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국립현대무용단 〈인잇〉
변별력 약화 부른 넓은 그물망의 안무
김채현_춤비평가

국립현대무용단의 〈인잇〉(init)에는 아시아 여러 나라의 무용수들이 출연하였다. 한국의 무용수 2명을 비롯해서, 라오스, 중국, 일본, 베트남, 홍콩, 싱가포르, 대만 출신의 무용수도 9명이 함께 무대에 올랐다. 아시아 출신 또는 아시아 배경의 무용수들이 다수 출연하는 무대가 우리 춤계에 흔치 않아도 다문화 사회로 진척되는 국내 전반의 흐름에서 자연스럽다. 아시아 무용교류 프로그램에 해당할 이 공연은 DMAU(디마우 · Dance Makes Asia become the Universe)라 이름 붙여진 프로젝트의 첫 발자국으로 소개되었다(안무 · 김성용 예술감독,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6월 7~9일).



국립현대무용단 〈인잇〉 ⓒ국립현대무용단/김정엽



공연 내내 공중에는 울타리 같은 원통형의 대형 구조물이 공중에 매달려 있었고, 무대 가장자리에는 가느다란 줄들이 수직의 주렴 모양으로 드리워졌다. 그 아래에서 하얀 바지와 티셔츠 분위기의 상의를 착용한 무용수들이 공연을 전개한다. 남성과 여성 간에 의상에서 차이는 없는 편이다.

〈인잇〉은 스토리텔링을 갖지 않는다. 아시아권 출연자들을 의도적으로 대거 기용했더라도 아시아적인 그 무엇을 의도적으로 드러내려는 기색도 감지되지 않는다. 둥근 구조물 아래서 움직이는 그들의 성비는 각각 절반씩 정도로 엇비슷하다. 출연진들은 솔로, 듀엣, 트리오 그리고 전체 집단의 무리 등의 모습들로 관계를 맺는다. 여기서 스토리텔링이 특정될 수 없다시피 그들의 관계 또한 세상사 속에서 말해지는 어떤 사연이나 관계로 설명되는 것이 아니다. 그러한 속에서 그들의 움직임들은 상대방이나 집단에 대한 대응이나 반응을 적극적으로 보이는 양상으로 전개되며 나름대로 움직임에 열중하고 몰입하는 품새가 주를 이룬다. 도약의 동작은 거의 없는 편이고 바닥에 앉거나 누워 진행하는 동작도 상당 비중을 점한다.

그들의 움직임은 특정 사연이나 관계에 바탕을 둔 내러티브를 전달하지 않는다. 그래도 무대에서 전개되는 움직임들은 어떤 면에서 아주 구체적이다. 일렁임, 엉킴, 꿈틀댐, 엎드림, 앉음, 누움, 내두름 같은 동작들을 출연진들은 계속해서 교환하면서 어떤 소통을 시도하며 나누는 모습을 연출해낸다. 그들이 이루려는 소통을 감지하는 데 있어 이번 공연의 대전제로서 아시아권 무용수들이 무대에서 소통을 모색하는 점에 초점이 모아지기 마련이다. 아시아권에서 모인 그들은 언어와 환경, 춤의 이력에서 이질성이 있는 반면에 아시아권이라는 공통점도 있는 편이다. 안무자 또한 공연 소개서에서 이번 공연에서 “무용수 개인 각자의 문화적 차이 안에서도 굉장히 닮은 몸성과 춤성을 만나고 다름 속에서 서로 연결된 아시아적 공동체성을 발견했다”는 소감을 밝혔다. 폭넓게 보아, 아시아권 출연진 각자가 자신(들)의 삶과 고유한 개성을 견지하는 동시에 상대방(들)의 모습을 수용하려는 의지가 〈인잇〉에서 그러한 소통으로 외화된 것으로 이해되는 것이다.

아시아인들은 감정과 생활 문화적 배경이 엇비슷하다는 통념이 있다. 이 통념이 사실에 부합하는지 여부는 사실상 확정하기가 애매한 문제이다. 아시아성이 무엇인지 논란이 끊이지 않는 것도 그 때문이기도 하다. 앞서 인용된 안무자의 말처럼 〈인잇〉은 일단 그 엇비슷함에 주목하고 그것을 춤으로 형상화하려는 시도로 읽혀진다. 아시아성을 무엇이라고 단정하기 전에 〈인잇〉은 매우 열린 태도로 공연에 임하였음을 공연 소개서는 밝혔다. 예컨대 출연자 개개인의 다른 정체성, 그리고 동일한 단어에 대한 개개인의 다른 움직임의 반응을 존중하고 공유하며 반영하는 방식이 공연 구성에서 주요하게 작용한 것 같다.



국립현대무용단 〈인잇〉 ⓒ국립현대무용단/김정엽



이번 공연 무대에서 아시아권 출신 무용수들의 공통점이 무엇으로, 어떻게 형상화되었는가 하는 점은 관심을 유발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 점이 실제 공연 현장에서 무엇으로 제시되었는지 퍽 불투명하였고 일종의 과제로 남겨진 것으로 보인다. 이런 점에서는 서양권의 여러 나라 출신 무용수들만으로 이번과 같은 공연을 진행하고 비교해서 다시 아시아권 출신 무용수들의 공통점을 반추하는 경우를 가정해보게 된다. 다만, 이러한 작업은 여느 실험처럼 제한된 범위 내에서 이뤄지는 한계가 있을 것은 물론이다. 그렇더라도 이번 〈인잇〉의 결과를 판별하는 데 있어 얼마간 시도해볼 만한 작업이 아닐까.

이번 공연뿐 아니라 아시아권 출신 무용수들이어도 인종뿐 아니라 체형 등에 따라 움직임에서 차이가 날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인간 개체가 각자의 주체이므로 차이는 피할 수 없는 일이겠다. 매스게임도 아니고 안무자의 일방적 구상을 쫓는 공연도 아닌 한, 특히 이번처럼 무대 위 자율적 자기 표현을 중시하는 공연에서 차이는 불가피하다. 이와 관련하여, 〈인잇〉에서 각 출연자들 사이의 다른 움직임들에 영향을 끼쳤을 만한 요인으로 개인의 생래적 특성, 출신 국가, 춤경력의 이력, 평소 잠재의식, 그리고 〈인잇〉 공연 작업 참가 도중의 자기 의도 등등을 떠올리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닮은 몸성과 춤성에서 다름 속의 비슷함 같은 가족 유사성이 발견될 것이다. 가족 성원들 간의 상호 존중이 가족의 건강과 유지에 필수적이듯이 디마우 프로젝트의 기본 지향점으로서 타당해 보이는 것이다.

재론하면, 〈인잇〉에서 아시아권 출신 무용수들 개개인의 개성과 공통점이 무엇으로 제시되었는지는 불투명하다. 이의 연장선상에서 조금 더 생각하자면, 같은 나라 출신 무용수들 사이에서도 개성과 공통점이 있을 것이다. 이번 공연 준비와 구성 방식을 실제 이번에 아시아권 출신 무용수들만으로 진행한 경우(〈인잇〉)와 가상적으로 국내(즉, 한국) 출신 무용수들만으로 진행하는 경우 사이에 어떤 차이점이 있을지 나로선 잘 상상되지 않는다. 다시 말해서 이번 〈인잇〉의 변별력은 약하였다. 그렇다면, 굳이 아시아권 무용수들을 모아 공연하는 의의는 과연 어떻게 찾아질 것이며 과연 그렇게 모아서 할 만한 공연이었을까. 즉, 아시아권 무용수들과의 만남과 창작 대화를 통해 각자의 개성과 아시아적 닮음을 동시에 제시하려는 작업에 참여한 출연진들에게서 공연 재료 즉 구체적 형상을 길어올리는 그물망이 과도하게 넓었던 것이 아닌가 싶다. 이로 인해, 대형 원통 구조물도 그다지 인상적이지 않았다. 구조물은 공중에 매달려 공연 도중에 각도를 달리하며 기우뚱한 모습들을 보이고 피날레에서는 무대 위로 하강하여 무용수들이 없는 무대를 차지한다. 중간이 어느 정도 잘려 개방성을 나타내고 둥근 데서 연상되는 포용력 이외에 이 구조물이 과연 어떤 의미를 가졌을지 오히려 궁금하다.

국립현대무용단이 아시아 현대무용의, 말하자면, 허브 단체가 되길 소망하는 의지의 첫걸음으로서 〈인잇〉은 전개가 아주 밋밋하였고 결정적으로는 안무는 과연 무엇을 길어올려야 하는지 그 핵심 역할을 다시 묻도록 하였다. 이왕 아시아 현대무용의 허브가 제기된 김에 덧붙이자면, 관련 아시아 무용교류 프로그램을 개발 진행하는 방안의 일환으로서 공개 토론회나 포럼 같은 폭넓은 장을 통하여 국립현대무용단의 역할과 프로그램 개발이 공론화되고 다져지기를 제안한다.

김채현

춤인문학습원장.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명예교수. <춤웹진> 편집장. 철학과 미학을 전공했고 춤·예술 분야 비평 수백 편과 저서 『춤과 삶의 문화』 『춤, 새로 말한다 새로 만든다』 『뿌리깊은 나무 샘이깊은 물』(1)을 비롯 다수의 논문, 공저, 『춤』 등의 역서 20여권을 발간했다. <국립무용단 60년사>(2022년 간행, 국립무용단)의 편집장으로서 편집을 총괄 진행하고 필진으로 참여하였다. 지난 30년간 한국의 예술춤과 국내외 축제 현장을 작가주의 시각으로 직접 촬영한 비디오 기록물 수천 편을 소장하고 있으며 한국저작권위원회, 국립극장 자료관, 국립도서관 등에 영상 복제본, 팸플릿 등 일부 자료를 기증한 바 있다.​​​​​​​​​​​​​

2024. 7.
사진제공_국립현대무용단, 김정엽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