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평
올해 서울무용제 경연대상부문 참가 4작품을 모두 관람하였고, 올해로 서울무용제는 45회를 맞이하였다. 올해 서울무용제 경연 참가작들을 기억하며 글쓴이는 묻는다. 서울무용제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서울무용제 포스터 ⓒ대한무용협회 |
서울무용제는 원래 1979년 정부(문예진흥원;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전신)가 무용 창작 진흥을 위해 창설한 무용제이고, 그 창설 명칭은 대한민국무용제였다. 1980년대에 말썽이 잦았던 와중에서도 국내의 무용 창작을 자극한 것으로 인식되는 대한민국무용제는 1989년 한국무용협회(대한무용협회의 전신)로 운영권이 이관되고 1990년에 서울무용제로 이름을 바꾸었다. 1980년대의 대한민국무용제와 그후의 서울무용제는 이름만 달라진 것이 아니라 그 위상도 달라졌다. 무용 창작 진흥을 위해 창설한 무용제이니 1980년대 이후 시간이 흘러가며 국내 춤계가 커지면서 창작이 내실을 갖추어가며 다변화될수록 서울무용제가 춤계에서 점하는 위상도 낮춰지기 마련일 것이다. 그러므로 그 위상이 낮춰지는 것을 덮어놓고 부정시할 일은 아니다. 다시 말해, 시대 추세에 따라 그 위상이 낮춰지는 것은 순리일 터이며, 우리 춤계가 발전을 기할수록 더욱 그럴 것이다.
올해 서울무용제 경연대상부문은 4작품으로 경연이 진행되었다. 경연대상부문이 4편의 참가작으로 진행되는 것은 2022년부터이고 2021년에는 참가작이 8편이었다. 글쓴이가 판단컨대, 올해 서울무용제 경연대상부문의 4참가작 사이에 작품의 편차는 심하였다. 수준 이하의 참가작이 있었다 해서 우수한 작품의 빛이 바래는 것은 아닐 테지만, 서울무용제 자체의 위상에는 악영향을 끼치는 요인이 될 것이다. 이 점은 많은 것을 생각하도록 한다. 1980년대부터 대한민국무용제는 해마다 여덟 아홉 편 정도의 참가작을 선정하고 또 참가작들 간의 경연을 통해 대상작을 선정하는 방식으로 나름의 위상을 견지할 수 있었다. 참가작의 수가 절대 기준이 아니겠으나 2022년부터 참가작 수가 줄여진 것부터 재론되어야 할 점이다.
이와 함께 생각되어야 할 점으로서, 서울무용제 내의 행사는 대폭 불어났다. 올해만 하더라도 서울무용제의 본 행사는 초청공연, 경연대상부문, 춤판시리즈, 서울댄스랩으로 구성되고 3일 간의 부대 행사도 있었다. 올해 서울무용제가 11월 1~17일 사이에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 및 소극장에서 열릴 동안 경연대상부문 공연은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에서 참가작마다 하루씩 4일간 열렸다. 여기서 보듯이 이제 서울무용제에서 경연을 통해 대상(大賞)을 선정하는 행사는 서울무용제에서 갖는 비중이 매우 낮다. 대한민국무용제 창설 이후 그리고 그후 상당 기간과 최근 몇 해 동안의 서울무용제를 서로 비교해 보면 더욱 그렇다. 경연대상부문의 비중이 낮아지는 것과 아울러 그것이 춤계 창작 현장에서 갖는 파급력마저 미심쩍은 것이 현상황이다. 냉정히 말해 춤계 내에서 서울무용제는 권위는 물론 존재감도 미약하다. 서울무용제의 문제는 이 점이다.
경연대상부문 이외 별도의 행사가 없거나 미미했던 과거에 비하여 다른 행사들이 많아져도 경연대상부문이 충실하다면 다른 행사들은 오히려 더 권장되어야 할지도 모른다. 지금 춤계가 처한 상황에 비추어 대중과의 접점을 늘여야 하는 일, 무용인들의 관심부터 높여야 하는 일, 춤의 자원을 활용하고 충실하게 하는 일, 청년 세대의 춤 의욕을 촉진하는 일 등등 서울무용제에서 고려해볼 만한 행사는 적지 않다. 그러므로 경연대상부문만 고집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연대상부문을 강조하는 이유는 그것이 지금 춤계에서 핵심적으로 요구되는 춤 창작력 증진 대책의 일환으로 여겨져야 하기 때문이다. 춤 창작력의 증진은 극장 무대춤뿐 아니라 대중춤, 커뮤니티댄스, 뮤지컬, 춤교육 등등에 대해서도 크게 기여할 수 있어서 핵심적이라 말해지는 것이다. 일테면 서울무용제가 견실하게 운영될 경우 눈에 보이지 않는 투자(서울무용제 운영 관련 투입 국고 예산) 효과마저 커지기 마련이다. 이와 관련 참고해야 할 점으로서, 경연대상부문에 참가작으로 선정될 만한 수준을 갖춘 단체는 과거 대한민국무용제 시절 또는 10여 년 전의 서울무용제에 비해 춤계에 훨씬 많아졌을 것이다. 그러한 춤 단체들이 참가할 의욕을 고취하는 것은 주최 측이 해야 할 일인 데 반하여 도리어 경연 참가작 수를 줄이는 것은 춤계 흐름에 역행하는 일 아닌가.
과거를 기억하되 과거에 머무는 것, 매우 어리석은 소치이다. 그렇지만 미래를 근시안적으로 강구하고 대처하는 것은 더욱 옳지 않다. 단적으로 말해서, 대한민국무용제와 그후 한동안 서울무용제가 춤계에서 받았던 관심은 이제 흔적도 없이 사라져가는 중이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 서울무용제를 서울무용제이도록 하는 알맹이 자체가 졸아든 데에다 불투명해졌기 때문이다. 행사가 늘어나 이래저래 호응이 느는 것은 당연한 일일 텐데, 그에 혹하여 공공무용제의 중심을 소홀히 하는 것은 깊이 경계할 일이다. 요컨대, 현시점에서 서울무용제의 정체성부터 다시 물어져야 한다. 아울러 공공기금으로 서울무용제를 집행하는 공공단체로서 대한무용협회의 책임도 물어져야 한다.
김채현
춤인문학습원장.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명예교수. <춤웹진> 편집장. 철학과 미학을 전공했고 춤·예술 분야 비평 수백 편과 저서 『춤과 삶의 문화』 『춤, 새로 말한다 새로 만든다』 『뿌리깊은 나무 샘이깊은 물』(1)을 비롯 다수의 논문, 공저, 『춤』 등의 역서 20여권을 발간했다. <국립무용단 60년사>(2022년 간행, 국립무용단)의 편집장으로서 편집을 총괄 진행하고 필진으로 참여하였다. 지난 30년간 한국의 예술춤과 국내외 축제 현장을 작가주의 시각으로 직접 촬영한 비디오 기록물 수천 편을 소장하고 있으며 한국저작권위원회, 국립극장 자료관, 국립도서관 등에 영상 복제본, 팸플릿 등 일부 자료를 기증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