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평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이하 문예위)는 무용 연극계에서 가장 대관 경쟁이 치열한 아르코예술극장 대소극장과 대학로예술극장 대소극장의 2020년도 대관 심의 결과를 2019년 12월 31일에 발표했다. 신청자들에게 사업 개시 연도 하루 전에 대관이 되었는지 안 되었는지를 알게 한 셈이다.
4개 공공 극장의 1,464일 대관일정을 해당 연도 한 달 반전인 11월 17일에 마감했고, 대관 심사를 12월 17일에 시행했으니 접수 후 심사까지 꼬박 30일이 걸린 셈이다. 그리고 심의 후 발표까지 2주일이 또 걸렸다.
이들 4개 극장은 한국의 문화예술 발전을 위한 지원정책을 수행하는 중심 기관인 문예위에서 운영하는 공연장이다. 공공 극장이 대관 접수도 늦게 받고, 접수 마감 후 한 달이 넘어서야 심의를 시작하고, 가뜩이나 늦은 결과 발표를 접수 후 45일이 지나서야 마무리하는 행정 수순을 밟은 셈이다. 공공 극장의 대관 과정을 이렇게 늦장 운용하는 곳은 세계 그 어느 곳에서도 찾아볼 수 없을 것이다.
이 같은 운영으로 문예위는 설립 목표로 내세운 대한민국의 문화예술을 과연 진흥할 수 있을까? 늦장 행정으로 공연예술의 발전을 저해시키는 악영향을 자초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 행정편의주의를 위해 예술가들을 볼모로 한 갑질 문화로 자칫 오인할 수도 있다.
실제로 춤계 현장에서는 아르코예술극장의 늦장 심의, 대관심의 과정에서의 미숙한 운용으로 인한 폐해가 속속 드러나고 있다.
4월에 시작하는 국제무용축제는 대관 심의 결과 발표가 늦어지면서 초청장까지 보낸 해외 무용가에게 대한민국 공공 극장의 대관 결정지연을 사유로 초청 불가를 알려야 했고, 다른 해외 초청 안무가는 해당 국가에서 지원신청 할 기간을 놓치게 되면서 결국 축제 측에서 항공료를 부담, 제작비 상승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1주일 동안 계속되는 국제 축제의 대관 결정 여부를 4개월 전에 통보받는 단체가 효율적인 업무를 수행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외국의 직업무용단에서 활동하는 대한민국의 무용수들을 초청해 고국 무대에서 공연기회를 마련해주는, 17회째를 맞은 공연은 올해 아르코극장의 대관 심의에서 탈락했다. 2001년 이래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 대관 심의에서 한 번도 탈락한 적이 없었고, 프리랜서가 아닌 외국의 메이저 직업 무용단에서 활동하는 전문 무용수들이 소속 단체의 파트너와 함께 내한하는 공연이라 시즌이 끝나는 7월과 8월이 아니면 어려운 데다, 지역 공연과 연계되는 국제 행사라 미리 초청장 발송이 이루어질 수밖에 없는 공연이다. 전천후 외교관이나 다름없이 한국의 국가 이미지를 높이는 해외 무용수들을 위한 공연이라 공연장 선택에도 한계가 있다. 더구나 이 공연은 문예위의 2019년 현장 평가에서 A 등급을 받았다.
심의위원들은 사업의 공공성과 차별성, 객석 점유율, 사업 평가결과 등 여러 부문에서 평균점을 훨씬 넘는 공연을 단순히 대관일 중복이란 이유로 조정과정도 거치지 않고 심의 당일 날 바로 탈락시켰다. 이 공연이 신청한 비슷한 기간에 대관 결정이 난 공연은 전년도 행사명에 페스티벌이란 이름을 붙이면서 대관 일자가 오히려 늘어났다.
필자가 대관심의위원으로 참여했던 한 공공 극장의 경우 신청 사업이 대관대상에 적합하다고 판단되었으나 대관일이 타 단체와 중복되었을 때는 심의위원들의 합의 로 행정 담당자가 비슷한 기간에 있는 단체와 협의해 공연일정을 조율하는 단계를 거치는 조건부 대관을 하도록 하고 있다. 조율이 안 되면 결정된 우선순위에 따라 배정된다.
공연장을 통해 예술지원의 효율성을 높이고자 하는 행정편의주의가 아닌, 서비스 행정이 동반된 효율적인 극장 운영의 사례이다. 대관 신청일이 중복되었다고 요건을 갖춘 공연들을 무조건 탈락시키는 것은 심의의 편의성, 행정의 편의성을 위한 무책임한 처사이다.
문예위는 적어도 차기 연도의 대관 결정을 전년도 상반기에는, 국제 행사의 경우는 1년 전에는 결정되도록 그 운영 방식을 바꾸어야 한다. 문예위는 돈을 지원하는 것만이 지원정책의 전부가 아님을 분명히 인지할 필요가 있다.
문예위는 아르코예술극장을 비롯한 4개 공공 극장의 2020년 대관심의 결과를 하루 전인 2019년 12월 31일에 발표했다. 사진은 올해 대관 심사에서 탈락한 〈한국을 빛내는 해외무용스타 초청공연〉. 올해 17회째를 맞고 한 번도 아르코예술극장 대관에서 탈락한 적이 없는, 2019년도 문예위 현장평가에서 A등급을 받은 이 공연은 타 공연과 대관일정이 중복되었다는 이유로 단 한 차례의 조율과정도 없이 심사 당일 바로 탈락했다. ⓒ박상윤 |
한국춤비평가협회는 2019 몬도가네상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무용부문 지원심의 운영‘에 수여했다.
‘출발부터 어설펐던 심의위원 풀 제도, 심의위원 최종 선정권을 가진 문화예술위원의 양식 부재, 해당 분야에 대한 전문성, 객관성, 공정성이 결핍된 부적절한 심의위원들의 다수 포진, 그리고 이러한 제반 문제점을 누구보다 잘 알아야 하면서도 모르쇠로 시종일관한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태도로 인해 그 어느 해보다도 부조리하고 편파적인 심의가 자행되어 춤 생태계에 심대한 악영향을 끼침’이 그 선정이유였다.
문예위의 지원 심의위원 선정 문제는 어제오늘 제기되었던 것이 아니다. 실제로 완벽한 심의위원 구성은 말처럼 그리 쉬운 것이 아닐 수 있다.
문예위의 지원사업 심의는 콩쿠르 심사와는 다르다. 출전한 무용수들의 기량과 예술성을 같은 자리에서 동일한 사람들이 평가하는 심사위원과는 다르다는 것이다. 지원대상이 다양하고 사안에 따라, 해당 사업의 내용에 따라, 그 분야를 소상히 알고 있는 전문성을 갖춘 심의위원들을 절실히 필요로 한다.
지난해 가장 문제가 되었던 무용부문 다년간지원사업의 경우 심의위원들이 신청한 단체들의 면면들, 곧 작품 경향, 안무가의 역량, 단원들의 수준, 공연했던 작품의 예술성, 단체의 제작과 운영 시스템, 국내외 춤시장에서의 경쟁력 등에 대해 현장에서 지속적으로 지켜 본 사람들이었는지, 이런 기준들에 의거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전문성을 갖춘 사람들이었는지 의구심이 들었다. 사업의 내용상 단순히 제출한 서류에 의거 해 판단할 수 그런 카테고리의 사업이 아니기 때문이다. 춤 현장에서는 선임된 위원 중 적지 않은 심의위원들이 그 같은 내용을 파악하고 있을 정도의 전문성을 갖췄다고 보기는 힘들었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심의위원 풀 제도는 명분은 좋지만, 문제는 제비뽑기로 선임된 심의위원 후보가 해당 분야의 전문성이 없다면, 해당 사업에 응모한 단체를 심사하기에는 부적격자라면, 이를 적임자로 바꾸어 지원사업의 효율성을 높일 수 있도록 위원들의 선임을 조율하는 시스템이 제대로 가동하고 있는가이다. 그 컨트롤 타워가 문예위의 무용위원인지? 아님 해당 부서의 담당자인지? 아님 지원사업을 총괄하는 공연예술지원본부장인지? 아님 기관의 운영을 책임지고 있는 문예위의 위원장인지? 명백하게 밝혀질 필요가 있다.
그래야 선정된 심의위원들이 자신의 적격성을 스스로 진단한 후 권한에 따른 책임을 느끼고 정직하게 심의에 임할 수 있다.
2019년 다년간지원사업에서 탈락한 서울발레시어터의 공연광경. 와이즈발레단 등 오래 동안 전문 직업무용단 체제로 운영되면서 우수 레퍼토리를 확보한 단체들이 다수 탈락하고 창단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역량이 제대로 검증되지 않은, 전문 무용단 체제로 운영되지 않는 단체들이 대거 선정된 다년간지원사업은 심의위원의 전문성 문제가 현장에서 가장 강하게 불거져 나왔다. 문예위는 무용부문 심의위원 파행운영으로 결과적으로 한국 춤 계의 경쟁력을 저하를 초래했다는 이유로 2019 한국춤비평가협회 몬도가네상을 수상하는 불명예를 기록했다. ⓒ서울발레시어터 |
한국문화예술위원회는 공연예술의 카테고리 아래 음악, 오페라, 전통예술, 연극, 무용을 함께 심의하는 현행 운영제도부터 바꾸어야 한다.
1973년 한국문화예술진흥원이 설립되고 2005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로 그 명칭이 바뀐 지 50여 년이 흐르고 있는 지금까지도 무용은 문학과 시각예술 장르처럼 온전히 장르가 분리되지 않은 채 음악, 연극, 전통예술과 함께 공연예술 부문 속에서 심의되고 있다.
다시 말해 국제교류, 공연예술중장기창작지원, 청년예술가지원, 창작실험활동지원, 대한민국공연예술제지원, 공연장대관료지원, 공연예술특성화극장운영지원, 공연예술비평연구활성화지원 등 공연예술 부문에 공통으로 묶어 놓은 이들 사업을 창작산실 처럼 온전히 무용예술 부문으로 독립시켜 운영할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한국 춤계는 지난 50여 년 전과는 그 여건이 무척 달라졌다. 무용사회의 변화된 환경과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채 수십 년째 예전처럼 적용되고 있는 그 틀은 바뀌어야 한다. 연극과 음악 전통예술과 함께 적용해야 할 게 아니라 변화된 여건을 고려한 차별화된 지원사업 개발과 운영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절대로 반복해서는 안 되는 사안들을 정리하면서 이런 요인들이 어디서부터 파생된 것일까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돈을 지원하는 기관에서 직접 공연장까지 운용하는 실상, 예술가들이 문예위로부터 지원받은 지원금을 다시 문예위에서 운영하는 극장의 대관료와 기자재 사용료, 스태프들의 사례비로 다시 환급해야 하는 현행 제도, 지원사업 담당 행정가가 전문 경영가들의 영역인 극장 운영을 콘트롤하는 구조적인 문제점이 불거져 나오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한국 문화예술 발전을 위해 설립되고 운영되고 있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잘못된 사업 운영과 경직된 행정이, 적폐 청산을 부르짖으며 출범한 현 정부가 오히려 적폐를 양산하면서 한국 공연예술계의 발전을 저해시키고 있는 것은 아닌지 심각하게 다시 돌아볼 필요가 있다.
장광열
1984년부터 공연예술전문지 〈객석〉 기자, 편집장으로 20여 년 활동했다. 춤비평집 『변동과 전환』 , 『당신의 발에 입맞추고 싶습니다』 등의 저서가 있으며, 서울국제즉흥춤축제 예술감독 등을 맡아 춤 현장과 소통하고 있다. 한예종·숙명여대 겸임교수로 후학들을 지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