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 연구
1. 전통춤 연구의 성과와 한계
이 땅의 문화자산 중 하나인 전통춤은 일련의 유형화된 틀을 가지며 전승된다. 전승의 기본 틀인 이것은 개인의 창조물이 아니라, 끊임없는 자기비판과 검증의 거친 육체적‧공동체적 인식과정의 소산이다. 특히 집단적 인식과정을 통해 행위자와 관객 모두가 익히 아는 전장된 전형1)이 되고, 이것을 중심으로 춤은 쉽게 소통되고 향유될 수 있었다. 저장된 전형을 매개로 한 정보전달의 기능을 강조할 때, 전통춤은 비음성적 언어(nonverbal language)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내용을 전달하는 그 형식은 단순한 동작의 나열이라 할 수 없고, 일정한 짜임새(構成)를 갖는다고 할 수 있다.
전통춤은 격동의 근대를 거쳐 1962년 문화재보호법제정과 대학가를 중심으로 한 민속극부흥운동과 함께 새롭게 발굴되고 조명된다. 이후 60년간 무용학, 비교인류학, 공연학, 교육학, 도상학, 역사학, 철학, 미학 등에 기반을 둔 다양한 연구가 있었다. 이 중 형식연구의 대다수는 짜임새가 아니라, 춤사위2)를 겨냥한다. 이보형의 증언에 따르면, 춤사위는 원래부터 있었던 용어가 아니다. 춤의 학문적 정착과정에 생겨난 신조어로, 손동작과 관련된 사위, 몸짓과 관련된 발림, 연기와 관련된 너름새를 총칭한 것이다. 이러한 까닭에 동작범위가 일정하지 않고, 동작(an action), 프레이즈(phrase), 프레이즈문장(phrase sentence)을 모두 지시함으로써 체계적 접근에 한계가 있다. 오늘날 춤사위는 동작 또는 춤동작으로 좁혀 정의되며, 낱낱의 동작소나 기법과 관련된 동작에 주안점을 두고 연구된다.
동작연구의 강세 속에 짜임새, 즉 구성은 지극히 소소에 의해 연구된다. 첫 포문을 연 것은 전통춤 구성의 기본단위인 마루의 의미를 부각시킨 故이애주의 연구3)라고 할 수 있다. 한 동안 답보 상태를 보이다가 2016년 이후, 마루, 춤사위, 맺고 풂을 다시금 전면에 부각시키는 한편, 언어학의 기본 개념을 원용하여 전통춤 일반의 구성을 체계적으로 규명할 수 있는 새로운 방법론이 제안되기도 한다. 그러나 형식론 수립으로 이어지기에는 역부족이다.
2. 전통춤 형식론 수립의 필요성
예술 제(諸)장르에서 형식론은 구성을 체계적으로 규명하는 것에 목적이 있다. 아직 춤에서는 찾아보기 어렵지만, 음악에는 형식론(Musical Form)이 있다. 음악구성요소(bar, motive, phrase, period) 설정에서 출발하여 성악곡과 기악곡의 구성을 분석한다. 그리고 그 결과를 중심으로 다양한 음악 형식을 규명하고, 겹세도막형식, 론도형식, 변주곡형식, 소나타형식, 푸가형식, 다악장형식, 기타기악곡형식, 성악곡형식 등등으로 유형화한다.
좀 더 가까운 예로, 전통음악에도 형식론이 있다. 여러 논쟁적인 부분들이 남아있지만, 구성요소(장단, 장 또는 절, 조, 장단으로 구분되는 단락)를 설정하여 성악곡과 기악곡의 구성을 분석한다. 그리고 그 결과에 기초하여 음악 형식을 규명하며, 메기고 받는 형식, 환두환입(換頭還入)형식, 모음곡형식, 한배에 따른 형식, 연음형식, 확대형식 등등으로 유형화한다. 이러한 음악형식론은 거의 모든 개론서에 반드시 소개되며, 단순한 동요에서부터 규모가 큰 관현악곡에 이르기까지 여러 다양한 음악을 기술(description), 분석(analysis), 평가(evaluation)하는 준거가 된다. 또한 교육과 창작의 기초 자료로도 중요하게 활용된다.
앞서 살핀 음악의 사례와 달리, 전통춤에는 형식론이 부재한다. 이는 곧 전통춤 구성을 체계적으로 분석하고, 그 결과를 중심으로 여러 다양한 형식을 규명하는 형식론을 수립하지 못한 채, 요원한 난제로 남기고 있음을 의미한다. 전통춤 형식론은 춤 연구의 일차적 단계인 체계적 기술, 적합하고 효율적인 분석, 가치론으로 이어지는 평가, 여러 춤에 대한 총체적 접근, 인접학문과의 학제적 접근(interdisciplinary method) 등을 가능하게 하는 학문적 토대가 된다는 점에서 그 필요성을 강조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전통의 올바른 계승과 재창조, 다양한 교육프로그램개발 등에 중요한 자료로 활용될 수 있다. 그리고 북한과는 물론이고 세계와의 다양한 교류 속에서 우리 춤의 정체성을 소개할 때, 접근의 준거 틀로 활용될 수 있다는 점에서 그 필요성을 재차 강조할 수 있다.
전통춤 형식론 수립의 필요성이 절실함에도 불구하고, 미완의 과제로 남아 있는 이유는 다음 3가지이다. 첫째, 악가무극일체(樂歌舞劇一體)의 총체성을 갖는 전통춤은 여러 장르와 뒤엉켜 있어 춤 부분만 똑 떼어 내기 어렵다. 더욱이 춤을 구성하는 부분단위에 대한 체계적 분류와 그 각각에 대한 명명(命名)이 불투명한 상태로 전승된다. 이러한 까닭에 형식론의 토대가 되는 구성연구가 용이하지 않고, 접근이 어렵다.
둘째, 형식론은 다양한 개별단위 춤 구성에 대한 세밀한 분석은 물론이고, 결과를 종합검토 하는 지난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 즉 연구과정이 복잡하고, 많은 시간을 요한다. 이러한 까닭에 국가적 지원 없이 개인 연구자의 노력만으로 성과를 창출하기 어렵고, 단기간에 성과를 창출하기란 더더욱 쉽지 않다.
셋째, 국가차원의 지원 사업은 춤사위에 집중되고, 민간차원의 연구 역시 춤사위에 편중되었다. 반면, 전통춤 형식론 수립과 관련된 국가적 지원이 불충분하고, 민간차원의 연구 역시 소수에 머물러있다. 이러한 까닭에 형식론 수립을 위한 학적 기반이 취약하고, 수립 필요성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 형성에도 역부족이다.
오랜 세월 몸에서 몸으로 전승된 전통춤은 이 땅의 중요한 문화자산이다. 이것에 대한 연구는 많고 다양할수록 좋다. 그런데 논의의 첫 출발점이 되는 것은 예술적 사실에 해당하는 형식이라고 할 수 있다. 복잡다단한 형식 일반을 명료하게 규명하는 전통춤 형식론 수립이 실현되어 우리 춤 연구의 학문적 지평이 넓고 깊어지기를 기대한다.
3. 전통춤 형식론 수립을 위한 단서, 마루
마루는 전통춤 구성을 체계적으로 규명할 수 있는 단서가 됨으로써, 전통춤 형식론 수립의 가능성을 열어 준다고 할 수 있다. 다소간 생소한 이것은 전통음악 일반에서 널리 사용된 단락명칭으로, 장(章) 또는 절(節)의 우리말 표기이다.4) 궁중음악에서 집박악사(執拍樂士)가 박을 쳐서 구분하는 단락(章), 민요에서 선창이나 후렴을 하는 단락(節) 모두가 마루라는 것이다. 이처럼 궁중음악과 민속음악, 기악곡과 성악곡과 같이 성격을 달리하는 여러 종목에서 두루 통용된 마루는 춤의 용어이이기도 하다.
국가무형문화재 제27호 〈승무〉의 이전 예능보유자 한영숙과 이애주, 춤 반주의 명 고수로 이름을 날린 장덕화는 춤에서도 마루가 중요한 단락 명칭으로 통용되었음을 증언한다.5) 그리고 〈승무〉를 비롯한 전통춤 일반의 짜임새가 마루를 중심으로 구축됨을 강조한다. 이 점에서 공연환경에 따라 춤을 확대하거나 축소할 때, 재구성의 기본단위는 낱낱의 동작이 아니라, 마루라고 설명한다. 가령, 15분 길이로 〈승무〉를 축소한다고 할 때, 동작이 아니라 몇몇 마루를 뽑아서 재구성한다. 즉 마루는 춤 구성의 기본 단위인 것이다.
초기 연구에서 마루는 전승주체의 단락감(段落感)에 의해 구분되는 단락으로, 대삼소삼(大衫小衫)의 강약대비와 더불어 설명된다.6) 본격적인 논의는 음악의 최태현과 춤의 이애주에 의해 시작되었고, 장희전의 연구가 또한 있다.7) 이들은 해금산조, 한영숙류 〈승무〉의 염불과장, 한영숙류 〈기본살풀이〉의 마루를 각각 분석 예시했다.
이후 연구는 답보 상태를 보이다가 본 연구자에 의해 지속되었고, 기존연구검토, 이보형‧이애주‧최태현‧장덕화와의 심층면담, 현장조사, 동영상분석 들을 통해 〈승무〉의 마루를 체계적으로 분석 예시했다. 그리고 봉산탈춤 〈목중춤〉과 궁중정재를 대표하는 〈처용무〉와 〈춘앵전〉의 마루를 분석 예시했다.8) 이상에서 도출된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 3가지이다.
첫째, 전승주체의 증언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마루는 일반화되지 못한 채 한영숙류 〈승무〉를 비롯한 몇몇 춤에서만 지엽적으로 사용된다. 그런데 명칭을 사용하지 않는 봉산탈춤 〈목중춤〉에서도 마루와 동일한 단락을 쉬이 확인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궁중춤에서 집박악사가 박을 쳐서 구분되는 단락(=박 단락)이 민속춤 마루에 상응한다고 할 수 있다.9) 이 점에서 음악과 유사하게 민속춤에서 궁중춤에 이르기까지 두루 통용되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할 수 있다.
둘째, 마루는 비교적 단순한 의미나 표현을 가진 단락으로, 춤 구성의 기본단위이다. 이것을 구성하는 요소는 일정한 의미를 갖는 어휘적 춤사위이고, 구성 원리는 맺고 어르고 풂(=전개부, 연결부, 종결부)이다. 요소와 원리, 이동경로(path), 박 등을 중심으로 분류 가능하며, 크게 2가지 유형(홀마루, 겹마루)으로 구분할 수 있다.
셋째, 춤 구성의 기본단위 마루를 중심으로 할 때, 전통춤 일반의 짜임새는 ‘전체 춤〉과장‧ 개별단위 춤‧악곡단락〉마루〉어휘적 춤사위〉동작에 해당하는 춤사위’로 서열화할 수 있고 체계적 규명이 가능하다. 이로써 형식론 수립의 가능성을 타진해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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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김열규(1980). 「굿과 탈춤」. 「탈춤의 사상」. 현암사. p.124.
채희완(1992). 「탈춤」. 대원사. pp.251-252.
2) 춤사위에 대한 초기적 관심은 1974년 문예중흥 5개년 계획에 의해 발족된 무용개발위원회 산하 ‘무용용어심의위원회의 활동’이다. 이후 국가차원의 춤사위 연구가 지속된다. 대표적 사례는 한국문화예술진흥원 지원의 ‘전통무용용어의 연구(1975)’. 한국학술진흥재단 지원의 ‘무용학분야용어정리사업(2006-2008)’, 문화관광부 지원의 ‘춤사위용어총람(2013)’, 국립부산국악원 지원의 ‘영남춤사위용어편람(2013)’ 등이다. 한편, 민간차원에서도 춤사위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는데, 이 중 전통춤 일반을 대상으로 하는 대표적 사례를 나열하면 다음과 같다.
김세중(1972). 「한국민속극 춤사위연구」. 중앙대학교석사학위논문.
이애주(1976). 「춤사위 어휘고」. 「관악어문연구」, 1. pp.247-272.
박금슬(1982). 「춤동작」. 일지사.
정병호(1984). 「춤사위고」. 「한국민속학」, 18. pp.155-190.
정병호(1985). 「한국춤」. 열화당.
서희주(2003). 「한국무용호흡법과 용어해설:박금슬 춤동작을 중심으로」. 일지사.
허순선(2005). 「한국의 춤사위와 무보틀」. 형설출판사.
3) 이애주(1995). 「승무의 구조와 춤사위연구:염불과장을 중심으로」. 「한국민속학」, 제23집. pp.283-313.
4) 최태현(1987). 『해금산조연구』. 세광음악출판사. p.267.
5) 송성아(2013). 「한국전통춤의 마루란 무엇인가」. 『한국무용기록학회지』,30호. pp.127-130.
6) 이보형(1995). 「리듬형의 구조와 그 구성에 의한 장단분류 연구: 사설의 율격이 음악의 박자와 결합되는 음악적 통사구조에 基하여」. 『한국음악연구』, 23. p.102.
7) 장희전(1993). 「살풀이구조 분석:한영숙 기본 살풀이를 중심으로」. 서울대학교 석사학위논문.
8) 송성아(2016). 『한국전통춤 연구의 새로운 방법론』. 부산대학교출판부.
____(2018). 「어휘적 춤사위의 의미와 짜임새: 봉산탈춤 목중과장을 중심으로」. 『대한무용학회논문집』, 제76권 6호. pp.107-135.
____(2019). 「전통춤 마루의 형식과 의미: 봉산탈춤 목중춤을 중심으로」. 『대한무용학회논문집』, 제77권 1호. pp.89-120.
____(2019). 「전통춤 마루의 유형과 특징」. 『한국무용연구학회』, 37권 3호. pp.41-68.
____(2021). 「전통춤 마루에 관한 연구: 처용무와 춘앵전을 중심으로」. 2020년 선정 신진연구자지원사업 결과보고서.
9) 한영숙류 〈승무〉와 봉산탈춤 〈목중춤〉은 민속춤 계열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궁중춤에도 마루에 상응하는 단락이 존재하는가라는 물음을 제기할 수 있다. 여기서 주목해 볼 수 있는 것이 집박악사가 박을 쳐서 구분되는 단락(=박 단락)이다. 오늘날 춤의 현장에서 박은 주변적이고 장식적인 것으로 간주되기도 하지만, 공연환경에 따라 춤을 확대하거나 축소할 때 박을 쳐서 단락 전환을 지시한다는 점, 홀기에 수록된 다수의 궁중춤이 박을 중심으로 구성을 설명한다는 점, 이왕직아악부는 물론이고 그곳에서 수학한 이병성, 성경린, 김기수, 김천흥 모두 박을 중심으로 그 짜임새를 설명한다는 점, 음악에서 박을 쳐서 구분되는 단락이 마루(=장)로 설명되는 경우가 많다는 점 때문이다.
송성아
춤이론가. 무용학과 미학을 전공하였고, 한국전통춤 형식의 체계적 규명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대표저서로 『한국전통춤 연구의 새로운 방법론: 한국전통춤 구조의 체계적 범주와 그 예시』(2016)가 있다. 현재 부산대학교 인문학연구소 학술연구교수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