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평
대한민국에는 현재 30개가 넘는 공공 무용예술 단체가 활동하고 있다.
장르나 성격, 예산, 운영방식 등은 저마다 다르지만 이들 모두 연습실을 갖추고 있고 소속 무용수와 운영인력, 예산, 일정한 공연 제작비 등을 확보하고 있다는 점에서 대한민국에서 활동하는 적지 않은 수의 전문무용단과 독립 안무가들과는 확연히 차별성을 갖는다.
국가나 지자체의 공적인 돈이 투여되는 만큼 이들 공공 무용단체들에게는 공공성에 대한 의무가 꼬리표처럼 따라 다닌다. 공연 횟수가 적을 경우나 프로그램이 다양하지 못할 경우, 교육 프로그램이 부실한 경우 당장 공공적인 활동의 부실이 지적되고 그 책임이 물어진다.
국립현대무용단(단장 겸 예술감독 김성용)은 지난 9월 6일,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예술극장에서 지역상생 프로젝트 ‘코레오 커넥션’을 공연했다.
공모를 통해 선정한 지역에서 활동하는세 명의 안무가 기은주(제주)의 〈사라진 초상〉, 안선희(부산)의 〈두 겹의 몸〉, 김현재(광주)의 〈사랑의 형태〉 가 30분 내외의 길이로 선보였다.
공연된 세 개의 작품은 편차가 있었다. 예술 작품의 완성도 면에서, 한 개 작품을 제외하고는 대한민국에서 공연되고 있는 컨템포러리댄스 작품의 평균점을 밑돌았다.
기은주의 〈사라진 초상〉은 개인과 사회가 겪는 상실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었다. 분명한 콘셉트와 댄서들의 집중력, |
안선주의 〈두 겹의 몸〉은 몸과 몸 사이의 관계성을 탐색한다. 작품 전편에 걸쳐 느린 템포로 일관된 흐름을 유지했으나 인간의 몸을 매개로 하는 무용예술의 특성이 더욱 다양한 형태로 표출될 필요가 있었다. |
김현재의 〈사랑의 형태〉는 사랑이 다양한 형태로 존재하고 흐른다는 사실을 몸의 감각을 통해 탐구한다. 시각적인 효과를 곁들인 여러 개 오브제의 사용과 움직임 조합이 시도되었으나 작품을 풀어내는 아이디어의 부재와 함께 산만한 구성이 오히려 작품에 대한 몰입을 방해했다. |
‘코레오 커넥션’ 은 2024년 국립현대무용단이 새롭게 시작한 프로젝트로 국립현대용단은 “지역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안무가들의 실험적인 시도와 동시대적 시선을 발굴하는 데 중점을 둔다. 서울 중심의 창작 환경을 넘어 각 지역이 지닌 고유한 문화 감수성과 안무가의 예술적 언어로 풀어내는 것이 이 프로젝트의 핵심이다”라고 기획의도를 밝혔다.
이처럼 지역상생을 내 세운 ‘코리아 커넥션’ 프로젝트 자체는 공공 무용단의 공공성을 담보한다는 점에서 시도할 만한 가치가 충분하다. 그런 만큼 이 프로젝트에 투여된 인력과 기간 돈과 노력에 비례해 그 결과물은 어느 정도 사업의 성과를 입증해 줄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공공 예술단체에 의한 공적 사업의 효용가치를 가늠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공연의 경우 국립현대무용단이 내세운 코리아 커넥션의 시행 목표에서 ‘안무가들의 실험적인 시도와 각 지역이 내세우는 고유한 문화 감수성을 예술적 언어로 풀어내는 작업’은 안타깝게도 찾아보기 힘들었다.
대한민국 국공립 무용단체의 공공성을 담보하는 사업은 춤계 생태계를 변화시킬 수 있는 콘텐츠를 생성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지역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안무가들에게 작업할 기회를 제공해주는 것은 꼭 필요하고 오히려 앞으로 더 확대 시행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 사업을 통해 만들어지는 결과물들은 일정 수준의 예술성을 담보한 작품이어야 한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공공 무용단의 사업을 통한 공공성의 담보는 횟수보다 작품의 질, 예술적 완성도 높은 작품을 통해 지역민들에게 수준 높은 예술 감상의 기회를 제공하는 공공성의 실현이 더욱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국립현대무용단의 예술감독과 담당 피디, 그리고 무엇보다 선정된 안무가들은 작품 창작을 위한 과정을 꼼꼼하게 체크하고, 필요하면 공연 전 공개적인 Showing을 거치는 등 꽤 세밀한 프로세스를 가동할 필요가 있다. 안무가들이 모든 것을 알아서 할 거라고 방치해두는 것이 아니라 점검과 협력의 과정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국립현대무용단은 올해는 이 사업을 광주에 있는 국립아시아문화전당과 협업을 시도했다. 지난해와 비교해 협업 공연 장소도 네 곳에서 한 곳으로 줄어들었고 선정한 안무가들의 수도 4명에서 3명으로 축소되었다.
지역을 대표하는 공공 극장과의 협업은 바람직한 시도이다. 이 날 두 번의 공연 중 평자가 본 낮 공연에는 가족 동반 지역민들의 모습이 여럿 눈에 띄었다. 극장 곳곳에 공연을 알리는 홍보물들을 쉽게 볼 수 있었다. 저녁 공연에는 안무가들과의 대화도 예정되어 있었다.
공적인 사업은 안무가들의 창작작업 못지않게 지역 무용계의 취약한 부분을 보완하는 프로그램(지역 무용가들을 위한 안무 워크숍, 지역민들을 위한 무용 감상법 등)을 병행한다면 더욱 시너지 효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꼼꼼한 준비과정과 함께 선정된 안무가들의 지역 공연장 협력 공연도 더 확대할 필요가 있다.
장광열
1984년 이래 공연예술전문지 월간 〈객석〉 기자와 편집장으로 활동했다. 1995년 국제공연예술프로젝트를 설립 〈Kore-A-Moves〉 〈서울 제주국제즉흥춤축제〉 〈한국을빛내는해외무용스타초청공연〉 등 국제교류 프로그램을 정례적으로 시행하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 정책평가위원,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국제교류 위원, 호암상 심사위원 등을 역임했으며, 춤비평가, 한국춤정책연구소장으로 춤 현장과 소통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