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평
상식외의 외부활동이 확인시킨 해묵은 문제
코로나19 대란을 겪는 과정에서 너나 할 것 없이 공동체 내의 합의와 상식을 공유하고 함께 지켜내는 노력이 소중하다는 것을 새삼 절감하는 중이다. 그런 노력의 일환으로서, 시민들은 자가격리, 사회적 거리두기를 코로나19 퇴치의 근원적 해법으로 받아들여 저마다 근신(謹愼)하기를 감내한다. 이에 대놓고 버젓이 역행하는 일부 집단에 대해선 공동체의 법적 조치가 올곧고도 신속하게 가해져야 할 것이다. 이런 와중에 발생한 국립발레단 단원들의 일탈 행위는 단순한 일탈로 보기에는 심각하며 근본적으로는 공동체 내의 합의와 상식이 합리적으로 통하는 풍토를 또 다시 거론하도록 한다.
국립발레단은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내부적으로 지난 2월 24일 ~ 3월 1일 기간 동안 자가격리 지침을 내린 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수 단원들이 이 기간 중 지침을 어기고 해외여행 혹은 사설학원 특강 활동으로 물의를 빚은 나머지 해고 등 징계 처분을 받았다. 잇따른 보도에 따르면, 문화체육관광부는 국립발레단, 국립오페라단, 국립합창단, 국립현대무용단, 국립국악원, 국악방송 등 산하 17개 기관 및 예술단체 단원들과 소속기관원들의 외부활동에 대해 조사를 진행한다는 소식이다.
이번 국립발레단의 건과는 별개로 오래전부터 국공립 무용단 단원들의 납득하기 어려운 외부활동이 공공연히 소문으로 떠돌아 우려를 부르곤 하였다. 목전의 국립발레단 건에서 보듯이 특히 단원의 사설학원 특강 제공 같은 외부활동은 자가격리라는 명백한 지침을 어겼으므로 이번에 확실하게 여론화될 수 있었다. 따라서 이번 국립발레단 건은 공공무용단 단원들의 납득하기 어려웠던 외부활동들 전체 사례에 비추어 빙산의 일각에 불과할 듯하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위와 같은 조사를 산하 기관 및 단체 전체를 대상으로 진행한다는 소식 또한 이러한 심증을 방증한다.
만시지탄의 감이 크지만, 문화체육관광부는 산하 무용단체 단원들의 외부활동을 조사하고 있고 그 대책도 내놓아야 한다. 문화체육관광부와 산하 무용단체뿐만 아니라 전국의 공립(각 시·도립)무용단체들도 서로 호응해 중지를 모아야 할 것이다.
객관적인 명료한 규정으로 후진성 탈피해야
국립 그리고 전국의 공립 무용단체들은 공공(公共)무용단으로 통칭된다. 공공무용단에서 단원들이 수행하는 것은 공공의 직무 행위이며, 그 외부활동은 응당 내부 규정에 준해 규제될 것이다. 문화체육관광부 산하의 무용 분야 국립 단체들이 소속 단원의 외부활동에 대해 정한 규정은 해당 단체들의 인터넷 사이트에서 얼마간 확인된다.
먼저, 국립무용단이 소속한 국립중앙극장의 규정을 보자. “③일반단원은 ... 극장이 주관하는 공연 이외의 공연에 출연할 경우에는 극장장의 사전 승인을 받아야 한다. ④... 예술감독의 소속단원에 대한 복무관장 사항은 다음 각 호와 같다... 3. 소속단원의 외부활동과 겸직 등에 대한 사전승인.”(국립중앙극장 전속단체운영규정 중 제4장 복무 제20조)
국립발레단은 자체 정관 제5장(조직과 운영)에서 제26조(조직운영: “법인의 조직과 운영에 관한 사항은 직제규정으로 정한다.”)와 제27조(제규정: “법인은 다음 각호의 1에 해당하는 사항에 대한 규정을 제정하거나 개·폐할 때에는 이사회의 의결을 거쳐 문화관광부장관의 승인을 얻어야 한다. 1. 직제, 인사, 보수, 발레단운영 및 회계에 관한 사항.”)의 규정을 두고 있으나, 그 하위 규정이 단체의 사이트에서는 띄지 않는다.
국립현대무용단은 정관에 해당하는 규정 제1호에서 제30조(제규정: “법인은 다음 각 호에 해당하는 사항에 대한 규정을 제정하거나 개·폐할 때에는 이사회의 의결을 거쳐 문화체육관광부장관의 승인을 얻어야 한다. 1. 직제, 인사, 보수, 무용단 운영 및 회계에 관한 사항...”)의 규정을 두며 상주 실기 단원이 없다는 특수성이 있긴 하나, 국립발레단과 마찬가지로 그 하위 규정이 단체의 사이트에서는 띄지 않는다.
세 국립 단체 가운데 단원의 외부활동과 겸직 규정을 인터넷상의 명문으로 확인할 수 있는 곳은 국립무용단이다. 그런데 지난 3월 일부 보도에 따르면, 국립발레단의 경우, 규정상 연속성을 가진 레슨은 안 되지만 단원들의 ‘일회성 특강과 개인 레슨’은 허용되고 예술감독의 허락을 받기만 하면 횟수에는 제한이 없다고 한다. 여기서 보듯 국립발레단에는 외부활동에 대해 정관 외의 세부 규정이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다만 보도에서는 그것이 명문으로 정리된 규정인지 구두로 전달되는 규정인지는 분명치 않으며, 세부 규정의 전모가 어떤지도 확인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속성을 가진 레슨은 안 되고, 일회성인 것은 허용되고, 예술감독의 허락이 있으면 횟수에 제한이 없다’는 식의 내용은 세부 규정이 과연 실한지 되묻게 한다. 이런 실정은 전국의 공립무용단들에서도 유사할 것 같다.
국립무용단의 해당 규정 그리고 보도로 소개된 국립발레단의 일부 규정을 함께 짚어 보면, 무엇보다도 규정에서 느슨하거나 자의적인 내용이 눈에 띈다. 이 같은 수준의 느슨하거나 자의적인 규정으로 단원들의 복무 기강을 잡기에는 (여타의 단원의 근무 성적 평정 같은 규정들이 없지 않아도) 분명히 한계가 있을 듯하다. 이는 우리 공공무용단의 후진적인 일면이 아닌가 한다.
이제 공공무용단들은 단원의 외부활동과 겸직에 대해 보다 세세하며 실효성 있는 규정을 마련해야 할 때이다. 이를 위해, 먼저 공공무용단의 단원들이 해당 분야에서 선별된 전문인이라는 점에 비추어 소속 단원의 재능을 공공 차원에서 사회로 환원해야 한다는 취지를 고려할 수 있다. 그러나 현행의 느슨하거나 자의적인 규정을 갖고 그러한 취지가 달성될 수 있을지 매우 의문스럽다.
말하자면, 단원의 외부활동과 겸직을 무작정 금하자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떳떳한 외부활동과 겸직이 가능한 풍토를 무엇보다 세세한 규정으로 다듬어내야 한다는 것이다. 명확한 규정 없이 다짐만으로 떳떳한 외부활동과 겸직을 보장할 수 있을까? 세세한 규정은 소속 단원의 다종다양한 재능을 공공의 차원에서 사회로 환원한다는 목적의식이 명확해야 할 것은 물론이며, 이에 준해서 사회 환원 내용과 방식이 구체적인 명문으로 명시되어야 하고, 그리고 이러한 개개의 사회 환원 활동을 단체장이 독자적으로 결정·허락하기보다는(공공무용단은 단체장의 사유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단체 내부 구성원의 동의를 전제로 결정·허락하는 과정 역시 명문 규정에 의해 객관성을 갖춰야 할 것이다.
공공무용단 단원들의 외부활동과 겸직에 관한 운영 규정이 이런 전제들을 충족하려면, 아마도 심지어는 몇 페이지에 걸친 분량으로 늘어날지 모르겠다. 그렇다 해서 보험계약서만큼 복잡하지는 않을 것이다.
공공 마인드 회복으로 일탈 예방 필요
2015년 상반기에 한국춤비평가협회는 상당 시일에 걸쳐 국내 공공무용단의 실태를 대대적으로 조사하고 공론화한 바 있다. 전국에 걸쳐 국립·시립·도립 무용단(25개 공공무용단체)을 대상으로 단체 내외부의 무용인 168명으로부터 모은 당시 설문 조사 결과는 인사 관리, 공연 작품 활동, 운영 체제의 세 부문에 걸쳐 실제 현장의 진단과 여론을 여실하게 보여준 것으로 평가받았다.1)
특히 단체 내부 단원들(94명)의 응답 결과로서, 대체로 부정적인 답변을 보인 항목 가운데 ‘예술작품 및 레퍼토리 활동’과 ‘단체의 운영 시스템’이 들어 있은 사실은 지금도 주목을 요하는 점이다. 문항 ‘무용단의 전반적인 운영 시스템에 만족하십니까?’에 대해 전체 94명의 응답 결과는 ‘①매우 그렇다(응답수 4) ②그렇다(16) ③보통이다(38) ④그렇지 않다(28) ⑤매우 그렇지 않다(6)(무응답2)’로 나타났다.
공공무용단에서 운영 시스템은 여러 측면의 조직 운영 방식과 실제 활동을 아우르는 포괄적 용어다. 그러므로 공공무용단의 운영 시스템에 대한 내부의 만족도를 단원들의 외부활동과 겸직에 관한 내부 반응으로 해석할 일은 아니다. 공공무용단의 평상시 운영은 핵심인 작품 활동과 단체 운영의 두 가지로 구성되며, 두 가지는 서로 연동된다. 그런 때문에 2015년도의 해당 설문 조사 문항 결과는 공공무용단이 운영 전반에 걸쳐 개선 과제를 안고 있음을 내부 단원들 선에서 제기한 문제점으로 수용되어야 옳다.
2015년에 있은 이 실태 조사 결과가 공공무용단의 실제 운영에 얼마나 반영되었는지 확인된 바 없지만, 공공무용단에서건 관계 기관에서건 십중팔구 마이동풍으로 넘겨졌을 것 같다. 게다가 혹자는 이 설문 조사 결과를 5년 전 것이라고 치부할지 모르겠다. 그렇다면, 5년 후인 지금 같은 방식으로 설문 조사를 하면 그 결과가 매우 판이할 것이라고 자신할 수 있을까.
앞서의 보도를 다시 보면, 정부는 2018~19년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17개 기관 및 예술단체 단원들과 소속기관원들의 외부활동 조사에 초점을 모으고 있다는 소식이다. 이번 조사에 따라 어떤 대책이 마련될지 두고 볼 일이겠으나, 그것이 외부활동에 국한된 대책이라면 과연 실효성이 있을지 의문부터 든다. 일과성의 조치와는 아예 거리를 두고 대책다운 대책을 진정성 있게 세우기 바란다.
이번 국립발레단 소수 단원의 일탈 현상은 공공무용단 내부의 더 큰 문제점들에서 파생된 곁가지에 불과하다. 대표적인 예로서, 공공무용단에서는 작품 레퍼토리 개발과 선정 과정에 대한 세세한 명문 규정도 없이 작품 레퍼토리 개발과 선정 작업을 사실상 예술감독에게 일임하는 게 관행이다. 이로 인해 공공무용단이 특정 개인의 무용단 같은 사조직처럼 변질될 가능성은 농후하며, 그런 부작용은 근래까지도 더러 목격되곤 하였다. 이런 관행 그리고 예술감독의 허락만 있으면 횟수에 제한 없이 외부활동을 할 수 있는 관행은 결코 무관한 것이 아니다.
국립발레단 소수 단원들의 일탈은 엄중한 시기에마저 성인으로서, 그리고 더욱이 존중 받는 예술인으로서 공동체 내의 합의와 상식을 아예 무시하거나 가볍게 여긴 탓이 크다. 때문에 사소한 실수나 일탈로 여길 수 없고, 공동체가 그들을 변호할 명분은 희박하다. 이제는 그러한 일탈 현상을 공공무용단 내에서 잠재해온 어떤 경향성이 표출된 것으로 다시 새겨볼 필요가 있다. 국내 공공무용단이 직면하는 문제점의 상당 부분은 아무튼 공사분별(公私分別)이 불투명한 내부 체질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판단된다. 공공무용단에서 공공 마인드 회복이 강조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국립뿐만 아니라 공공무용단은 이번 일을 교훈 삼아 공사분별이 명확한 방향으로 내부 체제를 정비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공공무용단은 지금이라도 특히 작품 레퍼토리 개발과 내부 운영에 관한 세세한 명문 규정부터 마련하는 작업에 나서야 한다. 규정이 능사가 아니로되 공공 기관에서 ‘제대로 된 규정’은 기본이다. 차제에 문화체육관광부도 이런 면에서 국립 단체들에 대한 감독권 행사를 적극 고려할 필요가 있다. 나의 오랜 관찰에 비추어, 모호한 규정으로써 공공무용단의 발전 동력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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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러한 실태 조사는 사실상 전무후무하였던 것으로 사료된다. 자세한 내용은 다음 참조: <춤웹진>, 2015. 05. ~ 10.. http://www.koreadance.kr/board/board_view.php?view_id=83&board_name=plan
김채현
춤인문학습원장.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명예교수. <춤웹진> 편집장. 철학과 미학을 전공했고 춤·예술 분야 비평 수백 편과 저서 『춤과 삶의 문화』, 『춤, 새로 말한다 새로 만든다』를 비롯 다수의 논문, 『춤』 등의 역서 20여권을 발간했다. 지난 30년간 한국의 예술춤과 국내외 축제 현장을 작가주의 시각으로 직접 촬영한 비디오 기록물 수천 편을 소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