. 4차 산업혁명의 기술 적용이 일상에 가속화되며 춤계는 유례없는 어려움과 혼돈 속에서 고군분투하였다.
2020년 춤계에서는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에 따라 현장과 랜선 공연이 혼재되었다. 많은 공연이 취소되었고, 지원금을 받은 단체들은 공연을 취소할 수 없는 상황에서 반복되는 연기와 재개를 해가며 숨가쁜 생존의 시대를 달려왔다. 점차 비대면 환경에 적응해야 하는 안무가들과 기관들은 랜선에서 유통 가능한 작품을 창작하는 방향으로 선회하기 시작하였다. 작년 한 해 랜선으로 소통했던 몇몇 인상적인 사례는 다음과 같다.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은 공연의 지형을 흔들었던 시나브로 가슴에의 〈힛 앤 런〉(3. 6., 네이버TV) 무관중 온라인 라이브 공연이었다. 관객이 없는 일방적인 무대 공연을 코로나 이전에는 상상이나 할수 있었던가? 현장 무대를 스크린으로 봐야 했던 첫 경험은 여러 질문을 던졌다. 랜선 공연물은 당연히 신체를 매개로하는 춤의 본원적 교감과 수용방식을 바꾸어 놓으며, 춤 공연의 정체성인 ‘현장성’을 재고하게 하였다. 이는 현장 공간에서 생성되는 운동감각적인 움직임이 스크린이라는 필터를 거쳐 전달됨으로서 마치 곱슬머리가 생머리로 보이는 것 같은 밋밋한 질감으로 온전히 전해지지 않았다. 또한 카메라 장비와 영상감독의 기술에 따라 작품의 의미전달에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다시 말해 랜선 공연은 창작의 지분이 안무가의 것만이 아니라는 것을 일깨운 것이다. 현장과 랜선의 경계에서 혼란스러운 쟁점들이 야기 되었지만, 해답을 찾을 겨를도 없이 쏟아지는 랜선 공연물은 영상기술에 적응하는(창작자와 관객도) 훈련소도 거치지 못한 채 바로 실전에 투입되어 생존해야만 하는 운명을 수용하게 만들었다.
민첩성을 갖춘 몇 명 안무가들은 영상기술 작업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영상 편집분과 현장의 생동감을 유기적으로 결합한 공연물을 창작했다. 국립현대무용단이 제작하고 신창호가 안무한 〈비욘드블랙〉(6. 1~13.)이 무관중 온라인 전용 상영으로 선회한 대표적인 사례였다. 지속되는 팬데믹으로 랜선에서 작품을 보는 방식이 안착될 즈음, LG아트센터가 주관한 램버트 댄스 컴퍼니와 빔 반테키부스의 신작〈내면으로부터〉(9. 24. 5시)는 런던 실황 생중계로 접속하는 경험을 하게 된 사례였다. 대개 신작의 경우는 일정 단체가 자국을 방문해야만 볼 수 있었던 것과는 달리 장소에 구애 없이 신작을 동시간에 볼 수 있다는 흥분감에 유료임에도 불구하고 주저 없이 작품을 감상하게 된 사건이었다.
시대의 흐름을 적극적으로 수용한 이들 민첩한 안무가들은 이어서 댄스필름을 제작하기 시작하였다. 서울세계무용축제에서 정철인이 자신의 기존 레파토리인 〈위버맨쉬〉(11. 7.네이버TV)를 여러 장소로 확장된 공간감으로 접목시켜 댄스필름으로 재창작했던 시도 또한 고무적인 사례였다. 랜선으로 해외 레파토리를 국내에서 재연한 교류방식도 기억에 남는 사건이다. 프랑스 안무가인 제롬벨이 직접 서울에 방문하지 않고 온라인으로 프랑스 현지에서 스코어만 보내고 한국에서 김윤진 안무가가 댄서를 캐스팅하여 진행시킨 〈갈라〉(11. 8. 네이버TV)도 앞으로 유용한 국제교류라 생각된다. 일일이 나열할 수 없이 코로나 이전에는 생각하지도 못했던 창작사례가 작년 한 해 창작방식을 흔들며 안무의 지형을 변화시켰다. 다시 말해 코로나 환경으로 현장무대 대신 유사한 효과를 목적으로 랜선으로 ‘대안적인 현장성’에 적극적인 방향성을 갖추어 변화를 모색한 것이다. 무관중 라이브 송출, 영상편집과 현장무대의 절충적 접목, 유통 가능한 레퍼토리로 재창작된 댄스필름, 전 세계 동시간대 신작 관람, 랜선 안무협업 및 교류 등으로 말이다.
오!마이라이프 무브먼트씨어터 〈동물극장 춤〉 ⓒ오!마이라이프 무브먼트씨어터 |
비대면 상황, 새로운 환경에서 소통되었던 대부분의 사례는 사실 비대면이 강요되는 시대 상황에서 어쩔 수 없는 자구책이자 대안으로 만들어진 것이라면, 오!마이라이프 무브먼트씨어터의 2021년 신작 〈동물극장 춤〉(2. 22. 유튜브)은 그 이전 사례와는 방향성이 사뭇 달라 보인다. 다시 말해 비대면 환경에서 온라인 전용으로 어린이와 청소년을 ‘전략적으로 타켓팅 한 공격적인 시도’라는 점이다.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한 온라인 전용 프로젝트인 〈동물극장〉은 그간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창작되었던 국립현대무용단의 〈루돌프〉와 고블린파티의 〈여우와 돌고래〉 작품과도 다소 차별점이 있다. 무엇보다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춰진 섬세한 이해를 바탕으로 그들만의 놀이 심리를 포착한 점이 그것이다.
〈동물극장 춤〉 작품은 2월 20일부터 일주일간 성동문화재단 유튜브 채널에서 시청하도록 7편의 짧은 이야기로 제작되었다. 7분 내외로 짜여진 각각의 단편은 어른들도 7분 구간을 넘어가면 집중력이 흐려지는 절묘한 시간으로 랜선에 익숙한 어린 세대들의 습성을 잘 이해한 연출이다. 〈동물극장 춤〉은 제목 그대로 동물들과 극장에서 운동하는 소재를 중심으로 놀며 상상하는 공간으로 해석되어 전개된다.
제1편은 육상극장, 제2편은 배드민턴극장, 제3편은 펜싱극장, 제4편은 복싱극장, 제5편은 발레극장. 제6편은 레슬링극장 마지막인 제7편은 물의 극장이다. 각각의 단편을 보면, 뻔한 교훈과 극적 과장이 지양되어 있고 동물친구와 어린이가 실제로 어울리는 친구들과 자연스럽게 오버랩되는 자연스러운 영상 흐름에 빠져들게 된다. 운동 도구만이 아니라 오브제로 사용하는 소품도 아이들의 호기심을 일으킬 여지가 충분하다. 일례로 펜싱극장에서 펜싱검 대신 댄서들은 바게트 빵으로 경기하기도 하고 우산으로 요술봉으로 아이들에게 친숙한 소재로 순식간에 바뀌는 부분은 아이들의 상상력과 호기심을 일으키기에 부족함이 없다. 배드민턴 극장에서는 댄서들이 다양한 극장 공간을 구석구석 돌아다니며 순식간에 놀이공간으로 만들어 낸다. 단체의 이름처럼 모든 곳이 극장이 되고 무대가 되어 일상과 상상이 함께 춤춘다. 물의 극장은 아이들의 놀이 문화를 간파한 신의 한수로 극장무대가 애니메이션필터로 드로잉 하듯 변형된 마무리로 영상물에서만 가능한 신선한 아이디어가 돋보였다.
오!마이라이프 무브먼트씨어터 〈동물극장 춤〉 ⓒ오!마이라이프 무브먼트씨어터 |
〈동물극장〉은 단순히 연극적인 이야기에 드라마틱한 동작만 삽입시킨 작업이 아니다. 복싱극장에서는 복싱장 링에 모리스베자르의 〈볼레로〉를 차용해 반복적이고 전위적인 동작이 순화되어 경기장 링안의 경기를 환희와 열기로 채운다. 레슬링극장에서는 컨텍트 즉흥 메소드가 접목되어 레슬링이 춤의 리듬으로 자연스럽게 소화된다. 배드민턴 극장에서도 공의 속도와 운동감이 리듬을 타며 동작의 경직성을 녹여낸다. 몸과 움직임의 표현이 영화적인 편집으로 속도감이 더해져 극적인 변형과 상상속 이미지로 절묘한 효과를 내며 기존의 동극과의 차이점을 발견하게 된다. 이런 점은 실제로 영상물을 관람한 시청자들도 정확하게 평가하고 있음을 아래 댓글 등을 통해 알 수 있었다.
“기존의 동극하고는 차이가 있네요.” “어서 보러가야겠어요.” (성동구맘카페)
“게시 기간이 길어서 너무 좋아요.” “끝나기 전에 몇 번 더 보러 오겠습니다.”
애들하고 시리즈 동화책 읽은 거 같아요.” “아이들이랑 7편을 순식간에 봤네요.” (유튜브 댓글)
아이들 교육에 누구보다 열성적인 엄마들의 반응을 보니 일정정도 오!마이라이프 무브먼트씨어터의 작업은 성공적이다. 작품의 제작방식만이 아니라 내용도 꽤나 교훈적이다. 예를 들어 육상극장에서는 최원석, 김승록, 임정하, 밝넝쿨이 소외된 동물친구를 배려하며 함께 경주하는 모습이 있다. 느린 나무늘보를 도와 경기에 함께 참여한다. 발레극장에서도 선입견과 편견에 맞서 고릴라가 발레리나가 되는 과정을 응원하는 내용으로 지극히 상식적이나 현실에서는 쉽지 않은 이야기가 주는 호소력이 있다.
오!마이라이프 무브먼트씨어터 〈동물극장 춤〉 ⓒ오!마이라이프 무브먼트씨어터 |
오!마이라이프 무브먼터씨어터의 어린이들을 위한 성공적인 기획은 그간 탄탄한 준비의 결과이다. 단체는 2016년부터 ‘동심으로 바라보는 세계관’ 화두에 집중하여 어린이 청소년을 위한 작업으로 〈공상물리적 춤〉을 만들어 냈다. 이 작품은 작년에는 아시테지 축제에 초청되어 다양한 관객들과 만날 수 있었다. 단체는 성동문화재단 성수아트홀의 상주예술단체에서 안정적인 지원을 받으며 이미 2019년 〈과일·악기·그림책〉으로 아이들의 호기심과 감성을 다시 강타했다. 동 작품은 전회 매진을 기록하며 어린이, 청소년을 위해 만들어진 국내 최초 현대무용 공연으로 그 작품성과 대중성을 인정받았다.
“〈과일·악기·그림책〉 은 동심의 세계, 억지스럽지 않은 구성, 전문성에 기반을 둔 깜찍한 전개, 매끈한 무대 분위기로 아동 뿐 아니라 여러 세대가 함께 즐거운 공연이다. 이 공연에서 더 눈여겨볼 점으로서 〈과일·악기·그림책〉은 아동물이면서 가족물이며, 현대무용 기반의 소품으로서 충실도를 갖춘 눈높이 춤 공연물이다. 더욱이 이 공연물이 구립 단위의 군소 극장에서 개발된 사실은 이제 지역의 극장도 얼마든지 나름 역할을 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김채현)
이와 같이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춘 방향성으로 노력하며 쌓인 경험으로 자신들만의 레파토리를 개발해 가고 있는 오!마이라이프 무브먼터씨어터의 행보는 춤계 쳇바퀴 돌 듯 유사한 창작물과는 달리 사각지대를 흔들며 우리의 관심을 환기시킨다. 코로나 이전부터 아이들은 온라인으로 대화하는 것에 익숙하고 유튜브를 보며 게임으로 일상의 놀이를 하는 영상미디어 세대들이다. 이들이 소통하는 매체에서 쉽게 접속되어 공유되는 춤 모델 개발이 필요한 시기이다. 어린이 청소년 시청자를 타켓팅 하고 그들의 니즈와 소통방식에 눈눞이를 맞춰 전략적으로 접근한 오!마이라이프 무브먼트씨어터의 창작방식이 포스트코로나에도 지속 유통될 가능성으로 그 서막을 열었다는 판단은 누구도 쉽게 부정하기 어려울 것이다. 아울러 성수아트홀의 열려있는 지원과 밝넝쿨과 인정주의 폭넓은 생각이 낳은 온라인 무용 〈동물극장〉이 춤 대상과 유통의 스팩트럼을 넓히는 의미 있는 결과물을 만들어 냈다고 본다.
오!마이라이프 무브먼트씨어터 〈동물극장 춤〉 ⓒ오!마이라이프 무브먼트씨어터 |
물론 〈동물극장〉같은 랜선 공연물은 생동감 있는 현장과는 분명히 다른 경험으로 수용되지만, 시청자의 입장에서 여러 단점을 상쇄할 만한 매력적인 면이 있다. 네이버 TV나 유튜브로 보는 춤 공연이 처음에는 어색하고 집중이 되지 않다가도 점점 혼자 보는 편안함이나 무료이거나 저렴한 비용을 지불하는 경제적 잇점과 극장까지 오고가지 않는데서 오는 시간이용의 효율성 면은 실감할 수 있는 장점이다. 또한 공공성 차원에서도 많은 시민들에게 작품과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손쉽게 제공한다. 실제로 창작산실 한 작품에 시청자 클릭수가 6000명이 넘나드는 상황이다. 단순이 클릭 숫자만으로 춤 대중화에 기여도를 따질 수는 없지만 온라인으로 시청하는 관람방식이 유용한 측면으로 소통되고 있는 현실은 사실이다. 랜선으로 소통하는 시대, 우리는 집에서 편안히 리모컨만 누르면 현장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다양한 첨단 디지털 기술과 융합된 가상 현장 경험을 사이버 공간을 통해 디지털 영상 공연물로 만날 수 있는 시대가 다가왔음을 실감한다.
무용가들이 ‘무대’라는 좁은 파이에서 경쟁하기보다 뉴미디어 방식과 디지털적 발상에 좀 더 적극적으로 대처하며 개척지를 전략적으로 탐색했으면 한다. 랜선으로 매개되어 소통되는 뉴노멀의 현상을 춤계가 보수적인 시각으로 일시적인 혹은 대안적인 방법으로만 차치하며 간과하는 것은 더 이상 가능하지 않다. ‘위기가 기회’이다. 온라인은 춤공연 예술의 정체성을 흔들기도 하지만 다른 세상으로 접속되어 무한한 가능성을 펼칠 수 있는 공간이고 마켓이자 교육의 장임을 우리 모두 사려 깊게 인식할 필요가 있다.
김혜라
춤웹진 편집위원. 춤미학과 비평을 전공하였고 2012년 한국춤비평가협회를 통해 비평가로 등단했다. 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심의전문위원으로 할동하며, 〈춤웹진〉에 정기적으로 평문을 기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