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 연구
2026년 6월 20일, 예술가의집 다목적홀에서 댄스&미디어연구소 제9회 국내학술심포지엄이 개최되었다. 올해 심포지엄은 ‘춤과 나이듦(Dance and Aging)’이라는 주제를 중심으로 춤과 몸, 예술과 교육, 그리고 삶의 의미를 다각도로 탐색하는 자리였다.
무용은 오랫동안 생기 있는 신체의 예술로 인식되어 왔다. 움직임을 원활하게 운용하고 그를 통해 고밀도의 감정을 표현하는 것은 무용의 의무이자 권리이자 본질이었다. 그렇기에 무용에서 나이드는 신체는 종종 쇠퇴나 한계의 의미로 이야기되어 왔다. 그러나 이날 심포지엄은 무용과 나이듦의 관계를 또 다른 예술적 가능성과 삶의 경험이 축적되는 과정으로 바라보았다. 춤을 통해 노화의 속도를 늦출 수도 있고, 반대로 직면하는 방법으로 삼을 수도 있다는 점, 또 춤이 발생된지 오랜 시간이 지났을 때의 전승 문제에 대해 입체적인 질문과 논의가 이어진 시간이었다.

|
나카지마 나나코(Nanako Nakajima) ⓒ댄스&미디어연구소 |
한석진 소장의 개회사 이후 진행된 Session 1에서는 무용가의 나이와 예술적 창작의 관계를 문화적, 역사적 관점에서 조망하는 발표들이 이어졌다. 첫 번째 발표는 일본 와세다대학교 무용학과 부교수이자 드라마투르그인 나카지마 나나코(Nanako Nakajima)가 맡았다. ‘나이듦의 춤 드라마투르기: 나이로 무엇을 할 수 있는가?’라는 제목의 발표에서 그는 서로 다른 문화권이 나이듦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 살펴보며, 춤 예술에서 연령이 갖는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였다. 특히 한국과 일본의 전통예술 문화에서 연령과 경력이 예술적 권위의 중요한 기반으로 작동해 왔음을 설명하면서, 나이든 예술가의 경험과 축적된 지혜가 창작의 자산으로 여겨지는 문화적 특성을 조명하였다. 동시에 이러한 문화가 능력보다 연령을 우선시하는 위계 구조로 이어질 가능성과 세대 간 수평적 협업을 어렵게 만들 수 있다는 점도 함께 지적하였다. 한편 그는 서구 공연예술계에서 나타나는 젊음과 새로움 중심의 가치관에도 주목하며, 새로운 것에 대한 과도한 집착이 오히려 창작의 지속성과 다양성을 제한할 수 있다고 설명하였다. 이를 통해 그는 서로 다른 문화권이 지닌 장점과 한계를 함께 성찰하며, 예술과 나이듦의 관계를 보다 입체적으로 바라볼 필요성을 제안하였다.

|
박성혜 ⓒ댄스&미디어연구소 |
이어진 박성혜 교수의 발표 ‘아방가르드는 어떻게 고전이 되는가?: 부퍼탈 탄츠 씨어터에서 피나 바우쉬의 유산과 보존 논쟁 중심으로’는 무용사와 아카이브, 그리고 예술 유산의 계승 문제를 시간의 감각과 함께 다루었다. 피나 바우쉬의 작업이 한때 급진적인 실험으로 받아들여졌지만 오늘날에는 보존과 계승의 대상, 즉 고전이 되었다는 점에 주목하며 예술이 동시대성과 역사성 사이에서 어떤 긴장을 유지해야 하는지, 그리고 후대의 예술가들은 선배 세대의 유산을 어떻게 계승해야 하는지를 다시 생각하게 했다. 또 박물관과 기록관에 축적된 아카이브의 중요성에 공감하면서도 지속적으로 살아 움직이며 동시대인들과 소통할 수 있는 유산의 필요성을 강조하였다. 특히 2027년 개관 예정인 ‘Pina Bausch Zentrum’을 소개하며, 유산의 보존과 동시대적 활용을 함께 고민하는 새로운 공간의 가능성을 제시한 점은 최신의 이슈를 연구 문제와 연결하는 지점으로서 돋보였다.
두 개의 발표 이후 진행된 토론에서는 나이와 세대, 예술적 권위, 창작의 지속 가능성에 대한 다양한 의견이 오갔다. 특히 고령 예술가의 활동을 지원하는 차원을 넘어, 예술 현장 전반이 다양한 연령의 몸을 포용할 수 있는 구조를 마련해야 한다는 의견들이 공감을 얻었다.

|
염창홍 ⓒ댄스&미디어연구소 |
잠시 휴식 후 이어진 Session 2는 보다 실천적이고 사회적인 관점에서 춤과 나이듦의 관계를 살펴보는 시간이었다. 첫 번째 발표자인 동아대학교 건강관리학과 염창홍 교수는 ‘파킨슨병과 춤: 무용 중재를 통한 기능 회복을 넘어’를 통해 춤이 의료 및 건강 분야에서 어떤 가능성을 갖고 있는지를 소개하였다. 발표에 따르면 춤은 인지와 정서, 사회적 관계를 동시에 자극하는 통합적 활동으로서 파킨슨병 환자의 삶의 질 향상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특히 음악과 움직임의 결합이 신경가소성을 촉진하고 집단 활동을 통해 사회적 고립감을 완화한다는 설명은 춤이 사회적 실천으로 충분히 기능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염창홍 교수의 발표는 질의응답 시간에도 청중들의 높은 관심과 질문을 끌어냈는데, 건강과 복지의 영역에서 무용이 수행할 수 있는 역할, 그리고 양적으로 분석되기 어려운 무용의 요소들이 치료의 현장에서는 큰 장점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에도 많은 사람들의 호응을 받고 있음을 증명하는 시간이었다.

|
신주영 ⓒ댄스&미디어연구소 |
이어 충남예술고등학교의 무용 전임 신주영 교사는 ‘춤추는 생애(Dancing Life): 삶의 서사가 빚어낸 나이듦의 몸과 무용 교육의 새로운 지평’을 발표하였다. 그는 오랜 시간 춤을 지속해 온 무용가의 생애 서사를 중심으로 나이듦에 따른 몸의 변화와 예술 경험의 의미를 분석하며, 무용 교육이 젊은 몸 중심의 관점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제안하였다. 그의 발표에서 나이듦이란, 상실이 아닌 새로운 감각과 지혜가 생성되는 과정이며 무용 교육이 생애 전 주기를 아우르는 방향으로 확장될 필요성을 강조하였다. 특히 그는 나이듦을 직면하며 새로운 몸의 가능성을 탐구하고 있는 한 무용가와의 인터뷰를 소개하였는데, 인터뷰 내용 중 “지금 내가 팔을 들면 사람들이 눈물을 흘린다. 그리고 나도 눈물을 흘린다”라는 말은 청중들에게 깊은 울림을 남겼다.

|
ⓒ댄스&미디어연구소 |
이번 심포지엄의 특징은 발표 주제들이 서로 다른 영역을 다루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몸의 시간’이라는 공통의 질문으로 연결되어 있었다는 점이었다. 드라마투르기와 무용사, 의료와 건강, 교육과 생애 연구의 서로 다른 학문적 관점들은 춤이 시간의 한계를 횡단하며 인간의 삶 전체를 아우를 수 있는 다각적인 실천임을 이야기하는 출발점이기도 했다. 또한 이날 현장에서는 연구자, 예술가, 교육자들이 활발하게 의견을 교환하며 학문과 현장의 거리를 좁히는 모습이 인상적으로 펼쳐졌다. 발표와 토론을 통해 제기된 질문들은 결국 노화와 춤의 관계에 대한 철학적 통찰로 귀결되었는데 춤이 특정한 연령대, 특정한 목표, 특정한 취향의 예술에 머무르지 않는다는 점에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
ⓒ댄스&미디어연구소 |
댄스&미디어연구소는 그간 춤과 미디어, 무용가와 관객, 전통과 동시대성 등 다양한 주제를 탐구하며 무용 담론의 지평을 넓혀왔다. 이번 제9회 국내학술심포지엄 역시 춤을 둘러싼 사회적, 문화적 의제를 독창적으로 제시하며 무용 연구가 예술 내부의 논의를 넘어 인간의 삶과 사회를 성찰하는 학문적 실천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춤과 나이듦’이라는 주제는 앞으로 더욱 중요해질 것이다. 평균 수명이 늘어나고 삶의 시간이 길어지는 오늘날, 춤은 더 이상 젊음의 증거가 아니라 시간과 함께 변화하는 몸의 경험을 담아내는 예술로 새롭게 이해되고 있다. 나이드는 몸이 잃어가는 것들은 분명히 있지만, 그 과정에서만 얻을 수 있는 감각과 지혜 또한 존재한다. 춤은 그러한 변화의 흔적을 가장 섬세하게 드러내는 언어이자 실천이다. 이번 심포지엄은 몸에 새겨진 시간의 흔적을 결핍이 아닌 예술적 가치로 읽어내며, 나이듦을 춤의 끝이 아닌 또 다른 가능성의 시작으로 바라보게 한 뜻깊은 자리였다.
유화정
어릴 적부터 춤춰온 몸의 기억을 머리와 손끝으로 전달해 좋은 글을 쓰고자 한다. 이화여대 무용과 초빙교수, 국립극장 공연예술아카데미 강사, 미국 서던캘리포니아 대학 방문학자 역임하였으며 현재 댄스&미디어연구소 이사이자 충남대학교 강사로 재직 중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