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출신 발레무용가이자 일본무용계의 대부로 군림한 시마다 히로시(白成珪. 1919~2013)의 1주기를 기념하는 학술세미나가 8월 8일(금) 오후 4시 연낙재 세미나실에서 개최되었다. ‘식민지 시대 고독한 예술가의 초상, 조선 출신 발레무용가 시마다 히로시의 삶과 예술’이라는 주제로 열린 이번 행사는 한국근대춤연구회와 춤자료관 연낙재가 주최했다. 연낙재 ‘무용가를 생각하는 밤’ 열 네 번째 행사이기도 한 이번 모임에는 무용계 원로 및 전문가 약 30여명이 참여해 진지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되었다.
이종호 무용평론가의 사회로 최태지 국립발레단 명예 예술감독의 ‘일본 문화계에서 시마다 히로시의 위상’, 장지영 국민일보 기자의 ‘조선의 발레무용가 시마다 히로시가 일본 무용계에 끼친 영향’, 성기숙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의 ‘일제강점기 동경으로 간 조선의 무용가들’ 등의 발제가 있었다.
토론에는 김정수 단국대 명예교수, 김화례 경희대 교수, 김긍수 전 국립발레단 예술감독, 문영철 한양대 교수, 김순정 성신여대 교수, 남도현 문화칼럼리스트 등이 참여했다. 김학자 원로 무용가의 생생한 증언과 회고를 통해 시마다 히로시의 삶을 반추하는 시간을 가졌다.
시마다 히로시는 전북 익산 출신으로 휘문보고를 졸업하고 연희전문 재학 중 동경으로 건너가 러시아 황실발레단 출신 엘리아나 파블로바 문하에서 발레를 체득하고 핫도리시마다발레단을 창단하여 일본 발레의 부흥을 위해 크게 기여했다.
일본 패망이후 1946년 폐허 속에서 시마다 히로시가 기획하고 출연한 <백조의 호수> 최초 전막 공연은 일본발레사에서 전설로 남아있다. 그는 해방이후 한국 발레의 기틀을 다진 임성남 초대 국립발레단장의 스승으로 유명하다. 또한 80년대 초반 재일교포인 최태지 국립발레단 명예 예술감독을 국내 무용계에 천거하기도 했다. 2013년 타계하기까지 한국 발레의 초석을 다지는데 기여했으며, 한일 무용교류에도 가교역할을 한 중요한 인물이라 할 수 있다.
장지영 국민일보 기자는 시마다 히로시의 성장과정과 무용활동 그리고 일본발레계에 끼친 영향에 대해 폭넓게 조명했다. 시마다 히로시가 발레에 입문하게 된 계기와 공연을 위해 분투하던 젊은 날의 치열한 활동, 그리고 말년 신국립발레단의 발전을 위해 헌신하다가 타계하기까지의 삶을 입체적으로 고찰했다. 특히, 조선인으로서 일본에 귀화했지만 한국 발레를 위해 헌신한 점, 그리고 일본 문화계에서 시마다 히로시가 차지하는 위상을 심도있게 고찰하여 주목을 끌었다.
성기숙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는 ‘일제강점기 동경으로 간 조선의 무용가들’이라는 주제로 배구자, 최승희, 조택원 등 신무용 삼인방을 비롯 그 후속 세대인 김민자, 박외선 쿠니 마사미(박영인) 등에 대해 다루었다. 특히, 쉽게 접할 수 없는 근대 신문, 잡지 및 사진자료 를 토대로 일제시대 동경으로 간 춤 선구자들의 활동을 한 눈에 살필 수 있도록 발표를 이끌었다. 근대 ‘제국주의 일본, 식민지 조선’이라는 경계의 지점에서 혼란의 삶을 살아야 했던 조선무용가들의 삶과 예술세계에 대한 정교한 연구는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주장에 참석자들의 공감을 자아냈다.
최태지 국립발레단 명예 예술감독은 제일교포인 자신이 일본 발레계에서 여러 차례 소외되면서 좌절을 겪고 있을 즈음인 1980년대 초반 시마다 히로시의 권유로 한국의 국립발레단에 입단한 일화를 소개하면서 자신의 활동을 지원하고 조력한 시마다 선생과의 특별한 인연을 구체적으로 회고했다. 아울러 일본 문화계에서 시마다 히로시가 차지하는 절대적 위상에 대해서도 진지한 어조로 증언했다.
원로 발레무용가이자 임성남 초대 국립발레단장 시절 프리마돈나로 활약한 김학자 선생은 시마다 히로시와 임성남 선생의 특별한 사제관계에 대해 증언을 하는 등 참석자들은 모두 저마다 시마다 히로시 또는 그의 제자인 임성남 선생과의 특별한 인연, 그리고 알려지지 않은 일화를 소개하며 춤 선구자의 일생을 되짚었다.
근현대 격동의 시기에 탁월한 무용수에서 안무가, 그리고 행정가로 일가를 이룬 시마다 히로시는 일본에 귀화하여 일본 문화계를 위해 헌신했지만 한국 발레의 발전과 성장에도 보이지 않는 조력자 역할을 한 인물로 평가된다. 시마다 히로시의 1주기를 기념해 마련되는 이번 학술세미나는 ‘제국주의 일본, 식민지 조선’이라는 경계의 지점에서 혼재된 삶을 살아야 했던, 식민지 시대 고독한 예술가의 초상을 담담히 그리고 객관적으로 반추하는 의미 있는 시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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