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 연구
2011년 8월 서울시민들은 사상 초유의 주민투표를 치룬 바 있다. 청소년들에게 무상급식을 어떤 범위로 실시할 것인지에 관해 시민들의 의사(意思)를 묻는 이른바 ‘무상급식 지원 범위에 관한 주민투표’는 투표율이 33.3%에 훨씬 미달함으로써 무효가 되었다. 무상급식 지원 범위의 제한을 전제로 이 투표를 발의한 서울시장은 투표 이전부터 스스로 공언하였듯이 투표율 미달로 인해 사퇴하였다. 복지가 공공 재정을 뒤흔드는 경우를 제외하고, 평상시에 선출직 공직자가 자신의 직을 걸고 복지 관련 투표를 행하는 경우가 서울 같은 거대 도시에서 희소하다는 점에서 지난번 주민투표를 혹자는 심지어 기이한 투표라 불렀다. 이 투표와 커뮤니티 댄스가 무슨 연관이 있을지 언뜻 막연할 테지만, 생각해보면 짐작가는 바 없지 않을 것이다. 이 사례가 말해주는 바는 지금 한국에서 공공복지가 첨예한 사회적 이슈라는 사실이며, 지난번 주민투표는 그런 이슈를 부각시키는 데 엄청난 역할을 하였다.
한국에서 공공복지는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해도 과장된 말이 아니다. 한국에서 공공복지는 건전 재정에 대한 위협 요인이라기보다는 공공복지 자체가 열악하기 때문에 사회적 이슈가 되어 왔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통계치들은 이러한 지적을 뒷받침한다. 일반적인 복지 지출에 해당하는 사회적 지출(SOCX: 노인․유가족․비능력․의료․가족․노동시장․실업․주택 부문 및 기타 소득 보전 지원) 부문 OECD 통계치가 최근 몇해 밝힌 바는 다음과 같다. 2007년 기준 GDP 대비 공공 사회적 지출 비중에 있어 OECD 평균은 19.3%였고, 한국은 7.5%(영국 20. 5%, 스웨덴․프랑스 28%)로서 OECD 최하 2위였다.(참고: 한국의 1인당 GDP 2만7천 US$, 2010년) 같은 통계에서 정부총지출 대비 공공 사회적 지출 비중에 있어 OECD 평균은 50% 정도였고, 한국은 26.3%(독일 57.8%, 스웨덴 53.6%, 영국 45.8%)로서 OECD 최하위였다. 한국에서 SOCX 규모가 증가세를 보이는 사실을 고려하더라도, 지난번 주민투표는 OECD 최하위권을 맴도는 한국 공공복지의 수준을 대변한 것으로 여겨진다.
한국에서의 커뮤니티 댄스를 논함에 있어 공공복지의 현실태부터 거론한 것은 둘 간의 관계가 밀접하기 때문이다. 커뮤니티 댄스는 광의의 복지에 속하는 활동이며, 일반적인 공공복지에 비해 수행 주체에서 민간(전문 무용가와 일반인)이 중심을 차지한다는 차이점이 있다. 한 국가에서 SOCX 비중은 해당 국가와 시민들의 복지 관념의 수준으로 해석되어도 무방하다. 커뮤니티 댄스 활동이 SOCX에만 의존하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SOCX의 비중에서 예측할 만한 해당 사회의 복지 관념의 수준으로부터 상당한 영향을 받는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이러한 진단은 지금까지 이뤄진 한국에서의 커뮤니티 댄스 활동에 적용될 수 있으며, 그러나 앞으로 커뮤니티 댄스 활동이 그간의 상황에 머물 것이라 지레 예단할 필요는 없다.
커뮤니티 댄스는, 매우 유동적인 점을 무릅쓰고 정의하자면, 공동의 정체성을 기반으로 일정한 전문성을 활용하는 사회적 춤 활동이다. 그런데 커뮤니티 댄스가 함축하는 바를 분석하면 다음의 두 가지 점, 즉 1) 커뮤니티를 향해 팔을 뻗치는(to reach out) 댄스 그리고 2) 댄스를 수용하는 커뮤니티가 발견된다. 커뮤니티와 댄스는 결합하면 이처럼 적극적인 주고받기의 관계를 형성하면서 서로의 성격을 변화시킨다. 일례로 social dance와 community dance를 비교하면 이 점은 쉽게 수긍될 것이다. 다시 말해 커뮤니티 댄스에서 커뮤니티와 댄스는 각각 능동적인 주체로 정립된다.
커뮤니티 댄스가 한국에서 갖는 의미가 지대할 것임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그것은 무용인의 생계에 보탬이 되기 때문이 아니다. 해외의 선례들에서 보다시피 커뮤니티 댄스는 춤예술의 사회적 확산을 돕는 동시에 춤예술의 사회적 실천을 위해 큰 역할을 수행하고 있고, 한국도 예외는 아닐 것 같다. 그러나 커뮤니티 댄스의 의도가 훌륭하더라도 그것이 수용되지 못한다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커뮤니티 댄스가 한국에서 갖는 의미가 지대할 것으로 예측하는 것은 그것을 수용할 만한 사회 분위기와 여건이 조성되고 있기 때문이다.
커뮤니티 댄스가 한국에서 갖는 의미는 사회공동체 측면과 예술적 측면에서 논할 수 있다.
사회공동체 측면에서 커뮤니티 댄스가 무엇보다도 몸이라는 보편적 능력을 기반으로 하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일상에서 움직이는 몸이 커뮤니티 댄스의 출발점이라는 사실은 커뮤니티 댄스가 몸과 움직임에 어떠한 제한도 두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며, 실제 현장에서도 이런 점은 존중된다. 예술 장르마다 커뮤니티 활동으로 될 수 있는 가능성에서 차이가 있으며, 일상의 몸을 출발점으로 하는 점에서 춤은 커뮤니티 댄스에서도 고유성을 발휘할 수 있다. 춤의 특성상 커뮤니티 댄스는 무용가와 일반인의 동시 참여가 용이하며 또 무용가의 참여를 기본 전제로 해도 그 실행에 있어서는 큰 무리가 없다. 그것은 커뮤니티 댄스가 커뮤니티의 사정을 고려하고 참여자의 사정을 존중하기 때문이다.
춤이 이상과 같은 고유한 특성을 발휘하여 커뮤니티 댄스로 진화하는 데 있어 해외에서는 다음과 같은 점들이 긍정적으로 작용하였다. 20세기 후반 이후, 춤이 페미니즘, 포스트모더니즘, 과학 기술 개발, 춤 양식의 절충, 기존 레퍼토리의 수정, 미디어 응용 등을 통해 지속적으로 유연성과 확장성을 보여온 현상 그리고 21세기 들어 후기산업사회 내에서 더욱 진전되는 정보화, 다원주의, 지역화 같은 메가트렌드가 커뮤니티 댄스를 촉진하고 있다. 이상과 같은 시대 흐름은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한국에서도 재연되고 있으며, 해외와 한국 사이의 뚜렷한 차이라면 한국에서 커뮤니티 댄스는 아직 탐색되는 중이라는 점이다.
한국은 지난 한 세대 동안 예술 전문 공간(theatre)을 전국적으로 다수 구축한 데 이어 2000년대에 들어와서는 생활 문화 공간(예컨대 culture centre)이 확충되는 추세를 보인다. 또한 문화정책의 범위가 복지 차원의 문화를 활성화하는 쪽으로 넓혀져왔고 도시 재생 및 평생 교육 사업에서 문화에 대한 수요도 높아가고 있다. 한 마디로 사회 속의 불특정 다수 혹은 특정 계층이 주체 혹은 능동적인 수요자로 나서는 새로운 문화를 사회가 요구하는 경우는 갈수록 다양해질 것이다. 커뮤니티 댄스에서 사회의 그러한 요구에 부응하는 예술로서 춤이 앞장설 수 있음을 기대할 수 있다. 한국에서 커뮤니티 댄스가 사회공동체 측면에서 갖는 의의를 전망하자면, 커뮤니티 댄스는 춤의 공공성을 강화할 것이다.
또한 지난 한 세대 동안 한국 사회가 예술의 성장과 다원화를 경험해온 것과는 대조적으로 지난 10년간 춤을 비롯하여 고급예술(fine-arts)의 위기도 수반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예술계가 자구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여론은 일상화되었으며, 무용가들과 예술인들 스스로 자신의 작업을 특히 사회 내에서의 위상과 결부해서 판단하는 태도가 강화되고 있다. 자신의 예술 작업을 사회의 시각에서 객관화시켜보는 태도는 무용가 개개인에게 커뮤니티 댄스 활동을 자극할 상당히 중요한 요인으로 손꼽아진다. 예술이 위기에 처하는 것과는 역으로 커뮤니티 댄스의 가능성이 커가는 것을 한국적 아이러니라 표현해도 과장된 말은 아닐 것 같다.
커뮤니티 댄스는 특정 공동체에 초점을 맞춘 춤(community-specific dance)이나 일반인을 주체로 한 춤을 실천한다. 앞서 언급된 사회의 시각에서 춤을 객관화시켜 보는 발상은 커뮤니티 댄스의 전제 조건이며 또 커뮤니티 댄스와 많은 부분에서 공통점을 갖는다. 춤을 무용가나 무용계를 축으로 사고하는 것과 공동체 혹은 사회를 축으로 사고하는 것은 분명 다를 것이다. 다시 말해, 커뮤니티 댄스는 무용가가 춤을 다르게 혹은 새롭게 접근하는 데서 발단하므로, 춤 관념에 상당한 변화가 있어야 커뮤니티 댄스는 무용가의 작업으로서 지속성을 가질 것으로 판단된다.
다양한 공동체의 다양한 계층이 커뮤니티 댄스에 참여하는 것은 일정한 능동성이 있어야 가능하다. 이런 점에서 커뮤니티 댄스는 실제 작업 현장에서 주체가 누구여야 하는지 문제를 제기한다. 이 문제는 기존의 극장춤 중심의 사고 방식에 대해 혼란스럽게 비칠 수도 있다. 무용가의 전문성이 절대 존중되고 관객도 이를 수용해야 하는 극장춤(theatre dance)과는 매우 다르게 커뮤니티 댄스에서 무용가의 전문성은 하나의 노우하우에 머무는 경우가 흔하다. 특히 작품이라는 완성물에 집중하는 하드웨어 식의 마인드가 과정을 중시하고 또 과정을 결과물로 여기는 커뮤니티 댄스에서는 제한된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무용가의 전문성이 없다면 커뮤니티 댄스의 현장 작업은 재미난 효율성과 공감어린 창의성 면에서 매우 취약할 것으로 생각된다. 이처럼 커뮤니티 댄스는 춤과 특정 커뮤니티와 특정 참여자 사이에 아주 민주적인 상호 관계를 촉발시키며, 하기에 따라 그 관계는 매우 역동적일 것이다.
이상과 같은 포괄성과 포용력을 갖춘 춤 관념, 참여자의 능동성, 실천 현장에서의 창조적 역동성은 일반인들을 춤 표현의 주체로 일변시킬 가능성이 높다. 커뮤니티 댄스는 예술의 실행 범주를 확장시킴으로써 무용가의 전문성을 공공(公共)의 자산으로 재인식시킬 것이고, 극장춤에 대해서도 활력소를 부어넣을 것이다. 한국에서 커뮤니티 댄스가 예술 측면에서 갖는 의의를 요약하자면, 커뮤니티 댄스가 춤을 역동적인 맥락 속에 재정립시킬 계기로 작용할 것이라는 점이다.
* 전재: 이 글은 제4회 공연저널리즘 서울포럼(SPAC Forum 2011)의 ‘새로운 몸의 화두, 커뮤니티 댄스’에서 발표된 것이다.(편집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