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성준 선생의 140주년 탄생을 기념하는 제1회 대한민국전통무용제전(2014년 6월 12-15일 아르코예술극장대극장)과 국제학술심포지엄(2014년 6월 13일, 10-17시)이 진행되었다.
국제 학술 심포지엄(연낙재 주최,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제2강의실)은 한성준의 업적을 다각도에서 재조명하고자 개최된 만큼 발표된 주요 논제를 짚어 보고자 한다.
전체 행사를 살펴보면, 송방송(한국음악사학회 회장)의 <한성준 명인의 예술세계 조감>이라는 기조발제, <근대 전통예인 한성준의 공연예술사적 업적 재조명>과 <한성준 춤의 전승과 한민족 춤의 확장성>이라는 논문발제, 그리고 한민족 무용가 라운드테이블로 이어져 자유롭게 토론하였다.
기조발제에서 송방송은 암울했던 20세기 전반기 전통공연예술을 창조적으로 계승한 한성준이 우리나라 근현대공연예술사에 새로운 지평을 열었기에 그의 춤과 음악사적 업적은 높이 평가되어야 함을 강조했다.
유영대(고려대학교 교수) 사회로 진행된 1부의 논문발제자 이진원(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부교수)은 <한성준 음악 및 그 활동에 대한 재검토>에서 신문, 잡지 기사 및 유성기 음반에 기록된 한성준의 음악 활동 사례를 제시하였다.
한성준이 춤뿐만이 아니라 음악에서 다양하게 한 활동을 소개 한 것인데, 예를 들면 피리 음악 시나위가 경성방송국 연주 목록과 유성기음반 목록에 기록된 자료나, 전통 공연예술인들을 음반에 취입시키거나 라디오 방송에 출연시키는 기획자이자 프로듀서로서 역할까지 다양한 활동을 겸비한 인물임을 조명한 것이다.
발제에 대한 박정경(국립국악원 학예연구관) 토론자는 일제강점기에 음악가와 예술행정가로서 활동한 업적이 전통분야 후학들에게 큰 귀감이 된다고 평가하였다.
두 번째 발제자 이병옥(용인대학교 명예교수)은 <한성준 춤활동의 생애구분 고찰>에서 한성준 춤활동의 의의를 조명하였다.
한성준의 무악(舞樂) 생애를 유아성장기 4년(1874~1878), 무악수학기 15년(1879~1894), 동학과 유랑경험기 8년(1895~1903), 상경과 명고수무용기 25년(1904~1929), 무악조직과 춤정립전수기 1년(1930~1941)으로 구분하였다. 한성준 춤활동의 의의는 근대로 넘어가는 이행기에 전통춤을 집대성한 점, 김천흥 등 제자를 배출한 점, 재인 계통춤의 중심무용가로 자리매김한 점, 전통춤의 전수교육자이며 마당과 방안춤을 극장 무대춤으로 재구성한 점, 전통사회에서 유흥과 놀이의 춤을 예술춤으로 승화시킨 점, 홀대 받던 전통춤의 위상을 높인 점, 신무용 창작의 폭을 확산시킨 점, 다양한 춤가락과 장단을 정립한 점, 마지막으로 중부지방 경향류 춤의 맥을 이은 점으로 평가하였다.
이어 토론자 백현순(한국체육대학교 교수)은 한성준이 61세 이전까지는 승무와 살풀이를 추었다는 기록이 없는데 어떤 과정을 거쳐 완성되었는지를 질의하였다. 이에 승무를 집대성 한 것이 한성준이며 그 내력은 김인호와 이동안에게 전수 받았다고 답하였다.
세 번째 발제자 이애주(서울대 명예교수)는 <한성준-한영숙류 승무의 미적 실체>에서 승무를 구성하고 있는 바탕 춤사위를 직접 춤을 추면서 분석하였다. 염불·타령·굿거리·법고 과장에서의 장단과 춤사위를 실연하면서 승무의 전과정이 우주탄생과 생명 회귀 본성의 근본적 운동을 형상화한다고 해석 한 것이다.
이애주는 승무가 무(無)의 철학과 태극정신을 근본으로 하고 있기에 승무를 과거지향적인 고정된 틀로 인식할 것이 아니라 살아있는 오늘의 틀로 끌고 가야함을 강조하였다.
이어 임학선(성균관대학교 교수) 토론자는 현대에 있어서 춤현장에서 의미 있는 춤들을 학문적으로 어떻게(객관적) 연결해서 연구해야 할 것인지가 무용인의 숙제라고 덧붙였다.
오전 1부는 한성준의 업적을 생애사적, 미학적으로 조명한 논제였고, 오후에 열린 2부 발표는 임장혁(중앙대학교 교수) 사회로 중국에 전해진 한민족 춤의 확장성에 초첨을 맞추었다.
첫 발제자 박영광(중국 중앙민족대학 무용학원교수)은 <역사의 흔적, 전승의 기반-‘신중국’이전 중국에서의 조선인 무용 활동->에서 ‘조선족’ 명칭의 정체성과 전통무용, 창작무용 그리고 최승희가 전수한 조선무도 훈련체계를 소개하였다. 한성준의 중국공연과 최승희의 활약이 조선족 무용에 깊은 인식적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었다.
이에 토론자 고승길(중앙대학교 명예교수)은 최승희를 비롯하여 모든 연구가 예술적 창의성에 바탕을 둔 것만이 아니라 동아시아의 정치·군사·사회적 상황의 변화 과정에서 어떻게 적응하고, 변화·왜곡되었는가를 연구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예를 들어, “최승희가 일제하 한국춤을 가르친 내용 중에 민족춤으로서 왜곡된 것은 없었는지”, “만약 중국에 영향을 주었다면 그것이 무엇인지”(일본에서는 이미 폐해를 지적하고 있다) 등 역사적으로 어두운 상황에서도 평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두 번째 발제자 한룡길(중국 연변대학교 예술대학 교수)은 <중국조선족 예술무용 교육의 발전과 전망>에서 조선족 무용교육의 체계성을 소개하며 연변대학에서 발전해 온 민족무용 및 현대무용 그리고 기능훈련체계(5단계 13개 절차 등)를 포함한 무용교육 이론을 중심으로 소개하였다.
이에 박상환(성균관대학교 교수) 토론자는 생리적 율동기능 훈련과 예술적 창의적 개발 관점 중심의 교육이 근대적 의미의 ‘합리성’이라고 볼 수 있는데, 지나친 이성의 강조가 의식을 지배하여 예술의 자율성과 즉흥성(한성준식의 입춤 개념으로는 즉흥무 의미)을 어떻게 조율할 것인지 의문을 제기하였다. 더불어 조선족의 전통무용과 최승희 춤에 영향 받은 신무용과 대비시켜야 하며, 최승희 춤이론의 근대적 의미를 “21세기의 시대적 변화에 어떻게 적용, 발전시킬 수 있을까”라는 부분의 설명이 필요함을 제안하였다.
세 번째 발제자 성기숙(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은 <중국에서의 한민족 춤의 발원과 확장성>에서 고대 한민족 춤의 양상을 고구려시대 대외 교류양상을 통해 짚어 보았는데, 서역과의 교류에서나 중국문헌에 나타난 무용흔적들, 19세기 초 중국으로 이주해간 조선인들에 의해 형성된 민속춤 그리고 1940년대 최승희가 중국내 조선족 무용에 영향을 준 점을 발표하였다.
최승희가 1951년 설립한 최승희 무도연구반이 현 중국무용계를 주도하는 무용가를 배출한 교육기관으로 자리매김 되었음을 강조하며 중국에 전파된 최승희 춤이 근원적으로 한성준과 맞닿아 있음을 강조하였다.
이에 김은이(동아대학교 교수)는 조선족 춤에 있어 한성준은 어떤 존재로 인식되고 있는지를 질의했고, 한성준 보다는 최승희의 영향력이 크다고 답했다.
1,2부 논문 발제와 토론에 이어 성기숙의 사회로 진행된 3부는 한민족 무용가들의 자유토론이 이어졌다. 함순녀(중국 연변가무단 부단장)는 연변 가무단 단체의 성격과 성과를 소개하였고, 손용규(중국 북경무도대학 교수)는 조선족 춤의 철학적, 혈통적 맥을 강조하였다. 전반적으로 토론자들은 한성준의 서구적 안목과 틀의 우수성, 한성준이 끼친 춤의 영향력 등을 논의하였다.
한성준의 업적을 재조명하고자 한 제1회 국제 학술 심포지엄의 노력과 성과는 반갑고 의미 있는 일이다. 다만 라운드테이블 토론에서 아쉬움은 본 심포지엄의 주제를 정확하게 인지하지 못한 논점 없는 토론들이 있었다는 점이다. 몇몇 토론자들은 전통춤과 한성준에 대한 인식 부족으로 생산성 있는 토론으로 이끌지 못했다.
반면 고승길의 질의에서 제기되었던 최승희를 비롯한 근대춤의 연구가 단선적인 연구보다는 정치·문화적 상황에서 위치한 춤의 어두운 과거까지도 조명하는 연구의 필요성을 제기한 점은 무용연구자들이 생각해 볼 지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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