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평
언뜻언뜻 불편한 소리들이 들려온 건 여름을 지나서부터였나 보다(8월: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임기만료된 무용, 음악, 문화일반에 새로운 ‘문예위 비상임위원’ 위촉). 워낙 추진력이 좋다고 소문이 난 사람이 무용위원으로 위촉되었고, 사회적 법적 물의를 일으키고 몇 년간 조용했던 차라 새로운 마음으로 새로운 의욕을 잘 낸다면 그것도 괜찮을 것이라 낙관했었다.
그런데 들려오는 소리들이 좀 실망스러웠다. 들려오는 첫 소식들은 절차와 예의를 무시한 ‘행동’들, 자리에 걸맞지 않는 사실 납득하기 어려운 ‘태도’들 때문이었다. 왜? 왜 무용위원이 완장을 찬 자나 할 수 있을 법한 매우 구시대적인 말투와 행동을 할까? 더군다나 상당히 합리적이고 업무적인 판단력이 뛰어난 정병국 문예위원장이 8기 위원장으로 호선되어, 문예진흥기금 확충과 기금의 효율적 배분·활용에 신경을 쓰겠다고 했고, 이는 블랙리스트 사건의 후속 조치 중 가장 중요하게 권고되었던 사항인 문예진흥기금 재원의 안정화와 맥락이 닿는 부분이기에 그 법제화 과정을 찬찬히 밟아가는 것을 지켜보는 것으로 시간이 흘러가는 중에 드러난 상식을 엎는 행동과 태도였기 때문이다.
문예진흥기금 심의와 관련된 문제는 작년에 문예위와 서울문화재단 모두에서 문제가 있었기에 사실 성기숙 위원이 빚은 이 사태가 심의와 연결되는 것은 아닌지 무용 현장에서는 조금 더 예민하게 받아들여진다. 심의의 문제 역시 현장에서는 작년의 혼란을 겨우 조금씩 수습하고 위로하며 힘을 차려가는 중이었기 때문이다.
들려오는 이야기들이 좀 갑작스러웠기 때문에, 또 문예위의 일이라면 정책이나 심의와 관련된 것이기에, 갑자기 장관에 의해 위촉된 비상임위원이 내부에서 분란을 일으키면서 납득하기 어려운 제안을 하는 이 사태가 무슨 맥락일까를 생각하게 만들었다. 유인촌 장관은 정병국 위원장을 추천한 추천위원이었고, 원하는 대로 정병국 위원장이 호선되어 사태를 잘 봉합해나가고 있었는데 그게 아니었단 말인가. 블랙리스트 사태 이후 아직도 수많은 후유증에 흔들리고 있는 문예위(아르코) 전체의 아픔을 알기에 현장에선 조심스럽게 그나마 지켜볼 수 있는 마음을 겨우 추스르며 지내고 있던 터라 불쑥 새로 위촉된 비상임무용위원의 파행적 행태는 이해하기 어려웠다.
지금에서 정리해 보면 성기숙 위원의 초반 행태의 문제는 개인의 성향에서 비롯된 개인적 허물인 것으로 보이고(그래서 오히려 정책 추진자로서 정책의 신뢰를 손상시키고 손해를 끼칠 정도의), 거기에 그를 그렇게 행동하도록 과하게 그를 추동한 무엇인가가 있었기 때문일 것으로 보인다. 이 두 가지의 과함이 합쳐져 그나마 평정을 찾아가던 현장에 또 불을 지핀 것이다. 완장을 채워준 자가 의도하지 않았는데도 스스로 완장을 부여받았다고 느끼며 착각 속에 오버하며 행동하는 개인적 허물은 여기선 논외로 하겠다. 그렇다면 성 비상임위원을 과하게 흥분시키고 열정을 작동하게 한 트리거는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어느 정도 공적인 영역의 일일 테고 그 배경을 살피는 것은 이 사태를 올바로 보는 데 필요한 일일 것이다.
10월 6일 비상임위원의 심의 참여가 토론에 의해 가결되었다고 한다. 3인 이상의 발의에 의해 심의 참여가 발의되었는데, 그 3인이 8월에 위촉된 3명의 무용, 음악, 문화일반 위원이었다고 한다. 다분히 계획적이고 준비된 행보로 보인다. 찬반 투표까지 않고 토론으로 가결된 것을 문예위의 토론의 힘이라고 봐야 할지는 잘 모르겠다. 어쨌든 이전까지는 위원이 심의위원을 추천하는 것에 그쳤다면 이번 비상임위원의 심의 참여는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시행하기로 되어 있는 전담심의제의 구체적 추진 과정으로 보인다. 전담심의제가 제안된 명목적 배경에 대해서는 충분히 이해하고 있으나 문제는 전담심의제 자체가 아니라 전담심의위원에 대한 견제책과 감사 역할이 갖춰지지 않고 힘이 집중된 채로 실행했을 경우 불을 보듯 뻔한 결과가 예측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가장 기본적인 힘의 분배와 균형, 책임의 분산 등을 기준으로 정책 시행 전 반복적 보완 작업을 해야 하고 이를 위해 현장이나 전문가들과의 소통이 필수적임에도 그런 기본적 과정이 안 지켜졌고, 결과적으로 매우 결함이 있는 정책이 시행되게 되었다는 것이 사실은 믿기질 않는다.
이에 대한 현장의 반응도 마찬가지다. 10월 21일 (사)한국연극협회에서는 공정성의 저해 및 이해충돌, 책임의 분산, 현장 예술인과의 소통 부족을 지적하며 투명하고 공정한 문화예술지원 체계의 존속을 우려하는 호소문을 냈으나, 10월 25일 전체회의에서 무용(성기숙), 음악(왕치선), 다원(배은주) 장르에서 3명의 비상임위원이 전담심의제에 직접 참여하는 것이 최종 확정되었고, 이에 11월 4일 성기숙 위원이 개인의 성정을 바탕으로 창작주체, 창작산실, 아르코 대관심의 등 모든 심사에 들어가겠다고 통보하여 또 한번 파문을 일으켰다고 한다. 그리고 11월 14일 이 사태에 대해 한국문화예술위원회노동조합이 성명서를 발표하였다.
오랜 시간 춤계에서 살아온 나로서는 이 사태가 첫째, 한국문화예술위 무용위원 인선과 위촉의 실패에서 비롯되었다고 본다. 성 위원 개인은 아직 무용계 전체 정책을 짊어질 만큼 성숙하지는 못한 것 같다. 추진력이 있고 열정은 있지만, 그리고 힘을 원하고 그 힘을 얻기 위해 명목적인 이유와 배경은 잘 갖추는 편이지만 그것을 이루는 보이지 않는 여러 요인들을 ‘보는 능력’은 갖추지 못하였다. 한 20년 전에 태어났어도 많은 일을 이루었을텐데, 지금은 세상이 많이 변하였다. 그녀의 열정이 지금 우리 모두의 시계 바늘을 되돌리는 것이 허용될 수는 없다. 이번 사태에서도 처음 느낀 건, 아 어디서 많이 본 건데 하는 느낌이었다. 그가 스승 세대에 빙의되었다면 빨리 현실 감각을 찾길 바란다.
두 번째는 문화부의 정책 추진 과정이다. 이는 앞서 얘기한 바와 같다. 의미있는 정책도 실현이라는 과정 앞에서 유연성 있고 여유있게, 충분한 과정을 통해 모양을 갖춰나가야 한다. 그게 전문가의 역량이다. 가진 게 추진력뿐인 사람이나 나이만 젊은 사람이 젊은 생각을 가졌을 거라고 생각하며 인선하는 것에 결과를 의지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렇게 생각한 행정인이 있다면 그의 생각은 분명 잘못되었다. 그도 역시 현장 감각이 없기에 이런 식으로 문제가 풀리리라 보는 것 같다. 혹은 밝히지 못하는 다른 욕망이 있어 보이기도 한다. 이 두 가지의 오류가 만나 근래에 보기 드문 이상한 내용의 이상한 소식을 전한 것이다.
그리고 11월 15일 즈음 많은 일이 있었다. 이 사태를 의식한 문화부장관과 문예위원회 회의가 있었고, 문화연대 공동성명과 개인 및 단체 연명 신청접수 및 공론화를 위한 #아르코심의공정성보장 해시태그 운동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문예위 홈페이지에 문예진흥기금 정시공모 전담심의위원 명단이 공개되었다.
(https://www.arko.or.kr/board/view/4013?bid=463&page=&cid=1808791)
이 사태는 분명히 아직 진행 중이다. 개인적 허물이 조금의 차질을 빚는 건 충분히 이해될 수 있는 일이나, 그가 온통 혼돈 상태에서 전담심의위원을 협의없이 구성하고 그것이 발표되었을 때 또 다시 몇 년 전 조기숙 위원 시기에 빚어진 트라우마를 떠올리게 하는 ‘측근들의 모임’으로 국한하여 신선한 인물들을 구성한 것이 드러났을 때, 더 이상 개인적 허물의 문제가 아닌 공공성과 공정성을 심하게 훼손할 우려를 키우는 ‘공적인 사안’이 된다.
이번엔 그때와 상황이 다르다. 그때는 경험도 능력도 없는 심의위원이 문제였지만, 지금의 전담심의위원들은 어떤 지점에서 너무 능력이 뛰어난 것이 문제를 일으킬 것 같다. 그들이 선임된 11월 15일 오래 전에 벌써 그들의 움직임이 일으킨 파문이 멀리서도 보인다. 그들은 공개되기도 전에 이미 심의에서의 힘을 주변에 과시했고, 그 과시는 곧 춤계에서 여러 가지 모습으로 천변만화한다. 내년도의 심의 결과가 심히 우려된다. 두 오류의 주체들이 이런 사태까지 전담하여 책임질 수 있는지 잘 모르겠다.
문화연대가 잠시 보류하고 있는 공동성명과 해시태그 운동에 성 위원이 면담을 요청했으나 오늘까지 추진된 무엇을 들은 바는 없다. 그리고 오늘 11월 30일 2시에 ‘윤석열 퇴진 촉구 - 문화예술계 시국선언 및 예술행동을 위한 공론’장이 열렸다. 이미 대학의 모든 구성원들과 종교계 등 시국선언이 가파르게 줄을 잇고 있다. 아마 과거의 감각으로 무용계를 바라보고, 문화예술계를 바라봐서 잘못 이해하고 있다면 안팎을 살펴 빨리 오류를 살피고 수정해야 할 것이다. 일부 편향된 소수가 그런 생각을 갖고 있을 뿐이라고 위로한다면 스스로를 가둘 뿐이다. 공정성을, 공공성을 해칠 뿐이다.
이지현
1999년 춤전문지의 공모를 통해 등단했다. 2011년 춤비평가협회 회원이 되었으며, 비평집 『춤에 대하여 Ⅰ, Ⅱ』를 출간했다. 현장 춤비평가로서 왕성한 비평작업과 함께 한예종 무용원 강사를 역임하고, 현재 아르코극장 운영위원과 국립현대무용단 이사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