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 연구
: 문묘일무의 무위(舞位)와 춤구성의 설정
2022 춤비평논저상에서 준우수논문은 2편이 선정되었다. 두 편의 준우수논문을 함께 게재하며 필자 이름의 ㄱㄴㄷ 순으로 연속 게재함을 밝혀둔다. ─ 편집자
[국문초록]
연구목적: 이 연구는 동양철학에 기반을 둔 한국 문묘일무의 미학 연구로서, 문묘일무의 방위개념을 음양대대(陰陽對待)의 미학적 관점에서 살펴봄으로써, 이 춤에 설정된 무위(舞位)와 춤구성을 파악하는데 목적을 두었다. 연구방법: 문묘일무와 음양체계에 관한 문헌연구를 중심으로 현장 경험과 연구를 접목하였다. 결과: 이 춤은 북쪽과 남쪽에 신위(神位)와 인위(人位)를 배치하여 신위를 향해 예악으로 경(敬)을 표하고, 신이 출입하는 통로인 신도(神道)를 중심으로 동서를 구분한 대대를 이루는 춤사위를 통해 인간사의 덕망 있는 처신을 표방한다는 것을 밝혔다. 이로써 한국 문묘일무의 무위(舞位)와 춤구성은 고대 유가예악의 철학적 함의와 음양대대의 미학 원리에 바탕을 둔 방위개념에 의해 설정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즉 문묘일무는 고대 예악문화의 정수로서 음양대대의 미학을 품고 유가의 정신을 무용예술로 상징화한 아이콘이라 하겠다. 이 연구가 문묘일무 미학 연구의 토대를 굳건히 하고 무용예술의 학문적 발전에 도움이 되길 바란다.
[핵심어]: 문묘일무, 음양대대, 유가예악, 동양미학, 무용예술
Ⅰ. 서론
국가무형문화재 제85호로 지정된 석전대제(釋奠大祭)는 공자를 모시는 사당인 문묘(文廟)에서 지내는 큰 제사이다. 성대한 제사에는 희생과 폐백, 그리고 악(樂)이 따르기 마련이다. ‘악’은 시가무(詩歌舞) 총체로서 제사에서 신을 즐겁게 하기 위한 중요한 목적을 띤 오늘날의 예술 장르이다.
문묘일무(文廟佾舞)는 석전제에 올리는 제례무(祭禮舞)로 시‧음악‧무용이 합해진 특성을 갖는다. 고대의 제례로부터 연원을 찾는 이 춤은 유가예악의 대표성을 지닌다. 예와 악을 항시 곁에 두어, 예의와 법도를 지키며 풍류를 즐길 줄 알던 군자의 모습을 표방한 춤이 문묘일무이다.
이 연구는 동양철학에 기반을 둔 한국 문묘일무의 미학 연구이다. 일무의 내용과 형식을 차지하는 예와 악은 화합할 때 참뜻에 다가간다. 음과 양이 하나의 태극을 이루는 이치(이광호, 2007; 32)와 같다. 본고는 문묘일무가 철학적 관점에서 다뤄지던 의식무라는 사실을 넘어, 무용예술로서 미학적 가치와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는 점에서 필요성을 제기한다. 이에 본 연구는 문묘일무의 방위개념을 음양대대(陰陽對待)의 미학적 관점에서 살펴봄으로써, 이 춤에 설정된 무위(舞位)와 춤구성을 파악하는데 목적이 있다.
문묘일무의 미학 연구는 2010년대에 시작되었다. 춤사위 분석으로 시작하여 철학·역사학·인류학적 접근으로 연구되던 일무 연구가 진행된 지 10여 년 만의 일이다. 이 춤의 미학적 접근에 대한 선행연구는 문묘제례의 역사에 기반한 철학적 사유에 한해 심미성을 논하는데 그친 것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2016년, 필자는 최초로 구체성을 띠는 문묘일무의 미학 연구(박지선, 2016)를 시도했다. 그 이래, 철학적 사유체계에 근원을 둔 미학 범주를 추출하여 문묘일무에 나타난 다양한 미학적 특징을 구체적으로 다루며 이 춤의 콘텐츠 개발을 위한 기초작업을 이어왔다(박지선, 2016, 2019, 2020). 본고는 그 연장선상에서 음양대대 미학에 기반한 일무를 세밀히 살펴보고자 한다.
음양대대에 관한 선행연구는 『주역(周易)』음양론에 대한 철학적 접근이 다수이다. 예술 영역에서는 예술철학적 의미를 규명하기 위한 방법으로 음양대대적 관점을 주로 다루었다. 그 중 전통예술 장르에서는 변명희(2018)의 「서화예술 표현형식에 있어서 ‘음양대대 미학개념’의 예술철학적 의미」, 김현숙(2010)의 「전각의 음양대대적 미학 특징」, 김윤주(2018)의 「조선후기 서론의 음양대대관 연구」에서 음양이론과 그 대대적 형상들을 미학적으로 다루고 있었다.
이 논문은 문묘일무와 음양체계에 관한 문헌연구를 중심으로 한다. 여기에 2000년대 석전대제의 문묘일무 참여를 시작으로 현재까지 이 춤의 교육과 지도를 맡고 있는 필자의 현장 경험과 연구를 보탠다. 첫째, 『주역』음양론의 사유체계에 기인한 음양대대의 원리에 대해 알아본다. 둘째, 고대 제사와 유가예악의 관점에서 문묘일무의 방위개념을 해석하여, 이 춤의 무위와 춤구성에 설정된 음양대대의 미학적 현상에 대해 알아본다. 셋째, 이를 통해 제례무로서 문묘일무에 담긴 유가예악의 철학적 함의와 음양대대의 미학을 연구한다.
철학은 인간과 세계에 대한 근본 원리와 삶의 본질 따위를 연구하는 학문이고, 미학은 가치로서의 미, 현상으로서의 미, 미의 체험 등 미와 예술을 대상 하는 학문이다. 예술은 인간이 수행하는 많은 활동 중 하나이다. 따라서 예술학 연구에 있어서 철학이 예술의 근원적인 취지에 다가가 예술의 본질을 깊이 있게 다룬다면, 미학은 예술의 가치‧현상‧체험 등 예술을 예술답게 만드는 요소들에 대한 다양한 관점을 제시하며 폭넓은 이해를 도울 것이라 여긴다. 그러므로 미학 연구는 인간 활동으로 산출되는 문화 현상으로서 예술의 학문적 정립을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작업이다. 현재 이와 관련한 연구가 드물다는 점에서 이 연구는 한국 문묘일무의 미학적 토대를 굳건히 하고 일무의 예술적 정립에 이바지할 것이라 생각한다.
Ⅱ. 음양대대 미학의 원리
음양대대(陰陽對待) 미학의 원리는 동양에서 가장 오래된 경전, 유교 삼경 중 하나인 『주역(周易)』 음양론의 사유체계에서 발견된다. 『주역』에서 음양 사상의 발달은 복잡한 단계를 거치며 발전해왔다. 『역경(易經)』에서는 직접 음양이란 개념을 사용하고 있지는 않지만, 64괘의 구성이나 배열을 분석해보면 음양사상을 함축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역전(易傳)』에 이르러서는 천지인(天地人)을 관통해서 시공간과 삼라만상을 포괄하는 음양의 범주체계를 구성함으로써 음양철학을 구축했다(임채우, 2014; 37). 음양은 이처럼 동양철학의 근원사상으로, 동아시아 사회와 문화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대대(對待)’ 관념이 명확하게 ‘음양’이라는 용어로 표현되는 것은 『주역』의 「계사전(繫辭傳)」과 「설괘전(說卦傳)」 등 10편에서부터이다. 그러나 『주역』의 괘사(卦辭)·효사(爻辭)는 물론 『서경(書經)』, 『좌전(左傳)』 등에 이미 후대에 ‘음양’이라는 용어로 표현될 수 있는 관념이 사상의 중핵을 이루고 있다(최영진, 2005; 13).
음양은 세상을 서로 상대되는 두 개의 것으로 나누어 보는 이론이다. 음과 양은 반대되는 성격을 갖지만, 이 둘은 떨어져 존재할 수는 없다. 두 가지 대립하는 음양의 성질은 서로 융합하고 조화되며 상보적 역할을 한다. 세상의 모든 것은 서로 반대되는 성격을 지닌 음과 양이 화합하여 이루어진다고 보는 것이 음양 사상의 이론이다.
한번 음이 되었다 한번 양이 되었다 하면서 계속 변화하는 것, 그것은 만물의 도(道)를 일컫는다.
그 길을 잘 잇는 것이 선(善)이요, 그 길을 잘 이루는 것이 성(性)이다(周易·繫辭傳).
음양의 법칙은 천지가 생성하고 변화하는 법도를 따른다. 위의 인용구에서 한 번 ‘음’하고 한 번 ‘양’하는 것을 도(道)라고 하여 그 이치를 설명했다. 하나의 성질은 반드시 다른 성질을 필요로 하며, 이 둘은 동전의 앞뒷면과 같이 떨어져서는 존재할 수 없는 것으로 서로 화합하여 간격이 없는 것이다(박지선, 2016; 162). 철저히 짝으로 같이 형성된 하나의 개념인 셈이다.
즉 음과 양 각각의 개념보다는 대립하면서 통일되는 그 상관관계가 더 중요하다(김종서, 2008; 183-184). 음과 양은 서로를 배척하며 존재하는 개념이 아니라, 오히려 상대가 존재함으로써 비로소 자신의 존재가 가능해지는 상호보완적인 관계이다. 그런 의미에서 음양론의 모든 상대적 개념들은 외형적으로는 상호대립적이고 논리적으로는 양립할 수 없는 개념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기 위해서 서로가 꼭 필요한 존재이며 상호보완적인 존재로서 ‘대대(對待)’ 관계가 된다(변명희, 2018; 86).
대대 관계라는 것은 두 개의 대립이 분명히 반대이긴 하지만 서로 배척하고 융화할 수 없는 모순된 관계가 아니라, 끌어당기며 서로가 존재함으로써 자기가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반대는 서로 보완적’이란 상보성원리보다 더욱 적극적으로 상반자를 요구하는 원리이다(한국유교학회, 2001; 79). 역에 있어서 음양은 이 두 개의 대립이라는 대대 관계를 기본 원리로 하고 있다(김응학, 2006; 53).
천지간에 음양의 조화를 이루지 않는 것이 없고 음 속에 양이 있고 양 속에 음이 있으니, 서로가 서로의 매개가 되어 상호감응과 성취의 관계(임채우, 2014; 50) 속에 어느 것도 음양으로 표현하지 못할 것이 없다. 그리고 이는 대대 관계로 드러나게 된다. 따라서 음양대대의 미학은 ‘서로 반대되면서 서로를 이루어준다’고 하는 상반상성(相反相成)의 원리를 기반으로 한다. ‘차이를 통한 화합’ 혹은 ‘통일 속의 차이’(주백곤, 1999; 272)로 상반되는 성질과 뒤엉키고 화합해 완성된 하나가 되는 것이다.
대대를 이루며 한 번씩 교차하는 음과 양의 규칙적인 변화를 거듭하는 것은 천도(天道)이다. 그래서 『주역』의 윗글에서는 음양의 규칙을 잘 이어가는 것을 선(善)이자, 성(性)이라 했다. 선함을 지키며 성스럽게 삶을 영위하는 군자의 모습은 음양대대의 미학을 실현하는 문묘일무의 크고 작은 구조 속에서 드러난다.
Ⅲ. 문묘일무의 방위로 보는 음양의 대대적 현상
석전대제에서 문묘일무를 춤추는 자리, 즉 무위(舞位)는 신위(神位)를 바라보고 동과 서로 나누어져 있다. 문묘일무의 무위와 춤구성에 음양이론이 적용되었다는 것은 이전 연구들에서 이미 밝혀진 사실이다. 본고의 이 장에서는 예와 악을 통해 극진하게 제사를 모시는 유가철학적 관점에서 문묘일무에 적용된 방위를 해석하고, 이 방위개념이 문묘일무의 무위와 구성 및 춤사위에 어떻게 활용되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1. 신위(神位)와 인위(人位)의 배치(북-남)
인간은 집단생활을 하게 되면서 공동체 유지를 위한 방편으로 신께 제사를 올려 복을 기원했다. 정성이 깃든 예(禮)와 흥을 돋우는 악(樂)으로 극진한 마음을 다한 고대의 제사는 문묘일무의 기원이다. 따라서 문묘일무는 악무(樂舞)로서 예악문화의 정수(精髓)이다. 제사를 받는 대상 즉 신 또는 자신의 선조라든가 스승 등 존경할 만한 인물과, 제사를 드리는 주체인 사람은 이 춤을 통해 만남이 수월해진다고 믿었다.
제신(祭神)은 일정한 무술(巫術)의식을 갖추고 있는데, 제헌, 예배, 기도, 점복 외에 아주 중요한 내용은
바로 악무(樂舞)로써 신을 맞이하고(迎神), 신을 즐겁게 하며(娛神), 신을 떠나보낸다(送神)고 하는 것이다(임태승, 2004; 423).
‘제신’은 제사를 받들어 모시는 이를 말한다. 그는 제사의 의례를 진행하는 중에 제물을 바치는 것, 공손한 마음으로 절을 하며 숭배하고 존경을 표하는 것, 정중하게 염원하는 것, 점을 쳐서 길흉(吉凶)을 예측하는 것 등 일정한 의식으로 예를 갖춘다. 이것 외에 매우 중요한 것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악무(樂舞)라고 하였다.
‘악무’는 악(樂)의 한 형태로 발현되는 춤을 일컫는다. 위 인용구에서는 제례절차에서 악무가 중요하다고 했다. 악무 즉, 춤과 음악은 신을 맞이하고 떠나보내기까지 막중한 임무를 띤 요소라는 것이다. 이는 제사를 거행하는데 예와 악은 반드시 공존해야 한다는 것을 시사해준다(박지선, 2016; 49). 또한 오늘날 예철학에 기울어 있는 유가학파를 재조명할 단서이기도 하다.
고대 악무의 형태는 오늘날의 무당춤에서 확인할 수 있다. 무당춤의 절정은 반복적인 도약으로 무아지경의 경지에 이르는 것이 대표적이다. 상하 수직적 움직임의 반복으로 황홀경에 이르는 순간, 신과 만나게 된다고 믿었다. 하늘과 땅을 잇는 매개로서의 악(樂)은 제사의식에서 필수 불가결한 수단이었다.
제사 중 제물을 바치거나 기도를 하는 예의 절차에서도 악무의 동작과 흡사한 것이 있다. 제물을 바칠 때 위[天]를 향해 양팔을 높이 떠받쳐 올렸다 내리는 행위, 기도할 때 양손을 머리 위로 합장하여 가슴 앞에 모아 내리는 행위 등 역시 하늘과 땅을 연결하려는 염원이 담긴 몸짓으로 볼 수 있다.
예악을 실천하는 제사의식은 ‘모신다’, ‘올린다’와 같은 동사가 뒤따른다. 이 표현은 모두 위를 향해 높인다는 뜻을 내포한다. 예악을 실천하고 제사를 올리는 주체는 인간이다. 땅[下]에 사는 인간이 하늘[上]을 우러러 신을 받들어 모신다는 의미이다. 고대사회의 상하 관계, 즉 북쪽과 남쪽은 〈그림 1〉과과 같이 수직적인 위치에 있다.
제사에서 신의 뜻을 절실히 구하는 인간은 신과 수직적 관계에 있을 수밖에 없다. 고대에는 하늘과 땅의 절대적 수직 관계로 인해 땅에서의 수평 관계에 대한 개념은 미비했을 것이다. 하늘신의 존재에 대한 간절한 믿음으로 생존이 최우선의 가치였기 때문이다.
고대에는 하늘에 제사하는 것이 필수불가결한 일이었다. 인간을 만물의 영장이라 칭하기 전, 고대인은 그들의 삶을 하늘의 신에게 의존하는 존재였다. 그러므로 지도자[제사장‧무당]는 하늘과 소통하며 제의를 주관하는 신성한 존재로서 종교적 임무를 지님과 동시에 정치적 권력을 거머쥐며 하늘의 대변자로 자리를 확고히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인간은 과학기술의 발전과 함께 다양한 변화를 맞이했다. 더이상 하늘의 신께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의 삶을 개척할 능력을 얻게 되며 인문주의(人文主義) 사조가 출현한다. 이 시점부터 종교적 기능보다 사회정치적 기능이 중시되어 제사에 대한 인식과 제사를 거행하는 자의 지위에도 변화가 나타났다(허동성, 2013; 160-161). 기존 신학 중심의 체계에 반기를 들고 ‘인간다움’을 존중하여 인간성을 회복하려 했기 때문에 신이 거한다고 믿는 하늘에 대한 절대적이고 복종적이었던 시대가 막을 내리게 된다.
신에 대한 믿음에 균열이 일어나며 절대권력자의 세력 또한 약화되었다. 고대의 절대적 수직 관계는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위계질서로 대체되기에 이르렀다. 제사를 통해 앞선 자들에 대한 경외심과 그들의 지혜를 본받고자 하는 정신만은 변함이 없지만, 하늘과 땅의 수직적 상하 관계는 인간을 중심으로 한 수평적 앞뒤의 개념으로 변화를 맞이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하늘을 우러러보며 신을 주체로 하던 제사가 후대로 내려오며 하늘을 상징하는 북쪽은 인간을 중심으로 한 앞의 방향으로 변화를 맞이한다.
생사를 신께 의존하던 시기를 거쳐 인간의 해결능력이 고조됨에 따라, 방향의 설정도 상하 개념보다 수평적 시각이 적용되어 앞쪽을 북쪽으로 하고, 그곳을 하늘이라 의미를 두었을 것이다(박지선, 2006; 50). ‘신’이라는 상징적 의미를 지니며 가늠 불가한 하늘을, 그 상징만 간직한 채 인간이 거처하는 땅으로 옮겨 인간의 관리체계에 속하게 한 것이다. 따라서 신이 계신 하늘을 우러러보며 거행하던 제사는, 땅으로 내려와 인간의 앞쪽에 신을 모시기에 이르렀다. 이는 〈그림 1〉과 〈그림 2〉를 비교했을 때, 상하 수직 관계에서 앞뒤 수평적 관계로 변한 상대성으로 볼 수 있다. 높은 하늘을 상징하는 것처럼 단상을 높여 왕을 받들어 모시는 형태로 변모한 것으로 해석 가능하다.
오늘날의 문묘일무는 공자와 그의 사상을 승계한 성현들을 모셔놓은 신위(神位)를 향해 춤춘다. 신위는 북쪽에 단상을 높여 꾸며 놓는다. 인간이 신께 올리는 예악(禮樂)의 실천으로 하늘과 땅을 잇는 고대 악무의 형태를 계승한 것이다. 여기에서 북쪽은 사람을 중심으로 앞을 바라보는 방향이다. 이는 인문주의가 꽃피우며 신에서 사람 중심의 사회로 변화하게 된 방위개념이 적용된 것이라 하겠다.
2. 신도(神道)에 중심한 인위(人位)의 배치(동-서)
일무를 춤추는 위치는 역사적으로 변화를 겪었다. 『궐리지』, 『남옹지』, 『세종실록』, 『정조실록』, 『시악화성』, 『홍재전서』 등의 문헌에는 일무를 춤추는 위치에 대해 글과 그림으로 기록하고 있다. 이를 통해 문무와 무무를 동서쪽에 배치, 문무만을 동서쪽에 배치, 서쪽에 배치 등 학자들의 여러 주장에 의해 변화한 기록이 확인된다(임학선, 2011; 87-113). 학자들은 역사의 시공을 넘나드는 고문헌의 고증을 통해 시비를 가리며 원형에 가까운 무위를 복원하는데 무던히 애를 써온 것이다.
일무에는 춤추는 법도가 있다. 그 법도는 무원들이 서는 위치(舞位)에 무표를 세우고 이를 따라 진퇴(進退)하며 춤추기 시작한 것에서 비롯된다(임학선, 2011; 83). 문묘일무는 진퇴를 행하며 동쪽과 서쪽에서 춤추는 이가 서로 마주하는 상대(相對)와 서로 등을 지는 상배(相背), 몸을 굽히고 펴는 궁신(躬身)과 평신(平身) 등 음양의 짝을 이루는 동작으로 구성된다(임학선, 2011; 249-250). 상반되는 것은 음과 양의 대립에서 비롯된 형태이다. 『반궁예악전서(頖宮禮樂全書)』에 전하는 내용을 보자.
서쪽 계단의 무생은 동쪽을 향하고, 동쪽 계단의 무생이 동쪽을 향하면 서쪽 계단의 무생은 서쪽을 향한다.
만약 동쪽 계단에 있는 이가 왼손과 왼발로 춤추면 서쪽 계단에 있는 이는 오른손과 오른발로 춤춘다.
마주보거나 등지는 것, 빠르거나 천천히 하는 것, 무생의 서는 위치에서 우러르고 굽어보는 일들이 모두 짝을 이룬다.
지금은 동쪽 계단의 한쪽 그림만을 새겨놓았지만, 배우는 자는 마땅히 그러한 뜻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장안무, 1656; 563).
한국의 문묘일무는 문무와 무무를 함께 제사에 올린다. 문무는 『춘관통고(春官通考)』, 무무는 『악률전서(樂律全書)』에 기록된 〈대무(大武)〉에 근거한다. 이 두 문헌은 1인이 그려진 무보를 수록하고 있지만, 고대부터 시대별로 전해진 일무의 무보(舞譜)에서 신도(神道)를 중심으로 반대편에 상대적인 춤사위를 취하는 무원이 있다는 것이 확인된다.
〈사진 1〉의 신도는 성균관 문묘에서 대성전의 정문인 신삼문(神三門)에서부터 신위까지 길게 뻗어있다. 신이 출입하는 길인 신도는 인간이 밟고 지나 다녀서는 안되며, 일무를 춤추는 동쪽 무원과 서쪽 무원을 구분하는 기준이 되기도 한다. 위 인용구와 아래 『악률전서』〈인무〉의 무보에서 음양대대의 미학을 실현하는 문묘일무의 춤사위가 확인된다.
〈그림 3〉은 주재육(朱載堉)이 산재해있던 전통춤을 그림으로 그리고 기록하여 편찬한 『악률전서』의 「육대소무보」에 수록된 무보이다. 그는 “옛날의 육무(六舞)에서 오직 인무만이 그림으로 남아있으니 마땅히 그것을 미루어 넓혀 춤의 법도로 삼아야 한다”(주재육, 1606b; 379)라고 했다. 이것은 고대로부터 전해진 춤을 이어받아 전통을 올바로 계승했다는 중요한 단서이다. 따라서 주재육은 전통양식을 고수한 〈인무〉를 바탕으로 하여 나머지의 춤을 복원해 무보로 남겼다.
또한 1인무‧2인무‧3인무‧4인무로 구분해 무원의 춤추는 방향을 구체화하며 춤구성에 대한 이해를 도왔다. 이 무보는 무원의 좌측, 즉 서쪽을 기준으로 삼는다(임학선, 2006; 97-98). 〈그림 3〉에서 왼쪽의 2인 구성 그림은 그 오른편의 1인이 서쪽 무원이라는 것을 알게한다. 오른쪽의 4인 구성 그림은 그 오른편 3인 구성 그림 중 위의 1인 역시 서쪽 무원이라는 것을 알게한다.
문묘일무의 구조 배치에서 동쪽과 서쪽의 수평적 관계는 신도(神道)를 중심으로 한 춤추는 이들 사이에서 일어난다. 신도를 중심으로 동서를 나눈 것은 음과 양의 구분이다. 동서로 열을 지어 나누어 선 것도 음양의 구분이고, 각 위치에서 상반된 동작을 행하는 것도 음양의 대대적 표현이다. 문묘일무의 춤동작은 현재까지 발굴된 17종의 무보를 통해 그 실체를 확인할 수 있다. 시대에 따라 복식과 춤동작이 다소 변화한 모습도 보이지만, 동서 무원이 대대적 춤사위를 구현하는 것과 무구의 사용 등 큰 차이는 발견되지 않는다(임학선, 2006; 257-260) 따라서 문묘일무는 동과로 무위를 구분하여 대대적 관계에서 음양의 조화를 이루는 춤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오늘날 석전제에 봉행하는 문무와 무무의 무보는 1인무로 그려진 무보이다. 그러나 『반궁예악전서』에서 “(무보에) 한쪽 그림만을 새겨놓았지만, 배우는 자는 마땅히 짝을 이루는 춤임을 깨달아야 할 것”(장안무, 1656; 563)이라 전한 바를 상기시켜야 한다. 문무 『춘관통고』와 무무 『악률전서』의 〈대무〉가 1인무로 그려져 있지만, 음양대대적 춤사위를 행한다는 것에는 변함이 없다. 이해를 돕기 위해 『악률전서』에 수록된 고대의 춤 〈인무〉를 함께 제시해보겠다.
『반궁예악전서』에서 “동쪽에 있는 자가 서쪽을 향하면 서쪽에 있는 자는 동쪽을 향하고, 동쪽에 있는 자가 동쪽을 향하면 서쪽에 있는 자는 서쪽을 향한다”, “동쪽에 있는 이들이 왼쪽을 사용하여 춤추면 서쪽에 있는 이들은 오른쪽을 사용하여 춤춘다”(장안무, 1656; 563)라고 했다. 이것은 〈그림 4〉와 〈그림 5〉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동쪽과 서쪽에서 춤추는 이가 마주보고 등지는 음양대대적 춤사위로 나타난다.
다음의 〈그림 6〉과 〈그림 7〉은 각각 『춘관통고』와 『악률전서』에 수록된 무보로 “우러르고 굽어보는 일들이 모두 짝을 이루고 있다.”(장안무, 1656; 563)라는 것에 해당하는 춤사위이다.
문묘일무는 음양의 원리에 입각해 만들어진 춤으로, 혼자가 아닌 상대와 짝을 이루어 추는 상대무(相對舞)라 할 수 있다(유혜진, 2015:233). 무원은 신체를 중심으로 상하, 좌우, 내외의 공간적 대칭성을 주요 모티브로 삼아 음양대대적 춤사위를 구현한다.
동서 무원은 거울을 마주보듯 동작을 대칭적으로 운용한다. 양쪽 무원이 동시에 대칭의 형상을 그려내는 구조에서 한쪽 무원은 반드시 상대편이 있어야 대칭 형상이 가능하다. 반쪽으로서는 기능하고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즉 문묘일무의 무원은 전체의 부분으로서 존재할 수밖에 없다(조춘영, 2013:169)는 뜻이 성립하게 된다.
이는 대대 원리의 개념을 잘 반영한다. 서로 반대인 동시에 대립보다 서로에게 의존하는 상반상성(相反相成)의 대대 관계는 〈그림 4, 5, 6, 7〉에 잘 나타난다. 서로 마주보고 등지고, 우러르고 굽어보는 문묘일무의 춤사위는 인간사회의 예(禮)를 표상한다. 츰동작은 마음으로부터 비롯되는 것이기 때문에 덕을 표현한 일무는 사람이 지녀야 하는 순수한 마음을 상징한 춤이기도 하다(임학선, 2011; 269). 「악기」편에서는 “덕은 성품의 단서이며, 악(樂)은 덕의 꽃이다. 악은 거짓으로 할 수 없다(김승룡, 2002a; 496)”라고 했다. 문묘일무를 춤추는 이들 사이에서는 인간사의 덕망 있는 처신으로 끊임없이 소통하고 협력한다. 그러면서 서로를 완성시켜주는 길로 나아간다.
Ⅳ. 문묘일무의 방위개념에 나타난 유가예악의 철학적 함의와 음양대대의 미학
석전제의 문묘일무는 음양대대의 구조적인 미학이 동서남북 방위에 적용되어 유가철학의 의미를 실현한다. 문묘일무를 춤추는 이들이 신위(神位)를 향해 서 있는 자리[북-남], 춤추는 이들의 춤동작과 그들이 위치한 무위[동-서]는 음양의 법칙에 거스름 없이 대대적 형상을 취한다.
〈표 1〉은 음양대대의 미학을 실현한 문묘일무의 방위개념, 즉 이 춤의 구조적인 배치의 의미이다. 천지간 수직적 관계에서의 제사는 신성하고 불가사의한 것으로 그 의미가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컸다. 이와 달리 동쪽과 서쪽의 수평적 관계는 방위개념이 평면적 성격으로 변화하며 제사의 의미가 축소되기에 이른 것을 상징한다.
수직적 관계에서의 하늘은 절대적이다. 생존을 위해 복을 구하려는 고대인은 천도(天道)를 따르고자 했다. 그 뜻에 위배될 경우 하늘은 권선징악(勸善懲惡)의 주체로서, 천도(天道)를 더욱 공고히 한다고 여겼다. 그러므로 덕을 통해 천명(天命)에 순응하는 이덕배천(以德配天)과 덕을 존중함으로써 민심을 보존하는 경덕보민(敬德保民)의 관념 안에서, 덕을 갖추기 위한 구체적 행위규범으로서의 예의 기능이 강화되며(장정호, 2011; 165) 천도를 따르고자 한 것이다.
『대학(大學)』의 첫 구절에서는 “큰 학문의 길은 밝았던 덕을 밝히는 데 있다”(이기동, 2006; 21)라고 하며 인간사에서 덕을 쌓는 일의 중요성을 피력한다. 『중용(中庸)』에 전하는 유가가 추구하는 삶의 최고 원칙은 자기에게 주어진 본성을 극진히 발휘하고 다른 사람의 본성도 극진히 발휘하고, 나아가 만물의 본성까지 극진히 발휘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천지의 화육(化育)을 도와주는 경지에 이르는 것이다(유영모, 2012; 205). 본성을 발휘하는 것은 심신을 닦는 수신(修身)의 과정이 따르는데, 이는 덕을 밝히는 ‘명덕(明德)’의 인생관에 바탕을 둔 것이라 하겠다.
예악(禮樂)은 덕을 쌓기 위한 수양의 방편이다. 예와 악은 음양과 같이 하나의 덩어리로 교착할 때 그 진가를 발휘한다. 따라서 “군자는 예와 악은 잠시도 몸에서 떼어놓을 수 없다”(김승룡, 2002b; 827)라고 했다. 다음은 『예기(禮記)』에 전하는 예악교육, 그리고 『반궁예악전서』에 기록된 문묘일무 교육의 내용이다.
예와 악이 교착하여 밖으로 드러나는 것이니, 그런 까닭에 그 이룸이 즐거워 공경하고 온화하고 문아한 기상이 있게 된다(예기ㆍ문왕세자 8-12)
그런 연후 15살이 되면 상(象)을 춤췄다. 훗날 예물을 바치며 응수(應酬)하는 예는 앞서 문무(文舞)에서 익히고,
진영(陣營)에서 공격하여 적을 주살하는 법은 무무(武舞)에서 익히니, 이는 삼대의 영웅이 장수와 재상의 선발을
많이 할 수 있었던 까닭이다(장안무, 1656; 556).
문묘일무는 음양과 예악이 교착한 결정체이다. 따라서 인간사회의 덕목을 함양하게 하는 문묘일무의 예악교육은 예로부터 군자가 되기 위한 하나의 방편이었다.
‘하늘-땅’, ‘신-인간’, ‘북-남’, ‘동-서’의 개념은 문묘일무의 구조 배치에 나타난 음양대대의 미학이다. 인간과 절대자 사이의 상호성, 존재의 연속성, 인간 공동체와 자연 사이의 유익한 상호작용과 같은 최고의 가치들이 철학‧종교‧신학의 영역에서 합당한 주목을 받기 위해서는 ‘물질-정신’, ‘몸-마음’, ‘인간-자연’, ‘창조자-피조물’의 배타적 이분법이 초월되어야만 한다(뚜웨이밍, 2007:174).
하나의 통일적 개념으로부터 이분법적 상징들이 생겨났으므로 ‘음’과 ‘양’ 같이 양분된 실재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원초적인 하나를 양분하여 이해해온 것이므로 다시 그들을 종합해내는 것이 더 중요(김종서, 2008:183-184)한 것이다. 음과 양은 대대 관계로 유행하며 하나의 태극(太極)을 이룬다(이광호, 2007; 32). 결국 음과 양은 따로 형성된 것이 아니라, 하나의 통일체를 더욱 값지게 하기 위한 분별적 고찰임을 인지해야 한다.
음양이 대대적 관계이지만 하나의 태극인 것과 같이, 예와 악 또한 통일적 개념으로 인식해야 한다. “성인은 악(樂)을 만들어 하늘의 덕과 응하게 하고, 예를 제정해 땅의 덕과 짝하게 하였으니, 예와 악을 분명하게 갖추는 것은 하늘과 땅이 할 일이다”(지재희, 2003; 75)라고 했다. 고대사회에서 예악의 조화로운 교육으로 인재를 양성하고, 군자가 예와 악을 한시도 몸에서 떼지 않은 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지재희, 2003; 155). 예악문화의 정수로서 음양대대의 미학을 품은 문묘일무는 태초 이래 인간이 복된 삶을 영위하고자 하는 염원을 담아 더불어 조화를 이룩하는 인간사회를 반영하고, 이를 무용예술로 상징화한 아이콘이라 하겠다.
Ⅴ. 결론
고대의 예악문화가 담겨있는 제사에서 악무(樂舞)의 역할은 신을 땅에 맞이하고 돌려보내는 데 있어서 즐거움을 주기 위한 것이었다. 국가무형문화재 제85호로 지정된 석전대제(釋奠大祭)는 공자의 정신을 추모하는 제사이다. 문묘일무(文廟佾舞)는 석전제에 올리는 악무(樂舞)로써 유가 예악의 정수(精髓)이다.
이 연구는 동양철학에 기반을 둔 한국 문묘일무의 미학 연구로서, 문묘일무의 방위개념을 음양대대(陰陽對待)의 미학적 관점에서 살펴봄으로써, 이 춤에 설정된 무위(舞位)와 춤구성을 파악하는데 목적을 두었다. 이를 위해『주역(周易)』음양론에 기인한 음양대대의 원리에 대해 알아보았다. 그리고 고대 제사와 유가예악의 관점에서 문묘일무의 방위개념을 해석하여, 이 춤의 무위와 춤구성에 설정된 음양대대의 미학적 현상에 대해 알아보았다. 이를 통해 고대의 제례무로서 문묘일무에 담긴 유가예악의 철학적 함의와 음양대대의 미학에 대해 연구를 진행하였다.
음양대대 미학의 원리는 동양에서 가장 오래된 경전, 유교의 삼경 중 하나인 『주역(周易)』 음양론의 사유체계와 관련하여 찾아볼 수 있었다. 음양의 법칙은 천지가 생성하고 변화하는 법도를 따른다. 음과 양은 상대가 존재함으로써 비로소 자신의 존재가 가능해지는 상호보완적인 대대적 관계이다. 따라서 음양대대의 미학은 상반상성(相反相成)의 원리를 기반으로 삼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대대(待對)를 이루며 한 번씩 교차를 거듭하는 음과 양의 규칙적인 변화는 천도(天道)이다. 그래서 『주역』에서는 음양의 규칙을 잘 이어가는 것을 선(善)이자, 성(性)이라 했다. 선함을 지키며 성스럽게 삶을 영위하는 군자의 모습은 음양대대의 미학을 실현하는 문묘일무의 구조 속에서 드러난다. 이를 규명하기 위해, ‘북-남의 신위(神位)와 인위(人位)의 배치’와 ‘동-서의 신도(神道)에 중심한 인위(人位)의 배치’의 대대적인 현상을 분석했다.
문묘일무는 공자와 그의 사상을 승계한 성현들을 모셔놓은 신위(神位)를 향해 춤춘다. 신위는 하늘을 상징하는 북쪽이다. 고대에는 하늘에 제사하며 복을 기원하는 것이 필수 불가결한 일이었다. 제물을 바칠 때 양팔을 높이 떠받쳐 올렸다 내리는 행위, 기도할 때 양손을 머리 위로 합장하여 가슴 앞에 모아 내리는 행위, 악무를 행할 때 반복적인 도약으로 무아지경에 이르는 행위는 하늘과 땅을 연결하여 복을 구하려는 염원이 담긴 몸짓이다. 당시 하늘과 땅, 즉 북쪽과 남쪽의 방위개념은 인간이 예와 악을 극진히 행하며 신께 올리는 제사의식으로 인한 수직적 관계로 설정된 것임을 이해할 수 있었다.
인문주의(人文主義)가 일어난 시점부터 제사에 대한 인식과 제사를 거행하는 자의 지위에도 변화가 나타났다. 천지[북-남]는 고대의 절대적 수직 관계라기보다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위계질서로 대체되며 상대적인 수평적 개념이 도입되었다. 오늘날의 문묘일무가 앞쪽[북]에 단상을 높여 신위를 모시고 제사하는 모습이 그것이다. 천지간 수직적 관계에서의 제사는 신성하고 불가사의한 것으로 그 의미가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컸지만, 수평적 관계는 기존과는 상대적으로 제사의 의미가 축소되기에 이른 것을 파악할 수 있었다.
석전제에 봉행하는 문무와 무무는 1인무로 그려져 있지만, 문묘일무의 역사적 무보와 기록을 통해 이 춤은 상대무라는 점을 발견했다. 동쪽과 서쪽 무원이 서로 마주하고 등지고, 우러르고 굽어보는 동작은 모두 음양의 대대(對待)적 현상이라는 것을 밝혔다. 이 대대적 춤사위는 상반상성(相反相成)의 관계에서 끊임없이 소통하고 협력하며 서로를 완성시켜주는 행위라는 것을 문헌과 무보의 분석을 통해 알 수 있었다.
고대 제례무로서 유가철학의 함의를 담고 있는 문묘일무는 음양대대의 미학을 실현한 춤이다. 북쪽과 남쪽에 신위(神位)와 인위(人位)를 배치해 복을 구하고자 예와 악(樂)으로 극진한 정성과 공경을 표한다. 또한 신이 출입하는 통로인 신도(神道)를 중심으로 동쪽과 서쪽을 구분하여 대대를 이루는 춤사위로써 인간사의 덕망 있는 처신을 표방한다. 음과 양이 대대 관계로 유행하며 하나의 태극(太極)을 이루는 것처럼 예와 악도 하나의 덩어리로 교착할 때 그 진가를 발휘한다. 문묘일무는 음양과 예악이 교착한 결정체이다. 이처럼 문묘일무에 나타나는 음양대대적 현상은 역(易)의 이치에 따라 끊임없이 운행하는 우주 자연의 모습을 담아내는 춤이며, 이 모든 것은 덕을 밝혀[明德] 유가의 이상세계를 이룩하기 위한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즉 문묘일무는 덕을 쌓아 현실에서 이상세계를 펼치고자 한 유가의 정신을 표상한 춤이다. 예악문화의 정수로서 음양대대의 미학을 품은 문묘일무는 태초 이래 인간이 복된 삶을 영위하고자 하는 염원을 담아 더불어 조화를 이룩하는 인간사회를 반영하고, 이를 무용예술로 상징화한 아이콘이라 하겠다. 이로써 한국 문묘일무의 무위(舞位)와 춤구성은 고대 유가예악문화의 철학적 함의와 음양대대의 미학 원리에 바탕을 둔 방위개념에 의해 설정되었다는 것을 밝혔다.
이 연구는 문묘일무가 철학적 관점에서 다뤄지던 제례무(祭禮舞)라는 사실을 넘어, 무용예술로서 미학적 가치를 발견할 수 있었다는 것에 의의가 있다. 문묘일무의 진정한 의미를 발견하는 철학적 고찰과, 춤의 상징적 요소를 분석하는 미학적 탐색을 통해 유가예악문화의 정수로써 문묘일무의 위상을 높일 수 있을 것이다. 동시에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으로서 이 춤의 올바른 보전과 전승 및 전통문화 콘텐츠 개발 또한 기대한다. 문묘일무의 다각적인 연구가 활성화되기를 기원하며, 무용예술의 학문적 발전에 일조하길 바란다.
※ 참고문헌과 영문 초록(Abstract)은 원문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원게재: 한국무용연구, 40권 3호(2022), pp. 105~129
https://www.kci.go.kr/kciportal/ci/sereArticleSearch/ciSereArtiView.kci?sereArticleSearchBean.artiId=ART002789706
최기섭
[국문초록]
국가 간의 이동에 현격한 제약이 가해지고 있는 작금의 팬데믹 시대에, 모빌리티 매체로서 스코어를 활용한 무용 제작은 그러한 제약에 구애받지 않고 예술의 창작과 수용을 가능케 한다. 그러나 모빌리티 기술은 언제나 사회적 권력 관계의 생산 및 재생산에 긴밀히 관여해 왔던바, 이 같은 관점에서 이 논문은 스코어를 통한 동시대 안무 작업을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나아가 정치적 저항의 실천으로서 그것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우리가 오래도록 춤이라고 불러왔던 것이 무대에서 사라지기 시작한 이른바 컨템퍼러리 댄스에서 안무의 새로운 과업은 운동성을 수행하는 책무로부터 몸을 해방시키는 것이 된다. 이러한 책무는 기록되고 규정된 바에 따라 움직일 것을 명령하는 안무의 초기 개념에서 연원한다. 기록을 위한 매체로서 출현한 스코어는 움직임을 통제하고 권력 관계를 재생산하면서 안무의 규범을 확립한다. 제롬 벨은 스코어를 매개로 작품 제작을 외주화함으로써 주체를 상품화하고 개인의 창조성을 재원화하는 신자유주의적 경제 질서에 가담하고, 이를 통해 안무의 규범을 반복한다. 이처럼 한때 몸의 해방을 추구했던 동시대 안무 실천이 현대 자본주의의 원리에 포섭되어 버린 오늘날의 상황에서 마텐 스팽베르크는 춤의 잠재성에 주목한다. 그의 작업에서 춤은 주체성마저 상품화하는 자본주의에 맞서 주체성의 바깥을 경험케 해주는 역량으로 나타난다. 이 논문은 이를 익명으로서의 춤으로 명명하고 그러한 춤추기의 실천이 전지구적 거리두기의 시대에 ‘함께 있음’의 진정한 의미를 성찰하는 미적, 정치적, 윤리적 실천임을 제안한다.
[주제분류] 동시대 무용, 컨템퍼러리 댄스
[주제어] 스코어, 안무, 모빌리티, 제롬 벨, 마텐 스팽베르크
I. 들어가며
2년 넘게 지속되고 있는 유례없는 팬데믹 위기는 무용이 제작되고 수용되는 방식에 불가피한 변화를 가져왔다. 라이브 스트리밍, 녹화 영상 송출, 댄스필름 등 무용의 영상화는 극장이 폐쇄되고 국가 간 작품 초청이 취소된 상황에서 즉각적인 대안이 되었다.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별 정책이 시행되면서 국내 안무가들의 작품을 극장에서 직접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소규모 관객들에게 주어지고 있지만, 감염의 위험과 해외입국자 제한 및 격리 조치 등 국가 간 이동에 수반되는 현실적인 제약들은 안무가와 무용수가 국경을 넘어 작품을 발표할 수 있는 가능성을 계속해서 불투명하게 만들고 있다.
전 세계 대부분의 극장과 페스티벌, 컴퍼니들이 여전히 영상화 작업과 온라인 플랫폼 개발에 몰두하고 있는 가운데, 팬데믹이 부정할 수 없는 일상으로 경험되기 시작한 2020년 중반 무렵부터 무용 제작 방식에 있어서 흥미로운 시도가 이루어졌다. 안무가는 자국에 머물러 있으면서 외국에 거주하는 무용수를 섭외하여, 화상 회의 프로그램을 통한 연습을 거쳐 무용수가 거주하는 국가에서 작품을 발표하는 방식이 그것이다. 2020년 국내에서 발표된 제롬 벨(Jérôme Bel)의 〈갈라(Gala)〉와 마텐 스팽베르크(Mårten Spångberg)의 〈그들은, 배경에 있는, 야생의 자연을 생각했다(They Were Thinking, in the Background, Wild Nature)〉가 이에 해당한다. 이와 같은 원격-비대면 제작 방식에서 창작을 위한 중요한 도구로 사용된 것은 스코어(score)이다. 줌이나 스카이프와 같은 화상 회의 프로그램이 비대면의 만남을 주선한다고 해도, 몸과 움직임까지 화면 너머로 주고받기에는 제한적이다. 무용수가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에 대한 안무적 방법론이 기입된 스코어는 물리적 거리에 제약받지 않고 작품의 컨셉과 안무가의 아이디어를 실어 나를 수 있는 매체로서 기능한다.
우리는 봉쇄, 국경 폐쇄, 자가 격리, 통금 등 이동이 제한된 전례 없는 정지 상태를 겪고 왔다. 작금의 현실을 새로운 종교로서 작동하는 보건과 국가 권력이 결합된 바이오보안을 명목으로 하는 예외상태로 진단하는 아감벤(Giorgio Agamben)은, 우리가 세계대전과 전체주의 독재 하에서도 감히 상상할 수 없었던 이동의 자유를 제한받고 있다는 사실에 우려를 표한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이동의 제약에 구애받지 않는 스코어를 활용한 예술 작품 제작은 일견 자유의 억압에 대한 정치적 저항의 움직임으로, 권력에 종속되지 않는 예술 고유의 역량의 실천으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자율적인 이동이 자유나 해방의 상징이라는 생각은 어쩌면 환상에 불과한 것일 수 있다. 이동의 자유는 그것을 통제하고 관리하는 권력과 직결되어, 타자(여성, 동물, 노예)에 대한 신체적 지배와 착취로 이어져 온 오랜 불평등의 역사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봉쇄, 폐쇄, 격리의 제약에서 자유로운 스코어와, 그것을 매개로 하는 예술 작품의 대안적인 제작 방식을 환영하기에 앞서 스코어의 이동성이 발생시키는 효과에 대해서 질문해야 할 것이다.
모빌리티 패러다임(mobility paradigm)은 이러한 질문에 접근하기 위한 유용한 분석틀 중 하나가 될 수 있다. 모빌리티 패러다임은 기차, 자동차, 모바일 기기와 같은 모빌리티 테크놀로지를 통한 사람, 사물, 정보의 이동이 생산/재생산하는 사회적 권력 관계를 분석하는 이론으로서, 사회를 정태적이고 부동적인 것에서 동태적이고 유동적인 것으로 바라보는 관점의 전환에 기초한다. 이 글에서 스코어를 모빌리티 매체로 이해함으로써 주목하고자 하는 사회적 권력 관계는 신자유주의적 지배와 예속의 관계이다. 모빌리티 패러다임은 자유주의의 심부에서 ‘세계는 흐른다’는 가정을 발견하고, 신자유주의의 사상 속에서 자원과 자본, 심지어 예술 작품의 무제한적 흐름 및 이동의 이데올로기를 포착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모빌리티 패러다임은 재난이라는 특수한 상황을 특정 형식의 모빌리티가 지닌 권력이 가시화되는 계기로 보고 있다는 점에서 팬데믹 시대 스코어를 활용한 예술 작품 제작을 비판적으로 검토할 수 있게 해 준다. 마지막으로 모빌리티 패러다임은 안무의 이념을 이동성의 측면에서 재고할 수 있는 관점을 제공한다. 안무는 그 기원에서 춤을 기호로 고정시키며 탄생한 개념으로서, 기록된 바에 따라 움직임을 따를 것을 명령하는 안무의 이념은 공간과 시간의 제약을 넘어 주체를 원격으로 통제하는 모빌리티 권력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 기초하여 이 글은 제롬 벨의 〈갈라〉를 통해 어떻게 스코어가 안무의 이념을 실현하면서도 신자유주의적 권력 관계의 재생산 과정에 틈입하는지 검토하고, 마텐 스팽베르크의 〈그들은, 배경에 있는, 야생의 자연을 생각했다〉를 통해 어떻게 스코어가 춤의 존재론에 대한 사유의 전환이자 정치적 저항의 실천으로서 예술 작품의 창작에 기여하는지 규명하고자 한다.
II. 춤, 안무, 스코어의 역사적 관계의 변천
스코어는 기호, 그림, 도표, 텍스트 등을 활용하여 대상이 수행해야 할 동작과 행위, 위치와 경로, 박자와 타이밍 등을 기록한 것으로서, 오늘날 안무가들과 퍼포먼스 작가들이 널리 사용하고 있는 창작의 방법론 중 하나이다. ‘안무 스코어’, ‘댄스 스코어’, 퍼포먼스 스코어’ 등 다양한 이름으로 일컬어지는 것만큼이나 스코어는 그 형식도 예술가들마다 매우 다르고 임의적인 것을 특징으로 한다. 왜냐하면 예술가는 자신의 작품 창작을 위해 스코어를 만들 뿐, 다른 누군가에게 읽히기 위해 만드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역사적으로 스코어는 보편적이고 엄밀한 언어(기호)로 구성되어 그것을 만든 예술가 외에 다른 이들도 스코어를 읽고 사용했던 시기가 있었다. 즉, 16세기 무렵 유럽에서 처음 출현한 이후 20세기에 이르기까지 스코어는 춤의 보존과 재상연을 목적으로 기보법(notation)이라는 체계적인 방법론을 토대로 만들어졌다. 춤을 어떻게 기호화할 수 있는지에 대한 매뉴얼로서 무용기보법의 출현은 안무 개념의 탄생을 동반했다는 점에서 무용사적 의의가 있다. 그 어원에서 알 수 있듯 안무(choreography)란 춤(choreia)을 쓴다(graphia)는 의미에서 만들어진 개념으로서, 기보법을 통해 춤을 기록하여 스코어를 만드는 일은 곧 안무를 의미했다.
춤을 기록하는 것으로서 안무가 출현하고 그 개념이 확립된 유럽에 반해 미국에서는 20세기 중반에 이르러서야 안무의 개념이 널리 알려지게 되었는데 이때 안무는 기존의 의미와 다른, 춤을 만드는 것을 의미했다. 이 당시 스코어는 몇몇 안무가들에 의해 사용되었는데 춤을 스코어에 쓰는 행위 자체가 안무였던 시기에 스코어가 춤과 안무를 매개하는 필수적인 도구였다면, 이제 스코어는 춤을 만들기 위한 안무의 여러 가지 방법론들 중의 하나가 된 것이다.
그런데 20세기 이전 춤의 보존을 위한 스코어와 20세기 중반 안무의 방법론으로서 스코어를 비교해 보면 어떤 차이를 발견할 수 있다. 전자의 경우 스코어에는 춤 동작의 프레이즈와 시퀀스가 매우 상세하게 기록되는 반면, 후자의 경우 스코어에는 구체적이고 정확한 춤 동작보다는 주로 뛰기나 걷기와 같은 행위에 중점을 둔 움직임들이 기록된다. 이러한 차이는 춤에서 안무로의 관심의 전환에서 기인한다. 이본느 라이너(Yvonne Rainer), 스티브 팩스턴(Steve Paxton)을 위시한 1960년대 일군의 실험적인 안무가들은 음악에 종속되어 있거나 및 내적 감정을 표현하기 위한 수단이었던 움직임을 거부하고 다른 무엇에도 봉사하지 않는 움직임 그 자체에, 말하자면 움직임의 순수성에 주목하기 시작한다. 움직임 자체를 움직임의 목적에 두었던 이들의 실험은 춤의 존재론적 본질에 대한 탐구였다는 평가를 비평적, 이론적 층위에서 불러일으키긴 했지만, 안무가들의 실제적인 관심은 샐리 베인즈(Sally Banes)가 지적하듯 춤보다는 “움직임 그 자체를 전경화”하기 위한 “안무적 구조”를 만들어내는 데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관심의 전환은 오랜 기간 유지되어 온 안무와 춤 사이의 강력한 결속 관계에 균열을 일으키는 계기를 마련한다. 즉, 안무란 춤을 기록하는 일은 물론 아니거니와 그렇다고 춤을 만드는 것이라는 정의에도 부합한다고 볼 수 없는 움직임과 그 구조를 만드는 일에 가까워진 것이다.
춤에서 안무로의 이 같은 전환을 일컬어 안드레 레페키(André Lepecki)는 “안무적 전환(choreographic turn)”이라고 말한다. 그에 따르면 20세기 중반 안무적 전환을 기점으로 무용이라는 예술 장르는 고유의 역사적, 미학적 성취를 이루고 이에 관한 지식과 담론을 생산하기 시작하는데, 이러한 경향은 이른바 ‘컨템퍼러리 댄스(contemporary dance)’가 시작된 시기로 평가받는 1990년대에 이르러 본격화된다. 제롬 벨로 대표되는 이 시기의 안무가들은 춤이란 운동성을 바탕으로 유려하게 지속되는 움직임이라는 오랜 관념을 실험대 위에 올린다. 이에 따라 뛰기나 걷기와 같은 순수한 움직임조차 안무의 대상에서 밀려나 느린 움직임, 더 나아가 정지된 몸, 심지어 그마저도 제거된 사물이 그 자리를 대신 차지하게 된다. 그리하여 이제 안무는 춤이라고 부를 법한 것을 만드는 일과는 전혀 무관한 것이 된다. 안무란 무엇인지에 대한 안무가들의 대답은 안무와 춤 사이에 이제는 아무런 관계가 남아있지 않음을 보여준다. 가령 윌리엄 포사이드(William Forsythe)에게 안무란 “공간과 시간 속에서 사물들(things)을 조직하는 것”이며, 자비에 르 루아(Xavier Le Roy)는 안무를 “인위적으로 무대화된 행동(들), 그리고/또는 상황(들)”로 정의하고, 조나단 버로우스(Jonathan Burrows)는 “안무란 아무 것도 선택하지 않기로 선택하는 것을 포함한, 선택하기에 관한 것”이라고 말한다.
우리가 춤이라고 불러왔던 것들이 무대에서 사라지고 안무적으로 조직, 무대화, 선택된 것들이 부각되는 이러한 경향을 일컬어 레페키는 “춤의 소진”이라고 진단하고, 보야나 스베이지(Bojana Cvejić)는 “확장된 안무”라고 평가한다. 춤의 소진을 대가로 확장된 안무의 지평에서 안무가들의 과제는 움직임을 조직하고 그것을 전경화하는 일에서 더 나아가 몸과 움직임, 공간과 시간, 극장과 관객을 둘러싸고 구성되었던 기존의 인식론적 체제를 비판하고 미적, 정치적, 존재론적 질문을 관객과 공유하는 데에 놓인다.
레페키는 안무의 새로운 과업을 “키네틱한(kinetic) 책무의 종속”에서 벗어나 “주체를 몸의 측면에서 재고”하는 데 있다고 본다. 여기서 그가 키네틱한 책무의 원천으로 지목하는 것은 “쓰기(writing)의 명령에 따라 움직이도록 훈육된 몸을 창조하는 기술로서 안무”이다. 이는 춤을 기록하는 것으로서 안무의 ‘기록’을 단순한 쓰기의 기술이 아닌 이데올로기적인 기술로 파악하는 것이다. 즉, 안무는 춤을 쓰기의 형식으로 고정시켜, 기록되고 규정된 바에 따라 움직임을 수행하는 것을 춤추는 몸이 따라야 할 책무로서 명령한다. 이에 따라 움직임을 스펙터클하게 전시하고자 하는 욕망이야말로 무용의 근대성을 구성하게 된다. 따라서 레페키에게서 춤의 소진이란 곧 안무의 명령을 소진하는 것이며, 이는 키네틱한 책무로부터 몸을 해방시켜 정치적으로 재구성할 수 있는 사건이 된다.
안무의 명령적 힘과 그 이념을 고찰하는 레페키의 논의에서 주목할 수 있는 것은, 쓰기로서 안무에 의해 주체가 훈육되는 방식이 이동성에 기초한다는 데에 있다. 레페키는 안무를 단순한 언어 기호가 아닌 지금 여기에 부재하는 자와의 만남을 가능케 하는 원격소통(telecommunicational)의 역량으로 파악한다. 마스터의 춤이 기록된 스코어는 그의 죽음 이후에도 그것을 읽는 모든 이들로 하여금 마스터와 만나 그의 춤을 출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시간과 공간의 제약 너머에서 마스터의 목소리를 실어 날라 몸과 움직임에 대한 규범을 원거리에서 생산하고 통제하는 안무. 이러한 점에서 안무는 “원격-이송(tele-transportation)의 테크놀로지”가 된다.
안무의 이동성이 야기하는 효과의 또 다른 측면은 수잔 리 포스터(Susan Leigh Foster)의 연구에서 찾아볼 수 있다. 포스터는 18세기 프랑스 파리의 무용 마스터들의 스코어가 도시에서 지방으로, 프랑스에서 주변 국가로 마치 유행하는 패션처럼 퍼져 나갔다는 사실에 주목하고 이와 같은 이동이 주변 지역들에 대한 미적 우위를 강화하는 식민주의적 확장을 의미한다고 평가한다. 그러나 안무의 식민주의적 확장은 유행의 전파와 이를 통한 미적 위계의 확립에만 그치는 것은 아니었다. 이전까지 구비 전승의 방식으로만 이어져왔던 유럽 각 지역의 다양한 춤의 전통들은 안무의 체계적이고 절대적인 원칙에 흡수되고 유통됨으로써 점차 단일한 형식의 춤으로 균일화되었기 때문이다. 극장 예술로서 발레가 유럽 전체를 대표하는 무용 형식으로 확립된 것은 안무의 이동이 야기한 식민주의적 확장의 대표적인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마스터로부터 제자에게로, 중심부로부터 주변부로의 안무의 이동에는 스코어라는 특수한 모빌리티 매체를 운용할 수 있는 기술과 권한을 바탕으로 한 어떤 권력이, 말하자면 타자의 움직임을 통제하는 권력이 작용한다. 미미 셸러(Mimi Sheller)는 ‘자유로운 모빌리티’라는 것은 서구 사회에 깊숙하게 뿌리박힌 환상이라고 지적한다. 전쟁, 노예제, 강제이주 등 부당한 역사적 사건들을 되돌아보았을 때 이동할 수 있는 능력 혹은 머물러 있기를 자발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권한은 언제나 타자의 움직임을 제한하거나 강요함으로써 발휘되어 온 것이기 때문이다. 권력은 언제나 모빌리티를 행사하거나 통제함으로써 행사되어왔다는 점에서 셸러는 “정치적인 것은, 근본적으로 이동성을 갖는다”고 주장한다. 권력의 양태로서 모빌리티의 오랜 역사를 추적하는 하가르 코테프(Hagar Kotef) 역시 “움직임에 대한 통제는 주체-위치(subject-positions)가 형성되는 방식에서, 그리고 어떤 체제가 특정한 정치적 질서를 확립하는 과정에서 언제나 중심이 되는 문제였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언제, 어디로, 어떻게 이동하는지 묻는 것뿐만 아니라 그러한 이동을 가능케 하는 조건과 그에 따른 결과를 묻는 것은 곧 정치적인 물음이 된다.
셸러는 권력이 불평등한 모빌리티 양식들을 어떻게 형성하고 움직임의 지배와 통제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질문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어떤 형태의 ‘전복적 모빌리티’가 지배적인 모빌리티 체제에 저항할 수 있는지 모색한다. 마찬가지로 동시대 안무가들은 안무의 지배적 이데올로기에 대한 비판에서 멈추지 않고 책무로부터 해방된 주체를 주축으로 하는 대안적 형식의 안무를 상상한다. 그러나 해방의 성취나 정의의 확립은 결코 한 번 달성되면 끝나는 그런 단발성의 과제가 될 수 없다. 언제나 우발적이고 수행적으로 작동하는 권력은 다양한 조건과 맥락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몸을 추적, 감시, 통제, 지배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에 맞선 전복적이고 저항적인 실천 역시 우연적 주체들에 의한, 일시적이면서도 유동적인 정치적 참여의 실천으로서 지속되어야 한다.
이어지는 글에서는 권력의 근대적 구조 아래에서 안무가 어떻게 주체성을 포획하는지에 대한 문제의식을 제기하고 대안적인 안무 실천을 통해 컨템퍼러리 댄스의 지평을 열었다고 평가받는 제롬 벨이, 스코어를 활용한 최근의 작업에서 어떻게 신자유주의적 질서에 복무하게 되었는지, 그리하여 그가 어떻게 마스터로부터 제자에게로, 중심부로부터 주변부로 이동하는 안무의 규범을 반복하게 되었는지 살펴 볼 것이다.
III. 신자유주의적 경영 모델로서 스코어: 〈갈라〉
제롬 벨의 〈갈라〉는 전문 무용수 및 아마추어, 장애인 및 비장애인 등 다양한 신체조건, 젠더, 나이, 직업을 가진 20명의 퍼포머가 출연하는 공연이다. 이 작품은 2015년 초연 이후 현재까지 세계 각지에서 100회 이상 재공연되는 동안 단 며칠의 간격을 두고 여러 대륙에서 동시적으로 공연이 이루어지기도 했는데, 이는 작품 제작을 외주화하는 독특한 제작 방식 덕분이다. 안무가는 자국에서 벗어나지 않은 채 현지의 퍼포머들을 고용한 후 스코어에 기초한 단기간(7일)의 리허설을 거쳐 현지에서 무대화하는 〈갈라〉의 제작 방식은 여러 국가와 지역에서 체계적으로 프로덕션을 운영할 수 있는 주된 요인이 된다.
이러한 제작 방식은 위임된 퍼포먼스(delegated performance)의 전형적인 특징에 해당한다. 클레어 비숍(Claire Bishop)은 1990년대부터 등장하기 시작한 위임된 퍼포먼스를 “비전문가들 혹은 다른 분야의 전문가들을 예술가 대신 특정 시간 및 장소에 참석해 공연하는 일을 하도록 고용하고, 예술가의 지침(instructions)을 따르도록 하는 행위”라고 정의한다. 이 같은 방식에 따라 제작된 위임된 퍼포먼스는 두 가지 특징적인 경향을 드러낸다. 하나는 고용된 이들이 젠더, 인종, 나이, 장애, 직업 등 자신의 사회경제적 정체성을 수행한다는 점에 있으며, 다른 하나는 반복적인 재공연이 이루어진다는 점에 있다.
비숍은 궁극적으로 동시대 노동의 윤리와 미학에 개입하는 예술 실천으로서의 가능성을 위임된 퍼포먼스에서 전망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그는 예술적 성취를 저해하는 불온한 요소들이 위임된 퍼포먼스에 다분히 내포되어 있음을 지적한다. 이 요소들은 앞서 언급한 두 가지 특징적 경향과 연관된다. 첫째, 위임된 퍼포먼스는 사회적 정체성을 드러내는 주체들을 예술 작품을 위한 재료로 이용하고 전시함으로써 재현의 윤리에 대한 논쟁을 야기할 수 있다. 둘째,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한 아웃소싱이라는 글로벌 자본주의의 기업 경영 모델을 차용한 위임된 퍼포먼스는 반복적인 재생산을 통해 퍼포먼스의 경제를 확립하고, 예술가들은 이 경제에 도전하기보다는 유지하려고 한다. 이처럼 물화된 주체들을 전시하고 신자유주의적 경제 질서에 의존하는 위임된 퍼포먼스는 상징자본을 강화하면서 인기리에 소비되는 상품으로 전락한다. 비숍은 이러한 경향의 위임된 퍼포먼스를 일컬어 “아트 페어 아트(art-fair art)” 혹은 “갈라 아트(gala art)”라고 말한다.
〈갈라〉가 어떤 점에서 ‘갈라 아트’의 면모를 지니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예술가의 지침’으로서 스코어가 이 작품에서 작동하는 방식과 그것이 야기하는 효과를 비판적으로 검토함으로써 확인할 수 있다. 〈갈라〉의 스코어는 출연진 섭외에서부터 작품의 의미, 장면 구성, 일자별 연습 내용에 이르기까지 작품 제작을 위한 매우 상세한 지침이 적힌 텍스트로 구성되어 있다. 여기서 출연진의 구성과 섭외에 관한 내용은 스코어에서 가장 핵심적인 지침이 된다. 다양한 사회경제적 범주의 출연자들을 무대에 세움으로써 우리 사회의 공동체를 재현하고 더 나아가 극장을 “민주적인 수단”으로 제시하고자 하는 작품의 의도를 위해서는 출연진의 구성 자체가 관건이 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벨은 전문 무용수 및 배우를 비롯하여 연령대에 따른 여러 아마추어들을 포함한 총 스무 명의 섭외 대상을 스코어에 목록화한다. 섭외 대상에는 장애인도 한 명 포함되는데 반드시 휠체어를 타는 지체장애인이어야 한다는 점이 명시되어 있다. 이처럼 스코어는 장애를 가진 출연자의 섭외 조건을 신체적으로 특정하는데, 이는 신체적 특징이 외관으로 드러나는 다운증후군 출연자 또한 섭외 대상으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다른 출연자들이 전문가나 비전문가, 아동이나 노인 등 사회적 정체성에 따라 구분되는 것에 반해 휠체어를 타는 장애인과, 심지어 장애인이라는 사회적 정체성과도 무관한 의료학적 질환자를 특정하는 것은 벨이 상상하는 민주적 공동체란 결국 시각적 스펙터클로만 구현되어 전시되고 마는 것은 아닌지에 대한 우려를 낳는다. 또한 섭외 대상 중 퀴어 출연자는 보깅(voguing)과 같은 퀴어적 맥락의 춤을 출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조건이 제시된다. 전문 무용수를 제외한 다른 아마추어 출연자는 원하는 춤을 자율적으로 선택해서 출 수 있는 데 반해 유독 퀴어 출연자에게만 국한된 스코어의 이 같은 지시는 정체성을 수행하는 방식을 사회적 통념에 따라 규정함으로써 특정 주체를 특정 형상으로 고정시킬 수 있다. 물론 스코어에 지시된 내용만을 놓고 작품 자체를 판단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갈라〉는 위임된 퍼포먼스에 대한 비숍의 지적처럼 재현의 윤리에 대한 논쟁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순 없다.
다른 한편 〈갈라〉의 제작 방식이 얼마나 반복적인 재생산을 통해 퍼포먼스의 경제를 확립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이 작품이 스코어에 기반한 아웃소싱이라는 효율적인 경영 모델의 도움으로 단 6년 간 세계 각지에서 100여 차례가 넘게 반복적으로 제작되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갈라〉가 예술 작품의 글로벌 상품화를 목적으로 신자유주의적 기업 운영 체제에 따라 경영되고 있다는 사실만큼이나 주목해야 하는 것은 그것이 야기하는 식민주의적 효과이다. 〈갈라〉의 국내 프로덕션 총감독을 맡은 김윤진은 작품 제작 과정에서 현지 측의 권리와 목소리를 묵살하고 스코어에 철저히 따를 것을 지시, 감독하면서 위계적이고 일방적인 태도로 일관한 제롬 벨 컴퍼니를 비판한 바 있다. 유사한 맥락에서 싱가포르 연출가 옹 켕 센(Ong Keng Sen)은 팬데믹 이후 스코어를 통해 작품 제작을 현지에 아웃소싱하는 경향을 비판하면서, 결국 모든 것을 통제하고 지시하는 것은 멀리 떨어져 있는 예술가이며 이는 또 다른 형태의 식민화를 야기하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이들의 문제 제기가 시사하는 바는, 오늘날 자본과 자원의 원활한 흐름을 장악하고 있는 것이 다국적 기업이듯이 예술 작품의 생산과 흐름을 주도하는 것 역시 권력을 지닌 예술가 및 예술 단체라는 사실이다. 특히 팬데믹이라는 특수한 재난 상황은 동시대 예술의 창작과 담론의 생산을 둘러싼 위계적인 지형도를 우리의 시야에 드러낼 뿐만 아니라 그것을 강화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스코어를 만들고 작품 제작의 외주를 맡기는 쪽은 주로 유럽권의 예술가들이며 스코어를 받아 하청을 맡는 쪽은 비유럽권, 주로 아시아와 남아메리카의 예술가들이다. 팬데믹 이후 지난 2년 간 그 반대의 경우는 여태껏 없었다. 미미 셸러는 재난이 드러내는 모빌리티의 불평등한 양식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위기 상황에서 사회적 취약성은 새로운 형태의 착취가 자리 잡는 경로가 된다. 모빌리티 권력을 가진 자들에겐 그 편리함이 기회가 되기 때문이다.”
〈갈라〉가 제작되는 전 세계 모든 프로덕션에서 벨은 자신의 권한을 컴퍼니 조감독에게 일임한 채 제작 과정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야말로 부재하는 마스터로서 자신의 목소리를 원격-이송의 기술에 담아 이동시키는 벨은 그러한 목소리의 요구에 타자가 따르는 과정에서 주체성을 한계 짓고 위계를 확립하는 안무의 규범이 개입될 수 있음을 간과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반대의 의견도 제기될 수 있다. 가령 게랄트 지그문트(Gerald Siegmund)에 따르면 안무가 없이 컨셉의 이동만으로 작품이 만들어지는 〈갈라〉에서, 안무가의 부재는 퍼포머들에게 최대한의 통제권과 자율권을 허용함으로써 그들 스스로를 표현할 수 있게 한다. 앞서 지적한 퀴어 출연자의 경우를 제외한다면 퍼포머들은 무대 위에서 자신의 욕망에 따라 원하는 춤을 자유롭게 출 수 있다는 점에서 그의 주장은 어느 정도 타당하다. 그러나 안무가를 대신해서 스코어가 이동하면서 만들어내는 권력 관계를 고려한다면 지그문트가 말하는 통제권과 자율권은 작품에서 지극히 제한적으로만 부여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갈라〉의 사례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동시대 안무 실천에서 스코어가 비판적 사유를 위한 방법론이 되기 위해서는 스코어 그 자체에 내재한 안무의 명령적 힘과 이동성이 야기하는 권력 관계에 대한 비판적 성찰이 전제되어야 한다. 이러한 자기반영적 접근은 갈라 아트라는 오명에도 불구하고 위임된 퍼포먼스에서 미적 실천으로서 가능성을 발견하고자 하는 비숍에게도 중요한 원리가 된다. 즉, 미적 실천으로서 위임된 퍼포먼스는 “물화 그 자체를 논하기 위한” 목적에서 주체를 물화한다. 그렇다면 동일한 맥락에서 이렇게 말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미적, 정치적 실천으로서 대안적인 안무는 신자유주의적 체제 속에서 특정한 주체성을 생산하는 스코어 그 자체를 논하기 위한 목적에서 스코어를 사용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아래의 글에서는 마텐 스팽베르크의 스코어 작업을 고찰할 것이다. 신자유주의에 대한 스팽베르크의 문제의식은 단지 퍼포먼스의 재생산에 관한 것만은 아니다. 신자유주의가 가장 갈망하는 재원이자 상징자본의 대표적인 양태는 예술가의 창조적 주체성에 있으며, 이는 동시대 안무 실천에 대하여 그가 가진 문제의식의 출발점이 된다.
IV. 익명으로서 춤추기를 위한 스코어: 〈그들은, 배경에 있는, 야생의 자연을 생각했다〉
마텐 스팽베르크의 〈그들은, 배경에 있는, 야생의 자연을 생각했다〉는 서울, 베를린, 런던의 야외 공공장소에서 총 네 명의 무용수가 동시간대에 함께 춤을 추는 공연이다. 애초에 스팽베르크는 한국을 직접 방문하여 자신의 기존 작품을 발표할 예정이었으나, 팬데믹의 여파로 방문이 무산되면서 결국 새로운 작품을 비대면 방식으로 제작하게 되었다. 작품 제작을 위한 무용수들과의 첫 온라인 만남에서 스팽베르크는 무용수들에게 스코어를 전달하면서 “춤을 자기 것으로 만들거나, 자기를 표현하기 위해 춤을 이용”하지 말 것을 당부한다. 스팽베르크의 이 같은 제안은 동시대 안무 실천에서 사용되는 스코어의 어떤 경향성을 경계하기 위함이다. 즉, 오늘날 안무가들의 스코어는 정확한 동작 시퀀스를 지시하기보다는 열린 지침에 기반하여 적극적인 의사소통과 창조적인 해석을 도모하고, 이를 통해 무용수 고유의 ‘자기’를 드러내길 요구한다. 언뜻 보기에 이것은 무용수의 자율적인 주체성과 권한성을 위한 자리를 마련하는 것 같다. 그러나 스팽베르크에 따르면 무용수가 자신의 상상력을 안무가의 지침에 투여하고, 그러한 시도에 대한 자신의 경험과 관점을 공유하고, 종국에는 그 지침을 자기 것으로 체화하여 자기 실현의 단계에까지 가 닿아야 하는 과정은 삶 자체를 재원화하는 현대 자본주의의 전반적인 속성과 겹친다.
『일상의 재원화(Financialization of Daily Life)』에서 랜디 마틴(Randy Martin)은 재원이란 “자기 취득(acquisition of self)”을 위해 삶과 비즈니스를 병합하고 이를 토대로 자본을 운영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컨베이어 벨트 위에 놓인 포드주의적 상품 대신 인적 자원이 새로운 재원의 대상이 된 포스트 포드주의 시대에, 자기 자신은 지속적인 투자가 이루어져야 할 핵심 자원이 되었으며 자기 계발을 위한 노동의 새로운 근간 또한 (성공과 성취를 전제로 하는) 개인의 창조성과 (생산성의 증대를 전제로 하는) 언어적 소통 능력에 놓이게 되었다. 파올로 비르노(Paolo Virno)는 특히 “언어적, 인지적 습관의 공유”야말로 포스트 포드주의적 노동 과정을 구성하고 “모든 노동자들은 말하고 생각하는 능력을 발휘하는 만큼 생산 과정에 진입”한다고 지적한다. 흥미로운 것은 최종 결과물이 없는 활동이라는 점에서 비르노는 언어적, 인지적 임금 노동을 퍼포먼스로 이해하고, 노동자의 일을 무용수나 연주자가 그러하듯 스코어를 수행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는 점이다. 그에게서 노동자의 스코어는 “지성(intellect)”으로서, 이는 오늘날의 기업들이 노동자에게 노골적으로 요구하는 가장 중요한 임무가 된다.
이 정치 사상가는 생각지 못했겠지만 사실 오늘날 무용수가 수행하는 스코어 역시 노동자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과정 중심 작업’, ‘프랙티스 지향 작업’, ‘리서치 기반 작업’ 등 언제부턴가 등장하기 시작한 새로운 작업 방식들은 무용수의 노동이 더 이상 동작을 만들고 수행하는 물질적 행위에만 있지 않고, 말하고 생각하는 비물질적 행위에 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이러한 지성으로서 스코어가 부상하게 된 배경에는 무엇보다 춤의 소진이 있다. 기교와 운동성에 바탕을 둔 춤이 폐기된 1990년대 이후 안무가들의 작업은 개념적, 언어적, 인지적 성격을 강하게 띄게 되었다. 그 변화의 선두에는 이른바 개념무용(conceptual dance) 혹은 농당스(non-danse) 경향의 대표적인 안무가인 제롬 벨이 위치한다. 벨은 특히 재현의 체제에 저항할 수 있는 몸의 정치적 역량에 주목해왔는데, 이를 위해 그는 다양한 신체 조건과 사회문화적 배경을 지닌 무용수의 몸을 무대에 전경화하는 방식을 주로 사용함으로써 확장된 안무의 지평을 열었다. 기교적 스펙터클을 위해 훈육되고 획일화된 몸이 아닌, 몸의 정체성, 개별성, 특이성을 전면에 부각시킨 벨의 시도가 강력한 정치적 힘을 발휘했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오늘날 개인의 창조성, 언어, 지성마저 잡아 삼킨 자본주의는 결국 예술가 주체마저 재원화하여 상품으로 만들어 버림으로써 정치적 힘을 무력화한다. 보야나 쿤스트(Bojana Kunst)가 주장하듯 “주체성의 생산은 자본주의의 핵심”으로서, 자본주의 하에서 예술가는 “더욱더 창의적으로, 정치적으로, 혁명적으로, 역동적으로 일을 할수록 주체성은 더욱 규범화되고 통제”된다. 이러한 맥락에서 레페키는 인격체(person)로서 현존하는 무용수를 예술 작품의 주요한 미적 특질로 추켜세우는 오늘날의 경향을 경계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자기(Self)에 대한 신자유주의적 자기-투자(self-investment)”를 추켜세우는 일이기 때문이다.
스팽베르크의 문제의식은 포스트 포드주의와 같은 신자유주의의 생산 수단이 어떻게 안무의 새로운 규율을 구성하는지에 대한 비판적 성찰을 바탕으로 한다. 2015년 스톡홀름에서 열린 ‘포스트댄스 컨퍼런스(Postdance Conference)’는 이에 관한 그의 생각을 구체적으로 개진한 자리였다. 컨퍼런스의 기조 발표에서 스팽베르크는 지난 20여 년간 안무에 잠식당해 소진되어버린 춤의 역량을 다시 사유해야 할 필요성을 역설한다. 그에게서 안무란 일련의 체계와 기호를 통해 일관성을 지닌 구조를 만드는 일로서, 언어로 작동하는 것이다. 언어는 목적성과 지향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성공이나 성취의 여부를 측정할 수 있으며 그러한 한에서 “우리는 언어가 허용하는 것만을 상상할 수 있다.” 여기서 안무의 규율에 대한 스팽베르크의 비판은 두 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첫째, 자본주의가 언어 혹은 지성을 포획했다면 우리가 안무를 통해 상상하는 모든 것은 자본주의적 상상이다. 둘째, 주체성의 생산이 자본주의의 핵심이라면 안무가 생산하는 주체성 역시 자본주의적 주체성이다. 스팽베르크가 안무가 아닌 춤에 주목하는 이유는, 한때 몸의 정치적 재구성을 가능케 함으로써 저항의 기제로 작동했던 안무가 이렇듯 자본화된 언어와 규범화된 주체성을 생산하는 고도 자본주의의 원리에 포섭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이에 스팽베르크는 춤에서 다음과 같은 역량을 바라본다. “첫 순간, 가장 날것인 순간의 춤, 아직 형식(form)을 획득치 않은 최초 형식의 춤은 조직화되지 않은 그 무엇”으로서 “가능성의 영역을 초과”하고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는다.” 따라서 춤은 이 세계를 언어 너머에서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춤에 대한 이 같은 전망을 통해 스팽베르크가 주장하고자 하는 바는 안무의 소진이 아니다. 춤의 역량은 조직화되지 않은 최초의 순간에 잠재되어 있을 뿐, 결국 춤이 이 세계에서 실체를 가지고 지속되기 위해서는 어떤 구조나 형식을 입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는 무언가를 명령하고 길들이는 장치임에도 불구하고 안무를 새로운 장치로 재조립함으로써 안무와 춤 각각의 역량을 새롭게 모색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들은, 배경에 있는, 야생의 자연을 생각했다〉의 스코어는 안무를 새로운 장치로 재조립하기 위한 방법론이 된다. 이 작품의 스코어는 ‘B, P, SN, CSS’와 같은 알파벳으로 이루어져, 각각 동작을 구성하는 단위가 되어 다양한 시퀀스의 조합을 만들어낸다. 이러한 동작의 조합을 수행하는 데 있어서 스코어는 무용수의 창조적인 해석을 요구하지 않는다. 오히려 스코어는 무용수가 이행해야 할 동작 단위들을 명확하게 지시하기 때문에 무용수에게 허용되는 자유는 거의 없다. 이는 스팽베르크가 무용수들에게 당부한 것처럼, 춤을 자기 것으로 만들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다. 3주에 걸쳐 매주 주말에 공연된 이 작품의 스코어가 매주 바뀔 뿐만 아니라 무용수들 각자에게 주어지는 스코어 또한 서로 다르다는 점 역시 같은 이유라고 볼 수 있다. 춤을 자기 것으로 만든다는 것, 스팽베르크는 이를 다른 말로 “주체가 주체성을 수행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주체성이나 정체성의 수행은 언어가 작동하는 방식과 같아서 언제나 목적성을 가지고 그 결과에 대한 승인을 요구한다. 스팽베르크에게서 승인이나 확인이 지닌 한계는, 무언가가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받고 나면 “그 이상은 아무 것도 아니게 된다는 점”에 있다. 다시 말해 그것은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범주에, 가능성의 영역에 머무른다. 그렇다 하더라도 스코어의 지시를 엄격히 따르도록 하는 것은 주체성 수행의 반대편 극단에서 주체를 물화하는 안무의 이데올로기에 자발적으로 포획되어 버리는 건 아닐까? 그러나 스팽베르크에게서 춤은 주체성의 문제 너머에 있는 것이다. 그에게 춤이란 “주체가 형식을 수행하는 것”으로서, 주체와 형식 사이의 긴장이야말로 춤을 그토록 복잡하면서도 풍요롭게 만든다. 단지 형식을 수행할 뿐인 주체와, 주체의 승인을 요구하지 않는 춤 사이의 관계 속에서 주체는 가능성의 영역 너머로 “춤을 싣는 매개가 되고, 익명(anonymous)이 된다.” 이러한 주장에 따른다면 스코어는 주체가 수행하는 바로 그 형식의 역할을 맡아 익명으로서 춤추기에 기여하고, 이를 통해 춤을 주체성의 체계 바깥에서 경험하게 해준다.
〈그들은, 배경에 있는, 야생의 자연을 생각했다〉에서 서울의 두 무용수는 난지한강공원, 낙산공원 등의 공공장소에서 해가 질 무렵에 춤을 추기 시작한다. 공공장소에서 이루어지는 공연이기에 누구나 와서 볼 수 있고 언제든 떠날 수 있다. 무용수들은 일정한 패턴의 동작을 나지막이 반복할 뿐 춤에 그 어떤 욕망도 담지 않고 담담하게 스코어를 수행한다. 노을이 지고 주변의 소리가 춤과 뒤섞이면서 어느 순간 사람들 또한 춤에서 무언가를 발견하고자 하는 욕망을 내려놓고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린다. 그렇게 춤은 석양이 있는, 흐르는 강이 있는, 산책하는 사람들과 고양이가 지나가는 배경으로 물러난다. 배경 속에서 무용수들이 익명으로 존재한다면, 그것은 그들이 춤을 통해 자기를 과시하거나 드러내지 않고 단지 스코어가 지시하는 바에 따라 동작을 반복하는 가운데 일정한 리듬 속에서 자기를 지속적으로 지워내기 때문일 것이다. 이처럼 어떤 주체가 리듬 속에서 춤을 추며 익명이 되는 과정은 레비나스(Emmnuel Lévinas)가 익명을 논의하면서 제시하는 대표적인 사례이기도 하다. 그에게 리듬은 예술의 고유한 기능이자 익명성의 조건이 된다. 그에 따르면 개념이나 언어와 같은 인식의 양태로 대상과 관계를 맺을 때 우리는 늘 주도권을 가지고 능동적으로 대상에 접근하는 데 반해, 우리가 예술과 관계를 맺을 때 드러나는 것은 우리의 “근본적인 수동성”이다. 왜냐하면 리듬은 우리를 사로잡아 그것에 휩쓸리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리듬 속에서 더 이상 자기(oneself)는 없고, 자기에서 익명으로의 이행과 같은 것이 있을 뿐이다.” 그러나 리듬에 따라 춤을 출 때 익명이 된 주체는 자기의식이 완전히 결여된 채 무의식의 나락으로 빠지지 않는다. 레비나스에 따르면 리듬은 “춤추기를 억제”함으로써 의식과 무의식의 중간 지대에서 춤을 지속하게 해주는 규칙이자 형식의 기능을 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배경에 있는, 야생의 자연을 생각했다〉에서 무용수들이 한편으로 춤을 즉흥적으로 추지 않는 이유는 즉흥이란 형식의 체계 바깥에서 무의식적인 반응을 매 순간 모색 해 나가는 과정일 것이기 때문이며, 다른 한편으로 무용수들이 엄격한 형식 속에서 키네틱한 책무를 이행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인격체로서 현존하려고도 하지 이유는 둘 모두 의식적인 자기 노출과 자기 성취에 바탕을 둔 실천일 것이기 때문이다. 익명으로서 춤추기란 춤을 소유하여 의식적인 자기를 드러내는 것도, 혹은 춤에 잡아먹혀 무의식적인 물화의 지배하에 놓이는 것도 아닌 단지 주어진 형식을 수행하면서 춤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스팽베르크는 스코어를 추는 것은 춤과 함께 존재하기 위한 방식이라고 말한다. 춤을 소유하지 않으면서 춤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춤과 나란히 존재하는 것, 그것은 삶의 평범한 매 순간이 그러하듯 특별한 주목을 요구하지 않는다. 배경으로 물러나 익명에 의해 수행되는 이 춤에 대한 우리의 시선은 대상에까지 도달하지 못하고 길을 잃는다. 레비나스는 익명적 존재에 대한 우리의 “길 잃어버림(égarement)이 미감적 효과를 일으킨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것은 미감적인 것일 뿐만 아니라 정치적인 것으로서 안무의 이념에 대한, 자본주의의 지배에 대한 저항이기도 하다.
런던과 베를린에 있는 두 무용수의 존재는 문자 그대로 대상에 도달할 수 없는 ‘길 잃어버림’의 사건을 만들어낸다. 관객들은 외국의 다른 무용수들이 같은 시간에 춤을 춘다는 정보만을 제공받을 뿐 그들의 이름도, 얼굴도 알 수 없다. 익명의 이들은 다른 무용수들과 함께 춤을 추는데, 같은 시간에 추기 때문만이 아니라 정교하게 구성된 콰르텟을 추기 때문에 함께인 것이다. 네 명의 무용수에게 주어진 스코어는 각기 다르지만, 동작 단위들의 정교한 조합을 통해 모두가 솔로를 추면서도 어느 순간에는 두 무용수가 같은 동작으로 듀엣을 추고, 다른 순간에는 세 명이 트리오를, 또 다른 순간에는 네 명이 콰르텟을 춘다. 무용수들은 스코어의 구성 원리를 숙지하고 있기에 서로 보이지 않아도 각각의 순간에 자신이 누구와 함께 춤을 추는지 알고 있다. 서로 보이지도 않고 관객들 역시 볼 수도 없는 춤은 우리의 눈앞에 대상으로 현실화되어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의 승인과 확인을 무력화한다. 그러나 그 춤은 현실화되어 있지 않을지언정 실재하는 것으로서 이 세계에 주어진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지만 그 무엇도 될 수 있는 그 춤은, 바로 그런 이유에서 가능성의 영역 너머에서 사변적인 상상으로만 가늠할 수 있는 잠재성의 역량을 지닐 수 있다.
V. 나가며
스팽베르크는 콰르텟의 춤이 팬데믹 상황에서도 함께 추는 춤을 향한, 친밀감을 향한 갈망의 제스처이자 그 갈망에 귀를 기울이는 행위라고 말한다. 비록 팬데믹은 서로 만날 수 없도록 이들을 떨어뜨려 놓았지만 어쩌면 그가 염원하며 발견하고자 했던 춤의 역량은 불가피하게 제작될 수밖에 없었던 이 작품의 우발성에서 가장 뚜렷하게 드러나고 있는지도 모른다. ‘함께’를 향한 그의 갈망은 최초의 원격 퍼포먼스를 시도한 백남준의 바람이기도 했다. 그는 1984년 인공위성 통신을 활용하여 뉴욕과 파리의 예술가들의 퍼포먼스를 실시간으로 중계한 이후에, 원격 만남의 목적을 묻는 질문에 이렇게 답한다. “신은 인류를 번식시키기 위해 사랑을 창조했지만, 부지불식간에 인간은 단지 사랑하기 위해 사랑하기 시작했다.” 우리를 고립시킨 팬데믹 위기는 누군가에게는 타자를 억압하고 착취하는 새로운 기회가 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위기 속에서 예술은 함께 있음 그 자체를 위한 함께 있음을, 연대 그 자체를 위한 연대를, 다시 말해 우리의 윤리적인 공동체를 사유할 수 있는 역량을 그 어느 때보다 실천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예술은 언제나 그래왔듯 무수한 전환의 흐름 속에서 낡은 것을 폐기하고 새로운 것을 찾아 나서기 때문에 익명으로서 춤 또한 동시대 무용 예술이 가 닿아야 할 최종적인 종착지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미 낡은 것으로 치부된 춤에서 고유의 역량을 발견하고자 했던 스팽베르크의 시도는, 뉴노멀 시대 예술에 필요한 것은 어쩌면 ‘뉴’로의 전환(轉換)이 아니라 지나가 버린 ‘노멀’을 다시금 대면하는 전회(轉回)에 있음을 우리에게 제안한다. 이러한 제안에 따라 우리는 춤뿐 아니라 안무와 극장, 그리고 관객에 대해서도 다시금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 주석, 참고문헌, 영문 초록(Abstract)은 원문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원게재: 美學 제88권 2호(2022년 6월), pp.173-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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