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평
온라인 춤 공연이 올해 3월 이후 사실상 사라지는 것으로 관측된다. 온라인 공연은 코로나19 비상 시기에 응급책으로 동원되었다. 코로나19는 여전히 진행중이고 어쩌다 확산될 조짐도 배제하지 못하는 현상황이다. 그렇긴 해도 온라인 공연이 1년 동안 선보였다가 사라지는 것은 공연장 내의 거리두기 수칙과 일상 방역 생활화 등으로 코로나19에 대처하는 요령을 터득한 결과로 보인다. 다행스런 일이다.
코로나19 팬데믹이라는 전대미문의 재앙이 던진 충격파는 굳이 말할 나위도 없다. 그것은 BC를 넘어 AC(코로나 이후)라는 신종 연대기를 등장시켰다. 그런 만큼 지구상의 누구에게나 안전한 삶을 꿈꾸며 근원적으로는 문명의 윤리로부터 소소하게는 일상 행동거지까지 되돌아보(도록 하)는 계기가 되었다. 공연예술계 또한 예외 없이 타격을 입는 가운데 극복을 위해 몸부림을 쳤다.
코로나 극장 방역 작업 ⓒ뉴스1 |
코로나 팬데믹 속에서 어느 누구 할 것 없이 크고 작은 고통을, 아픔을, 슬픔을 저마다 견뎌내야 했다. 언젠가 회복될지언정 그래도 곤란했던 그 경험들을 고스란히 망각할 수 있을까. 인간이라면 가질 법한 한 줌의 자존감 앞에서 선선히 망각할 것 같지 않다. 재앙과 어려움이 도리어 쇄신의 동기가 된다면... AC 1년 이후 이제는 전화위복(轉禍爲福)에 나서야 할 것이다.
춤계에서 지난해 온라인 춤 공연이 던진 파장은 컸었다. 대면 공연이 핵심인 춤계에서 대면 공연의 대안으로서 온라인 스트리밍은 이럭저럭 춤의 명맥을 이어가는 데 적잖이 이바지하였다. 뜻밖에도, 코로나 팬데믹은 춤 영상의 역할이 기껏해야 단순 기록과 보존에 머문다는 그간의 춤계 인식을 뒤흔들면서 춤의 유통뿐 아니라 작품화에서도 중대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는 인상을 유포하였다. 더 근본적으로는, 오로지 몸 움직임의 직접적인 대면을 춤 공연의 절대적인 요소로 고수하는 시각은 이 지점에서 별 대안을 제시하지도 못한 채 설득력을 잃고 입지마저 줄어들기 마련이었다.
굳이 코로나 팬데믹이 아니더라도 춤 영상에 대해서는 그 전부터 얼마간의 상식이 있어왔었다. 1980년대 이후 댄스필름으로 통칭될 시네댄스, 스크린 댄스, 비디오댄스 같은 장르가 춤 영상에 대해 관심을 촉발하였고, 더 원시적으로는 VHS, DVD, CD 등의 매체로 춤을 접하곤 하였다. 근 10년전에 이르러 유튜브가 관심의 불을 지피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으나, 우리 춤계에서 춤 영상을 창작과 연결짓는 작업은 사실상 전무하다시피 하였다.
ⓒ베를린필하모닉오케스트라 웹사이트 |
이런 터에 코로나 팬데믹은 무엇보다도 아날로그 무대 공연장에서의 실황을 마치 폐쇄회로 영상처럼 단순 스트리밍하는 것이 최소한의 의의를 띨 뿐이라는 사실을 춤계에 새삼 각인시켰다. 무관중과 무수입인 데다가 단순 스트리밍을 하려면 추가 비용마저 더 들여야 하는 상황에서 기왕이면 단순 스트리밍보다는 나은 효과적인 영상 처리를 고려하기 마련이다. 그 대안으로서 먼저 아날로그 무대 공연 자체를 효과적으로 처리하는 영상 기법과 그것을 예술적으로 재가공하는 영상 기법에 대해 현장 무용인들이 관심을 갖고 상상하기 시작한 것으로 관측된다. 여기서 더 나아가 아날로그 무대와는 거리를 둔 독자적인 춤 영상을 위한 예술적 안무 구성과 영상 기법에 대해 호기심을 품는 경우도 생겨났었다.
고무적이었다. 비록 초보적일지라도 이런 측면의 관심도를 불과 2년 전까지만 해도 춤계에서 사실상 보기 어려웠다는 점을 여기서 새삼 환기할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해, 코로나 팬데믹이 춤계에 부정적인 영향만 끼친 것은 아니었던 것이다.
ⓒ국립현대미술관 웹사이트 |
그러나, 앞서 지적한 대로, 온라인 춤 공연이 올해 3월 이후 사실상 사라짐으로써 경계되는 바가 없지 않다. 즉, 아날로그 춤 공연의 ‘단순 스트리밍에 맴돌지 않는’ 공연 전달 영상과 독자적인 ‘댄스 필름’에 대해 움트던 관심이 코로나 팬데믹이 아주 수습되면 무용인들 사이에서 무산되지나 않을지 모르겠다.
현재 시점에서 행해지는 춤 영상은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IT(정보기술) 문명의 산물이다. 이 문명을 구현하는 디지털 기술은 자연의 물리적 구속성부터 초월하며 하나의 대상물을 여러 양상으로 변주해내며 복수의 대상물을 결합 혼성시키며 아날로그적 시공간을 증발시킴으로써 그 자체의 공간을 조성하는 등등의 혁신성을 갖는다. 디지털 기술을 창작 차원에서 적용한 춤에서 흔히 운위되는 가상현실, 가상주체성, 비선형성, 멀티미디어, 유비쿼터스 등은 그것들 각각을 구현해낼 해당 기법을 지칭하는 동시에 아날로그의 춤과는 전혀 이질적인 질서, 어법 그리고 이미지 속에서 진행된다. 상식적으로도 피부로 느끼듯이, 디지털 시대에 세상을 수용하고 판별하며 느끼는 인간의 내적 역능은 역사상 유례 없이 빠르게 재편성되고 있다. 이런 뜻에서, 지금 디지털 문명이 진척되는 추세와 더불어 춤에서 새로운 시공간, 즉 ‘색다른 유형의 극장’이 빠르게 추가·탄생되는 중이라고 말해지는 것이다.
여기서 일부 과제로 예시된 아날로그 춤 공연의 단순 스트리밍에 맴돌지 않는 공연 전달 영상과 독자적인 댄스 필름은 모두 디지털 기술을 적용하는 춤에 해당하며, 더 나아가서는 디지털에 기운 세계관을 반영하는 춤(그리고 춤 영상)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 필요성이 강조되는 이러한 작업을 제대로 시도해보기도 전에 관심이 사그라들 것이라 경계하는 것은 지나친 기우일까.
댄스필름이든 디지털 춤이든 아날로그 춤에 익숙한 기존의 사고방식으로서는 접근하기가 꺼려지는 것은 물론 창작자 자신과 전혀 무관해 보이는 면이 있을 것이고, 어느 일면 이해됨 직한 현상이다. 그래서 강조하자면, 시작이 절반이다. 디지털 문명이 폭포수처럼 밀려든다 해도 그것은 맹종해야 할 그 무엇이 아니다. 정보 기술과 생명 기술이 가져오는 폐해를 경계해야 함은 물론이다. 그렇더라도 디지털 문명이 정당성을 확보해가며 대세를 구가하는 현실에서 그 같은 춤 영상 문화를 여전히 강 건너 불 보듯 할 것인지 자문해보아야 할 것이다.
특히 디지털 문명 속에서 탄생하고 성장하는 신세대 재학생의 비중이 갈수록 높아지는 현행 대학이 춤 영상 및 디지털 춤 관련 교과 개설 개발에 노력을 기울이고 기초 역량부터 쌓아야 할 것이다. 재삼 강조하자면, 이 과제를 등한히 하는 대학은 시대의 온라인에서 탈락할 것은 물론이고 언젠가 직무유기를 논하는 도마에 올려질 가능성마저 없지 않은 것이다.
김채현
춤인문학습원장.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명예교수. <춤웹진> 편집장. 철학과 미학을 전공했고 춤·예술 분야 비평 수백 편과 저서 『춤과 삶의 문화』 『춤, 새로 말한다 새로 만든다』 『뿌리깊은 나무 샘이깊은 물』(1)을 비롯 다수의 논문, 공저, 『춤』 등의 역서 20여권을 발간했다. 지난 30년간 한국의 예술춤과 국내외 축제 현장을 작가주의 시각으로 직접 촬영한 비디오 기록물 수천 편을 소장하고 있으며 한국저작권위원회, 국립극장 자료관, 국립도서관 등에 영상 복제본, 팸플릿 등 일부 자료를 기증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