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춤에서 극장 중심의 사고가 뒤흔들리고 있다. 연극, 음악 분야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언젠가 도래할 일이었으며, 다만 코로나19로 인해 예기치 않게 빨리 왔을 뿐이다. 세계 도처에서, 그리고 국내에서 코로나19 재난에 대응할 안전 수단의 하나로 영상 화면들이 채택된다. 올해 시댄스(세계무용축제)도 전체 공연물을 전적으로 유튜브와 비메오에서 송출(11월 6 ~ 22일)하는 온라인 축제로 진행되었다.
지난 20여 년 전적으로 극장 무대 공간에서 진행되던 시댄스에서 영상이 가뭄에 콩나듯 있었을 듯해도 영상과는 사실상 거리가 멀었다. 그러던 터에 올해는 극장 공간을 아예 떠나서 관객을 만나야 하는 돌발적 상황을 맞아 관객과 인터넷 플랫폼에서 접속하였다. 이번 온라인 축제는 26편의 국내 프로그램(6 ~ 15일, 유튜브), 5편의 해외 프로그램(16 ~ 22일, 비메오)으로 구성되었다. 네이버티브이에서 매 공연마다 유료로 지불해야 4시간 동안만 볼 수 있은 서울국제공연예술제와는 달리 시댄스는 해당 영상들을 온라인플랫폼에서 무료로 충분한 시간 동안 볼 수 있도록 하여 대조를 보였다.
팬데믹의 예상을 벗어난 장기화로 인하여 해외 레퍼토리를 간판으로 앞세우던 그간의 관행을 깨고 올해 시댄스는 국내 단체들로 대부분의 라인업을 구성한 동시에 국내, 국외 프로그램을 순차적으로 송출하였다. 관객이 온라인플랫폼을 매개로 작품을 만나야 하는 것은 올해로 치면 ‘긴급한’ 상황일 것이다. 그러나 이 상황이 일이 년 이어지면 긴급한 상황에서 일상적 상황으로 변할 것이다.
상식적으로 극장은 사람이 모여야 성립한다. 이제는 극장에 꼭 모여야 한다는 사고방식(극장중심주의)이 이런저런 상황과 추세에 따라 깨뜨려지면서 탈극장, 탈무대가 더 가시화될 것이다. 그런 추세 속에서 관객이 극장에 덜 모이겠으나 온라인플랫폼에서 극장 무대에 기반을 둔 공연물은 대세를 유지할 것이다.
따라서 춤 공연(그리고 춤 작품)을 온라인플랫폼으로 전달함에 있어 어떤 미학적 전략이 효과적일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는데, 올해 시댄스는 작품 편수는 적더라도 해외작들을 통하여 이에 대해 시사점을 던졌고, 또 이 점이 올해 시댄스에서 중점적으로 주목할 바라 하겠다.
해외작 5편 가운데, 마기 마랭의 일대기를 재구성한 다큐 〈타임 투 액트〉, 무대 실황에 약간의 손질을 가한 클럽 가이 앤 로니의 〈비포/애프터〉, 첸웨이리의 화이트박스 실황 기록물 〈알려진 얼굴〉은 무대 중심의 공연물이고, 이에 비해 나머지 2편은 무대와 무관한 댄스 필름으로 분류된다.
스테파니 티어쉬 〈섬의 몸들〉 ⓒ서울세계무용축제 |
스테파니 티어쉬가 제작한 〈섬의 몸들〉(Insular Bodies)은 몸과 자연 절경의 조화를 영상으로 담은 영상시(25분 길이)이다. 변산반도의 채석강에 층층이 쌓인 바위 절벽을 흰색깔로 더 크고 굵게 확대해놓은 듯한 코르푸해안에서 맨몸들은 무리를 이루며 자연과 애써 조화를 이룬다. 그리스 이오니아해의 그 해안에서 인간들은 그곳의 하얀색 기암절벽에 매달리거나 기대어, 바닷가에서, 바다 속에서, 혹은 삐쭉삐쭉하게 생긴 기괴한 모양으로 한바다에 우뚝 솟은 짙은 검정색 용암 바위 위에 서서 일체의 장식 그리고 거추장스런 허물을 벗은 맨몸을 전시하였다. 섬의 몸들은 그렇게 섬에서 서식(棲息)하는 몸, 몸들이었다. 여기서 출연한 8명의 남녀 무리가 맨몸이 아니었다면 자연과의 조화는 과연 어떻게 가능할 수 있을까.
성별 구분을 초월한 어느 인간 무리가 자연 속에서 자연과 섞여 자연에 귀속하는 그 원초적인 순간에, 춤과 움직임마저 서로를 구분하는 것은 번잡스러울 따름이다. 인간의 몸과 자연이 함께 지어내는 모습으로는 아주 손꼽힘 직한 이처럼 숭고한, 시적 아름다움을 〈섬의 몸들〉은 ‘몸으로’ 우리 앞에 제시하였다.
후안호 히메네스 〈타임코드〉 ⓒ서울세계무용축제 |
이와는 전혀 다른 짜임새를 보인 〈타임코드〉는 15분 길이의 댄스필름으로서 단편영화의 짜임새를 제대로 갖추었다. 〈타임코드〉는 영화의 스토리텔링을 기반으로 하지만 그 이면을 관통하는 서사는 스토리텔링을 훨씬 능가한다.
이 영화는 어느 여성이 이른 아침에 고급 아파트 주차장 경비원으로 바쁘게 출근하는 장면에서 출발한다. 남자 경비원과는 주야 교대 근무이다. 어느 날 주차장에서 차량 헤드라이트가 깨졌다는 신고전화를 받고 여성은 모니터에서 씨씨티브이 기록의 해당 일시를 타임코드로 검색한다. 동료 남자 경비원이 심야에 주차장에서 솔로 댄스에 열중하던 중에 아니나 다를까 헤드라이트를 깨뜨리는 화면이 나타나고 그녀는 곧장 주차장으로 가서 깨진 헤드라이트 파편을 찾아낸다. 그날 저녁 출근한 남자 경비원과 여자 경비원은 서로 말도 없이 근무 교대할 뿐이고, 이후 며칠 동안 여자 경비원은 모니터에 여러 타임코드를 입력하여 남자 경비원이 심야에 주차장에서 솔로 댄스에 열중하는 화면을 계속 보게 된다.
그 얼마 후 두 경비원이 퇴사한 것 같은 상황에서 신입 경비원에게 관리 소장이 근무 요령을 숙지시키기 위해 최근 어느 날의 타임코드를 입력해보자 앞서의 두 남녀 경비원이 근무복 차림으로 심야에 아파트 지하 주차장 곳곳에서 듀오 댄스에 열중하는 화면들이 현란하게 등장한다. 씨씨티브이로 저장된 에너제틱한 듀오 댄스. 마지막 장면으로서, 관리소장은 (그들의 근무규칙 위반에!) 할 말을 잊은 뜨악한 모습. 분위기를 알아차린 신입 경비원 왈, ‘저는 춤 못 춰요.’
영화 〈타임코드〉가 전개되는 공간은 출근길 말고는 경비원 출근 통로, 아파트 주차장과 경비원 근무 공간, 겨우 세 곳이며(촬영 각도도 언제나 아주 엇비슷하다) 등장인물은 두 경비원(주연)과 조연역의 관리소장과 신참뿐이다. 영화에서 찾아낼 스토리텔링은 이상 소개한 것 외에 없어서 영화는 매우 단출하다. 영화에서 두 남녀가 춤으로 어울리게 된 동기는 전혀 제시되지 않으며 중반부까지 두 사람은 서로 심드렁한 매우 건조한 관계로 묘사된다. 그러나 모니터가 증언하듯 두 사람은 춤으로 하나가 되었고, 관리소장의 말에서는 그 직후 그들이 자진 퇴사한 사실이 암시된다.
단적으로 〈타임코드〉에서는 두 사람이 심야 근무 시간에 일탈하고 퇴사를 결행하도록 유도할 만큼 춤의 강한 중독성이 은유적으로 표현된다. 게다가 영화는 극장 아닌 장소를 배경으로 극장 무대를 떠나서도 춤이 지속된다(극장중심주의의 파기!)는 점을 말하고 있다. 감독(후안호 히메네즈)과 안무자(랄리 아이과데)의 그렇게 간단명료한 시선이 이 영화의 서사를 오히려 강하게 뒷받쳐준다. 댄스필름으로서 이처럼 급반전으로 호기심을 자극하고 또 타당해 보이는 설득으로 단숨에 문제의식의 서사를 고루 환기하는 경우는 드물다.
다비드 망부슈 〈마기 마랭: 타임 투 액트〉 ⓒ서울세계무용축제 |
이번 시댄스가 소개한 〈타임 투 액트〉(행동할 시간)(2018)는 상당한 무대 영상 기록 자료와 사회 활동 자료, 인터뷰를 바탕으로 프랑스 누벨 당스 개척자 마기 마랭을 충실하게 그려서 이해하기 쉽게 만든, 그리고 그녀의 아들이 제작한 다큐멘터리(108분 길이)이다. 유튜브와 비메오에서는 접할 수 없는 그녀의 일대기이다. 국내에 사실상 단편적으로만 알려져온 마기 마랭을 이해하는 것은 프랑스 컨템퍼러리 댄스의 한 축을 제대로 소화하게 되는 한 방편이 된다. 〈타임 투 액트〉에서 우리는 마기 마랭의 단체가 가족주의적 커뮤니티 같다는 인상을 강하게 받게 되는데, 이는 그간 잘 알려지지 않은 점인 것 같다. 다큐에서 ‘젊고 멋지고 늘씬한 몸 중심의 관념을 벗어나’ 춤을 처음 발표하기 시작하여 그 연장선에서 〈메이 비〉를 공연했고 아울러 자신이 언제나 사회와 문명에 대해 공동체 의식을 견지하고 실행해왔다고 잔잔히 그러나 꿋꿋이 말하는 마랭의 생각은 지난 40년 동안 신자유주의 체제에 휩쓸려 곤궁해져온 자본주의 세상에서 그녀의 춤을 더욱 싱싱하게 만드는 것 같다. 그녀는 내년 6월이면 70살이 된다.
클럽 가이&로니 〈비포 애프터〉 ⓒ서울세계무용축제 |
클럽 가이 앤 로니의 〈비포/애프터〉는 노년에 접어든 어느 여성의 회상기이다. 극장 무대 천장에 대형 모니터를 잇대어 설치하고 모니터 밑에는 주로 방과 거실 구실을 하는 가변 장치를 세웠다. 작품의 서두에 오늘도 자신(의 몸)을 올바로 쳐다보기가 힘들다는 그 노년 여성의 독백에서 우리는 이 공연이 (어느 인간의) 내면을 소재로 할 것임을 알아차리게 된다. 독백이 꼬리를 물며 연상작용을 일으켜 세상살이와 생의 느낌들이 상당히 폭넓은 범위에 걸쳐 섬세하게 전달된다.
다수 연기자들의 솔직한 내용의 극적 대사와 신체 연기를 적절히 포착한 이 댄스필름은 극장 무대 실황을 제대로 보여준다. 〈타임 투 액트〉와 함께 영화관에서 보아도 손색없을 작품들이다. 사족으로, 첸웨이리의 화이트박스 실황 기록물 〈알려진 얼굴〉은 SNS가 주도하는 세태 속의 허상을 고발하는 취지는 공감할 수 있으나 구성이 진부하며 식상한 감이 들었고 영상은 완성도가 낮았다.
그간 해외 단체 초청 비중이 높았던 여느 행사에서건 올해는 해외의 비중이 전무하거나 대폭 줄어든 사정에서 시댄스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번 시댄스는 후즈 넥스트 프로그램을 지속하면서 그 외에도 국내 단체들을 대거 초청하였다. 그동안 해외 단체 비중이 높았던 이유는 국내와 해외 춤 공연 단체의 수준 차이를 고려한 결과일 것이며, 국내 단체들의 수준이 점진적으로 호전되는 중에서도 수준급 해외 단체들을 소개하는 작업은 여전히 필요하다. 이번처럼 국내 단체들의 비중이 높아지면서 시댄스는 재공연할 기회를 국내 단체들에게 다수 부여하게 되었고, 앞으로도 이런 점이 기대된다.
긴급한 상황에서 국내 단체들로 라인업을 구성하는 데서 다소 무리스런 점도 발견된다. 〈춤비나리〉 〈무연〉 같은 프로그램이 굳이 필요했는지 선뜻 수긍하기 어렵고 부분적으로는 출연진이 적절했는가 하는 점도 있었다. 민간 단체의 행사에서 라인업 구성과 관련하여 주최측의 독자적 판단이 먼저 존중되어야 하는 데 못지않게 공적인 관측에도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덧붙여, 황해도 단풍맞이굿(철물이굿)처럼 이즈음의 춤계나 젊은층, 일반인과는 거리가 멀었던 프로그램들은 이런 온라인플랫폼의 기회에 잘 살려봄 직할 것이다.
시댄스 출범 이래 극장 무대 작품을 집약해서 선보이는 것은 일종의 전통이었다. 그러나 이 전통이 앞으로도 고수될 수 있을지, 그 전망은 사실상 불투명하다. 이런 상황을 고려해서인지 올해 시댄스는 무대의 기록과 영상 전달이라는 두 가지 측면을 결합한 춤 영상의 제작 송출을 의도한 것으로 보인다. 향후에도 어느 시기까지일지는 몰라도 이런 의도는 지속될 것으로 보이는데, 이 경우 문제는 관객에게 전달되는 춤 영상의 완성도일 것이다. 무대 기록과 영상 가운데 어느 쪽에 초점을 두느냐에 따라 완성도에 대한 판단은 달라질 수 있다. 다시 말해 무대 기록과 영상 가운데 어느 하나를 택하는 것이 춤 영상의 완성도를 높이는 방법이 될 것이다.
대개의 경우 무대 기록과 영상, 두 가지를 달성하려 하지만 국내 무용 영상 작업의 현단계는 이도저도 아닌 듯하다. 이와는 달리, 이번에 소개된 〈비포/애프터〉는 많은 참조가 될 것이다. 이 무용 영상은 무대 공연물의 근본인 무대에 토대를 두어 기록으로서의 가치를 온존하면서 영상 이미지와 클로즈업을 곳곳에서 활용하였다. 무대 공연물에서는 무대 위 실황을 존중해야 한다는 것이 무대 촬영의 금과옥조라는 점을 이 무용 영상에서 재확인하게 되는 것이다. 무대에서의 실황감이 낮은 영상은 댄스 필름으로서 비평 대상이 되겠으나, 가령 〈섬의 몸들〉 〈타임코드〉처럼 댄스 필름으로 제작되지 않는 이상 무용 영상이 얼마나 비평 대상이 될 수 있겠는지 회의적이다. 올해처럼 무용 영상이 국내에서 관심사로 대두한 적은 일찍이 없었고, 특히 시댄스는 온란인플랫폼으로 그 길을 열어보였다.
김채현
춤인문학습원장.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명예교수. <춤웹진> 편집장. 철학과 미학을 전공했고 춤·예술 분야 비평 수백 편과 저서 『춤과 삶의 문화』, 『춤, 새로 말한다 새로 만든다』를 비롯 다수의 논문, 『춤』 등의 역서 20여권을 발간했다. 지난 30년간 한국의 예술춤과 국내외 축제 현장을 작가주의 시각으로 직접 촬영한 비디오 기록물 수천 편을 소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