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평
올해로 20주년을 맞은 춘천공연예술제가 8월 21일 ‘연희컴퍼니 유희’의 〈유희스카〉 공연을 끝으로 막을 내렸다. ‘맞닿음’을 주제로 지난 7월 13일 개막한 올해 축제는 춘천인형극장과 축제극장몸짓, 담작은도서관 등에서 38개 단체, 300여 명의 아티스트들이 참여해 치러졌다.
2002년 춘천무용제로 출범한 이 축제는 2011년 춘천아트페스티벌로, 올해 다시 춘천공연예술제로 명칭이 바뀌었다. 성년이 되면서 예산이 확충되고 축제 프로그램도 다양화되면서 메머드급 공연예술 축제로서의 면모를 갖추었다.
연희컴퍼니 유희 〈유희스카〉 ⓒ우종덕 |
춘천공연예술제는 20주년을 맞은 올해 체계적인 예술가 발굴 및 지원을 위해 3개의 프로그램을 새롭게 편성했다. 공식 초청작품의 성격을 띠는 ‘시그니처’ 부문에 11개 작품을, 기존 작품을 개발하여 선보이는 ‘버전업’ 부문에 5개 작품을, 신작 창작을 지원하는 ‘파인더’ 부문에 3개 작품을 각각 선보였다.
최웅집 축제감독은 “춘천공연예술제는 완성도가 높은 시그니처 작품의 유통을 지원하고 지속적인 창작과 작품 개발의 활로를 개척하는 허브 역할을 하고자 한다. 20년간 공연예술 생태계를 지켜오면서 예술가들을 실질적으로 지원하기 위해 프로그램을 보다 체계화할 계획”이라고 향후 계획을 밝혔다.
개막공연 중 이윤석과 고성오광대 ⓒ우종덕 |
춘천공연예술제는 도네이션 축제로 시작했다. 기존의 방식과는 다른 축제를 만들어보자고 하여 공연기획자, 무대스태프, 아티스트들이 춘천어린이회관 야외무대에서 가진 몇 번의 무대 경험을 공유한 인연으로 의기투합했다. 다양한 인력들이 상호 수평적 관계로 모여 각자의 능력을 내놓아 축제를 펼치게 되었다.
기획자, 공연자, 스태프 등 공연예술축제에 참여하는 필수 인력들은 다양한 형태의 기부를 한다. 축제에 참여하는 기획자에서 관객까지 다양한 참여를 통해 진정한 축제의 주인공이 되고자 하는 꿈은 이 축제가 갖는 존재의 이유이기도 하다. 보다 능동적인 참여를 유도하는 방식으로 인해 참가자들의 만족도는 그 어느 축제보다도 높다. 제작 멤버는 물론이고 공연자들도 한번 출연하게 되면 대부분 지속적으로 참여를 희망한다.
거의 매해 현장에서 지켜보고 진단한 축제의 성공 요인은 아티스트를 배려하는 애정과 정성, 제작진들의 프로페셔널리즘, 질 높은 프로그래밍을 위한 꾸준한 노력, 축제를 통한 공공성의 구현으로 귀결된다.
2020 춘천아트페스티벌, 2021 춘천공연예술제 포스터 |
2021 춘천공연예술제 현장 |
20년 맞은 춘천공연예술제 보다 더 독창적인 프로그래밍 필요
선진 여러 나라에서는 공연예술이나 시각예술, 축제나 마켓, 이벤트 등을 활용해 경쟁력 있는 예술상품으로 만들고 이를 국가나 지역의 이미지 고양으로 활용한다.
핀란드 정부는 7월과 8월에만 16개의 각기 다른 장르의 예술축제를 핀란드 크고 작은 지역에서 개최한다. 도시마다 마을마다 축제의 내용이 차별화 되어 있다. 독일의 바이로이트 축제, 영국의 에든버러 축제, 프랑스의 아비뇽 축제는 작은 지역에서 열린 축제가 그 나라의 랜드마크가 된 사례이다. 이밖에도 내용과 성격, 운용 방식, 개최 장소 등 차별화를 통해 성공적으로 축제를 정착시킨 사례는 적지 않다.
이렇듯 국가 경쟁력 강화라는 차원에서 예술을 정책적으로 활용하는 나라들은 점차 많아지고 있으며 그 운용방법 또한 치밀하고 전략적이다. 정부나 공공재단, 민간 기구, 그리고 예술가들이 직접 나서서 추진하는 이 같은 프로젝트와 축제들은 예술가들의 창작 활동 뿐 아니라 교육 부문, 문화예술을 활용한 주민 복지와의 연계, 문화예술을 이용한 국가 또는 도시 이미지 고양이란 장기적인 정책에 이르기까지 그 범위가 무척 넓고 다양하다.
중앙정부에 의한 이 같은 새로운 예술 지원은 무엇보다 좁게는 지역 예술가들과 지역주민, 넓게는 대한민국 예술가들의 성장과 발전에 촉매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새로운 세기를 맞은 한국의 예술계는 그 어느 때보다 생산성을 높이는 방향으로의 정책개발이 절실히 요구된다.
그런 점에서 20주년을 맞은 춘천공연예술제도 이제 다시 정비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춘천공연예술제가 가질 수 있는 차별성, 독창성을 더 강하게 구현하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여타 공연예술 축제에서 하고 있는 유사한 프로그램은 과감하게 중단할 필요가 있다.
축제를 통한 공공성의 실현 역시 여전히 중요하다. 춘천을 찾는 관광객들과 시민들에게 공연 감상의 기회를 많이 제공하는 것만으로 공공성을 획득할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프랑스의 몽펠리에 댄스페스티벌처럼 지역의 관객들과 예술현장이 양질의 프로그램으로 의미 있는 관계 만들기를 통해 공공성을 실현한다면, 이는 금상첨화일 것이다.
춘천공연예술제의 새로운 미션은 질 높은 예술작품의 서비스를 통해 사회, 경제 등 누군가의 삶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예술적 가치, 공간과 자원을 활용한 창작 작업과 관객 창출을 통해 지역 경제에 기여하는 경제적 가치를 반영한, 축제를 통한 선명한 글로컬리즘(Glocalism)의 구현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고만고만한 축제는 경쟁력이 없다. 이제 성년이 된 춘천공연예술제는 프랑스의 아비뇽축제처럼 지역 이미지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의 국가 이미지를 고양시키는 글로벌 축제로 변신해야 한다. 20년 동안 축적한 현장경험과 프로페셔널리즘으로 무장된 제작진들이 버티고 있으니, 재정적인 뒷받침만 된다면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다.
장광열
1984년부터 공연예술전문지 〈객석〉 기자, 편집장으로 20여 년 활동했다. 춤비평집 『변동과 전환』 , 『당신의 발에 입맞추고 싶습니다』 등의 저서가 있으며, 서울국제즉흥춤축제 예술감독 등을 맡아 춤 현장과 소통하고 있다. 숙명여대 겸임교수로 후학들을 지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