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서울시발레단 〈데카당스〉
춤공연의 ‘관객 친화적 되기’의 성공작
이지현_춤비평가

2025년 서울시발레단을 위한 〈Deca dance〉(2025. 3. 14-23. 세종M씨어터. 8회 공연)는 1993년 〈Anaphaza〉부터 최근인 2023년 〈Anafase〉까지 약 30년 동안의 오하드 나하린(Ohad Naharin 이하 오하드) 작품 중 8개가 중심이 되어 공연되었다.

원래 이 작품은 2000년 바체바 무용단(Batsheva Dance Company)의 10주년을 기념하기 위하여 그간 창작된 10개의 작품으로 구성된 작품이었고, 여러분도 눈치챘다시피 10명의 남녀가 10일 동안 나눈 이야기 100개를 모은 ‘데카메론’의 작명 방식을 따온 재치있고 누구나 그 의미를 유추할 수 있는 제목이다. 그러나 창작된 이래 바체바 무용단의 투어 공연 뿐 아니라 세계 유수의 발레단과 현대무용단의 로얄티 공연으로 이어지고 있는 현재도 살아있는 공연이기에 최근의 작품까지 후보작으로 포함되고 있으며, 꼭 10개라는 원칙보다는 현지 무용수와 관객의 상황에 맞게 조율되는 보다 탄력적인 공연 형식으로 자리 잡았다.

오하드는 한국 공연을 위하여 주로 공연 임박한 극장 리허설에 집중해서 함께 했으며 1월부터 시작된 연습은 4명의 스테이저들(Ian Robinson, Rachael Osborne, Matan David, Hani Sirkis)과 바체바 단원 경력을 갖고 있는 김천웅(리허설 디렉터), 발레 마스터인 김준범과 최정윤이 맡아 진행했다.


용의주도한 아이스 브레이킹(ice breaking)과 가이드 따라가기(being guided)

공연이 시작되기 전 이미 하우스 음악이 흘러나오고 관객들이 자리를 잡는 동안 어느 틈에 수트를 입은 남자무용수 한명(남윤승)이 무대 위를 자연스럽게 누빈다.





서울시발레단 〈데카당스〉 ⓒ세종문화회관



그다지 시선을 집중시키지 않는 상태였는데 객석이 정리 되어가면서 점차 무대로 자연스럽게 시선이 간다. 그의 움직임은 점점 강도를 높여가면서 공연 전에 조금 과하다 싶을 정도까지 발전한다. 물론 이 과장은 자연스런 웃음과 때론 그의 노력에 대한 자연스런 박수로 이어지며 관객을 아주 자연스럽게 공연으로 이끈다. 그리고 이어지는 공연의 첫 장면은 데카당스의 시그니처 장면으로 꼽히는-검은 슈트를 입은 무용수들이 반원으로 놓여진 의자에 앉아 무대를 꽉 채우는-결코 가볍지 않은 장면이다. 보통은 작품의 첫 장면에 안무가들은 상당한 의미를 부여하기 때문에 무거워지기 십상인데, 오하드는 압도하는 첫 장면을 보여주기 위해 관객을 가볍게 웃게 만들고, 무대를 데워놓는 센스로 관객과 출연자를 충분히 이완시켜 어느새 첫 장면으로 우리를 데려다 놓았다.

25년의 시간으로 현대무용계에서는 고전이 되어가고 있는 〈데카당스〉의 저력은 작품이 이어지는 1시간 10여분 동안 관객이 거의 한눈을 팔 수 없게 만드는 것으로 확인된다. 보여줄 때는 모든 무용수들이 무대 전면을 향해 전력을 다해 발을 구르고, 몸통만 앞에서 보일 정도로 머리와 사지를 제치고, 튀어 오르고, 바닥으로 몸을 던지거나 샤우팅 한다. 물론 그럴 때 음악은 강렬하게 여러 드럼의 비트로 몰아가면서(오하드는 직접 음악에 참여도 한다. 바로 첫 장면에 쓰이는 Echad Mi Yodea는 원래 구전되어 오는 유월절에 불리는 노래지만 그가 음악화하여 사용하였다), 오감을 장악해 버린다. 그 자극은 속도를 높이며 슈트를 하나씩 벗어던지고 신발을 벗어 던져 그것들이 날아가 무대 한가운데 더미를 만들 때쯤엔 모든 규제와 막힘을 벗어던지는 행위를 정확히 전시하여 해방의 홀가분함을 대리 만족시킨다.

유니슨의 대세가 너무 강렬해서 그냥 지나칠 수도 있지만, 놓여진 의자의 한쪽 끝에선 한 사람이 계속 전체에서 낙오한다. 다른 이들이 튀어 오를 때 바닥으로 쓰러진다. 혹은 한 사람 계속 튄다. 다른 사람들이 앉아있을 때 혼자 의자 위에 올라선다. 아주 간단한 장면이고 간단한 장치이지만 누구나 집단에서 느끼는 소외감, 박탈감, 결핍감에 대한 강한 은유이다.



서울시발레단 〈데카당스〉 ⓒ세종문화회관



그러다 이어지는 섬세한 듀엣이나 솔로, 내밀한 자기 고백의 장면은 밖으로 뿜는 에너지를 그만큼 안으로 당긴다. 그리고 양극단의 거리만큼이나 감각에게는 자극적이다. 서울시발레단의 시즌무용수들이 일상복, 운동복, 연습복에 가까운 파스텔톤 컬러의 옷을 입어 개성을 드러내며 움직임의 파노라마를 펼친다. 거기에 육성이 더해지고 부모님, 자기의 탄생 배경, 성적 취향 등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이야기의 주인공과 어느새 성큼 가까워진 느낌까지 든다. 물론 이 이야기는 어느 무용단에서 공연하더라도 반복되는 실제 무용수와는 관계없는 픽션으로 짜인 대본이다.

그렇게 무대 위의 인물들과 많이 가까워졌을 때 관객이 가이드 된 곳은 ‘춤의 기쁨’의 나라이다. 맘보, 차차는 말할 것도 없고 Somewhere over the rainbow와 딘 마틴의 Make me sway는 우리가 영여권이 아님에도 익히 알고 있는 춤의 유전자를 깨우는 명곡들이다. 그 앞에서 어떻게 몸을 들썩거리지 않을 수 있겠는가.

거기까지라면 〈데카당스〉가 아니다. 첫 장면의 검은 수트의 무용수들이 검은 모자 하나를 덧쓰고 멋지고 정중한 모습으로 변해서 나타난다. 그렇지만 그들의 등장은 ‘내가 먼저 체면 벗어던지고 출게, 당신도 같이 춰요’라고 말하는 것처럼 작정을 하고 강한 발구르기를 하며 튀어나온다. 오직 춤을 추기 위해. 그러더니 객석으로 내려오고 관객을 무대로 정중히 모셔 간다. 그리고 다음은 검은 수트와 관객이 파트너가 되어 춤을 춘다. 무언의 가이드로 관객은 원으로 돌기도 하고 원 안으로 모아 놓기도 하면서 그들의 다양한 옷 색깔, 그들의 다양한 모습, 그들의 다양한 표정이 살아나도록 무용수들은 블랙으로 그들을 감싸거나 그들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배경색이 된다. 통제된 것과 통제되지 않은 것의 조화로 예측불허의 상황을 예측하면서 아름다운 장면을 만들어 간다.





서울시발레단 〈데카당스〉 ⓒ세종문화회관



관객 참여의 장면은 예측불허의 부담으로 다들 마음은 굴뚝같지만 꺼리는 장면이다. 참여하는 관객 역시 치밀하게 준비되지 않았을 때 의도를 함께 하기 어렵거나 불편하다. 〈데카당스〉는 이를 충분한 예열 과정으로 극복한다. 관객이 대거 무대로 올라가기 전, 사회자 역할의 댄서가 나와 모든 관객을 일으켰고 연봉 500억(?)이상의 사람만 앉을 수 있다고 전제를 준다. 그렇게 서 있는 관객을 줄여가는 게임이 계속되자 마지막엔 오늘이 생일인 관객 한 명만이 남는다. 이렇게 남은 관객이 무대에 올라가고 그를 축하하기 위한 그러나 결코 평이한 축하가 아닌 절제되고 반어적인 감정의 무용수들과의 축하 사진 찍기의 해프닝이 끝나면 관객은 자기 친구가 생일인 것처럼 열렬한 축하의 박수를 보낸다.


객석의 감각적 욕망을 아는 귀재 오하드

우리의 감각은 일상 범위를 넘을 때 자극받는다. 무대는 그러기 위해 고안된 곳이고 관객은 감각적 자극을 통해 감각 이상의 영역으로 넘어가기 위해 무대 예술을 찾는다.

〈데카당스〉는 관객과 함께 춤의 즐거움을 누리겠다, 모든 사람이 춤출 수 있다는 신념을 무대 위에서 잘 실현한 작품이다. 단순한 듯하지만 공연예술에서는 성공한 예가 그리 많지 않은 시도이고 어려운 도전이다. 그러기 위해 오하드는 감각의 극단과 대조를 사용한다. 검은색 단색과 다양한 파스텔 톤을 사용하는 것처럼, 격렬할 수 있는 극단을 찾고, 내면적일 수 있는 섬세함의 극치를 드러낸다. 이 사이의 그물망에 걸리지 않는 사람은 드물다. 그리고 인류의 오래된 유전자인 춤의 유전자를 건드린다. 꽤 단순하지만 현대생활에서는 숨어있는 그 부분을 건드리기 위해 그의 댄서들은 정서든, 움직임이든 고무줄처럼 가용범위가 확장되어 있어야 하고, 극단으로 과장하거나 최소로 절제할 수 있어야 한다. 내면의 정서를 움직임으로 외화시킬 수 있어야 하고, 그 정서와 움직임의 최소에서 최대까지의 범위를 종횡무진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 그가 사용한 훈련법들이 체계화된 것이 Gaga 무브먼트이다.



서울시발레단 〈데카당스〉 ⓒ세종문화회관



서울시발레단도 일주일에 3일은 발레로 몸을 풀고, 나머지 3일은 가가 훈련을 했다고 한다. 대부분 젊어서인지 무대 경험이 많지 않아서인지 공연 초반에는 긴장되어 있었지만, 공연이 무르익어 갈수록 22명의 무용수들은 자기의 색을 드러내고 몸과 정서가 통합된 에너지를 뿜어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것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서울시발레단 〈데카당스〉 ⓒ세종문화회관




〈데카당스〉의 교훈

창단을 위해 조심스럽게 한발씩 떼면서 국내 안무가들과 사전 공연을 하고있는 서울시발레단의 24년의 시험가동은 기대가 큰 만큼 실망감과 불완전한 창작 시스템에 대한 우려의 눈길을 받았다. 그러나 기존 공공무용단에서 진일보한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 결과를 단정하기에는 이르다. 25-26 시즌의 해외 안무가 라인업의 시작이 오하드 나하린의 〈데카당스〉로 시작된 것은 반가운 일이고 우리에게는 어느새 드문 일이 되어버린 환호하고, 들썩거리고, 열광하는 객석의 반응만으로도 훈풍이 느껴진다.

시립의 무용단이라면 시민 관객이라는 특정 집단은 누구이며 무엇을 원하며 그것을 어떻게 요리하고 완성할 것인가에 대한 오하드의 교훈을 새기는 일은 중요해 보인다. 그의 예술성은 여기서 초점이 아니다(어쩌면 기본이다). 앞에 언급한 것처럼 그는 자신의 고민에 걸맞는 해법을 찾아냈고 오랜 실험을 통해 Gaga로 자기 춤 방법론을 체계화시켰다. 객석에 앉아서 바라보는데 무대 위의 댄서에 동화되고 이입되지 않을 수 없게 만들거나 심지어 함께 움직이고 있다는 ‘착각’까지 주는 효과 만점의 전략을 구사한다.





서울시발레단 〈데카당스〉 ⓒ세종문화회관



우리 현대발레와 현대무용의 역사는 100여년으로 짧고 아직 20세기 초반의 수입된 상태에서 그리 많이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그래서 그 당시의 향취인 어둡고 무거운 분위기에 갇혀있다. 거기에 예술은 이런 거 아닌가, 이 정도는 다뤄줘야 하는 거 아닌가라는 관념에 갇혀(오하드의 경우 심할 정도로 이런 의식이 없다) 춤예술의 진수에 가 닿지 못하고 현실감과는 떨어진 우회로를 걷고 있다. 그러나 현재의 관객은 객석에서 그런 오래된 것들, 자신의 관심사와는 거리감 있는 창작자의 자의적인 것들에 반응하지 않는다. 재미있는 무용 공연이 번번히 재미없어지는 순간이다.

오하드처럼 관객을 가이드하는 섬세하고 치밀한 기술처럼 관객의 코드를 읽어내고 끌고 가는 공공무용단으로서 기획, 우리 안무가들의 그에 걸맞는 관객을 향한 화통한 노력, 우리의 젊은 세대의 성실함과 발랄함이라는 자산의 3박자의 균형이 우리의 메트로발레단의 행로에 필요해 보인다.

이지현

1999년 춤전문지의 공모를 통해 등단했다. 2011년 춤비평가협회 회원이 되었으며, 비평집 『춤에 대하여 Ⅰ, Ⅱ』를 출간했다. 현장 춤비평가로서 왕성한 비평작업과 함께 한예종 무용원 강사를 역임하고, 현재 아르코극장 운영위원과 국립현대무용단 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2025. 4.
사진제공_세종문화회관 *춤웹진