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는 말
포럼의 제목부터가 상당히 야심차서 과연 여기에서 결론이 도출 가능한 지가 우려된다. 지역 공연장 에서 이년여 일해 본 경험에 비추어 본다면, 이것은 그리 만만한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 구하고 지역 극장 포지셔닝을 할 때에 중요한 이슈 중 하나이기 때문에 원론적인 차원에서 살펴보고 자 한다.
지역 공연장의 발전방안은 주지하다시피 극장의 미션에서부터 출발한다. 그 극장이 커뮤니티 시어터 성격을 가진 지역주민 밀착형 프로그램을 우선시 하는 곳인지, 혹은 광역 지자체의 대표적 극장으로서 다목적 프로그램을 소화해야 하는지, 혹은 기초 지자체 극장으로 행사 위주의 프로그램도 하는지에 따라서 그 발전 방안도 확연히 차이가 나는 것은 자명하다. 지리적으로 본다면, 한국 극장은 수도권 극장과 그 이외의 ‘지역’극장으로 구분지을 수 있을 것이다. 강동아트센터의 경우는 서울시에 위치하 면서도 강동구의 ‘지역’ 극장으로서 이중적인 위치를 갖는다. 하지만 초기부터 야심차게 건립되어, 외관상으로는 친환경적인 건물 구조가 돋보이고, 컨텐츠 또한 지역극장으로서는 예사롭지 않다.
좀 더 자세히 살펴보아도, 그 기대를 크게 저버리지 않을 만한 클래식과 무용 중심의 프로그램을 시즌 별로 내놓고 있고, 특히 개관시부터 무용 축제를 만들어 서울의 주요 무용축제에 견주어도 모자라지 않을 프로그램을 시도하고 있다. 일단은 컨셉을 가진 포지셔닝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을 단순히 용기있는 선택이었다는 차원에서 분석하기 보다는, 과연 지역 극장에서 실현가능한 프로그램 전략이었는지와, 장기적으로 극장의 발전 방향에 어떤 식으로 기여할 수 있는지 등 보다 현실적인 문제들을 살펴보는 것은 어떨까?
지역공연장의 프로그래밍 방식과 축제
수도권을 제외한 곳에 있는 지역 공연장도 일괄적으로 묶어 말하기에는 여러가지 변수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같은 지역 극장이라도 강동아트센터와 안산 예술의 전당, 대전 예술의 전당은 포지셔닝이 다르고, 그 프로그래밍 방향과 극장 발전 방안도 다르다. 일단 편의상 이 세 극장을 주로 예를 들어 논지를 펴 나가보겠다.
우선 강동스프링댄스페스티벌은 개관 다음해부터 선보여 올해로 3회를 맞고 있다. 4월말에서 5월초 에 걸쳐 국내 주요 무용을 장르별로 선보이고 있으며, 거기에 시민 참여 프로그램과, 대학무용경연, 전시, 이벤트까지 여러가지를 한꺼번에 겨냥하고 있다. 범박하게 말하자면 고유의 색깔을 가진 무용 축제를 지향한다기 보다는, 무용과 연관된 모든 영역을 아우르려고 애쓴다는 느낌이 든다. 물론 조직위 원회 위원이나나 파트너 기관의 면면을 보면 국내외 주요 무용 인맥과 네트웍이 되어있어서 그 외연 의 광대함이 보이나, 성남무용축제나 부산무용축제 등에서 드러나는 지역 축제의 한계점이 우려되는 것도 부인할 수 없다.
지역 극장의(혹은 한국 대부분의 극장) 프로그램 구조가 아직은 프로그래머 중심이 아니라 대표의 인맥 위주로 이루어 지고 있는 실정이어서, 특색있는 축제를 기대하는 것은 시기상조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미래의 청사진을 예상해 본다면, 축제가 전체 극장 프로그램 내에서 포지셔닝을 하고, 그에 맞는 장기적인 플랜에 따른 프로그램이 이루어지는 것이 바람직 하다. 지역 극장이니만큼, 서울 시내에서 벌어지는 축제와도 차별성을 가져야 할 것이며, 지역 커뮤니티와도 어떻게 관계맺기 할 것인지도 생각해 봐야한다. 이것은 지역 극장이니 지역민을 단순히 참여시키는 프린지류의 프로젝트를 해야한다는 말이 아니다. 관객의 성향과 관람형태 등을 분석한 이후에 그에 따른 단계적 전략이 필요할 것이다.
내가 일하고 있는 대전예술의전당에서도 개관 초기부터 매년 4월은 지역예술가 중심(엄밀히 말하면 지역단체 중심)의 스프링페스티벌을 열고 있다. 지역의 대표 극장으로서 지역예술 진흥의 임무를 갖고 있기에 피할 수 없는 선택이었을 것이다. 10년을 맞이하여 올해는 4월 한달을 스프링 페스티벌로 정하고, 지역예술인 만을 위한 축제를 열었다. 결과는 그 전과 그리 다르지 않았다. 지역 예술인은 지역 출신의 예술인이었고, 대부분은 이미 서울에서 자리잡고 활동하고 있는 예술인들을 초청하는 방식 이었다. 혹은 지역에 기반한 예술인들에게 서울 예술인을 초청해서 조인시키는 방식이었다. 이 지점에서 많은 생각을 하게한다. 지역 예술인 진흥을 위해서 꼭 ‘지역’ 예술인이라는 키워드를 고집해야만 하는가? 좀 더 다양하고 열린 방식으로 나아가는 것이 장기적으로 지역예술인의 역량 강화에 도움이 되지 않겠는가? 만감이 교차하지만 쉽게 결론을 내리기엔 여러가지 사안이 맞물려 있음을 알기에 녹록치 않은 현실을 확인하는 선에서 머물 수 밖에 없었다.
오히려 이 지점에서 스파프의 ‘서울댄스콜렉션’의 성과를 다시금 짚어보고 싶다. 그 시작은 아주 단순한 것이었다. 당시 일본의 ‘요코하마댄스 콜렉션’에 한국의 젊은 안무가들이 사비를 들여서 참가하고 있는 현실을 안타까이 여겨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국제적인 ‘서울댄스콜렉션’을 시작했다. 그리고 부상은 자신이 가고싶어하는 해외무용 축제에 참가할 비용을 지원하는 것으로 시작했다. 이후에는 스파프가 갖고 있는 네트웍을 이용해 독일 포츠담이나 프랑스 앙제에 레지던스 프로그램과 연계했다. 어 떤 안무가는 그 기회를 십분 활용하여 더 넓은 네트웍을 만들기도 했고, 어떤 이는 한국의 도제식 방식에서 벗어난 자유를 힘들어하다 돌아오기도 했다. 그래도 국내외 네트웍을 열심히 넓혀가면서 다양한 기회를 만들려고 애쓴 보람찬 프로젝트 였다는 생각이 든다.
그럼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지역 극장의 발전 방안에 무용축제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그건 각각의 현실에 따라 다른 이야기이기에 단일한 결론을 제시하기는 처음부터 어림도 없는 물음이었다. 하지만, 지역 극장의 미션에 지역(무용)축제가 일조를 할 수 있을지는 이상하게도 머리가 갸우뚱해지는 것은 왜일까? 이것은 반대로 ‘서울’ 극장의 발전방안에 ‘서울’ (무용)축제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로 바꾸어 물어도 뾰족한 대안이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다만 지역 극장은 색깔있는 프로그램으로 관객을 모으기에는 더 열악한 현실이기에, 이중의 문제를 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 상황은 역으로 해석해서 어차피 관객 모으기에 쉽지 않다면, 컨셉있는 프로그래밍을 통해서 지역 극장의 색깔을 단기간내에 만들 수 있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이것이 궤변으로 끝나지 않으려면, 손쉬운 프로그램을 벗어나서 관객과 접점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여러 단계의 꾸준한 노력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
지역 관객을 위한 축제
그럼 지역 관객에게 축제란 과연 특별한 의미를 가질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특히 지역 극장에서 축제를 통해 시즌 프로그램 이외의 작품을 선보이고, 지역 예술인에게 기회를 준다는 취지로 진행 되고 있는 많은 지자체 축제가 있다. 대부분은 공연 축제가 아니고 공연 축제라 할지라도 극장의 시즌 프로그램과 차별성을 갖고 있는 경우는 드물다. 겨우 안산 거리극 축제, 의정부 음악극 축제 정도가 그 예가 아닌가 싶다. 그 경우도 예술 감독이 바뀔 때마다 정체성이 다시금 바뀌는 경우가 허다하다.
만약 대전예당에서 특화된 축제를 한다면 어떤 모양새일까? 대전예당의 경우 개관초기부터 8월 방학 기간 야외에서 좀 더 대중적인 장르의 공연을 무료로 개최하는 ‘빛깔있는 여름축제’를 이어왔다. 주로 재즈나 뮤지컬 갈라 등의 대중적인 공연을 개최하여 젊은층의 호응을 이끌어 왔었다. 작년에는 10년의 성공(?)을 기반으로 좀 더 야심찬 프로그램을 시도했다. 뉴욕 힙합그룹의 <오델로 리믹스> , 비빙 의 국악현대음악, 엑상 프로방스 페스티벌의 <리골레토> 야외 상영, 현대발레 갈라… 일부의 뜨거운 호응을 얻어 냈으나, 가족 단위의 관객이나 기획자들은 낯설어했다. 난감했다. 그 극장의 프로그램에 익숙해 온 관객의 성향을 바꾸는 것은 장기적인 전략이 필요했고, 새로운 관객층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기획팀이 한몸이 되어 치밀하게 움직여야 했다. 이런 요소들이 같이 맞물려 돌아가지 않는 좋은 공연이란, 프로그램으로 인식되기 보다는 개개의 조각보에 머물고 만다.
지역의 관객 개발
그렇다면 지역관객은 어떤식으로 개발될 수 있을까? 서울과는 다른 방식으로 접근해야 할까? 뭔가 다른 비법이 있는 것일까? 관객이 없는 공연장은 얼마나 쓸쓸하고 초라하던가. 공연도중에 궁시렁 거리며 극장을 나가는 관객이 있더라도, 꽉찬 공연장의 열기만큼 기획자에게 보람된 순간은 없다. 그렇지 못하다면 아무리 지금, 지구촌에서 회자되고 있는 공연을 갖고온다 한들 한낱 자기 기만에 머물 수 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작년 4월에는 페스티벌 봄BO:M에 초청된 제롬벨의 <장애극장: Disabled Theatre>를 서울에 이어 대전예술의 전당에서 올렸다. 표가 안팔린 것은 물론이거니와 그 공연을 기획자를 포함한 대부분의 관객이 이해하지 못했다. 제롬벨이란 이름 자체도 낯설었거니와 그가 하는 작업에 대한 이해가 없었기에, 눈앞에 펼쳐지는 공연은 장애인의 제스처에 박수를 보내는 이상을 넘기가 힘들었다. 난감했다. 지역 예술인 역량은 그들에게 나눠먹기식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국내외 작품들을 다양하게 선보여 예술적인 자극을 주는 것도 중요하다는 판단하에서 이뤄진 프로그램이었다. 물론 지역 관객의 다양한 문화향유 기회도 놓칠 수 없는 목표이었고. 하지만 섣부른 낙관주의가 불러온 결과는 치명적이어서, 올해는 국내외 작품을 제외하고 오로지 지역 단체만이 중심이 된 프로그램이 이루어졌다.
지역극장의 전망
지금 한국 공연계 활성화 방안중의 하나가 지역공연장에게 달려 있다고 한다면 과장일까? 대학로를 벗어나 빠르게 재편되고 있는 연극계와 문화예술 위원회, 그리고 세종으로 옮겨간 문화부, 광주 아시아 예술극장 등의 몇몇 움직임만으로 이런 변화를 기대하는 것은 지나칠까? 물론 대부분의 지역 극장 은 이런 거시적인 움직임을 감지하고 그에 따른 프로그램을 하고 있지는 못하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한국의 공연예술계도 수도의 단일한 중심을 넘어서, 다양한 중심을 여기저기에 만들어가야 하는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서울시내의 구 단위의 극장들의 활성화, 경기도 지역 극장의 색깔 찾기, 그이외 지역 극장들의 활성화 등 다양한 층위에서 이뤄질 수 있을 것이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축제들이 시도되고 실패할 것이다. 지역과 글로벌이 만나는 지점에서 강동무용축제가 자리매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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