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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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과 모던의 만남 신무용』, 김영희·황희정·이정민·유화정 저, 2026, 보고사 |
신무용을 다시 읽는 시선
한국춤을 전공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신무용’이라는 개념과 마주하게 된다. 신무용은 한국 근대춤의 출발점이자 오늘날 한국무용의 형성과 발전을 이해하는 중요한 연결고리이다. 그러나 신무용은 여전히 하나의 장르인지, 시대를 규정하는 개념인지, 혹은 새로운 춤의 양식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논의가 지속되고 있으며, 광의와 협의의 개념 또한 연구자마다 다르게 해석되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신무용은 오랫동안 다양한 학자와 무용가들에 의해 연구되고 재해석되어 왔으며, 신무용에 대한 논의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전통과 모던의 만남 신무용』은 이러한 논의의 연장선에서 출간된 연구서이다. 이 책은 전통춤이론가 김영희를 중심으로 황희정, 이정민, 유화정 네 명의 연구자가 함께 집필하였다. 연구자들의 지속적인 스터디와 학술적 교류가 하나의 연구 성과로 이어진 것이다. 이 책은 웹진 〈더프리뷰〉에 2023년 5월부터 2025년 3월까지 연재된 ‘신무용 다시보기’ 22편을 바탕으로 내용을 수정ㆍ추가ㆍ보완하여 단행본으로 출간되었다. 저자 네 명은 모두 한국춤을 수학하고 실기와 이론을 병행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경험은 각자의 관점과 연구방법을 바탕으로 한 주제별 서술로 이어졌다. 김영희는 근대 기생과 전통춤 연구를 기반으로 한국 근ㆍ현대춤의 흐름을 탐구해왔으며, 황희정은 전문무용단 경험과 춤 이론가로서도 꾸준히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이정민은 전통춤 전승 경험을 바탕으로 근ㆍ현대 한국춤 현상과 움직임, 관련 기록 연구로 영역을 확장해 왔으며, 유화정은 리틀엔젤스 활동부터 이어온 오랜 무용 현장 경험을 바탕으로 움직임 분석, 영상인류학 연구를 병행하고 있다(저자 소개 참조). 이러한 다양한 연구 배경은 책의 서술 방식에도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이 책이 단순한 공동 집필을 넘어 서로 다른 연구 시각과 경험이 유기적으로 결합된 결과물임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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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 《더프리뷰》 ‘신무용 다시보기’ 검색 http://www.thepreview.co.kr/ |
작품으로 읽는 신무용
책은 크게 1부 ‘신무용 다시보기’와 2부 ‘신무용 다시듣기’로 구성되어 있다. 1부는 개별 작품을 중심으로 신무용의 형성과 변화를 살펴보며, 작품을 둘러싼 무용가와 시대적 맥락을 함께 조명하고 있다. 세부 장 구성은 ‘전통과 조우한 순간들’, ‘캐릭터와 이야기의 탄생’, ‘세기를 건넌 신무용가들’, ‘신무용의 현재적 성찰과 미래 동인’이라는 네 개의 장으로 이루어진다. 세부적으로는 〈검무〉, 〈가사호접〉, 〈장고춤〉, 〈초립동〉, 〈부채춤〉, 〈산조춤〉, 〈사랑가〉 등 대표 작품과 배구자, 송범, 배명균 등의 무용가를 통해 한국춤의 재해석 과정과 무용가의 예술세계, 시대적 변화 속에서 신무용이 지닌 현재적 의미를 조명한다. 특히 〈검무〉 편은 작품이 시대에 따라 무용가에 따라 어떻게 변화하고 재구성되었는지를 살펴볼 수 있으며, 춤이 고정된 형식이 아니라 시대와 함께 변화하는 문화로 바라보게 한다. 〈산조춤〉에서는 각 작품을 통해 한 무용가의 삶과 예술세계를 함께 읽어내며, 작품과 무용가를 분리하지 않는 신무용 연구의 특징을 보여준다.
1부의 가장 큰 특징이 바로 이러한 기록을 읽는 방식에 있다. 지금까지 신무용 연구가 시대별 흐름이나 특정 무용가를 중심으로 서술되는 경우가 많았다면, 이 책은 하나의 작품을 중심에 두고 당시의 기록을 다시 연결한다. 신문기사와 공연 프로그램, 사진, 구술자료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하며 작품의 형성과 변화, 시대적 배경을 입체적으로 해석한다. 이는 기존 연구를 부정하거나 새로운 결론을 제시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남아있는 자료를 새로운 관점에서 분석하고 작품의 의미를 재구성하려는 연구방법론적 측면에서 주목할 만하다.
특히 저자들은 사진을 단순한 참고자료로 활용하지 않는다. 사진 속 무용가의 의상과 소품, 신체의 방향과 춤사위, 무대 구성을 중요한 시각 자료이자 연구 자료로 해석하며 당시 공연을 추론한다. 기록과 이미지를 함께 분석하는 이러한 접근은 신무용 연구뿐 아니라 무용기록 연구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다. 또한 작품을 분석하는 과정에서 전통춤의 변용과 재해석, 타 장르와의 융합, 조혼 문화와 여성상, 남북한 춤의 흐름, 전승 과정, 동시대 예술가들의 공통된 미의식과 표현 방식 등 당시 사회와 문화적 배경을 함께 읽어낸다. 개별 작품을 분석하면서도 그 이면에 존재하는 시대정신과 문화사를 함께 조망한다는 점에서 단순한 작품 해설집을 넘어서는 가치를 지닌다.
기억으로 이어지는 신무용
2부 ‘신무용 다시듣기’에서는 원로무용가 조흥동과 서영님의 구술 인터뷰를 수록하여 문헌 자료만으로는 확인하기 어려운 교육과 전승의 기억, 창작 과정에 대한 생생한 경험을 담아냈다. 2부는 앞서 1부의 작품 분석과 연계하여 구술기록을 함께 제시함으로써 신무용을 보다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필자는 그동안 경기광주문화원 구술채록 연구자 경험과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아르코예술기록원에서 10여명의 원로 무용가들을 대상으로 한 구술채록사업에 보조연구원으로 참여하고, 2년간 무용분야 미발간 채록문 제작의 경험을 가지고 있다. 이를 통해 살펴본 일반적인 구술채록은 구술자의 발화를 가능한 한 원형 그대로 음가를 기록하고, 음성·영상 자료와 함께 아카이브를 구축하는 데 목적을 둔다. 따라서 질문 역시 미리 정해진 방향보다 구술자의 기억과 삶의 흐름에 따라 확장되는 경우가 많다.
반면 이 책의 조흥동, 서영님 구술채록은 연구 주제를 중심으로 구성된 질문을 통해 신무용의 형성과 전승 과정을 조명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여러 연구자가 한 명의 구술자를 대상으로 공통의 관심사를 중심으로 질문을 구성하고, 작품과 신무용의 맥락을 보완하는 방향으로 내용을 전개하고 있다는 점에서 일반적인 구술채록과는 다른 특징을 보여준다. 필자가 참여했던 구술채록에서는 동일한 질문이라도 구술자마다 전혀 다른 기억과 서사가 펼쳐졌으며, 때로는 예상하지 못했던 이야기가 연구의 중요한 단서가 되기도 했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구술자의 삶 전체를 기록하기보다 신무용이라는 연구 주제를 중심으로 기억을 조직해 나간다는 점에서 분명한 차이를 보인다.
즉 구술채록이라기보다 연구 목적이 분명한 구술 인터뷰의 성격이 강하며, 작품 분석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시대적 맥락과 창작의 배경을 보완하는 역할을 한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특히 조흥동 편의 ‘신무용은 고전의 바탕 위에 창무된 춤’이라는 제목은 이 책 전체를 관통하는 문제의식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신무용을 전통과 단절된 새로운 춤으로 이해하기보다, 고전을 기반으로 시대적 감각과 창작성이 더해진 예술로 바라보는 시각은 앞서 1부에서 작품을 통해 논의한 내용을 구술을 통해 다시 확인하게 한다. 문헌에서 읽었던 내용을 실제 무용가의 경험과 기억을 통해 교차 검증할 수 있다는 점은 이 책이 가진 또 하나의 장점이다. 서영님의 인터뷰에서도 특정 작품의 재현보다 춤을 전승하는 과정에서 무엇을 남겨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드러난다. 아마도 서울예술고등학교 무용 교사로 교장으로 교육현장의 경험이 연계된 배경으로 파악된다. 이러한 내용은 기록이 단순히 과거를 보존하는 데 머무르지 않고 미래 세대와 연결되는 매개라는 점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구술채록 현장에서 가장 중요했던 것은 정확한 답을 얻는 것이 아니라, 기억이 자연스럽게 이어질 수 있도록 기다리는 일이었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구술자의 삶 전체를 기록하는 구술채록과는 목적이 다르지만, 작품 분석만으로는 담기 어려운 창작의 맥락과 예술가의 경험을 보완하는 또 하나의 기록 방식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기록이 만드는 미래
오늘날 춤 연구 환경은 과거와 크게 달라졌다. 공연 영상은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손쉽게 접근할 수 있으며, 국내외 다양한 춤과 공연을 실시간으로 접할 수 있다. 그러나 신무용이 형성되었던 20세기 초ㆍ중반은 현재와 전혀 다른 기록 환경이었다. 당시 공연은 영상으로 남아 있는 경우가 거의 없으며, 연구자는 국공립기관의 아카이브 자료 및 개인 소장 자료, 신문기사와 공연 프로그램, 사진, 회고록, 구술자료 등 제한적인 기록을 통해 작품의 흔적을 추적해야 한다. 더욱이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많은 자료가 소실되거나 단편적으로 남게 되었기 때문에 신무용 연구는 무엇보다 기록을 수집하고 교차 검증하는 과정이 중요하다.
무엇보다 이 책은 신무용을 새롭게 정의하려는 연구서라기보다 신무용을 어떻게 읽고 이해할 것인가에 대한 연구방법을 제안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작품을 중심으로 기록과 사진, 구술 자료를 교차 분석하는 방식은 앞으로 근현대 한국무용사 연구와 기록 연구에도 중요한 방법론적 사례가 될 것이다.
오늘날 한국춤 연구는 기록의 축적과 디지털 아카이브 구축의 중요성이 더욱 커지고 있다. 이러한 시점에서 『전통과 모던의 만남 신무용』은 과거의 춤을 현재의 시선으로 다시 해석하는 데 그치지 않고, 기록을 통해 춤을 복원하고 연구하는 하나의 방법론을 제시한다. 따라서 이 책은 신무용 연구서이자 한국 근대춤 기록 연구의 의미 있는 성과로 평가할 수 있으며, 향후 근현대 한국춤 연구를 수행하는 연구자들에게 유의미한 참고자료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다만 앞으로는 보다 다양한 구술자와의 인터뷰를 통해 신무용을 둘러싼 기억의 층위를 더욱 풍부하게 확장해 나갈 필요도 있을 것이다.
무용은 공연되는 순간 사라지는 예술이지만, 기록을 통해 다시 해석되고 새로운 의미를 획득한다. 이 책은 과거 신무용의 흔적을 재확인하는 작업을 넘어, 앞으로 신무용 연구가 기록과 함께 어떻게 확장되어야 하는지를 보여준다. 필자는 무용기록을 연구하는 한 사람으로서, 이 책을 통해 춤을 남기는 일이 곧 춤의 미래를 만드는 일임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아직 신무용의 개념과 범위에 대한 논의가 계속되고 있는 만큼, 이를 더욱 심화하고 확장해 나가기 위한 후속 연구가 지속되기를 기대한다. 결국 이 책은 신무용을 하나의 역사적 결과물이 아니라, 기록을 통해 현재에도 계속 해석되고 다시 읽혀야 할 연구 대상으로 바라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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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정은
무용기록연구가. 한국무용 전공을 기반으로 무용학과 공연예술경영학을 전공했고, 무용기록(아카이브, 구술사)과 무용 전공생 진로 영역의 연구방향을 가지고 있다. 현재는 이북5도위원회 문화유산 위원 및 서울남산-돈화문국악당 운영자문위원 활동과 전북대학교 및 경상국립대학교에서 무용학 강의를 병행하고 있으며, (재)전문무용수지원센터 직업전환 컨설팅 무용멘토이기도 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