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호페쉬 쉑터 〈꿈의 극장〉
장광열_춤비평가

치밀했다.

정밀하게 계산된 구성도 구성이지만 무엇보다 댄서들의 작품에 대한 해석력과 표현력, 그리고 집중력은 대단했다. 〈꿈의 극장〉(성남아트센터, 2월 14~15일)에서 안무가와 댄서들의 기막힌 매칭은, 몸을 매개로 하는 무용수들의 탄탄한 앙상블로 무대 위에 구현되었고, 음악, 조명과의 성공적인 협업은 극장예술로서 무용의 변별력을 극대화했다.

안무가이자 작곡가인 호페쉬 쉑터가 구축한 움직임과 음악, 비주얼은 마치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듯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관객들의 눈과 귀를 홀렸다.

90분 길이의 장편 작품을 위해 안무가 호페쉬 쉑터가 배치한 승부수는 객석과 관객, 그리고 무대까지를 포함한 극장 운용/ 커튼을 활용한 시각적 비주얼과 이를 통한 공간의 변환/ 공연 중반이 흐를 때까지 숨겨두었던 3인조 밴드의 라이브 연주였다.

특히 커튼을 사용한 장면은 압권이었다. 댄서들이 터치하면 열리고 닫히는 커튼은 처음에는 단순히 댄서들의 등퇴장을 위한 장치로 사용되는 것처럼 보였으나, 시간이 흐르고 회색과 푸른색이 적절한 조도로 결합된 푸르스럼한 조명(Tom Visser)이 눈에 들어오면서는 무대 전체를 꿈의 공간으로 변화시키는 중요한 매개체가 되었다.

안무가는 커튼을 이용, 퍼포머들을 보이게 또 보이지 않게 하거나, 움직이거나 움직이지 않게 하거나, 높거나 낮음의 차이를 두거나, 빠르거나 느리거나 또는 멈춤을 사용하여 몸들의 향연을 만들었다.

마치 토막난 꿈을 꾸듯 검은 커튼이 꿈과 꿈 사이를 난도질했다. 밤새도록 알 수 없는 꿈을 꾸듯, 다양한 사건들의 조합이 벌어졌다. 슬픔, 기쁨, 외침, 외로움, 사랑, 번뇌 등 수많은 감정의 충돌들이 커튼들 사이에서 보였다 사라졌다.







호페쉬 쉑터 〈꿈의 극장〉 ⓒTom Visser



음악을 댄서들의 움직임 확장을 위한 수단으로서뿐만 아니라 장편 춤 작품의 구조적인 변화를 꾀하는 장치로 활용하는 안무가의 출중함은 음악이 곧 안무이고 안무가 곧 음악임을 역설적으로 보여주었다. 한 마디로 호페쉬는 춤과 음악을 제대로 갖고 놀 줄 아는 예술가였고 관객들을 한껏 즐기게 만드는 마법사였다.

피아노에서 시작, 드러머에서 안무가로 변신한 호페쉬가 〈꿈의 극장〉을 위해 작곡하고 배열한 음악은 다채로웠다. 녹음된 음악과 그 자체로 음악이 된 댄서들의 목소리, 연주자 3인으로 짜여 진 밴드의 라이브 연주가 적절한 타임에 춤과 절묘하게 매칭 되었다. 그의 심볼이 된 강력한 비트가 귀를 때리는 현대음악에서부터 삼바와 살사 리듬, 그리고 외로움을 담은 올드 팝까지 관객들의 눈과 귀는 어느새 꿈과 현실을 넘나들며 퍼포머들과 함께 유영하고 있었다.

대지진이 발생할 것만 같은 전조현상이 일어나는 듯, 또는 땅의 조용한 울림 같은 음악은 우리의 무의식을 자극하는 듯했다. 낮고 깊고 울창했다. 호페쉬가 잘 사용하는 심장박동과 유사한 일률적인 비트는 관객들을 꿈의 상태로 데려가기 위해 최면을 거는 듯했다.

관객들은 그의 최면에 걸렸고 검은 천속에서 꿈을 수없이 꾸었다. 선명한 몸들과 안개 속에서 헤메이는 몸들의 울림이 꿈과 꿈 사이에서 서성거렸다. 깊이 새겨지거나 흐릿하여 알 수 없는 몽롱한 꿈들을 수없이 꾸고 일어나니 어느새 공연은 끝났다.





호페쉬 쉑터 〈꿈의 극장〉 ⓒTom Visser



호페쉬는 몸과 몸들의 모음을 어떻게 구성할지에 대한 방법을 수없이 반복해 보여주었다. 한 사람의 몸도 몸의 각도와 높낮이 또는 빠르기와 방향에 따라 수많은 방법으로 드러낼 수 있고, 두 사람의 몸이 모이면 더 많은 가능성의 세계가 열린다.

안무를 하는 데 있어 시간, 공간, 방향, 에너지 조합의 중요함은 안무가라면 누구나 알고 있다. 그러나 그것을 몸에 이입할 때 호페쉬처럼 자유롭게 조율하고 버무릴 수 있는 안무가는 많지 않다. 안다는 것과 아는 것을 잘 활용하여 만들 수 있는 것은 차원이 다르다. 호페쉬는 창의적인 안무 기법으로 능수능란하게 움직임들을 조합했다.

그가 만든 움직임은 기관 없는 신체처럼 형태가 선명하지 않으면서도 명확하게 볼 수 있었고, 흐릿한 조명 속에서도 내용과 의미가 또렷하게 드러났다.

무용수들의 움직임은 발레처럼 명확한 선이니 각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냥 두 팔과 두 다리를 휘젓거나 구부리거나 주저앉는 등 특별히 아주 복잡한 동작은 없었으나 구성의 변화는 끝없이 이어졌다.

열을 지어 서서 움직이는 사람 아래로 구부려서 빠르게 지나가는 무용수들... 복잡하게 아우성을 치거나 소리를 지르는 듯 정신없는 구성 속에서도 알 수 없는 묘한 앙상블이 만들어졌다. 거의 난장판에 가까운 몸들의 아우성, 에너지 넘치는 동작을 그냥 버무려놓은 것 같은데 그 맛이 기막혔다.





호페쉬 쉑터 〈꿈의 극장〉 ⓒTodd MacDonald



〈꿈의 극장〉은 이렇듯 안무가의 창의력이 극명하게 빛났다. 호페쉬는 13명의 댄서와 3명의 연주자들로 할 수 있는 실험은 다한 듯 보였다. 신체적 표현을 극대화시킨 댄서들의 에너지 넘치는 움직임은 어느 순간 정지된 몸들과 대비되면서 90분 내내 관객들을 몰입시켰다. 음악과 안무가 마치 대화를 나누는 것 같은 호페쉬 창작 작업이 정점에 이르렀음을 다시 한 번 각인시켜 주었다.

평자는 〈꿈의 극장〉을 본 날을 전후해 한국의 앰비규어스댄스컴퍼니와 오하드 나하린이 안무한 서울시발레단의 작품을 보았다. 세 작품 모두 객석을 활용해 관객들과 소통하는 구조를 갖고 있었다. 이 중에서 작품을 완전히 해석하면서 추는 댄서들의 힘이, 안무가의 작품을 빛낼 수 있음을 확인시켜주었던 것은 〈꿈의 극장〉이었다.





호페쉬 쉑터 〈꿈의 극장〉 ⓒTom Visser



지난해 파리 올림픽을 계기로 초연한 세계적인 화제작을 서울이 아닌 수도권 극장에서 유치했다는 것은 우리나라 공연예술계의 지형이 바뀐다는 조짐이다. 〈꿈의 극장〉을 성남아트센터가 유럽과 북미의 20여 개 극장 및 축제와 함께 공동제작 했다는 것도 매우 고무적이다. 세계 춤 시장에 한국이 제대로 진입했음을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성남아트센터는 세계에서 가장 뜨거운 안무가 중 한 명인 호페쉬 쉑터의 이 핫한 작품 공연으로, 적어도 무용예술 장르에서는 일급 극장으로 급부상 했다. 1층 객석을 가득 메운 관객들의 “춤이 재미있다”는 반응은 공연장이 컨템퍼러리댄스의 대중화에 기여한 또 다른 사례로 기록될 것이다.

세계 유명 극장과 메이저 단체로부터 러브 콜을 받고 있는 안무가가 이끄는 컴퍼니에 대한민국 댄서(김예지)가 소속되어 춤추고 있고 이전에 안무가와 함께 작업했던 무용수(차진엽)가 공연 후 관객과의 대화를 진행했다. 또 호페쉬는 세계적인 안무가로 부상하기 직전에 서울국제즉흥춤축제에 출연해 특유의 창의적인 움직임을 보여주었었다. 이 역시 세계무대를 향한 대한민국 춤 시장의 경쟁력이 만만치 않음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장광열

1984년 이래 공연예술전문지 월간 〈객석〉 기자와 편집장으로 활동했다. 1995년 국제공연예술프로젝트를 설립 〈Kore-A-Moves〉 〈서울 제주국제즉흥춤축제〉 〈한국을빛내는해외무용스타초청공연〉 등 국제교류 프로그램을 정례적으로 시행하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 정책평가위원,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국제교류 위원, 호암상 심사위원 등을 역임했으며, 춤비평가, 한국춤정책연구소장으로 춤 현장과 소통하고 있다.​​​​​​​​​

2025. 4.
사진제공_Tom Visser, Todd MacDonald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