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 연구

서평
조동화 선생 계몽적 춤평론의 총집산
김태원_춤비평가, 〈공연과 리뷰〉 편집인

『조동화 전집 2: 평론』/신국판 1198쪽/ 양장/ 늘봄



작고한 『춤』지 발행인이며 춤평론가였던 조동화 선생(1922-2014)의 전집 중 두번 째인『조동화 전집 2: 평론』이 아드님이 운영하는 늘봄출판사에서 올해 초 출간되었다. 선생의 주요 논고들 몇 편은 읽어 보았지만 선생 춤평론 작업의 전체적인 모습이 매우 궁금했었는데, 이번에 매우 두툼한, 들기에 버거운 한 권의 책으로 엮어져서 선생 춤평론 활동의 면면을 두루 읽을 수 있게 되었다. 무척 반갑고, 방대한 출간 작업에 참여하며 펴낸 이들의 노고를 칭찬하고 싶다.

선생이 많은 활동을 한 1950-70년대 지식인들의 글에는 많은 한자들이 섞여 있는데 지금의 60대 이상 중·고교에서 한자와 한문을 조금이라도 배운이들에게는 선생의 글을 찬찬히 읽어가는 재미가 있지만, 그렇지 않은 세대들에게는 마치 한자 가득한 비석의 검은 탁본을 보듯 캄캄해질 수 있다. 그럴 경우에는 그나마 한글로 많이 풀어져 있는 글들을 읽어보길 권한다. 그런 글들중 하나인 「우리춤의 고유미」(1962)는 선생의 많은 글들 중 가장 탁월한 글의 하나로 우리춤(주로 민속춤)의 특징과 매력이 어디에 있는가를 명쾌히 설명해 주고 있다. 대학 무용과에서 전공과정에서는 물론 필히 읽어야 하고, 고교과정의 교과서에서도 실려도 좋을 만큼 글의 짜임새를 갖고 있다. 그와 맞먹을 수 있을 정도의 흥미로운 글 「육체의 관능적인 향기」(1963)는 춤의 본질은 성적 매력의 발산에 있다고 보는 글―그와 일면 연관되지만, 선생은 어디에선가 “춤은 살아있는 원시이다.”라는 탁견을 내비치었다―로서 글 속 많은 한자들이 괄호 안에 한글로 적혀져 있지만 읽는 이들은 마치 미로를 더듬어 가듯 읽기에 답답함을 가질 수 있다. 이 글은 앞의 「우리춤의 고유미」처럼 한글 위주로 편집되어서 춤을 사랑하는 전공인이나 교양인에게 널리 읽혀져야 한다. 선생 시대보다 많은 전문서적을 갖고 있고 정보도 많은 요즘이지만, 해박한 안목을 갖고 이 같은 수준으로 짜임새있게 글을 쓸 수 있는 이는 매우 드물다.

그러나 선생의 춤평론의 주제는 그러한 춤에 대한 교양인문적인 글에 있지 않다. 두 글은 퍽 예외적인 경우이다. 선생의 춤평론을 관통하는 주제는 1926년 3월 21일 경성공회당에서 내한공연을 펼친 일본인 현대무용가 이시이 바쿠(石井漠)가 몰고온 이른바 신무용(新舞踊)이란 거대한 문화적 충격과 그 충격에 휩싸인 최승희와 조택원이란 한국 근대무용의 두 거인의 존재와 영향력이다. 선생은 여기서 한국 근대무용의 기점은 좋든 싫든 외래인인 이시이 바쿠가 일으킨 1926년 3월 21일의 그 사건으로부터 잡을 수 밖에 없으며 (이른바 ‘역사적 사실’이므로), 거기에 감화되었던 최승희와 조택원이 이시이 문하에서 얼마간 신무용을 익히다가 독립하게 되면서 ‘이시이식 표현적 신무용’에서 점차 벗어나 당대 한국민속무의 대가인 한성준과 같은 이로부터 우리춤을 배우면서 우리춤을 새롭게 자각해 ‘한국식 신무용’으로 이행해 가는 그 과정에서 ‘한국춤의 현대화’란 과제가 불거진다고 보았다.

따라서 최·조의 그 같은 활동이 본격화되던 1930년대 중반부터 오늘까지 한국무용계는 명확한 춤의 ‘방법’도 ‘기술’도 없이 이 춤의 주제에 매달리고 사로 잡혀왔다고 본다. 그런 중에 선생은 춤의 기술을 중요히 여기며, 기술의 완성이 없이는 어떠한 춤의 예술도 완성될 수 없고, 또 꽃 피울 수 없다고 보았다. 그래서 선생은 평소 춤의 기술이 체계화된 발레를 중요시 여기며, 한 때 ‘지랄춤’이라고 자주 불리웠던 오늘의 한국창작춤은 춤의 기술이 체계화되지 않았으므로 진정한 춤의 예술로서는 ‘부적격’하다고 보았다. 이것은 당대 한국창작춤을 높게 평가하며 중요시했던 춤평론가 강이문이나 박용구 선생과 관점이 크게 어긋났던 점이다.

그런 가운데 그 현대화의 주제를 뒤엎어버린 사건이 닥친다. 곧 1973년 9월 명동예술극장에서 있었던 홍신자의 전위무용 공연이었다. 여기서 선생은 홍신자의 공연을 춤의 기교나 형식을 무시하고, 인간 본연의 모습을 드러내는 하나의 ‘굿’으로 보며 한국춤이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전위 곧 아방가르드의 시대’로 진입하고 있다고 보면서 홍신자와 같은 실력있는 무용가와 그녀의 춤을 깊은 흥미를 갖고 지켜보는 실력있는 관객에 의해 새로운 춤의 시대가 열리고 있다고 낙관했다. 그와 함께 선생은 명동예술극장에 뒤이어 장충동에 새로운 극장이 지어져서 대극장용 공연이 펼쳐질 것을 예견하면서 ‘무용극’과 같은 춤의 양식이 새롭게 기대된다고 보았다.(70년대 송범 주도의 국립무용단에서 무용극이 활성화되었던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으리라.)

이같은 내용의 글은 「공간」지에 기고된 두 편의 글 「한국무용의 현대화에서 전위까지」(1973)와 「현대화의 과제와 새 춤의 주제」(1975)에 실려 있다.

두 글 모두 압축되어 있고, 비약(특히 후자)이 있기에 천천히 읽어보아야 한다. 이 중 전자의 글은 그리 분량은 많지 않지만, 다루는 주제가 중요해서 논단용 글이라고 본다.

앞서 글에서 언급을 못했지만 선생은 월북한 최승희보다 『가사호접』, 『만종』,『신노심불로』와 같이 신무용기에 명작을 남긴 조택원 선생을 존경하며 그의 순수 예술혼과 인간적 품격을 책 속 여러 글에서 흠모하고 있다. 또 최승희가 미모의 여성이고 그녀의 주변에 오빠 최승일, 남편 안막과 같은 카프계열(오늘날의 좌파)의 지식인들과 문필가가 대거 포진해 있어서 ‘춤추는 남성’ 조택원이 가질 수밖에 없는 어떤 마이너스적 측면(물론 시인 정지용이 어느 정도 받쳐주었지만)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있다. 이것은 동시에 최승희보다 앞서 1929년에 개인공연을 하고 무용연구소를 열며 비록 자신은 보드빌류의 춤을 추었지만 ‘조선춤안에 있는 보배’를 자각, 최승희의 신무용이 준 대중과의 괴리감을 극복, ‘조선춤다운 신무용의 길’을 열려했던 배구자에게도 적용되었다. 이 부분은 배구자의 안목과 춤방법-오늘의 시각에서는 ‘국적 있는’-에 더 호감을 갖는 선생의 꽤 긴 길이의 글 「근대무용의 두 여인-배구자와 최승희」(1975)에 실려있다. 오늘의 춤작가론과는 좀 다른, 어찌보면 대척점에 섰던 두 무용가론이라 하겠다. 이것은 오늘의 현대무용과 한국창작춤과의 관계와 유사하다 할까. 이 글 역시 논단용이다.

책 속 신무용사와 같은 긴 길이의 논단용 글은 이 지면에 다루기가 버겁다. 단지 「한국무용비평의 주변」(1981)은 한국춤비평사와 연관된 최초의 글이어서 춤비평에 관심있는 이라면 필히 읽어보야야 할 글이다. 글 속에서 선생은 해방공간 속 함귀봉교육무용연구소에서 자신에게 감화를 주었던 문철민 (당시 서울신문기자)을 본격적인 춤평론가로 평가하고 있으며, 월간『춤』지 발행이 있었던 1976년 이후 이순열의 등장으로 무용계와 평론가와의 긴장관계가 형성되고, 춤평론작업에 뛰어든 시인 김영태가 현대무용에 대한 중요한 기록을 남기고 있다고 후배 평론가들의 작업에 대해 짧지만 인상적인 평가를 남겼다.

이 평론집이 선생이 송범의 무용공연에 대한 「균형의 상실」이란 첫 평을 쓴 1953년 11월부터 강선영무용단의 『태평무』뉴욕공연에 부친 팸플릿 글을 쓴 2006년 8월까지 53년 가까운 시간에 걸쳐 쓰여져서 이 지면에서 그 면모를 다 설명할 수 없어서 나 나름 중요하게 읽히는 글 위주로 글을 썼다.

1200페이지 가까운 책 속에는 한국무용협회와 여러 심사를 둘려싼 건전한 무용사회의 형성에 대한 선생의 고민, 1964년 동아무용콩클의 시작, 1973년 한국무용 중심의 전문적인 공연단체가 된 국립무용단과 그 활동, 같은 해 문예진흥원의 설치와 예술기금제도, 1979년 대한민국무용제의 창설 등 오늘의 춤계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들에 대한 언급이 많다.

동시에 1960년대에 내한한 민족무용으로 승화된 알래 그리아스 스페인 민속 무용단, 강렬한 리듬에 맞춰 거리낌 없이 춤추는 미국의 드 발라르-앨빈 에일리무용단, 정교한 무용적 연기를 보여주었던 미국 호세 리몬 현대무용단, 순수 춤의 이미지와 마술적 안무력을 부여준 역시 미국의 폴 테일러 현대무용단을 비롯해서 70년대에 이른바 현대발레를 선보인 프랑스 국립발레단의 내한공연에 대해서도 선생은 당시로는 접하기 쉽지 않은 식견으로 프로그램에 글을 쓰거나 공연이 가진 특별한 예술적 경험을 설명하거나 그들 춤의 표현적인 특성을 정확히 잡아내고 있다.(당시는 박정희 군사독재의 시대인데도 전문적인 해외 무용단들이 적지않게 내한했다는 것은 놀랍다.)

6·25 동란 이후 피폐한 문화적 환경 속에서 한 뻠의 지면(원고지 불과 3-4장)이라도 얼마나 얻기 힘들었고, 또한 ‘무용평론가’란 타이틀을 갖기 또한 얼마나 지난(至難)했는가 하는 것은 춤평단에 널리 알려진 이야기. 그런 선생이 1965년 8월부터 월간『신동아』지에 고정지면을 얻게 되면서 비록 적은 지면이지만 정기적으로 이른바 ‘시평’이란 형태의 글을 1980년 11월까지 글을 썼다. 책의 후반부 상당한 양이 이 부분에 배정되었다. 이 글들은 60년대 후반에서부터 70년대 말까지 한국의 무용사회가 어떻게 변해갔는지 축약된 가운데 꽤 구체적으로 알려준다.

필자는 책 속 비평적 이슈가 되거나 논쟁적인 글은 따로 정리해서 논하고 싶다. 이 책은 한 사람의 춤평론가가 춤의 예술적 발전과 함께 하면서 시연할 수 있는 모든 활동의 양상을 생생히 보여주고 있다. 그러면서 선생은 우리 예술춤의 근대적 출발점과 그 과제를 잊지 말기를 무용계에 끈질기게 일깨워 준다. 강한 어조와 엄정한 단정력, 언론인다운 폭넓은 정보수집과 사실에 대한 존중은 크게 존경할 만하다. 가히 우리 춤비평의 한 거대한 지표(指標)요 유산이라 하겠다.


책 구입 도서출판 늘봄(춤지) (02)743-7784 1권 6만원

김태원
춤평론, 「공연과 리뷰」 편집인​​​
2026. 6.
*춤웹진

select count(*) as count from breed_connected where ip = '216.73.217.141'


Table './dance/breed_connected' is marked as crashed and should be repair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