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얼굴 생김새만큼이나 다양한 축제들. 주제도, 전개방식도, 내용도 각양각색이다. 즐겁자고 하는 축제에 춤과 음악은 기본으로 들어간다 치고 토마토 축제도 있고 맥주 축제에 카니발도 수 없이 많으니 피곤한 일상을 내려놓고 한번쯤 푹 빠져보고 싶지 않은가? 그런데 이렇게 셀 수도 없이 많은 축제들이 가진 공통점이 하나 있으니 “뭐건 들고 나와 나누자”는 것이다. 그것도 할 수 있는 한 많은 사람들과 함께 말이다. 아, 물론 소박한 상이라도 차리려면 ‘돈’은 있어야 한다.
많건 적건 예산을 만들고 판 벌려 우리가 축제라 부르게 된 것들을 보자. 우리나라에서만도 2013년 기준 문화체육관광부에 등록 소개된 735개 그리고 전국 지자체 별 축제와 박람회 등을 합하면 약 2천 여 개 축제가 매년 열린다. 거기서 공연예술 축제를 추려내고 그 중 국제행사라 불리기에 손색 없다고 일컫는 몇 개 축제들을 골라보자. 개중에는 국제적으로도 꽤 이름이 알려진 것도 있다. 다만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그 많은 축제들 중 단 하나도 가장 시청률 낮은 버라이어티 프로그램 정도의 인지도도 얻지 못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만 그럴까? 아니다. 유명하다는 아비뇽 페스티벌 (Festival d’Avigon)이나 적잖은 무용가들이 동경하는 제이콥스 필로우 축제 (Jacop’s Pillow Dance Festival)라 해도 세계인들이 한번쯤 가보고 싶어하는 축제에는 감히 끼지 못한다는 것도 인정하고 넘어가자.
그렇다고 너무 우울해 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이틀짜리 개인공연도, 한달 가까이 진행되는 축제도, 몇 백 명에서 몇만 명 하고만 나눈다 해도 그들의 일상에 잠시나마 건강한 기쁨을 주었다면 나름 가치 있는 일을 했다 자부해도 비난 받을 일은 아닐 터. 오히려 환영 받아 마땅하다 해도 좋을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춤 장르만을 집중적으로 소개하는 대표적 무용축제라면 주저 없이 서울세계무용축제 (이하 SIDance)와 국제현대무용제 (이하 MODAFE)를 꼽을 것이다. 이 밖에도 국제무용축제가 서울과 여러 지역에서 열리지만 행사규모와 프로그램 그리고 예산 만으로도 차이가 크니 논 외로 하자.
SIDance, 장르발전에 기여하고 국제적 브랜드가 된 축제
“한국을 대표하는 문화브랜드”
십 수년간 몸담았던 SIDance를 한마디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이 글을 통해 소개할 외국 사례, 루마니아 시비우 국제연극제 (Sibiu International Theatre Festival), 독일 탄츠메세 (International tanzmesse nrw)와 비교해 축제의 역할을 장르 혹은 사회와의 관계로 한정 지어 생각한다면 장르발전에 더 크게 기여한 축제로 분류해야 할 것 같다. 비교대상이 되는 축제나 행사와 개최환경에서 오는 물리적 차이도 분명 축제성격을 가르는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전제하자. 예로 든 외국 축제 대부분은 이벤트 존(event zone)이 명확하기 때문이다.
장르부터 들어가 보자. 대외적으로는 주로 얼마나 유명한 단체를 불러 주목할만한 화제를 몰고 왔는가에 초점이 맞춰질 것이다. 아크람 칸 (Akram Khan)과 테로 사리넨 (Tero Saarinen) 그리고 2013년 몽뻴리에 무용축제 (Festival Montpellier Danse)가 집중 조명한 이마누엘 갓을 처음 국내에 소개한 것이 SIDance다. 앙줄렝 프렐조까주 (Angelin Preljocaj)와 장-끌로드 갈로따 (Jean-Claude Galotta), 이칙 갈릴리 (Itzik Galili), 인발 핀토 (Inbal Pinto), 무라드 메르주키 (Mourad Merzouki), 러셀 말리펀트 (Russel Maliphant), 웨인 맥그리거 (Wayne McGreger) 등도 빼놓으면 서운해 할만한 이름들이다. 프랑스 몽뻴리에 무용축제나 멕시코 세르반티노 축제 (Festival Internacional Cervantino)와 공동제작을 한 것도 SIDance가 국내 축제로는 유일하다. 주한 프랑스 문화원 전 문화담당관 에스텔 베리외 (Estelle Berruyer)에 따르면 아시아에서 아프리카 현대 무용을 소개한 것도 SIDance 밖에 없다.
젊은 안무가를 발굴하는 프로그램이 지금이야 많지만 ‘젊은 무용가의 밤’이 젊은 춤꿈들에게 학교 테두리에서 나와 본인의 작품을 들고 공개적으로 세상과 만나는 채널이 되었다는 것을 부인하지는 못할 것이다. 이후 개발한 안무확장 프로젝트 ‘춤추는 도시’와 ‘힙합의 진화’에서 찾아낸 작품 중 소수는 지금도 세계무대에서 유통되고 있다.
외국의 보석을 찾아오는 것에만 그치지 않은 SIDance의 장점은 바로 쌍방향 국제교류다. 물론 SIDance만 국제교류를 하는 것도 아니고 지금에 와서 국제교류는 누구에게나 당연한 옵션이 되었지만 끊임없이 새로운 일을 도모하고자 한 것에서 지금 국제 무용계 지명도의 이유를 찾아야 한다. 꽃이 벌을 끌어들이듯 유명한 이름이 적힌 콜렉션은 아우라가 되었고 브랜드 신뢰로 이어졌다. AAPAF (Association of Asian Performing Arts Festivals) 내 활동을 비롯해 타 축제와의 교류는 말할 것도 없고 축적된 시간과 신뢰를 통해 축제가 매력적인 시장이며 동시에 막강한 권력이 되어 국제무용계에서 용이하게 목소리를 내게 된 것이다. 물론 모래 한줌보다 적은 수의 사람, 예술가를 포함해 공연예술 관계자로 그 대상을 한정해야겠지만 SIDance는 서울을 넘어 세계인에게 한국 공연예술을 대표하는 브랜드라고 해도 크게 틀리지 않을 것 같다. 서울국제공연예술제 (SPAF), MODAFE, 페스티벌 봄, PAMS, LG 아트센터, 예술의전당 등과 함께.
SIDance는 구조적으로 지역사회와 특별한 관계를 맺기는 불가능하다. 대관에 따라 극장은 이 끝에서 저쪽 끝으로 갈라지고 하루에도 2~3개씩 공연이 올라가는데다 각종 행사까지 치러야 하니 구석구석 명품과 잡화가 섞인 아울렛 같다고나 해야 할까. 서울이라는 도시는 또 어떤가. 주거지까지 섞인 밀집상가와 각종이권으로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는 이 대도시는 장신구가 필요 없을 만큼 이미 충분히 화려하다. 그래서 이 거대한 도시를 상징하거나 대표할만한 뭔가를 만들어 내겠다는 그 많았던 시도는 어쩌면 매우 오만한 것이었는지 모르겠다. 올림픽 같은 대형 스포츠 행사를 제외하면 눈과 귀를 모으는 것이 아예 불가능할 것이다. 따라서 SIDance와 사회관계는 ‘공연저널리즘 서울포럼’을 통해서건 ‘춤추는 도시’를 통해서건 ‘장르를 국내외로 소통시키기 위해 노력 한다’는 정도로 마무리해야 될 것 같다.
시비우 국제연극제, 유럽 문화수도 지정에 이어 시 예산총액의 20% 문화에 배정
“66개 장소에서 열흘간 펼쳐진 360개 공연”
무대에서 광기 어렸던 로댕이 파스텔 톤 노란 바지에 체크무늬 셔츠를 걸치고 불뚝한 배만큼이나 큰 소리로 요란스레 너스레를 떠는 아저씨가 되어 옆자리에 앉는다. 시비우 국제연극제 (Sibiu International Theatre Festival)의 콘스탄틴 키리악 (Constantin Chiriac). 배우와 극장장에 교수도 모자라 문화원 이사를 겸하고 자칭 ‘세계 3위’ 축제를 창설해 장기 집권하는 예술감독이다. 몰도바 공화국 출신인 키리악은 부크레슈티 소재 예술대학에서 연극을 전공한 후 스크린과 무대를 넘나들며 시비우 라두 스탕카 극단에서 배우로 활동했다. 차우셰스쿠 이후 전국의 공연예술이 고사위기에 처했지만 라두 스탕카 만은 견뎌냈고 젊던 그는 꿈을 키우고 있었다. “유럽 문화수도가 되어 과거의 영광을 되찾자.” 그래서 시작한 것이 국제적 형식을 갖춘 연극축제다. 영국, 미국과 루마니아 문화예술계 지인을 총 동원해 2년을 준비하며 집은 저당 잡혔고 주머니 속 먼지까지 탈탈 털어냈다. 그리고 1993년 루마니아와 몰도바공화국만 참가해 시작한 축제 첫해, 드라큘라백작이 포로를 꼬챙이에 매달아 두었던 트란실바니아의 주도였으니 오죽했으랴. 손님들은 호주머니에 마늘을 넣고 다녔다. 하지만 루마니아 연극 내공은 손님들을 감동시켰고 국제무대가 라두 스탕카 극단을 주목하기 시작했다. 2회째에는 8개국 공연단과 25개국 프리젠터들이 시비우를 찾았고 2007년 드디어 시비우는 유럽 문화수도가 되었다. 그리고 70개국 2,500명이 축제를 방문하기에 이르렀다.
다이어로그 (Dialog)를 주제로 내세웠던 2013년, “에든버러와 아비뇽에 이어 세계 3위”라 주장하는 키리악이 무엇을 근거로 입에 침이 마르도록 자랑하는지 궁금했다. 그래서 냉큼 초대에 응했는데… 유례를 찾을 수 없는 일이 시비우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시 예산의 20%는 문화에 배정됩니다.” 축제 기간 도시 인구의 60%는 타지인이고 30km이상 가야 허름한 호텔 하나 간신히 찾을 수 있던 도시, 한 두 시간이면 명소 대부분을 눈으로 훑을 수 있을 만큼 자그마한 이 도시에 지금은 힐튼, 라마다, 이비스와 같은 글로벌 체인을 비롯해 단기임대용 빌라, 축제 초기에 생겼던 낡은 지역호텔들과 여행사가 즐비하다. 게다가 국제공항이 자리하고 있다는 것은 상시 인구 유동이 보장된다는 것을 입증하는데 이쯤 되면 조금 시끄러워도 그의 자랑을 들어줄 수밖에 없다. 아니 오히려 그의 추진력과 열정에 박수가 절로 나온다.
탄츠메세, 문화저력은 도시를 바꾼다
“아무리 경제가 어려워도 현대무용에 대한 투자를 늘려나가겠습니다”
탄츠메세는 1994년 ‘Tanzmesse NRW’라는 이름으로 보다 다양한 관객들에게 노르트라인 베스트팔렌 지역 예술가들을 소개하기 위해 에센 (Essen)에서 처음 시작되었다. 첫해는 독일 무용계만의 소규모 행사였으나 1997년 2회를 맞으며 외국예술가들에게도 문을 열며 국제행사로 첫발을 뗐다. 무용전문 국제마켓으로 제대로 모양새를 갖추게 된 것은 2000년에 와서인데 40개국에서 무용단, 프로듀서, 기획자들이 참가해 현대무용을 두고 국제적 협력을 모색하고 네트워크를 강화하면서 2년마다 한번씩 열리는 비엔날레로 정례화하게 되었다.
탄츠메세가 베스트팔렌의 주도 (州都)인 뒤셀도르프에 정착한 것은 4회째인 2002년으로 NRW 포럼 (NRW Forum, 마켓전시가 열리는 메인 행사장), 문화센터 (Kultur und Wirtschaft)등 뒤셀도르프의 문화인프라를 행사에 적극 활용하게 되었다. 최근 들어 탄츠하우스 (tanzhaus nrw)와 카피톨 시어터 (Capitol Theater) 그리고 조금 떨어진 뒤셀도르퍼 샤우슈필하우스 (Düsseldorfer Schauspielhaus) 및 첸트랄 인 데어 알텐 파켓포스트 (Central in der Alten Paketpost), 벨트쿤스트짐머(Weltkunstzimmer), 포럼 레베르쿠센(Forum Leverkusen), FFT Juta, 쿤스타카데미 뒤셀도르프(Kunstakademie Düsseldorf), 쿤스트홀 (Kunsthalle) 등 시내에 있는 극장들과 탄츠하우스의 7개 스튜디오를 공연장으로 사용하고 있다. 7회째인 2008년부터는 차로 40분 거리에 있는 인근 도시 크레펠트 (Krefeld)의 파브릭 헤더 (Fabrik Heeder)로까지 행사 공간을 넓히게 되었고 전세계 예술가와 관계자들이 모이는 마켓으로, 활발한 의견교환이 이뤄지는 토론의 장으로, 전시와 강연이 있는 축제로 명실공히 대표적인 무용 전문 국제 마켓으로 확고하게 자리를 굳혔다.
자막이나 해설 한 줄 없이 장황한 독일어로 인사말과 감사가 오가던 개막 식전행사. 공무원 하나가 무대에 올라왔다. 친절하게도 영어로 “탄츠메세 덕분에 뒤셀도르프는 국제적인 도시가 되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아무리 힘들어도 현대무용에 대한 투자를 늘려나가겠습니다.”라고 말한다. 후에 영국에서 왔다는 공무원에게 확인까지 해봤다. 맞는 말이란다. 한 도시의 상징적인 문화행사 하나가 결과적으로 도시를 바꿔놓았고 전략적 이미지 메이킹이 따랐겠지만 행사와 직접적으로 관계 없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은연중에 도시에 대한 신뢰도가 높아졌기 때문에 벤치마킹 하러 왔다고 한다. 녹록치 않은 여건에도 불구하고 꾸려가는 많은 행사들에게는 여간 반가운 롤모델이 아닐 수 없다.
유럽동향에 따른 당연한 결과지만 탄츠메세는 최근들어 ‘아시아에 주목’한다. 2008년 ‘한국특집’이 큰 성과 없이 끝난 후에도 2010년과 2012년 ‘대만특집’을 통해 국제무대로 활동영역을 넓힌 중화권 무용가를 만들어냈다. 그리고 올 8월 27일부터 30일까지 (재)예술경영지원센터 주최로 국내 5개 무용단을 소개하는 ‘한국특집’이 다시 한번 열릴 예정이다.
“극장은 최종 목적지가 아닙니다. 전세계 문화예술이 얽힌 사슬에서 우리 극장은 단지 하나의 고리일 뿐입니다. 예술가를 위해 일하고, 예술가와 지역사회가 더 가까워질 수 있도록 중간 매개자의 역할을 하며 이를 보다 원활하게 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 우리의 역할입니다.”
극장 운영 철학을 묻는 질문에 바르셀로나 메르캇 드 레스 플로르스 (Mercat de les Flors)의 프란세스크 까사데수스 (Francesc Casadesus) 예술감독은 분명하게 밝힌다. “극장은 매개자일 뿐”이라고. 영국 리즈의 플레이하우스 역시 극장과 지역사회가 어떻게 조화를 이루는지 보여준다. 상주단체가 지역사회 청소년들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을 상시 운영했다. 그리고 청소년들을 작품에 넣기 시작했고 손자들을 보기 위해 극장에 드나들던 주민들이 이제는 모든 무용공연의 객석을 가득 채워준다는 것이다. 시비우 국제연극제와 탄츠메세는 문화행사 하나가 도시를 어떻게 바꿔 놓았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예가 될 것이다. 그런데 축제와 행사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일년 내내 뭐라도 할 수 있고 환영해 주는 누구라도 만날 수 있는 곳이 가까이에 있다는 것. 프랑스를 위시해 유럽 극장이나 국립단체는 공공기금으로 지원받는 만큼 철저히 지역사회와 소통하고 젊은 예술가 육성에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 명절이나 특별히 기념해야 하는 날 요란스레 잔치를 하듯 축제를 열어 접촉면을 넓히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마음이 동해야 진심으로 축하해줄 수 있고 아는 얼굴이 있어야 잔치가 더 즐겁듯 1년 내내 지역사회와 실질적으로 소통하며 그들을 끌어안을 준비를 해 놓은 다음이라야 잔칫상도 풍성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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