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 연구
전통춤 공연이 다양한 이즈음, 전통춤 공연의 또 다른 볼거리는 ‘춤옷’이다. 춤옷을 어떤 디자인으로, 어떤 색의 어떤 질감으로 했느냐에 따라 춤의 느낌은 달라진다. 치마폭을 많이 잡거나 단촐하게 잡거나, 치마허리의 말기를 강조하거나 보이지 않게 하거나, 번지르르한 비단 느낌을 내거나 파스텔 톤의 자연색 무명 느낌을 내거나, 밝고 화사한 색을 고르거나 중후하고 무거운 색을 고르거나, 이 외에도 선택의 여지는 많다. 이러한 선택들은 춤꾼의 설정에 의한 것이며, 이 설정에 따라 같은 전통춤 종목이라도 춤이 주는 이미지는 달라지게 된다.
3, 4년 전에는 두꺼운 질감의 공단으로 치마폭을 풍성하게 잡고 치마 소매를 좁게 한 춤옷이 유행하여, 언젠가 한 전통춤 공연에서는 색깔만 다르고 비슷한 스타일의 춤옷 패션쇼를 보는 듯한 적이 있었다. 이런 흐름이 오래가지는 않았다. 이 스타일의 춤옷이 모두에게 맞지 않다고 판단했기 때문일 것이며, 근래 전통춤 무대에서는 여러 스타일의 춤옷이 공존하고 있다.
춤의 옷도 유행을 따라 변했었다. 조선 후기 신윤복의 그림 중에 「미인도」를 보면 저고리 길이가 짧고 소매는 좁으며, 치마는 풍성하다. 이는 당시 복식의 유행 스타일이다. 이 시기에 신윤복이 그린 기생들의 춤추는 모습도 풍성한 치마에 좁은 소매의 저고리이다. 반면 일제강점기 기생들이 포즈를 잡은 사진들을 보면 치마는 호리호리하게 빠져 있고, 저고리 길이는 길어졌다. 이 역시 당시 유행했던 한복의 라인이다. 머리는 정가르마가 아닌 4:6 정도의 옆가르마를 타고 이마를 살짝 가리는 이른바 깻잎머리를 했는데, 이러한 머리 모양과 의상 라인이 일제강점기 신여성의 패션 경향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전통춤의 춤옷은 시대적 흐름과 무관하지 않다.
전통춤의 춤옷 이야기를 꺼낸 것은 춤옷의 스타일을 논하고자 함이 아니다. 요즘의 춤옷이 전통춤의 외형을 미묘하게 변화시키는 현상을 언급하기 위함이다. 우선 전통춤의 춤옷이 화려해진 건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춤옷이 화려해진 것은 미를 추구하는 춤의 본능일 수도 있다. 어쨌든 춤옷이 화려해지고 스케일도 커지면서 춤이 춤을 추는 것인지, 옷이 추는 것인지 춤이 보이지 않는 경우도 있다. 춤에 맞게 춤옷도 맞는 격식을 갖추는 게 중요하다고 본다.
그런데 무엇보다 큰 문제는 요즘 여성 춤꾼의 춤옷이 춤추기에는 치마가 길다는 점이다. 여성 춤꾼들이 주로 추는 교방춤들은 버선발을 살짝 보이는 것이 하나의 포인트다. 치맛자락 끝에 드러나는 발목 아래의 버선발은 단순한 발이 아니다. 춤으로 표현하는 발디딤이며, 표정이다. 발디딤의 섬세한 놀림을 보면 춤꾼의 공력을 가늠할 수 있다. 전통춤의 스승들은 모두 춤이 발로부터 시작한다고 하지 않았던가. 심지어 이매방 선생은 버선발로 요염함을 보여주어야 한다고까지 했다. 그런데 요즘 발디딤은 긴 치마에 가려 잘 보이지 않는다. 발디딤이 가장 강조되는 <태평무>의 경우, 발을 들어 돌려서 뒤로 놓는 동작은 분명 발사위가 완곡한 곡선을 그려야 함에도 치마에 가려 발이 보이지 않을 때도 있다. 또 치마가 길다보니 긴 치마를 걷어 올리는 발사위가 어색할 때도 있다.
그리고 허리춤에서 양손으로 치맛자락을 잡는 동작들이 있는데, 치맛자락을 많이 올려 잡아 치마 밑 바지의 종아리까지 다 보이는 경우가 있다. 그 상태로 몇 장단 추는 것을 보면 치마춤이 아니라 바지춤이 돼버린다. 이미 작고한 위 세대 춤꾼들의 춤에는 그렇게 높이 치맛자락을 걷어잡아 치마 속바지가 훤히 보이는 모습을 볼 수 없다. 치맛자락을 잡는 동작도 살짝 잡는다거나 뭉턱 올려 잡는 등의 다양한 표정이 있을 것이다.
한편 남성 전통춤은 근래 치마춤이 되고 있다. 바지저고리를 기본으로 입지만 그 위에 걸친 두루마기나, 괘자, 장삼이 길어져 발목 바로 위까지 내려오고, 두루마기의 폭이 넓어져 마치 치마를 겹쳐 입은 듯하다. 머리에 쓴 갓이나 의관과 가슴에 묶은 끈이 없다면 치마를 겹겹이 입고 추는 치마춤 같다.
남성 전통춤의 포인트 중 하나는 다리 사위이다. 남성 전통춤은 무동이 추는 궁중무가 있고, 재인들의 춤이나 농민들의 춤이 있다. 종목으로 본다면 처용무 등의 궁중무와, 각 지역 탈춤, 상쇠춤, 설장고, 북춤, 소고춤 등의 농악춤, 무부(巫夫)들이 추는 무굿의 춤, 한량무, 범부춤 등이다. 이 중 탈춤, 농악춤, 범부춤은 바지를 입은 남성 하체의 태가 그대로 드러난다. 그리고 처용무, 한량무, 화랭이춤(무부의 춤) 등은 겉옷을 입지만, 실루엣으로 다리 동작이 드러난다. 다리 동작들은 각 춤마다 다른 특징을 갖으며, 서울 경기 지역의 산대놀이나, 황해도 지역의 탈춤들은 인상적인 다리 사위들로 구성된다. 특히 경상도의 덧배기춤들을 보면 허벅지와 종아리의 움직임에서 남성춤의 매력이 풍겨나온다.
그러나 현재 남성춤은 이러한 매력을 충분히 보여주고 있지 않다. 부풀려지고 발목 위까지 내려온 남성 전통춤꾼의 춤옷 때문에 다리사위는 그저 짐작만 할 뿐이다. 간혹 몸을 앞으로 숙인 동작에서는 두루마기의 끝이 바닥에 끌리기도 한다. 남성 춤꾼들의 춤은 점점 치마춤이 되고 있다. 남성 춤꾼에게조차 교방춤 중심의 레퍼토리와 수련 방식이 남성춤의 다양한 동작과 매력을 충분히 발휘하지 못하게 만들고 있다.
여성 춤꾼들은 긴 치맛자락을 세밀히 다루지 못해 자꾸 바지춤을 추려 하고, 남성 춤꾼들은 교방춤의 영향 탓인지 자꾸 치마춤을 추려 하니, 본디 여성 전통춤과 남성 전통춤의 각 특징과 아름다움은 희박해져버리지 않을까 우려된다. 이러한 변화가 시류라면 시류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의상 때문에 춤이 가려지고 춤이 변한다면 이는 재고할 일이다. 18, 9세기 발레의 역사에서 좀 더 낭만적이고 몽상적 표현을 위해 춤꾼은 비상(飛上)을 표현하고자 하면서, 높고 긴 점프(jump)나 리프(leap, 도약) 동작을 하게 되었다. 또 토슈즈의 다양한 하체 표현을 위해 발레리나들의 스커트는 점점 짧아져 튀튀로 변하였다. 또한 19세기 말에 로이 플러(Loie Fuller)는 의상의 움직임과 의상에 비치는 빛과 색채의 변화를 모티브로 안무하기도 했었다. 이 춤들의 특징과 변화는 안무자나 춤꾼이 표현하고자 하는 주제를 위한 것이었다.
전통춤이 전통춤 본연의 특성과 원리와 무관하게 춤옷으로 인해 춤의 외형이 바뀌고 고유한 특징이 드러나지 않는다면, 이는 문제다. 전통춤의 진수를 보이기 위해서 전통춤을 수련하는 일만이 아니라, 자신에게 맞는 전통춤의 춤옷이 어때야 하는지, 그 춤옷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재고할 필요가 있다. (공연과리뷰 2012년 봄호 전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