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코로나로 인해 재택 업무가 늘고 온라인 커뮤니케이션이 퍼지는 것을 보게 된다. 이 와중에 공연의 중심이 극장으로부터 온라인으로 옮겨갈지 단언하기란 시기상조이나 당분간 그런 현상이 이어질 것이다. 불과 반년 전만 해도 예상치 못한 일이다.
올 상반기의 여느 공연들처럼 ‘서울국제댄스페스티벌인탱크’도 온라인에서 대안을 구해야 했다. 문화비축기지에서 예정된 행사들 가운데 특히 해외 단체들이 참여하기로 계획한 공연과 워크숍 등이 온라인에 도움을 청해야 하였다. 대부분 해외 단체들이 제공한 영상으로 진행된 ‘온라인 댄스필름 퍼포먼스’는 7월 하순부터 유튜브를 통해 제공되고 있다. 유튜브에서 국내 다른 춤행사들이 거의 모두 공연 중계의 완료와 동시에 랜선 송출을 끝내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온라인 댄스필름 퍼포먼스’는 짧은 기간의 준비 작업을 거쳐 무대 공연을 대체해야 한다는 동기에서 시작하였고, 그런 결과 예기치 않게 일종의 댄스필름 페스티벌이 온라인 공간에서 펼쳐졌다. 제공된 댄스필름들이 대개 시간 길이가 수 분에서 20분 안팎의 짧은 소품들이긴 해도 실제 무대 공연들만의 페스티벌과는 유다르게 생각할 거리를 제공한다.
이번 ‘온라인 댄스필름 퍼포먼스’에서 만나는 댄스필름들은 크게 2개의 범주(영상으로 옮겨진 무대 공연, 무대 공연과는 무관하게 제작된 별도의 스크린댄스)로 나눠진다. 댄스필름 페스티벌이라면 스크린댄스로 구성되는 것이 통례인 줄로 아는데, 이번 행사가 무대 공연을 온라인으로 살려내는 동기에서 출발한 데 비추어 2범주가 병행된 방식은 양해될 수 있을 것이다. 전자(영상화된 무대 공연)와 후자(스크린댄스)는 비디오나 디지털로 처리된 공통점이 있어도 사실상 이질적이어서 이번처럼 같은 행사에서 소개되고 보니 그 차이는 확연해 보인다. 주최 측이 의도했는지 몰라도 이번 행사는 오히려 그러한 차이를 식별하는 안목을 터득하는 장으로서 한몫한 것으로 보인다.
‘온라인 댄스필름 퍼포먼스’에서 전자의 작품들은 우선 조도가 낮아 식별이 어렵고 특히 와이드샷이 주도하는 작품에서는 임팩트가 떨어지기 일쑤였다. 여기에 더해 거의 고정된 카메라 앵글은 작품들을 마치 폐회로 티브이로 영혼 없이 담은 듯한 인상마저 준다. 부분적으로 근접 촬영이나 클로즈업이 없지 않았을지라도 전반적으로 이들 작품들과 함께 하려면 상당한 인내가 필요하였다.
Sine Qua Non Art 〈허물〉(Exuvie) ⓒJoao Garcia |
Deborah Brockus 〈표류: 내면의 정경〉 ⓒscreen capture |
이런 흐름 속에서도 시네콰논아트의 〈허물〉(Exuvie)과 브로커스레드무용단의 〈표류: 내면의 정경〉은 차별성을 보였다. 100킬로그램의 밀랍을 얇게 깔고선 그것을 뒤집어썼다가 조야하게 벗어가는 모습을 강조한 남성 2인무 〈허물〉은 단순해 보일지 모르겠으나 느린 속도, 야성에로의 복귀 등 중의적인 의미를 담았다. 여성 독무로 진행된 〈표류〉에서 우리는 흔한 기억에 맞닥뜨리게 된다. 하얀 천으로 뒤덮인 소파 등속의 가구가 덩그러니 놓인 다락방에서 여자 혼자 여러 몸짓들로 배회하는 모습은 보는 이를 상념에 젖게 한다. 일상적으로 특정의 사물과 공간에 배인 기억들에서 그 주체는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나 자신이지만, 내용은 달라도 이런 경험은 (가령 이사를 전후해서 흔하게 맞닥뜨리듯이) 누구에게나 있어서 보편적이기도 하다. 〈표류〉는 실제 다락방에서 진행되고 실내 스탠드를 조명으로 썼고 카메라워크도 고정된 상태에서 풀샷으로 일관했을 뿐 여타의 작위를 배제하였다. 실내의 특수성을 살리는 간략한 연출 양식으로 보편적 정동(情動)을 살려낸 작품으로 돋보였다.
알츠하이머를 앓는 할머니의 모습을 그려낸 〈식물과 유령의 혼종〉(Hybrids of Plants & of Ghosts; 라단사단사무용단), 패권주의자들의 행태를 고발하는 〈패권에 올라타기〉(Supremacy Ride; 클레어럽서무용단), 19세기 미국에서 목숨을 걸고 자유를 찾아간 흑인 헨리 박스 브라운을 소재로 한 〈박스〉(Box; Bernard Brown 안무 출연)를 무대가 아니라 영상으로만 접하게 되어 아쉬웠다.
Charlotte Katherine 〈동굴 속 마음〉(Cavernous Consciousness) ⓒscreen capture |
후자의 스크린댄스에 속하는 〈동굴 속 마음〉(Cavernous Consciousness; Charlotte Katherine 무용단)은 제목 그대로 동굴에 갇힌 운명의 존재가 운명을 헤쳐가야 하는 몸짓을 다양한 앵글로 묘사해낸다. 숙명처럼 인간 존재의 조건으로까지 확대해 볼 수 있는 몸짓들이 나타내는 것처럼 〈동굴 속 마음〉은 간명한 소재로써 거울을 소도구로 쓰면서 아주 다의적인 것을 담았다. 사우마무용단의 〈합치기〉(Coalesce)는 댄스필름의 다양한 기법으로 초현실주의적인 영상미를 제시하였다. 영혼과 몸이 서로 스며드는 것을 의도한 작품이라 짐작되는 한편으로 설득력은 미진한 편이었으나 솔로 댄서의 몸짓 이미지들을 표현으로 활용해내는 영상미학 면에서 시선을 고정시키는 작품이다.
역사를 상기해 보면 앞서 언급한 2범주의 댄스필름은 갈등을 빚어 왔으며, 그 갈등은 쉽게 해소될 것 같지 않다. 무용인들은 대개 전자의 무용 공연의 영상화에 기우는 반면, 영상 전문인들은 후자의 스크린댄스에 기우는 경향이 농후하다. 전자와 후자에서 몸과 움직임을 해석하는 관점은 차이가 나고, 사실상 서로의 미학이 상당히 이질적이라는 점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무대에서의 생동감을 중시하는 무용인들이 댄스필름을 등한시해온 이유도 그렇게 설명될 수 있을 것이다.
전자와 후자는 각기 선택되고 서로 배척하는 식이 아니라 공존할 수밖에 없어 보인다. 지금까지 대체로 잠복해왔던 이러한 갈등은 코로나(AC 年代) 이후 언젠가 표면화할 것으로 보인다. 우리 곁에서 ‘온라인 댄스필름 퍼포먼스’는 이 점을 예고하고 있다. 코로나19에 당면하여 향후 과제를 부각시키는 데서 더 나아가 ‘온라인 댄스필름 퍼포먼스’는 무용인들이 스크린댄스의 메소드에 대해 인식을 갖추고 이를 기반으로 (춤) 영감을 키워야 한다는 점을 환기시킨 의의를 갖는다.
김채현
춤인문학습원장.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명예교수. <춤웹진> 편집장. 철학과 미학을 전공했고 춤·예술 분야 비평 수백 편과 저서 『춤과 삶의 문화』, 『춤, 새로 말한다 새로 만든다』를 비롯 다수의 논문, 『춤』 등의 역서 20여권을 발간했다. 지난 30년간 한국의 예술춤과 국내외 축제 현장을 작가주의 시각으로 직접 촬영한 비디오 기록물 수천 편을 소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