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멜랑콜리댄스컴퍼니 〈테스트드라이브〉
유다른 움직임의 포스트휴먼 세계
김채현_춤비평가

사람은 움직이고 춤 움직임을 만든다. 움직임은 그 사람, 그 춤과 한몸이다. 그렇다면, 포스트휴먼 (시대의) 움직임에서는 어떤 사람, 어떤 춤이 찾아질까. 멜랑콜리댄스컴퍼니의 신작 〈테스트드라이브〉(TestDrive)에서 안무자 정철인은 그 점을 강하게 담은 세계로 사람들을 안내하였다(12. 20~21., 플랫폼엘). 철저히 계산된 구성이 남다른 무대이다.



멜랑콜리댄스컴퍼니 〈테스트드라이브〉 ⓒ임현준



테스트드라이브는 비디오 레이싱 게임, 자동차 시승 정보 커뮤니티 등을 지칭하는 말이다. 소소한 전동 퀵보드로부터 민간 우주관광까지 모빌리티가 다차원으로 급팽창하고 모빌리티가 초거대산업으로 선두를 달리는 오늘의 문명에서 이동은 더욱 요긴한 필수품이 된다. 공연작 〈테스트드라이브〉는 인류의 이동 및 이동 수단에 얽힌 욕구에 앵글을 맞추고 이를 여러 양상으로 제시한다. 여기서 욕구는 익명의 보편적 욕구로 그려져서 특정한 캐릭터가 없고 공연은 막과 장의 구분 없이 전개된다.

이색적으로 〈테스트드라이브〉는 가변형 사각 공간에 변화를 주어 십자(十字)형의 런웨이 통로를 무대로 설정하고 벽면 쪽의 4곳에다 객석을 배치하는 공간 구조를 취한다. 이런 구조 변경을 통해 공연은 입체감과 생동감을 더할 수 있은 것은 물론이려니와 관객의 시점도 고정된 일방향성을 탈피하도록 하는 효과를 가져왔다. 전원 남성의 출연진들은 진회색조의 승마 바지와 부츠에 검정 티를 착용한 모습들이고 언제든 이동하는 인간 군상으로 다가온다.



멜랑콜리댄스컴퍼니 〈테스트드라이브〉 ⓒ임현준



〈테스트드라이브〉의 도입부에서 승마복을 입은 어느 인간이 바닥 중앙에서 불현 듯 쓰러진다. 그는 다시 몸을 추슬러 일어나서는 격하게 움직이다가 쓰러지고 일어나기를 반복하는 모습을 제 홀로 행한다. 그러면서 바닥에 등 대고 누워 들썩이거나 런웨이 통로 바닥에서 발을 질질 끌거나 발길질로 앞뒤로 왕래하며 비틀대는 움직임을 이어가다 결국 쓰러지고 만다. 갈팡질팡하는 이 광경은 인간이 이동에 골몰하되 직면했었던 여의치 않은 상황들로 해석된다. 이어지는 부분에서 그는 나란히 누운 두 사람의 팔 속에다 자기 다리를 한쪽씩 끼운 다음 서서 전진하는 행동을 지속한다. 양쪽 다리로 한 사람씩 끌어대며 이동 전진하는 것은 자전거 페달을 교대로 밟는 모습과 흡사하다. 대조를 이루는 이 두 부분은 인류가 자기 홀로 이동 수단을 강구하는 단계를 지나 집단의 힘과 슬기를 빌어, 혹은 지식의 축적에 힘입어 이동 수단을 개발하는 단계로 진보해가는 과정을 말하려는 것인가.

이후 예닐곱 명의 출연자들이 몇몇씩 짝을 지어 전개하는 〈테스트드라이브〉에서 전반적으로 춤판을 주도하는 것은 인체의 완력(腕力)이다. 몸 움직임들은 이 완력을 기반으로 끊임없이 변주된다. 앞서 예시된 페달 밟기가 여러 차례 반복되며, 둘이서 혹은 넷이서 상대방과 팔을 잡고 몸 반동력을 이용해서 이동하는 신속한 움직임, 세 사람이 누워 한 사람을 떠받쳐 세우거나 들어 옮기는 동작, 누운 상대방의 두 다리를 잡아들이면서 그 상체를 바로 안아 몸을 세워주는 동작, 바닥에 앉은 상태로 빠르게 이동하기, 네발 동물처럼 사지로 기어서 훌쩍훌쩍 뛰어다니기, 물구나무선 자세로 성큼성큼 이동하기 등등의 동작들이 그 대표적 변주로 예시된다. 이런 동작들 사이사이에 몸체의 사지를 지렛대로 활용하는 이음새 동작들이 무시로 등장한다. 그것들이 여느 춤 무대들에서 간혹 대면하곤 하되 스쳐 지나가듯 하는 짧고 단편적인 이음새가 아니라는 점 또한 주시할 부분이다. 공연에서 몸 동작들은 모빌리티 디바이스(이동 수단)에 내포된 이동 속성을 기초로 하는데, 완력을 사용하는 그만큼 아주 드세다. 이는 모빌리티라는 이동 활동에 대한 인간의 욕구가 제어하기 까다로운 본능처럼 몹시 강력하다는 것을 암시할 것이고, 그것은 산업혁명 이후 문명에서 겪어온 사실로도 실증될 것이다.



  

멜랑콜리댄스컴퍼니 〈테스트드라이브〉 ⓒ임현준



공연 중반부에 이파리가 달린 나뭇가지를 입에 물고 몸에 두른 사람들이 기형적인 자세로 느리게 이동하며 배회하는 상황을 연출한다. 몸 움직임만으로 진행되던 앞부분과는 다르게 소도구가 사용되고 음향도 그전의 메탈록이 아니라 아마도 음악 톱으로 내는 듯한 하이소프라노 부류의 음이 단선율로 울려퍼져서 사뭇 대조를 이룬다. 이 사람들이 불현듯 나뭇가지를 떨굼과 동시에 구음조의 허밍이 곁들여지는 상태에서 그들은 퍽 엉거주춤한 자세로 배회하며 그 무엇을 찾아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오랫동안 어슬렁댄다. 이런 행동의 의도는 다음에 잇따르는 행동, 즉 바닥에서 허우적대는 인간에게 사람들이 스케이트보드를 들이미는 행동에서 보다 명료해질 것이다. 새로운 이동 수단의 발명이나 도입을 상징하는 이 부분은 그 직전의 나뭇가지 떨굼 부분과 연계해서는 아마 자연 질서로부터의 대대적인 이탈, 그리하여 새 차원의 문명 수단 도래로 인지될 법하다. 그들이 가져온 스케이트보드는 4개이다. 스케이트보드라는 물건은 그에 몸을 얹고 질주하는 것이 물론 흔한 장면이다. 그러나 〈테스트드라이브〉의 스케이트보드는 한쪽 끄트머리를 딛고 서서 세우기, 두 개의 스케이트보드를 바퀴 달린 안쪽들이 마주 보도록 세워서 각각의 아래 바퀴에 발을 얹어 이동하며 걷기 같은 동작의 소도구로 활용된다. 묘기를 동반한 동작들로 스케이트보드와 친밀한 관계를 맺은 후 사람들이 스케이트보드를 타고 느릿느릿 일렁대는 사이에 무대는 암전된다.



멜랑콜리댄스컴퍼니 〈테스트드라이브〉 ⓒ임현준



〈테스트드라이브〉에서 집약되는 것은 모빌리티에의 미련을 관두지 못하는 인간(과 동물)의 판타지이다. 이 같은 판타지의 궁극적 귀착점에 대해 공연이 명료하게 언급하는 바는 눈에 띄지 않으며, 양해됨 직한 일이다. 공연에서 출연자들은 이동 수단이 되는 동작이나 이동 수단을 조작하며 한몸을 이루는 생명체의 동작을 시시때때로 전개한다. 그런데 이 동작들로 이뤄지는 광경들에서 감지되는 서사들이 전반적으로 엇비슷하다는 감이 들며, 이에 따라 동어반복 식의 구성에 손질이 가해질 필요가 있다. 비록 광경들에서 형태적 차이가 있을지라도 그것이 내용에서 식별될 서사적 차이를 바로 의미하지는 않는다. 가령, 차별성을 갖는 서사들을 크레셴도 식으로 배열하는 것도 고려해봄 직할 것이다.



  

멜랑콜리댄스컴퍼니 〈테스트드라이브〉 ⓒ임현준



몸 움직임이 드센 점은 〈테스트드라이브〉에서 아주 도드라져 보이는 바이고, 관람객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을 것이다. 그 움직임들은 중노동 이상의 질감을 표출해서 더욱 인상적이었을 듯하다. 움직임의 이런 특성을 배경으로 이동에 관한 인간의 욕구는 강력한 정도를 넘어 아주 집착 같은 것으로 느껴진다. 심지어는 인간의 이동 욕구에 대해 이번 공연이 편집증의 시각에서 메스를 들이밀었다는 해석도 가능할 것이다. 이와 동시에, 드센 몸 움직임들을 수행하는 각자는 인간 체력의 극한에 이르는 양상들을 수시로 드러내면서 네발짐승들의 동작들도 마다하지 않았다. 애당초 공연 서두에서부터 정상인의 인체 움직임은 뒷전으로 밀려나고 있었고 움직임이 드세져서 고조되는 것과 함께 인간과 동물 사이의 경계는 재빠르게 희석되는 경향을 보였다. 그래서 인간만이 아니라 동물도 이동 욕구를 갖는다는 자명한 사실은 여기서 환기될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해, 인간중심적인 움직임을 무대에서 비켜세우고 인간계-동물계(즉, 자연계)를 자유로이 횡단하는 움직임들이 전면에 나섰다. 특히 이 점에서 〈테스트드라이브〉는 신물질론(신유물론이라 명명되기에는 더 넓은 사조!) 계열의 포스트휴먼 이슈를 정면으로 구현해낸 드문 무대이다. 〈테스트드라이브〉는 인간중심주의의 관점에 안주하기보다는 포스트휴먼의 춤과 인간의 욕망을 유다르게 치밀하며 드센 움직임으로 추구한 주목할 공연작이다.

김채현

춤인문학습원장.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명예교수. <춤웹진> 편집장. 철학과 미학을 전공했고 춤·예술 분야 비평 수백 편과 저서 『춤과 삶의 문화』 『춤, 새로 말한다 새로 만든다』 『뿌리깊은 나무 샘이깊은 물』(1)을 비롯 다수의 논문, 공저, 『춤』 등의 역서 20여권을 발간했다. <국립무용단 60년사>(2022년 간행, 국립무용단)의 편집장으로서 편집을 총괄 진행하고 필진으로 참여하였다. 지난 30년간 한국의 예술춤과 국내외 축제 현장을 작가주의 시각으로 직접 촬영한 비디오 기록물 수천 편을 소장하고 있으며 한국저작권위원회, 국립극장 자료관, 국립도서관 등에 영상 복제본, 팸플릿 등 일부 자료를 기증한 바 있다.​​​​​​​​​​​​​​​​​​​

2025. 2.
사진제공_임현준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