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 연구
인간의 몸 그 자체가 표현의 수단(material)이 되는 춤은 인간의 개인적 ‧ 사회적 ‧ 우주적 삶과 깊은 관련성을 가지고 있는 문화의 산물이다. 오늘날 문화는 과학 기술의 진보와 세계화(globalization)의 구호와 더불어 전 세계적 관계망을 형성하고 있는 중이다. 여기서 지난 세대에 이미 이루어져 그 후로 계통을 이루어 전해지는 한국 민족의 춤, 즉 세계, 한국, 한국춤 하부에 위치한 전통춤은 어떤 유효한 의미를 가지는가란 문제가 돌출된다. 비교인류학자 정수일과 민족음악학 및 민족무용학(dance ethnography)의 대가 쿠르스 작스(Curt Sach)는 모든 문화는 민족적 고유성이란 중심축에 기초하는 동시에 여러 형태의 교류를 통해 다양화되면서 발전한다. 따라서 한 민족의 문화 또는 춤에는 고유성에 기반을 둔 다양한 갈래가 존재하며, 이 각각은 고유성 ‧ 다양성 ‧ 세계 보편성을 함께 가지고 있다고 본다. 여기에 강조점을 둘 때, 한국 전통춤은 민족적 고유성에 해당하는 것으로 이 땅의 모든 춤 현상의 근간(根幹)이 된다. 또한 다양성 속에서 전체적 통일성을 확보하게 하는 중핵(中核)이며, 세계와 우리를 만나게 하는 중심축이라 할 수 있는데, 바로 이 지점에서 한국 전통춤의 중요성과 그 연구의 필요성을 찾아 볼 수 있을 것이다.
한국 전통춤은 구전심수(口傳心授)의 전승방식을 통해 몸에서 몸으로, 마음에서 마음으로 이어진다. 이 속에서 면면히 이어지 내려오는 유형화된 틀이 오늘날 우리가 목도하는 전통춤의 기본 골격이 된다.1) 전승된 유형화된 틀은 “저장된 전형”으로도 설명된다.2) 그 요지는 한국 전통 연희 일반과 더불어 춤은 관객과 행위자가 뻔히 아는 전형화된 형식 및 내용 틀을 가지고 있으며, 이것을 매개로 소통 ․ 공유 ․ 향유(香遊) 하였다는 것이다. 이처럼 “저장된 전형”을 매개로 한 정보전달(communication)의 기능을 강조할 때, 한국 전통춤은 언어로 이해될 수 있다. 분명 구어언어와 춤의 언어는 다르다. 그 극명한 차이점은 언어의 소리음은 추상적 성격3)을 가지지만, 춤의 언어는 직 ․ 간접적으로 유사성(類似性)에 기초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전통적인 언어학의 입장에서 [책상]이란 소리음은 실질적으로 존재하는 “책상”과 아무런 연관성이 없는 추상화된 소리로 설명된다. 반면 춤의 형식은 원천적으로 인간의 삶에 기초한 “몸짓의 율동화”라는 점에서 유사성에 기반하고 있으며, 정도의 차이가 있으나 온전히 추상화된 것이라고는 할 수는 없다. 언어를 규정하는 기본 성격 중 하나인 “추상성” 때문에 몸짓(gesture)을 비롯한 춤은 원천적으로 언어와 더불어 설명될 수 없는 것으로 치부되어왔다. 그러나 이러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한국 전통춤 역시 언어의 핵심적인 기능인 정보전달의 역할을 수행하였음은 부정하기 어렵다.
정보전달의 기능을 강조하더라도 한국 전통춤을 언어라고 규정하기 위해서는 선결되어야 할 문제가 있다. 먼저 언어학의 기본개념을 살펴보면, 언어는 기호(sign)로 정의되며 형식(signifiant, form) ․ 내용(signifié, concept, sense) ․ 지시체(referent, object)로 구성된다. 가령 외양(appearance)에 해당하는 [책상]이라는 소리음이 형식4)이라면, 내용은 외부에 실제로 존재하는 ‘책상’을 바로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어떤 심리적 대응물(mental object)에 해당한다. 동전의 양면처럼 밀착된 형식과 내용이 그 다음 책상이라는 구체적 대상(지시체)을 지시한다.5) 따라서 그 유명한 언어의 자의성(恣意性, arbitrariness)이란 형식과 내용 간의 관계가 아니라, 형식과 지시체 간의 관계가 자의적이라는 것이다.6)
예술작품(a work of art)의 정보전달 기능에 주목, 예술작품 ․ 형식 ․ 내용 등을 정의하고 있는 미국의 미학자 올드리치(Virgil C. Aldrich)를 통해 위의 문제를 풀어보면, 먼저 형식은 일련의 미적 특질(aesthetic quality)을 산출하는 매체(midium)의 조직화이다. 내용은 형식을 통해 지각된 시각적 또는 정서적 이미지 그 자체로 설명된다.7) 이 둘의 관계는 동전의 양면처럼 밀착되어 있다는 점에서 언어와 유사하다. 그러나 두 가지 점에서 언어와 차이를 갖는다. 첫째, 언어의 형식과 내용 간의 심리적 대응관계는 일종의 사회적 협약으로 밀착 ․ 전제 ․ 공유된 것이다. 반면, 예술에서 형식과 내용의 대응관계는 철저히 개인의 내면화에 기초하여 밀착된다. 둘째, 언어에서 형식과 내용은 언어 외부에 존재하는 명확한 대상을 지시한다. 반면 예술의 형식과 내용은 작품외부에 명확한 지시대상을 가지지 못함으로써 불투명한 언어가 된다. 이상 개인의 내면화와 불투명한 지시성에 기초하여 정보전달의 기능을 가지는 예술작품을 표현(expression)으로 정의하고 있다. 올드리치는 예술작품을 표현이라고 정의한 뒤, 그 하부를 다시 재현적 표현과 비재현적 표현으로 구분 짓는다. 그 요지는 모든 예술은 주관적 내면화의 산물이지만, 형식에 있어 재현적 성향이 강한 것과 비재현적 성격이 강한 것으로 구분된다는 것이다. 전자는 주로 ‘이미지’로 지각되고 후자는 ‘정서’로 지각된다.8)
올드리치 논의를 수렴하면서 이상의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 첫째, 한국 전통춤의 전승 틀인 “저장된 전형”은 인간 ․ 사회 ․ 세계의 문제를 온 몸으로 접하며 끊임없는 자기비판과 검증을 거친 육체적 ․ 공동체적 인식과정의 소산이다.9) 따라서 한국 전통춤은 주관화된 표현일 수 없고 공동체적 내면화를 거친 표현으로 볼 수 있다. 둘째, 한국 전통춤은 “저장된 전형”을 중심으로 소통 ․ 공유 ․ 향유되었다는 점에서 정보전달의 기능을 가지고 있는 언어로 파악해 볼 수 있다. 특히 한국 전통 연희 일반과 더불어 춤 향수자의 적극적 개입을 고려할 때, 한국 전통춤 언어는 일련의 사회적 협약체계를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셋째, 한국 전통춤을 사회적 협약체계를 갖고 있는 언어라고 할 때, “저장된 전형”의 외양은 형식, 형식에 밀착된 심리적 대응물은 내용, 형식과 내용이 지시하는 대상 혹은 의미(sense)는 지시체라고 할 수 있다. 오늘날 이들 간의 관계가 불투명해진 것은 사실이지만, 일차적으로 한국 전통춤은 언어와 유사하게 형식-내용-지시체 간의 지시관계(reference)를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상에 주안점을 두면 한국 전통춤은 공동체적 내면화를 거친 표현으로, 일련의 사회적 협약체계를 갖춘 언어(non-verbal language)로 설정해 볼 수 있다. 또한 표현에 강조점을 두고 언어 성격을 살피면 “사실주의에 기반을 둔 추상적 표현”10)이라고 볼 수 있다. 앞서 올드리치는 예술작품을 크게 재현적 표현과 비재현적 표현으로 구분하였다. 또한 작스는 원시 춤의 유형을 크게 모방계열과 비모방계열의 추상적 춤으로 구분하였다. 이 이분지와 더불어 생각할 때, 오늘날 전해지는 한국 전통춤과 음악은 추상적 성격을 보다 많이 가지고 있다.11) 그러나 춤은 일상적 몸짓에서 시작되었다는 점, 많은 부분 소실되었지만 전해지는 춤사위의 명칭에서 여전히 모방계열의 춤의 흔적이 많이 남아있다는 점 등을 고려할 때, ‘한국 전통춤은 사실주의에 기초하고 있으나, 사실적 묘사는 은유적으로 사용되는 일련의 진화 과정을 통해 추상화된 표현을 확보하였다’는 채희완의 주장에 무게 중심을 둘 수 있을 것이다.
─────────────────
1) 이애주 면담: 2011. 6. 22. 서울 대학로 학전다방.
2) 김열규(1980). 「굿과 탈춤」. 『탈춤의 사상』. 현암사. p. 124. 채희완(1992). 『탈춤』. 대원사. pp. 96-7.
3) 언어학에서는 언어기호는 추상성, 분절성, 자의성, 시간적 순차성에 기초한 선적 배열 등 4가지 성격으로 규정된다.
4) 타타르케비츠는 미학사의 주된 형식(form) 개념을 다섯 가지로 정리하고 있다. ①요소의 배열, ②감각에 직접적으로 주어진 것, ③대상의 영역 또는 윤곽, ④대상의 개념적 본질, ⑤지각된 대상에 대한 정신의 기여 등이 그것이다. 이 중 예술사에서 가장 빈번하게 등장하는 개념은 앞 두 가지라고 볼 수 있다. 이 중 감각에 직접적으로 주어진 것이란 내용을 감싸고 있는 “외양”을 의미하며, 언어의 소리음이 대표적인 예가 된다. Tatarkiewicz(1990). 『여섯 가지 개념의 역사』. 이용대(역). 이론과 실천. pp. 253-266.
5) Saussure(2006). 『일반언어학강의』. 최승언(역). 민음사. p. 91-94. 이익환(2003). 『의미론 개론』. 한신문화사. pp. 29-30.
6) Saussure(2006). 위의 책. pp. 94-97. Hofmann(1995). Realms of Meaning. Longman. London and New York. p. 13.
7) Adrich(2004). 『예술철학』. 오병남(역). 서광사. pp. 100-113.
8) Adrich(2004). 위의 책. pp. 123-126.
9) 김열규(1980). 「굿과 탈춤」. 『탈춤의 사상』. 현암사. p. 124. 채희완(1992). 『탈춤』. 대원사. pp. 96-7.
10) 채희완(1992). 앞의 책. p. 98.
11) 이보형 면담: 2012. 10. 10. 서울 공릉 선생님 자택 1층 공부방.
12) 정병호(1985). 『한국춤』. 열화당. pp. 48-9.
부산대학교 무용학과 학사 및 석사, 부산대학교 예술문화와 영상매체 협동과정 박사(2011.8)
부산대, 한국예술종합학교 강의
현재 이화여자대학교 박사후과정 연구원(Post Do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