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평
안무가들에게 자국의 무용수들이 아닌 다른 나라 무용수들과의 국제 협업 작업은 설레임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더구나 그 협업의 대상이 개인 무용단, 프로젝트 무용단이 아니라 일정한 수의 전문 무용수들과 제작 스태프 그리고 전속 극장을 보유하고 있는 안정된 공공 무용단, 한 나라를 대표하는 ‘국립’ 단체라면 창작 작업에 대한 의욕이 배가될 수 있으며, 때론 그 의욕이 넘쳐 과욕을 부리게 될 수도 있다.
우리는 그런 사례를 대한민국의 국립현대무용단과 국립무용단에서 초청한 외국 국적을 가진 객원 안무가들의 작업에서 이미 심심찮게 목격했었다.
유럽의 정상급 안무가들에게도 많은 무용수와의 작업 기회는 그리 흔치 않다. 비디오 아티스트로 출발, 안무가가 된 조세 몽탈보(Jose Montalvo)가 대한민국 국립무용단과 협업작업을 한다고 했을 때도 평자에게는 이 같은 우려의 시선이 있었다.
그러나 조세 몽탈보는 〈시간의 나이〉를 통해 자신의 전매특허인 비디오를 활용한 비주얼 만들기와 안무가로서 자신의 약점이기도 한 독창적인 움직임 창출에 대한 부담감을 대한민국의 전통 춤 자산에서 찾아내 융합하는 영리함을 보여주었다. 음악적인 구성에서도 그는 대한민국의 전통악기에 의해 연주된 음악과 많은 안무가들이 차용했던 작곡가의 음악을 병치, 어느 한쪽으로의 쏠림을 차단했다.
50명이 넘는 무용수들이 국립무용단에 상주하고 있지만 23명을 선택했고, 대한민국의 전통적인 문화자산과 국립무용단 무용수들이 무대 위에서 잘 구현할 수 있는 것들을 추려냈다. 이 같은 제작 콘셉트는 〈시간의 나이〉가 아주 빼어나지는 않지만, 세계 춤 시장에서 하나의 ‘상품’으로서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요인이 되었다.
국립무용단 〈시간의 나이〉 ⓒ국립극장 |
이 작품은 2016년 3월 초연 이래 프랑스와 한국에서 수차례 공연되었고 평자 역시 공연이 되풀이 될 때마다 조금씩 그 완성도가 높아지는, 재공연을 통해 레퍼토리로서의 경쟁력을 확보해가는 과정을 지켜보는 즐거움을 누리고 있다.
국립극장 초연, 프랑스 샤요 국립극장, 크레테유 예술의 집 공연에 이어 2017년 다시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무대에 오른 공연을 보고 평자는 당시 이렇게 평했었다.
“국립무용단은 국가 간 협업을 통한 새로운 스타일의 레퍼토리를 확보했다. 〈시간의 나이〉는 모두 3개의 장 속에 한국 전통춤의 해체와 영상과 춤의 융합, 음악과 놀이적인 요소의 교묘한 배합, 그리고 인류의 보편적인 감성과 휴머니티를 터치하고 있고, 이런 모든 것들이 국립무용단 무용수들의 몸에 점점 더 체화되고 있었다. 다음 과제는 축적된 레퍼토리를 어떻게 활용하는가가 될 것이다. (중략) 안무가의 유명세를 등에 업고 전략적으로 해외 무대로 진출해야 한다. ‘국립’ 단체에 걸 맞는 극장과 양질의 관객이 기다리는 유명 페스티벌이 공략지가 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국민들의 향유 기회 확대를 위한 공공적인 노력도 함께 이어져야 한다. 훌륭한 작품을 서울을 벗어나 더 많은 도시에서 더 많은 국민들이 감상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2018-19 레퍼토리 시즌에 국립무용단이 선택한 이번 〈시간의 나이〉(3월 15-17일 LG아트센터, 평자 16일 관람)는 그동안 국내에 선보였던 공연 중에서 완성도가 가장 높았다. 그 요인은 무엇보다 달라진 공연장 때문이었다. 국립극장 해오름 극장의 높고 넓은 무대, 객석과 무대가 너무 먼데서 오는 춤 공연 관람의 걸림돌을 LG아트센터는 상당 부분 커버해주고 있었다. 이 달라진 공간은 무대 위 출연자들의 춤, 연기를 동반한 움직임과 이를 변용해 무대 위 스크린에 투사하는, 영상과의 합일이 만들어 내는 시너지를 관객들로 하여금 오롯이 한 눈에 담아낼 수 있게 했다.
관객들은 악가무와 영상이 교묘하게 어우러진, 춤이 영상에 의해 전통과 현대적인 감각으로 해체되고, 무용수들의 추임새와 인성(人聲)까지도 동서양의 음악과 조합되는, 의상과 영상에 의한 시각적 미장센을 한껏 즐겼다. 이 모든 것들의 조합을 통한 환경 파괴와 인간성 상실에 대한, 전 세계를 향한 안무가의 메시지는 덤으로 주어진 선물이다.
극장 공간의 달라진 환경은 출연자들로 하여금 작품에 대한 집중력을 배가시켜 앙상블의 밀도를 높였고 이로 인한 관객들의 몰입도 역시 덩달아 상승했다. 관객과 연희자들이 소통을 넘어 공감으로까지 이어지는 드문 체험은 그대로 작품의 예술적 완성도를 높였다.
컨템포러리댄스에서 관객들이 안무가의 의도를 온전히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시간의 나이〉는 무대 위에서 표출되는 여러 가지 장면들, 안무가가 펼쳐놓은 각각의 이미지들이 비교적 선명하다. 대한민국의 관객들이나 외국의 관객들이 보았을 때 적당히 이국적이고 생소하지 않다.
아쉬움도 있다. 몇몇 장면에서 안무가의 전작인 〈파라다이스〉에서 사용된 유사한 패턴의 차용, 무용예술만이 구현할 수 있는 강한 뇌리에 남을 만한 파격적인 장면의 부재, 전통의 해체와 현대적인 것과의 버무림에서 느껴지는 가벼움이 그것이다.
예술에서 공간감은 중요한 작품의 핵심이다. 영화의 줌인과 줌 아웃, 가까이서 찍은 사진과 멀리서 찍은 사진이 상당히 다른 뉘앙스와 감정을 전달하는 것과 같은 논리이다. 공연예술도 예외가 아니다.
〈시간의 나이〉가 어느 공간에서 공연되어지느냐는, 극장예술 작품으로서의 경쟁력과 밀접하게 연결된다는 점에서, 제작 파트너인 대한민국의 국립극장과 프랑스 샤요 국립극장은 향후 레퍼토리 운용과정에서 이를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
대한민국 춤계는 지난해 서울문화재단의 지원금이 늦게 발표되면서 공연장을 구하지 못한 안무가들이 원래 생각했던 작품 제작의 콘셉트와는 동 떨어진 갤러리로 너도나도 몰려들었고 결국 난삽한 작품을 양산한 현장을 연일 지켜보아야 하는 아픔을 겪었다.
국립무용단의 〈시간의 나이〉 LG아트센터 공연은 춤 작품 제작에서 공연장의 여건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장광열
1984년부터 공연예술전문지 〈객석〉 기자, 편집장으로 20여 년 활동했다. 춤비평집 『변동과 전환』 , 『당신의 발에 입맞추고 싶습니다』 등의 저서가 있으며, 서울국제즉흥춤축제 예술감독 등을 맡아 춤 현장과 소통하고 있다. 한예종·숙명여대 겸임교수로 후학들을 지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