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 연구
새 개념 설정ㆍ범주화가 필요하다
1. 문제 제기
현재 전통춤 공연은 활발하다. 전통춤 관련 기관의 공모나 기획공연, 국공립무용단의 상설공연 뿐만이 아니라, 각 보존회 정기공연, 일반 무용단체나 개인이 주최하는 공연 등에서 다양한 기획의 전통춤 공연들을 볼수 있다. 그렇게 전통춤 공연이 끝나면 무용가들과 관객들은 공연의 완성도 뿐만이 아니라 전통춤에 대한 여러 가지 사안들을 담화한다. ‘전통춤에는 어떤 종목이 있는지에 대한 의문부터, 전통춤의 재구성은 어디까지 가능한 것인지, 새로운 창작 아이디어를 전통춤의 기법으로 추는 춤들을 전통춤 영역에 포함해야 하는지, 아니면 새로운 영역으로 설정해야 하는지, 또는 스승에게 배웠으나 자신의 춤으로 소화하면서 스타일이 달라진 전통춤에 대해 스승 ○○○류라 설명하는게 적절한지 등이다. 그 밖에 올 9월 문화재청이 무형문화재 개인 종목의 예능보유자 지정예고에 대한 반대 의견이라든가, 이북5도 무형문화재 종목에 부채춤이나 화관무가 지정된 점, 같은 계보의 전통춤이 국가문화재와 지방문화재로 나란히 지정되어 있는 점 등도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1) 이러한 논란들은 전통춤에 대한 상이한 관점들, 현행 무용계 전반의 지형도, 전통춤 관련한 제도들의 관계들 사이에서 상호 영향을 미치며 생성되고 반복되고 있다. 이러한 현상과 논란들은 현재의 풍성한 전통춤 공연활동을 근거로 전개되고 있으며, 이는 21세기 초반 전통춤계의 중요한 흐름이다. 이러한 흐름과 문제 제기가 어떤 맥락 속에서 일어나고 있는지, 무슨 문제를 갖고 있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전통춤의 옛 예인들이 이미 작고했고, 전통춤의 환경이 날로 변화하는 현단계에서 중요한 기로에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2. 전통춤 개념 다시보기
우선 전통춤의 개념을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전통춤은 조선시대와 대한제국 시대까지의 정치경제적 문화적 토대에서 추어졌던 춤을 말한다. 왕조(王朝)와 농업공동체를 기반으로 왕실 행사나 연간의 절기, 개인 통과의례 등에 추어졌다. 이러한 의미로 개념화되고 전통무용의 용어가 등장한 시기는 1960년대였다.2) 한국전쟁 후 국가 재건을 위해 지식인들은 정신적 원천과 문화적 정체성을 찾고자 했으며 문학에서 전통 논의가 활발했는데, 전통의 단절론, 부재론, 계승론, 또는 극복에 대해 논하면서 전통은 중요한 테제로 부상했던 것이다.3) 특히 1962년 문화재보호법이 제정되고 무형문화재제도가 시행되기 시작하며 전통을 기준짓는 시기는 매우 중요한 사안이었다. 민속학자이며 문화재위원이었던 임동권(1926~2012)은 “우리의 문화전통은 역사의 변천 속에서도 그런대로 전통의 원형을 유지해오다가 1910년 일제의 침략을 계기로 변화를 일으켜 일본적 요소, 서구적 요소의 작용을 받게 되었다. 문화재는 민족의 문화적 소산이기 때문에 전통적이고 순수해야하므로 1910년을 기준으로 해서 그 이전의 것은 넓은 의미의 문화재가 될 수 있고, 그중에서 예술적 가치가 있으며 민족생활의 추이를 알 수 있는 것을 골라 문화재로 지정하고 있다.”4)고 했다. 즉 문화재보호제도를 담당했던 당시 학자들이 개화 이후 일제의 강점이 시작된 1910년 무렵을 전통문화가 보존된 기준 시기로 설정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는 전통의 원래 의미와 부합하지 않는다. 전통은 어떤 집단이나 공동체에서, 지난 시대에 이미 이루어져 계통을 이루며 전하여 내려오는 사상ㆍ관습ㆍ행동 따위의 양식5)을 말하는데, 시대와 세대를 통해 전해지며 전승되는 것이다. 이때 전통의 핵심은 유지하되 시대의 흐름에 따라 양식이 변할 수는 있다. 그런데 1960년대 논의 속에서 전통은‘변하되 변하지 않는 전통’으로 고정되면서 제도와 관련 종사자들의 인식 속에서 20세기 말까지 지속되었다. 그렇게 전통의 개념과 전통춤에 대한 인식6)은 원본으로서 보존하고 지켜야할 유산으로 고착되었다. 하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았다.
3. 2000년대 들어 전통춤
전통춤의 원형 보존을 지상과제로 삼았지만 2000년이 되기 전부터 전통춤은 유유히 흘러가며 다른 면모를 보여주었고, 지금도 보여주고 있다.
우선 단일 종목의 전승과정에서 연행(演行)자가 춤을 가감하며 춤이 변화했다. 예를 들어 국가무형문화재 97호 이매방의 살풀이춤은 1984년‘북소리’공연에서 11분 추었으나, 2003년‘유성준 국창 추모공연’에서 14분이 넘게 추었다. 민속춤은 즉흥성과 현장성이 있으므로 공연시간에 편차가 있을 수 있지만, 춤꾼의 예술적 고민이나 나이의 변화에 따라 수정되었다.
또한 시대의 흐름과 변화에 따라 전통춤 종목들이 부침(浮沈)하였다. 1970년대 후반에 살풀이춤이 정체성을 분명히 했고, 1990년대에 태평무가 부상했으며, 2000년대에 최종실의 소고춤이나 박병천의 북춤 등의 농악춤이 작품화되어 확산되었다. 2010년대에 남성 무용가들의 한량무가 흥해졌으니, 1980년대부터 조짐이 보이던 한량무를 여러 무용가들이 자신의 구성으로 발표했던 것이다. 또 입춤, 굿거리춤, 교방춤 등의 여성 홀춤이 다양해졌으며, 궁중무 춘앵전이나 무산향도 추어지기 시작했다. 이러한 과정에서 승무가 이전 시기에 비해 상대적으로 약화되었다. 이렇게 근래 전통춤 공연에서 농악춤이라든가 남성 한량무가 큰 호응을 받는 정황은 1980년대 전통춤 공연의 추이와는 다르다고 하겠다. 일종의 유행이라 할 수 있는데, 30년 전까지 강조되었던 한(恨)이나 비애(悲哀)를 보여주는 종목이나 미감이 줄어들고, 화려하고 신명나는 종목들이 인기를 끌고 있다. 이는 한이나 비애를 공감하는 세대가 줄어들고 있으며, 사회 전반의 미감이 변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전통춤의 재구성 또는 창작이 시도되고 있다. 전통재구성무 또는 신전통춤이라 칭하는 춤들을 말한다. 무용평론가 김태원은 ‘미감(美感) 있는 전통의 형식적 변주’가 인상 깊게 이뤄지고 있고 이것은 춤의 창조적 측면에 있어, 교육적 측면에 있어, 또 관객의 춤 예술적 감상의 측면에 있어 두루 만족을 주고 있다.7)고 평가한바 있다. 윤미라의 〈진쇠춤〉, 김운태의 〈소고춤〉, 한혜경의 〈12채장고춤〉, 김경란의 〈애린〉, 문진수의 〈채상설장구춤〉 등이 그러하다. 전통춤 종목을 무대환경에 맞게 감각적으로 재구성하여 색다른 미감을 추구한 것이다.
또한 전통춤의 기법과 음악, 의상 등을 근간으로 하면서 기존 전통춤에는 없는 틀거리, 인물, 미감, 정서를 보여주는 전통춤들이 있다. 이애주의 〈태평춤〉, 배정혜의 〈흥풀이〉, 백현순의 〈덧배기춤〉, 김평호의 〈중도소고춤〉, 국수호의 〈남무〉 등이 있으며, 중견 이상의 전통춤꾼들이 지속적으로 만드는 〈산조춤〉이나 남성 전통춤꾼들이 자신의 구성으로 추는 〈한량무〉도 있다. 이 춤들은 1910년대 이전 전통의 시대에는 없었던 종목들이다. 이렇게 신전통춤이라 칭할 수 있는 작품들에는 전통춤꾼들의 창의적 욕구 - 새로운 아이디어, 새로운 개념이 제시되어 있다. 전통춤의 주제를 안무자의 시각으로 새롭게 해석하여 좀 더 적극적으로 새로운 틀을 제시한 춤이었다.8) 전통재구성무나 신전통춤은 전통춤의 기법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으면서, 새로운 모티브와 정서를 담아 새롭게 표현하고 있다.
이러한 흐름은 21세기 공연예술의 전반적인 상황과 관계가 있다. 20세기 전반에 학습하고 데뷔했던 전통춤의 원로세대들이 거의 작고하면서 오리지널리티가 희박해졌고, 그들이 여러 현장에서 공연을 임했던 예인의 자세도 약화되었다. 현재는 그 다음 세대들이 자신의 전통춤들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또 한국춤 부문에서 창작춤 작업의 조건이 어려워지면서 한국춤 무용가들이 전통춤 무대로 이동하는 경향이 있다. 이 무용가들이 전통춤 무대에 창작 아이디어를 보태어 선보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유네스코의 무형유산 지정이 한국의 문화재제도에 영향을 미쳤다. 관련 제도가 활발해지자 전통춤계의 관심이 늘어났으며, 또한 무형문화재제도의 원형(原型) 개념에서 유네스코 무형유산의 전형(典型)으로 개념이 이동하면서 고유성은 지키되 전통춤의 표현에 있어서 수용의 폭이 넓어졌다. 이에 더하여 근래의 극장 메카니즘, 즉 영상과 무대장치, 음악, 조명 등이 다양하게 결합하는 조건 속에서 전통춤들이 만들어지고 공연되고 있다.
4. 신전통춤의 개념 설정과 범주화
이상과 같이 2020년대 전통춤은 이전 시기와는 다른 양상이며, 1960년대에 개념화된 전통무용, 전통춤이라는 개념으로는 수용되지 않는다. 원형 개념으로 1960년대에 설정했던 전통춤을 기준으로 본다면, 현재에 새롭게 추어지는 전통춤들이 부합하지 않는 것이다. 전통의 시대에 왕정과 농업공동체를 기반으로 한 사회경제적 토대에서 추어졌던 춤이 아니라, 21세기의 공연 환경에서 추어지는 전통춤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전통시대의 춤은 전통의 춤으로 보존하고, 현재 추어지는 전통춤들은 21세기의 춤으로 개념을 설정하고 범주화해야 하는 것이다. 다시말해 전통춤이라는 개념에 우리 춤의 역사에 등장했던 춤들을 모두 통으로 포괄하여 다룬다면 전통시대의 전통춤과 현재의 전통춤의 각각의 고유한 정체성과 미적 가치에 대한 평가와 분별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시대마다 다른 스타일로 건축된 석탑들을 보고 각각의 미와 가치를 평하고 논하듯이 21세기의 전통춤은 다르게 평가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부작용도 발생한다. 현재 추어지는 새로운 전통춤들을 기존의 전통춤 인식의 틀거리에 맞추고자 역사성이나 계보를 무리하게 엮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무용의 역사를 왜곡하게 되는 것이다.
현재 스승으로부터 사사받은 전통춤 종목을 순서와 구성을 그대로 추고자 노력하는 전통춤꾼들이 있다. 이는 매우 중요하고 귀한 작업이며, 끝까지 지켜야할 우리 춤의 소중한 자산이다. 이런 활동과 다르게 전통재구성무나, 신전통춤들은 전통춤 무용가들의 또 다른 예술적 욕구를 드러내는 춤이다. 이 춤들을 21세기 초반에 진행되는 전통춤으로 읽어낼 필요가 있으며, 예술적 성과를 공론화되어야 한다.
이렇게 새롭게 만들어지는 전통춤 종목에는 안무적 발상이 분명하므로 ‘○○○ 류’라는 표기는 ‘○○○ 안무’로 수정하기를 제안한다. 그리고 전통춤의 종목에서 역사적 배경과 창작 시기를 분명히 밝힐 필요가 있다. 무용학 1세대 연구에서 전통춤의 시기 구분은 애매모호했다. 문헌에 기록되지 않은 춤의 경우 연구성과가 일천하여 역사적 구분을 판단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근래 전통춤의 역사에 대한 연구를 통해 20세기 전반기에 만들어진 전통춤들을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게 되었고, 객관적으로 바라볼수 있게 되었다. 예를 들어 태평무가 1930년대 후반에 만들어진 춤이라는 사실은 누누나 알고 있으며, 한성준이 스스로 밝히기도 했다. 근대 시기의 춤이라면 배경과 초연 시기를 밝히고, 그 시기의 역동성을 드러내야 할 것이다. 문화재청 사이트에서 전통춤 종목의 정보를 보면 초연 내지 발생 연대(年代)의 항목은 비어있다.9) 언제 만들어졌는지 밝히지 않는 것은 해당 종목을 올바르게 알리지 않는 것이며, 나아가 해당 종목에 대한 이해를 왜곡시킬 수 있다.
이제 더 이상 머리 속에서 상상하는 이상(理想)적인 전통춤은 추어지지 않는다. 공동체성, 다산과 구복을 위한 기원, 음양오행의 원리, 흥과 신명, 해원, 즉흥성, 현장성, 다양한 춤의 공간, 축제 등의 개념이 살아숨쉬는 전통춤은 추어지지 않는다. 다만 전통춤이 담았던 이러한 개념들을 담아내고자 현재의 전통춤 무용가들은 노력하고 있는 것이다. 2000년 즈음부터 시도되고 있는 전통춤에 대한 새로운 예술적 욕구들을 전통춤에서도 창작춤에서도 분류되지 않은 채 애매하게 다루거나 다루지 않을 것이 아니라, 현재 전통춤의 한 범주로 정위(定位)하고 논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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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김영희, 「전통춤의 새로운 개념 설정이 필요하다」, 인문예술연구소 http://www.ssp21.or.kr/ 웹진 오늘의 선비, 예술가의 아틀리에, 2019.11.08.
2) 김영희, 「전통무용 용어 등장에서 두 가지 초점」, 《춤웹진》 126호, 한국춤비평가협회, 2020년 2월호. http://koreadance.kr/board/board_view.php?view_id=43&board_name=research
3) 서영채, 「민족, 주체, 전통 - 1950~60년대 전통 논의의 의미」, 『민족문학사연구』 34호, 민족문학사학회 민족문학사연구소, 2007, 20쪽 참고.
4) 임동권, 『전통문화 한국민속문화론』, 집문당, 1983, 53~54쪽.
5) 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View.do?word_no=481527&searchKeywordTo=3 “국립국어원 사이트” 《표준국어대사전》
6) 무용학자 정병호는 1976년에 전통무용의 개념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전통무용이란 정중동(靜中動)의 조화—은은한 선(線) ‥ 미(美)의 극치 정병호 교수] 일반적으로 전통무용이라고 할 때 민속무용, 궁중무용, 어떤 유파적(類派的)인 무용을 다 포함한다. 외래적인 형태를 갖추지 않은, 순수한 우리의 토착적인 춤의 운동을 전통무용이라 할 수 있다. 그것은 민족 생활의 역사적 발달과정에서 자연발생적으로 형성된 미(美)적 의식이 인체의 움직임을 통해 구체화된 것이다. 전통무용은 오랜 세월을 통해 민족정신을 흡수하고 반영하면서 전승되어 왔다. 그러므로 전통무용은 기교가 완숙해지면서 민족간에 완전히 소통, 동화될 수 있는 힘을 갖는다. 전통무용은 민족정신 세계의 유산(遺產)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조선일보』, 1976. 3. 31.)
7) 김태원, 「한국창작춤의 세 단계 변모와 전통재구성무 영역의 필요성」, 『공연과 리뷰』 2007년 가을호, 현대미학사, 2007, 16쪽.
8) 김영희, 「최근 전통춤의 주요 현황과 특징」, 『전통춤평론집 춤풍경』, 보고사, 2016, 63쪽.
9) 김영희, 「문화재청 사이트에서 전통춤 찾아보기 인문예술연구소 http://www.ssp21.or.kr/ 웹진 오늘의 선비, 예술가의 아틀리에, 2022.12.9.
김영희
전통춤이론가. 김영희춤연구소 소장. 역사학과 무용학을 전공했고, 근대 기생의 활동을 중심으로 근현대 한국춤의 현상에 관심을 갖고 있다. 『개화기 대중예술의 꽃 기생』, 『전통춤평론집 춤풍경』등을 발간했고, 『한국춤통사』, 『검무 연구』를 공동저술했다. 전통춤의 다양성과 현장성을 중시하며, ‘검무전(劍舞展)I~IV’시리즈를 기획했고, '소고小鼓 놀음'시리즈를 진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