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 연구
공연예술 분야에서 리허설은 연습과 공연 사이에 위치한다고 볼 수 있다. 연습은 어떤 경우에도 예측가능한 상태에 도달하기 위한 열려있는 반복적 실행이다. 반면 공연은 반복이 불가한 조건 속 예기치 못한 상황 속에서 최대한 준비된 행위를 수행한다. 리허설은 가역성을 가졌다는 측면에서는 연습과 유사하나, 상상을 통해서 일지라도 예측불가능한 상황과 마주한다는 점, 즉 ‘사회적’ 순간 속에서 진행된다는 점에서는 공연에 가깝다.
프로시니엄 무대에서의 공연은 불가역성으로 인한 불안감과 긴장감이 조성되나, 통제된 상태에서 진행되기에 거의 고정된 행위의 반복을 실행할 수 있는 조건이 갖춰져 있는 편이다. 하지만 관객참여형, 장소특정형 등의 공연 형식은 상대적으로 통제가 안 되는 외부적 환경에 노출될 뿐 아니라 의도적으로 관객을 공연에 개입시키곤 한다. 더욱더 예측 불가한 상태에 놓인 공연은 고정되고 딱딱한 것이 아닌 리허설 만큼이나 유연하고 개방되어있는 상태가 되길 요구받는다. 또한 코로나19 팬데믹 시대 무대에 선 퍼포머는 관객 없이 공연할 수밖에 없었고, 카메라 앞에서 몇 번의 반복적 리허설이 가능한 공연을 수행했다. 이러한 공연은 리허설에서의 경험과 어떻게, 얼마나 다른가? 공연이 수행되는 환경의 다양화는 리허설과 공연의 경험적 차이가 관객의 존재 여부에 따른 것인지, 그리고 리허설과 공연에서의 퍼포머가 현존하는 방식이 분명하게 경계지어질 수 있는지에 관한 질문으로 이어지게 된다.
이러한 동시대적 질문들 속에서 장혜진 안무가의 작품 〈당신이 그런 것을 입게 될 줄 알았어〉는 공연이 아닌 리허설 과정 속 퍼포머의 경험적 상태에 주목한다. 공연에 앞서 관객이 부재한 상태에서 과거의 연습을 상기하는 동시에 미래의 공연을 상상하는 리허설에 대해 ‘발화’하고 리허설을 ‘실연’한다. 2022년 12월 21일 ~ 30일 옵/신 스페이스에서 공연된 이 작품은 매일 6회씩 각 40분여간 진행되었으며, 안무가를 포함한 6명의 여성 퍼포머 중 2명이 교대되어 출연했다. 매 공연당 관람 인원은 4명으로 한정되었다. 관객들이 지하 공연장으로 입장하자마자 마주하게 되는 것은 원색의 트레이닝복을 입고 권투장갑을 착용한 채 서 있는 두 명의 퍼포머와 바닥에 배치된 파란 매트들이었다. 관객 무리 중 한 명이 지시문에 따라 매달려 있는 종을 울린 후, 그들은 무대이자 링의 공간에 들어섰다. 퍼포머들은 중얼거리며 관객들에게 다가갔고 자연스럽게 1명의 퍼포머와 2명의 관객으로 짝을 지어 공연이 진행되었다.
장혜진 〈당신이 그런 것을 입게 될 줄 알았어〉 ©He Jin Jang Dance/현석현 |
퍼포머는 귀 기울이지 않으면 잘 들리지 않는 소곤거리는 목소리로 관객들에게말을 건넸다. 과거 또는 지나쳐버린 것에 대해 말하고 등에서 느껴지는 감각과 연관지어 이야기했다. 이내 퍼포머는 필자에게 권투 장갑을 벗긴 후 착용하길 요청했다. 이제 나는 더 이상 관람자가 아니라 무대 위 퍼포머 또는 링 위 선수의 파트너가 되어야 하는 것인가, 무엇을 ‘공연’해야 하는 것인가라고 생각하며 경직되는 순간 퍼포머는 매트에 앉길 권했다. 바닥에 물이 있다고 상상하라는 말이 들리고 매트가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퍼포머의 지시에 따라 축 늘어뜨린 몸은 느슨해졌다. 어느새 나의 몸이 눕혀졌고 퍼포머는 공연이 딱딱하고, 뾰족하고, 날카로우며, 다치고 외면당하기 쉽다고 말했다. 이제부터는 눈을 감은 채 느끼길, 반응하지 않길 요청했다. 그 이후로 공연 내내 나의 몸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대신 그들의 목소리에 이끌려 무언가를 상상했다. 나는 공연하는 몸이 아닌 리허설하는 몸으로 전환되었다.
두 명의 퍼포머는 같은 이야기를 각자의 속도와 톤으로 발화하였다. 가끔 침묵하는 시간이 공유되기도 하고 미러링을 통해 동일한 문장을 이어 말하기도 했다. 누운 채 목소리를 듣고 있으면, 퍼포머에 의해 매트가 움직이고 매트 사이에 무언가가 들어오고 매트가 접히면서 나의 몸에 촉각적 경험이 더해졌다. 목소리를 통해 떠오른 심상에 촉각적 경험이 덧입혀져 상상의 모습은 더 짙어졌다. 예를 들어, 리허설이 종이접기를 하듯 몸에 자국, 흔적을 남기는 것이라고 말하는 동시에 퍼포머는 실제로 매트를 다양한 각도로 접으면서 관객의 몸을 이리저리 뒤틀고 돌려놓았다.
장혜진 〈당신이 그런 것을 입게 될 줄 알았어〉 ©He Jin Jang Dance/현석현 |
퍼포머는 리허설하는 몸이 두 개의 몸으로 존재한다고 말한다. “내가 나를 보고 있네요... 옆으로 가서 당신을 보고 있어요.” “내 몸이 두 개가 돼요. 여기 내 몸, 되려는 저기 몸.” 이는 외부를 감각하는 물질적 실체로서의 몸과 상상하는 미래의 공연하는 몸으로 이원화되었음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여기서 ‘당신’은 누구인가? 퍼포머는 눈앞에 마주한 나의 복장 특징을 언급하면서 이미 가상연습을 통해서 나를 여러 번 만났었다고 말했다. 내가 어떤 옷을 입을지, 어떻게 행동할지, 무엇을 말할지 상상하면서 기다렸다고 했다. 관객은 퍼포머가 상상해왔던, 미래의 관객으로 상정된다. 리허설하는 몸이 미래의 관객을 만날 때, 자신의 육신과 분리된다는 점에서 리허설에는 죽음이 담겨 있다고 퍼포머는 말한다. 이는 마치 유체이탈과 같은 경험이라기보다는 미래의 관객을 마주하면서 연습으로 갈고 닦은 몸에 상처이자 주름을 만들면서 기존의 몸으로부터 멀어지고 새롭게 연결된 몸으로 존재함을 내포한다. 이렇게 자기변형된 몸을 만나기 위해서 (상상 속의) 관객과의 의존, 공생이 필요한 것이다. 퍼포머는 관객의 몸에 살며시 기댄다. “영원히 기억할 거예요. 모든 게 다 끝난 후에도.”
장혜진 〈당신이 그런 것을 입게 될 줄 알았어〉 ©He Jin Jang Dance/현석현 |
장혜진의 〈당신이 그런 것을 입게 될 줄 알았어〉는 리허설에 관한 공연을 한다기보다는 ‘공연을 리허설화’한다. 퍼포머가 발화하는 이야기는 사실과 허구, 실제와 상상이 뒤섞여 있다. ‘나’로 지칭되는 대상은 무대 위 물질적으로 존재하는 퍼포머 였다가 미래의 상상 속 모습이 되기도 하고, ‘당신’으로 지칭되는 대상은 퍼포머의 눈 앞의 관객이었다가 상상 속 만났던 미래의 관객이 되기도 한다. 장혜진 안무가는 퍼포머가 리허설에 대해 발화하는 것을 넘어 리허설 상태를 수행하도록 한다. 관객은 공연 대부분의 시간 동안 눈을 감은 채 움직이지 않도록 유도되나, 관객이 어떠한 반응을 취하더라도 특별히 대응하지 않는다. 마치 눈앞의 관객이 아닌 그동안 그토록 기다리던 미래의 관객을 마주하고 있는 듯한 모습에서 리허설의 경험적 차원을 담아내면서 공연과 리허설의 경계를 약화시킨다. 실제로 진행된 〈아티스트 토크: 헛것 보기〉(2023년 1월 7일)에서 몇몇 퍼포머는 관객으로부터 영향을 많이 받는 구조적 환경, 리허설의 회차만큼이나 많은 공연 횟수 등의 이유로 공연이 마치 리허설하는 것과 유사한 태도로 수행되었음을 언급하기도 했다.
공연과 리허설을 넘나드는 것은 퍼포머 뿐만이 아니었다. 리허설이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관객은 눈을 감고 보이지 않는 것을 청각, 촉각 경험을 통해 보이게 하는 리허설 과정을 경험했다고 볼 수 있다. 작품에서 퍼포머의 이야기는 의미론적 차원뿐 아니라 물질적 차원에서 작동함으로써 몇몇 관객은 가수면 상태에 이르는 경험을 갖는다. 잠이 들지 않았지만 잠이 든 것처럼 느끼는 가수면 상태는, 공연을 하지 않았지만 공연을 한 것처럼 경험하는 리허설과 유사하다. 매트를 사용한 촉각적 경험 역시 리허설의 경험을 도모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리플렛에 설명되어 있듯, 몸의 위치, 속도, 방향, 무게, 자세를 인지하는 고유수용감각을 움직이지 않고서도 깨우는 방법이 있으며 심상이나 촉각 자극이 그러한 방법에 속한다. 퍼포머가 제공하는 심상과 촉각 자극을 통해 관객은 스스로 움직이지 않으면서도 신경인지를 자극하여, 특정 움직임에 대한 가상훈련, 즉 일종의 리허설에 참여하게 된다. 공연에 참여한 관객들은 다음 공연 회차를 관람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관람자로서의 위치를 준다는 점은 관객이 공연을 참여할 때 누군가가 자신을 보고 있는 상태를 전제한다. 따라서 자연스레 관객참여자는 리허설 상태를 체험하고 있지만 동시에 공연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리플렛에서 안무가는 인류에게 필요한 것은 “이미 시작되었지만 거기에 있지 않고 출발했지만 도착하지 않은 순간”인 “슈도 퍼포먼스(pseudo performance)이자 위장술”로서의 리허설이라고 말한다. 이 작품을 통해 저항을 위한 완충장치로서의 사회적 리허설의 역할을 제안하는 동시에 공연의 존재 방식 그리고 퍼포머의 경험에 대한 새로운 접근을 시도한다. 리허설과 공연 사이의 경계를 오가는 경험을 한 후 관람자의 위치에 놓인 관객은 어쩌면 퍼포머들이 말했던 그것을 경험할지 모른다. 리허설의 말랑말랑함에서 공연의 딱딱함으로의 변이. 그리하여 우리도 퍼포머들과 같이 외칠지도 모른다. “공연 대신 그냥 리허설.”
한석진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에서 무용이론 전공 예술사 과정 후 영국 서리대학교에서 무용학 박사 학위(Ph.D.)를 받았다. 현재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이론과 조교수로 재직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